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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시대

자성대

동구 범일동
  • 탐방일시 :2018.06.29
  • 조회수 :1034
  • 좋아요 :0
  • 위치
    부산광역시 동구 자성로 99[범일동 590-5]
  • 키워드
    부산진성, 자성대, 동래, 조선, 역사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있는 조선 시대 부산진성의 지성이자 장대이다. 자성대 정상 부근에는 임진왜란 때 쌓은 왜성의 일부가 아직도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일본군이 임진왜란 때 남해안에 쌓았던 왜성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의 성곽 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또 자성대는 조선 후기에 조선 수군이 부산진성의 본성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부산 지역의 관방 체제와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현장이다.

자성대

상세내용보기

자성대는 현재는 부산진지성이라는 이름과 혼용하여 쓰이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고니시가 1597년 주둔한 적이 있다 하여 고니시성(한자식으로는 小西城 / 소서성), 임진왜란 이후에는 명나라 만세덕 휘하의 군대가 주둔하였고, 이후에는 만공단을 뒤에 두고 있다는 의미가 더해져 만공대(萬公臺)라고도 불렸다.1)
또한 마루야마성(丸山城)이라는 호칭으로도 불렸는데, 일본에도 비슷한 이름의 성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보아, 일본식으로 지어진 성의 모양을 보고 지은 이름이었던 것 같다. 현재에도 쓰이는 '자성대'는 부산진성을 모성으로 두는 자성 + 정상에 둔 자성에 장대2)를 두었다는 '대'를 합쳐 지어진 이름이다.
본래 자성대는 정공단을 중심으로 증산을 둘러싼 내성과 함께 부산포의 외성으로 쌓은 조선의 성이었으나, 임진왜란 중 일본이 주둔하는 동안 왜장 모리 데루모토 부자가 성을 헐고 일본식으로 다시 지었으며, 이 성의 일부분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임진왜란 시기에 지어져 왜군 장수와 명나라 장수 모두가 거쳐 간 장소인 부산진지성은 자성대를 중심으로 성을 다시 고치고, 이 과정에서 사대문의 건립, 관아의 수리를 비롯한 보수를 거쳐 부산진첨사영 (釜山鎭僉使營)이란 이름의 좌도수군첨절제사의 숙소로 쓰였다.

한편 임진왜란 이후 성을 복원 및 재건축하면서, 동문을 진동문(鎭東門), 서문을 금루관(金壘關), 남문을 진남문(鎭南門), 북문을 구장루(龜藏樓)라 하였다. 1785년 서문 앞 범천의 나무다리를 석교(石橋)로 고쳐 쌓았으며, 서문 양측에는 부산진 지성 서문 성곽우주석(釜山鎭支城西門城郭隅柱石)을 만들었다. 여기에 ‘남요인후(南徼咽喉) 서문쇄약(西門鎖鑰)3)’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이곳이 나라의 관문이었음을 알려 주는데, 이것은 임진왜란 후 부산진성을 축성할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돌기둥은 원래의 서문 자리인 성남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는데, 1975년 보수 때 지금의 서문인 금루관 좌우로 옮겨 세웠다.
성 안에는 공진관(拱辰館)[객사], 검소루(劍嘯樓)[동헌], 제남루(濟南樓)를 비롯한 관사들이 있었고, 성 밖에는 진남루[관문], 진남정, 목장창[진의 동쪽 10리], 대치창[진의 동쪽 15리], 석포창[진의 동쪽 45리] 등이 있었다. 또 조선 후기에 자성대를 부산진성으로 사용하면서 장대로 육우정(六隅亭)을 세우고, 이를 승가정(勝嘉亭)이라고 하였다. 자성대는 본디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바닷물이 성 밑에까지 닿았다고 한다. 우주석의 '남쪽 변방 경계'라는 표현은 그래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남대

진남대

남요인후

남요인후

서문쇄약

서문쇄약

금루관

금루관

일제시대에 이르러, 자성대는 성 내의 군사 시설이 파괴되었고, 전차 선로가 부설되면서 서쪽[오늘날의 부산진 시장]의 성문과 성벽이 크게 훼손되었다. 남쪽 바다는 매축되고, 북쪽은 도로와 시가지가 들어섰으며, 동쪽은 매축되어 주거지와 선창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자성대는 1974년에서 1975년에 걸쳐, 부산광역시에서 정화 복원 공사를 벌여 동문(진동문), 서문(금루관), 장대(진남루)를 복원하고, 75년 7월에는 동문 근처에 성곽 또한 신축하였다. 이후 명나라 장수로 조선을 도우러 왔다 귀화한 천만리 장군의 후손이 천만리 영양 천공비를 세우고, 왜구를 물리친 최영장군비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천장군 기념비

천장군 기념비

최영장군사당

최영장군사당

조선시대 통신사들의 해신제를 지냈던 영가대 또한 현재의 자성대 아래에 복원되었으며, 이는 조선통신사역사관과 이어져 있기도 하다.

현재의 자성대공원은 금루관(서문), 진동문(동문), 서문성곽우주석, 진남대(정상), 최영장군비각, 조선통신사역사관, 영가대, 북문(성문 형태가 아닌 공원의 입구), 배드민턴장, 체육시설, 천장군 천공비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영장군비각에는 술이 올려져 있는 등 역사적 공간뿐만 아니라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등이 어우러진 부산 사람들의 여가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자성대는 1호선 범일역, 부산진시장 버스 정류장 등을 통해 대중교통으로 연결되어있으나, 직접적으로 대중교통과 연결되는 방법은 없어 어느 정도 걸어야 한다.

위치보기

1) 참고문헌 전반에 걸친 공통적 요소를 다듬음, 문헌에 따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소서행장으로 불리는 등의 작은 차이점만 존재함.
2) 전쟁 또는 군사훈련 시에 성내의 군사들을 지휘하기 위해 대장이 자리하는 누대(樓臺),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장대
3) 이곳은 남쪽 변방에 목구멍 같은 경계이며,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이 중요한 곳이다.
참고문헌
* 부산시청 홈페이지, 부산의 역사, <자성대>, https://www.busan.go.kr/bhpplace0412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자성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17828&cid=55777&categoryId=56132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부산진지성>,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03869&cid=40942&categoryId=35104
* 위키백과, <부산진지성>, https://ko.wikipedia.org/wiki/%EB%B6%80%EC%82%B0%EC%A7%84%EC%A7%80%EC%84%B1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부산진지성>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3,00070000,21
* 부산일보, [부일 청소년 리포트] 우리 고장의 숨겨진 문화재 '자성대'를 소개합니다, 임태섭 기자, 2017-07-03,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7070300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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