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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역사의 관점에서 본 필리핀의 결혼이주 현상, 마닐라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Philippines
  • 탐방일시 :2018.08.12
  • 조회수 :1832
  • 좋아요 :0
  • 위치
    30th Floor Yuchengco Tower, RCBC Plaza, 6819 Ayala Avenue cor. Sen. Gil J. Puyat Avenue, Makati City 1226, 필리핀
  • 키워드
    결혼 이주, 국제 결혼, 마닐라, 식민지, 역사

필리핀은 멕시코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노동력을 송출하는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해외로 나간 필리피노들이 보내오는 송금액이 국가의 GDP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필리핀에서는 해외 이주가 국가의 중요한 국가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필리핀에서 많은 노동력이 송출되는 이유는 다각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를 우리 팀은 역사적 관점에서, 필리핀의 해외 이주 역사라고 생각했다. 필리핀의 해외 이주 노동의 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민 지배 역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현지 탐방을 통해 필리핀의 식민 지배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또한 한국인과 필리핀인의 국제결혼이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결혼 이주 발생 이유도 조사하고자 하였다.

필리핀 산페드로요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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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필리핀의 식민 지배 역사와 해외 이주
2. 한국으로 결혼 이주하는 필리핀 여성들

Ⅱ. 본론
1. 필리핀의 해외이주역사
1) 20 세기 초부터 1940 년대
2)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1950년대
3) 1960년대부터 1970년대
2. 필리핀의 식민지 역사를 담고 있는 유적지
1)마닐라
2)세부
3. 필리핀의 결혼이주
1) CFO 마닐라 지사
2) CFO 세부 지사

Ⅲ. 결론

Ⅳ. 인터뷰

Ⅰ. 서론

1. 필리핀의 식민 지배 역사와 해외 이주

필리핀은 멕시코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노동력을 송출하는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해외로 나간 필리피노들이 보내오는 송금액이 국가의 GDP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필리핀에서는 해외 이주가 국가의 중요한 국가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1위 송출국인 멕시코는 미국으로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필리핀은 한 국가로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나라로 다양한 노동 송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으로 전문직(의사 또는 간호사) 이주, 한국·일본·대만 등으로 결혼 이주, 중동으로 가정부로서의 노동 이주 등 많은 경우가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필리핀에서 많은 노동력이 송출되는 이유는 다각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를 우리 팀은 역사적 관점으로 생각해 필리핀의 해외 이주 역사에 대해 산 칼로스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다. 역사적 관점에 집중하기로 했으며, 따라서 필리핀의 해외 이주 노동의 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민 지배 역사에 대해 알 필요가 있었다.
필리핀이 노동력을 송출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은 미국의 식민 지배 이후 시작된다. 본론에서 필리핀의 해외 이주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미국의 식민 지배 이후 해외 노동자로 하와이에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다양한 직업군으로 노동력이 송출되었다.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기 전까지, 다시 말해 2,000만 달러에 필리핀을 넘기기 전까지 필리핀은 스페인의 시민 지배를 200년간 받았다. 1521년 마젤란이 세부 섬에 상륙하면서 유럽에 알려진 후, 스페인의 필리핀 식민통치가 시작되고 이후 200년 동안 스페인의 통치 아래 필리피노의 80%는 카톨릭으로 개종하게 되었다. 결국 현재 필리핀을 대표하고 있는 종교, GDP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 송출국이라는 점 등은 대부분 식민 지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식민 지배 역사의 잔재들을 지우기에 급급해 우리의 역사의 일부을 지우고 은폐하고 있지만, 필리핀의 마닐라와 세부에서 식민 지배 흔적들이 관광지로 알려질 만큼 잘 보존되어 있었다. 필리핀의 세부는 스페인이 가장 먼저 진입한 지역이고, 그 이후에 마닐라는 거점 도시로서 스페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마닐라의 인트라무로스, 산티아고, 세부의 산 페드로 요새 등의 건축물 현지 답사를 통해 일상생활에 스며든 식민 지배 역사 및 문화를 알아보았으며, 그 내용은 본론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2. 한국으로 결혼 이주하는 필리핀 여성들

현재 대한민국은 다문화 사회이며 과거에 비해서 외국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점점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 이유도 다양하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여행을 위해, 공부를 위해, 결혼을 위해 등을 이유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있다. 특히 많은 수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결혼 이주자들이 한국에 유입되고 있다. 사실상 동남아시아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의 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에 따라 다문화 가정의 수도 늘어나고 있는데, 팀원 중 한 명이 다문화 아동센터에서 봉사를 하며 느꼈을 때 많이 나아졌지만 다문화 가정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 아직 곱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결혼이주에 있어서는 국내 농촌지역에서 결혼을 하지 못한 중년의 남성들이 아이를 갖기 위해 브로커를 통해서 동남아 지역의 젊은 여성들과 혼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각종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혼인 이후 결혼 이주해온 여성이 한국의 문화에 적응을 못하거나 언어적 어려움을 겪는 등에서 발생했다. EBS에서 방송하는 ‘다문화 고부열전’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리핀에서는 CFO라는 결혼 이주를 담당하는 전문 기관을 만들었고 결혼 이주를 준비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전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으로 이주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1박 2일 간의 사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있다. CFO 이수는 필리핀 국제결혼서류 진행과정 중 중요한 일정으로, 관광을 제외한 필리핀인의 해외 출국 시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리핀만의 고유 절차로서 혼인신고 이후 진행된다. 서류제출과 인터뷰, 교육이수의 과정을 거친 후 출국이 가능한 스티커를 받게 되고 이 스티커가 있어야만 출국이 가능하다. 첫 만남에서부터 연애 과정, 결혼까지의 과정을 꼼꼼히 심사하며 인터뷰 시 결혼과정에 있어 조금이라도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들면 탈락을 시키기에 꼼꼼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동남아에서 온 이주 여성들에 대해 한국 내에서 문제점들도 있고, 필리핀에는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결혼 이주를 위해 만들어진 CFO라는 기관이 있기에 필리핀의 CFO를 방문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으로 보였다. 특히 한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는 1박 2일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니 어떤 교육을 어떤 내용으로 진행하는 지에 대해 많은 궁금점이 생겼었다. 그리하여 필리핀 CFO 마닐라, 세부 지사에 방문하여 사전 교육 과정이나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필리핀에서 한국으로의 결혼 이주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실제로 교육 이후 개선된 부분은 있는지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실제 한국으로의 이주를 준비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만나보고 얘기를 나누고자 방문을 계획하게 되었다.

Ⅱ. 본론

1. 필리핀의 해외이주역사

1) 20 세기 초부터 1940 년대
스페인의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필리핀은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02 년 까지 미국에 대한 저항운동이 계속 되었으나, 미국은 필리핀이 자체적으로 통치를 할 수 있게되면 필리핀을 떠나겠다고 약속 하였으며 필리핀도 이를 수락 하였다.
1906년에 처음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필리핀인들은 루손섬 북부 일로코스지방 출신 남성으로, 하와이의 사탕수수농원의 노동자가 되었다. 필리핀은 미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필리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는 것은 외부적인 이주가 아닌 것으로 여겨졌고 필리핀 이주민을 시민은 아닌 국민으로 인정해주었다. 이를 'Special non-citizen national status'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 진 1946년까지 하와이의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에서 일했던 필리핀인수는 12천 5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Griffiths 1988, 16; 細田 2010, 99 재인용). 필리핀인 노동자는 점차 하와이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에는 농업노동자로, 알래스카에는 통조림공장 노동자로 진출했다(Gonzalez 1998, 29; 細田 2010, 99 재인용).
필리핀이 독립한 이후에도 미국과 관련한 해외취업 형태는 지속되었다(김희재 외, 2013, p115). 필리핀의 해외이주에 관한 법제도적 고찰)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자하는 사람들이 구직 이주자로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공용어가 영어라는 점이 그것을 용이하게 만들어 준다.

2)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1934년 통과된 필리핀의 독립법은 필리핀을 연간 50 건의 비자로 제한했고 1946년 필리핀이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매년 100명씩 미국으로의 귀화자수를 할당했다. 그로인해 이주는 줄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의 이러한 이민 제한 때문에 많은 필리핀인들이 1950년대에 아시아 국가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3)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인도차이나 전쟁 기간 동안 베트남, 태국, 괌의 미군 기지에 더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고용되었다. 1960 년대에 미국과 캐나다는 가족 통일을 허용하는 이민 규정을 완화하여 필리핀 이주가 북미로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같은 기간에 간호사나 가사 노동자로 서유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1970 년대 초 필리핀 사람들은 이란과 이라크로 이동하여 엔지니어와 기술자로 일했다. 1970 년대 전직 대통령 Ferdinand Marco는 이민이 경제를 자극하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제도화했다. 이러한 정책은 일시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노동 이동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업률이 높고 생활수준이 좋지 않아 필리핀 정부의 이주 정책으로 인해 수천 명의 필리핀 사람들이 해외에서 취업 활동을 해야 했다. 1972 년 마르코스 (Marcos) 전 대통령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추방하기 위해 군사계엄령을 강요했다. 마르코스 대통령 계엄령에 따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상대방과 중산층의 필리핀 사람들은 필리핀을 떠났다. 아시아 이웃 국가의 경제 발전, 석유 위기 이후 걸프 지역의 출현, 그리고 목적지 국가의 이민 정책 변화는 이주를 더욱 자극했다. 마르코스 (Marcos) 대통령 축출 이후에도 필리핀 정부는 점차적으로 송금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의 행정부는 이주를 개발 전략으로 비난하지만, 그것의 의존성을 부정 할 수는 없다.

2. 필리핀의 식민지 역사를 담고 있는 유적지

마닐라지역과 세부 두 지역에 걸쳐 앞서 말한 식민지 역사를 담고 있는 유적지들을 답사하였다. 이 답사는 필리핀 해외이주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필리핀 식민지 역사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1) 마닐라
‘인트라무로스’는 성 안쪽 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은 필리핀 식민 통치를 이끈 스페인 정복자들이 만든 도시이다. 여기에는 과거 스페인 정복자들의 유적지와 그들의 주택 외관이 완벽하게 유지되어 있다. 인트라무로스가 인상적인 까닭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유적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리핀의 천주교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트라무로스 안에 산티아고 요새, 마닐라 성당, 리잘 기념관 등이 있다.
성벽 도시인 인트라무로스는 거주 구역인 동시에 요새이기도 하다. 그중 ‘산티아고 요새’는 북쪽 성벽으로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하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필리핀 사람들이 수감되고 죽기도 한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필리핀의 독립 투사인 호세 리잘이 스페인 군대에 체포되어 갇혀 있던 지하 감옥이 있는 곳이다. 그가 49일 후 사형을 받으러 가는 길을 발자국으로 표시해 두었으며, 현재 수감실은 호세 리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벽 위에서 파식 강과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산티아고 요새 내부는, 조용한 공원의 느낌이다.
‘마닐라 대성당’은 카톨릭 포교의 중심지로서 에스파냐 식민지배시대인 1581년에 처음 건축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1571년 처음 마닐라 대성당을 만들었을 당시에는 야자나무와 대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태풍과 지진, 화재와 전쟁 등을 겪으며 몇 번을 재건하였으며 1958년에 비로소 지금과 같은 석조건물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예배당 양쪽으로는 박물관처럼 조형물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다. 또한, 6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듯 그들이 끝까지 예배당을 잘 보존하려 하고 또,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신앙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리잘 기념관”은 호세리잘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호세리잘은 우리나라로 치면 안중근의사, 김구 같은 급의 인물이다. 필리핀이 과거 식민지 시절을 겪었고, 필리핀의 독립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다. 리잘 기념관에는 호세리잘의 일생에 대한 전시와, 그가 의사, 시인, 소설가, 교육가로써 이뤄낸 업적, 작품 등이 전시되어있다. 특히 호세리잘 소설과 글들은 당시 필리핀인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워주었다. 리잘은 독립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정신적 지주로써의 역할을 해왔다. 역사적 위인을 넘어서서 필리핀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일종의 문화이며, 필리핀의 민족의식을 보여주는 심벌이자 민족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조정기, 2013, p10).

2) 세부
‘마젤란의 십자가’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세부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 세부에 도착 하자마자 마젤란의 명령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탐험가들이 달아둔 기독교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마젤란의 십자가는 작은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으며 십자가 아래에는 짧은 문구가 쓰여진 표지판이 놓여있다. 그 표지판에는 ‘실제 마젤란의 십자가는 성당중앙에 있는 나무 십자가 안에 봉인되어있다’ 라고 적혀있다. 십자가가 봉인 된 이유는 십자가를 달여 먹으면 기적을 불러온다고 믿었던 필리핀 사람들이 십자가를 뜯어 갔기 때문인데 이는 십자가의 신성함과 필리핀 사람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식민지 지배국의 종교가 피지배국에 얼마나 거부감 없이 잘 녹아들었는지 또한 보여준다. 스페인의 영향으로 필리핀은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로마 가톨릭 신자이며 마젤란 십자가 앞에서 그들의 신앙심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산토니뇨 성당’은 마젤란 십자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스페인 군대가 포격을 하고 불에 타서 무너진 오두막에서 기적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산토니뇨 즉, 아기 예수가 나무상자에서 발견됐다. 이 성당은 1565년 세부의 수호신인 검은 산토 니뇨가 발견된 그 장소에 지은 것이다. 1521년 필리핀에 들어와 최초의 미사를 드린 마젤란은 세부 섬의 원주민 지도자 우마본의 아내인 후아나 여왕에게 아기 예수상을 선물했다. 그 아기 예수상은 현재 산토니뇨 성당 내에 있으며 신앙의 상징인 만큼 성상의 앞에는 항상 현지인들이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부 현지 어느 곳에서나 산토니뇨 성상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
‘산페드로 요새’는 1565년에 지어진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이다. 침입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지은 요새이며 미국 식민지 시대 때는 미군의 병영으로 사용되었다.

식민지 역사 종교적 유적지

식민지 역사 종교적 유적지

식민지 역사 종교적 유적지

식민지 역사 종교적 유적지

종교의 힘으로 정부 진압군을 막은 가톨릭 주교과 신부, 수도자와 신자들이 민주주의로 이끈 필리핀의 ‘people power’는 필리핀이 종교적 힘이 강한 나라라는 것을 상징한다. 실제로 마닐라 성당이나 산토니뇨 성당과 마젤란 크로스와 같은 유적지를 가보면 깊은 신앙심과 함께 미사를 지내고 있는 많은 현지인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필리핀의 종교는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인구의 82%가 로마 카톨릭 기독교를 믿는 필리핀은 식민 지배국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식민지 역사는 필리핀 사회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중 우리가 연구한 것은 해외이주현상, 그중에서도 결혼이주현상이다.

3. 필리핀의 결혼이주

재외필리핀인위원회(CFO, The Commission on Filipino Overseas)는 영구적 이주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통령 직속 정부 기관이다. 필리핀에서는 해외로 영구적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재외필리핀인위원회 CFO에서 출국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수강해야만 한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의 내용은 직종과 행선지에 따라 다르다. 한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1박 2일로 진행한다. CFO 지사는 마닐라, 세부, 팔라완, 다바오, 수빅에 있다. 그 중에서 우리는 마닐라와 세부 지사에 방문해 견학 및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1) CFO 마닐라 지사
필리핀 CFO 마닐라 지사에서는 기관에 대해 전체적으로 견학 할 수 있었고 견학을 통해 CFO의 프로그램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으로 가려는 필리피노가 교육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출국 준비 중인 사람을 심층 면접을 어떠한 방식으로 하는지 알 수 있었다. CFO에서는 출국 준비 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하고 있었는데, 면접을 할 때에는 영어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인 따갈로그어로 진행하고 있었다. 시집 식구들을 의식할 필요 없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출국 이전의 상황과 심정을 알아보는 면접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고 견학 담당자가 말했다. 우리가 직접 견학하기 전에는 심층 면접은 엄하게 진행되는 것이라 짐작했지만, 실제 분위기는 달랐다.

1:1 상담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모습

1:1 상담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모습

미국과 유럽으로 가기 위해 교육 받는 모습

미국과 유럽으로 가기 위해 교육 받는 모습

CFO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수많은 국적의 배우자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국제결혼을 생각하면 필리핀이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반면에, 정작 필리핀에서는 한국으로 결혼 이주 오는 사람들은 높은 순위는 아니였다. 필리피노들이 이주하는 국가 중 한국은 7위였으며, 결혼 이주하러 오는 국가로 4위였다.
CFO 담당자는 다양한 나라 중에서 한국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국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열려 있고 필리핀에 비해 임금이 높아 결혼 이후에 취직을 생각하고 있다. 또한 필리핀과 비슷한 식민 지배의 역사가 있고 따라서 비슷한 문화들이 존재하고 있다. 필리핀은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영어에 능통해 워킹 비자를 얻기 쉬우며, K-드라마가 매우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드라마와 K-POP은 필리핀에서 엄청 인기가 많다고 한다.
반면에 한국으로 결혼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겪는 많은 어려움에 대해서 담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족을 우려해 다시 말해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볼기 위해 결혼하지만 정작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의 눈치를 본다고 가족을 도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필리핀에서 맞벌이 부부일 경우 가족 혹은 친척이 아이를 돌봐주는 것은 흔한 경우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으로 이주해오면 그렇지 않은 점도 이주여성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이라고 한다.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하는 필리핀에서 온 여성들이 한국에 오면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아침을 대접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로 인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는 한국의 드라마와는 다른 현실로 고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드라마 속에는 잘생기고 젊고 부유한 주인공이지만, 막상 결혼하려고 한국에 오면 나이 많고 부유하지 않은 사람이라 당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드라마와 현실의 괴리에 속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CFO 마닐라 지사에서 준비해주신 설명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얻었다. ‘P-DOS 프로그램과 이주를 위한 1:1 상담은 다른 것이며, 한국 이주민을 위한 P-DOS 프로그램은 모든 지사에서 열리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언어 능력 자격을 요구한 2014년 이후 한국으로의 결혼 이주자들의 수가 거의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실제로 필리핀 여성들 중 언어 자격을 갖추지 못해 몇 년간 CFO를 재방문 하는 경우도 생겼다고 한다. 원래 한국으로 가기 위해서 1달에서 2달 정도 준비기간이 필요했는데, 한국 정부에서 언어 능력을 요구한 이후로는 최소 1년~2년 정도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어 능력은 이후 한국에 결혼 이주 한 뒤 겪는 어려움 중에 가장 큰 부분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2) CFO 세부지사
필리핀 CFO 세부지사는 수도에 위치한 마닐라 지사에 비해서는 규모가 굉장히 작았다. 사전교육실과 1:1 카운슬링을 진행하는 방까지 모두 한 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세부의 CFO에서 담당자와 주고받은 이야기는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결혼 이주를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언어능력 자격증을 요구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수가 2013년 이후 1692명에서 2017년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는데,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이 언어 능력 자격을 요구하여 다른 방법으로의 이주로 갈아탔기 때문이라고 마닐라 지사에서 이야기를 들었기에 세부지사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자 하였다. CFO담당자는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 결혼 이주를 해서 겪는 어려움 중에 가장 큰 부분이 언어능력이 부족해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며느리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밥을 먹을 때 다양한 반찬과 함께 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필리핀과는 다른 이 문화 때문에 필리핀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부족한 한국어 능력 때문에 의사표현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에 있어서 한국 정부가 언어 자격을 요구한 것은 좋은 정책인 것 같으며, 다른 국가에서도 도입되는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언어 능력 요구가 추가되면서 기존에는 결혼 이주에 소요되는 준비기간이 1~2달이었던 반면 현재는 최장 1~2년으로 준비기간이 상당히 늘어나게 되어서 결혼 이주를 준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들을 기다리는 배우자까지도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것이 장점도 많지만 시간적이나 비용적인 면에서는 단점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담당자가 굉장히 궁금해 했던 부분이었는데,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간 여성들이 취직을 하게 된다면 어떤 직종과 어떤 업무 환경에서 일을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CFO에서는 결혼 이주를 하기 전, 사전적인 업무들만 담당하기 때문에 실제 이 여성들이 한국에 간 이후의 일은 파악하기가 거의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후에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 지에 대해 궁금하다고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실제로 동남아시아에서 온 결혼 이주자 대부분이 한국에서 공장에 취직을 많이 하며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담당자는 아무래도 이 부분에 있어서도 언어적인 문제가 있을 것 같으며 한국 여성가족부와 연계를 통해 향후 개선될 여지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세 번째는 코피노에 대한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코피노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코피노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남성들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강한데, 필리핀에서는 이 코피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여 질문을 해보았었다. 근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굉장히 의외였다. 필리핀에서는 과거부터 미국인이나 유럽인, 일본인들이 식민지배를 위해 들어와서 낳은 아이들이 굉장히 많으며 그 중 대부분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기에 이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물어보면 ‘아, 내 아버지는 외국인인데 누군지는 나도 잘 몰라’ 하는 식으로 대답하며 물어본 사람도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꺼려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지속적으로 코피노나 자피노들이 양상되는 것은 막아야 하며 방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네 번째는 필리핀 인구의 약 10분의 일이 해외로 이주를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한 점이었다. 해외로 이주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양질의 일을 찾기 위해, 즉 경제적인 이유로 이주를 하는 것이 대다수라고 하였다. 실로, UNDP필리핀 지사에서 MDGs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한 결과 양적인 면에서는 일자리나 교육받을 기회 등을 많이 증진시켰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미국과 같은 해외로 이주하는 것과 연결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는 SDGs의 세부목표 달성을 위해 질적인 면에서도 각종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필리핀 사람들은 해외로 이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이주함에 따라 필리핀은 국가 경제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돈을 번 동포들이 보내는 송금액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 경제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 그렇기에 필리핀 자체적으로 양질의 일자리 개발이 국가 경제 발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실제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준비하고 있는 필리핀 여성분을 만날 수 있었다. 이분은 광주로 이주를 준비 중에 있었고, 이미 아이까지 가지고 있으신 분이었다.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가정을 보며 평소 알고 있던 일반적인 중매혼으로 결혼 이주를 하는 여성들과는 다른 모습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담당자 분께서도 이 경우는 굉장히 특이한 경우로 보기 드물다고 하셨다. 평소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하는 여성들은 중개업소를 통한 연령차가 많이 나는 결혼을 한다고 한다.
세부 CFO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으로의 결혼 이주에 대한 현실적인 부분과 CFO의 한계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언어능력자격 기준의 생성이 한국으로의 이주 여성들로 하여금 본인의 의사표현을 더 할 수 있게 도움이 되어주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는 부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결혼을 준비하는 남성들을 대상으로는 왜 필리핀에 대한 교육이나 기초언어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지 의문점이 들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 동남아 이주 여성들이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으려면 한국 내의 차별적인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라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었다.

Ⅲ. 결론

필리핀이 노동인구를 송출하는 나라가 된 이유 중 우리가 주목한 것은 역사적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는 필리핀의 식민지 역사를 파악하고 현재 필리핀에서 만연한 해외이주현상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직접 현지 유적지들을 답사하였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 역사가 가져온 현재의 필리핀 사회 모습 중 하나로 종교적 영향을 보았다. 지배국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필리핀 사람들의 모습은 식민지 역사가 그들의 삶에 녹아들었고 그것은 해외이주현상을 자연스럽게 이끌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식민지 역사의 관점으로 해외이주현상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해외이주 현상 중 결혼이주현상에 대해 연구해보았다.
우리는 CFO를 방문하여 결혼 이주 교육이 진행되는 방식과 현재 이루어지는 결혼 이주에 대해 알아보았다. 교육은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며 이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파악해 언어 교육을 하는 등 이주민들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 하도록 제공되고 있었다. 또한 한국 정부의 언어 자격 요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다른 국가에서도 도입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언어 자격 요구 정책은 준비기간이 늘어나게 된다는 부정적인 점도 있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이주여성들의 사회적 적응이 완만해 질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이렇게 결혼이주를 돕는 기관이 잘 마련되어 있는 것이 좋은 상황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주현상 자체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좋지 않다. 결혼이주민들 중에는 결혼이 목적이 아닌 노동의 목적을 가지고 해외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실질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 할 것이다. 노동송출국인 필리핀은 국가의 인적손실로 이어질 수 있음에 주의해야한다. 그러므로 필리핀 내부에서 많은 양 뿐만 아니라 높은 질의 노동력을 생산 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Ⅳ. 인터뷰

- CFO마닐라지사 인터뷰
Q1. CFO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필리피노의 이주 국가 중 7위 이지만, 결혼 이주 국가로 선호하는 국가로 4위에 해당한다. 한국을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1. 외국인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열려 있고 필리핀에 비해 임금이 높아 결혼 이후에 취직을 생각하고 있다. 필리핀은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영어에 능통해 워킹 비자를 얻기 쉬우며, K-드라마가 매우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Q2. 그렇다면 한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겪을 어려움은 무엇이 있나요?
A2.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결혼하지만 정작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의 눈치를 본다고 가족을 도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필리핀에서 맞벌이 부부일 경우 가족 혹은 친척이 아이를 돌봐주는 것은 흔한 경우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이주해오면 그런 상황은 매우 드문 점이 이주여성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이라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하는데, 한국에 오면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아침을 대접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Q3. 1:1 상담 할 때 분위기는 어떠한가요? 피도스 프로그램과 같은 맥락인가요?
A3. 우선 P-DOS 프로그램과 1:1 상담 프로그램은 전혀 다른 것이다. 한국 이주민을 위한 P-DOS 프로그램은 모든 지사에서 열리는 것은 아니다. CFO에서는 출국 준비 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 즉 1;1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면접을 할 때에는 영어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인 따갈로그어로 진행하고 있다. 시집 식구들을 의식할 필요 없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출국 이전의 상황과 심정을 알아보는 면접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Q4. 2015년 이후 한국으로 결혼 이주 오는 사람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A4. 한국 정부에서 언어능력 증명을 요구했다. 그로 인해 급격히 한국으로 오는 이주 여성의 수가 준비해야 한다.약 절반 이상 감소했다. 필리핀 여성들 중 언어 자격을 갖추지 못해 몇 년간 CFO를 재방문 하는 경우도 생겼다. 원래 1~2달 걸리는 준비 기간이, 언어 공부를 위해 최소 1~2년 정도

- CFO세부지사 인터뷰
Q1. 한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언어능력 자격을 갖출 것을 요구했고, 이로 인해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오는 필리핀 사람들의 수도 급격히 감소했는데 정부의 언어능력 요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1. 언어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가는 여성들이 힘들어 하는 이유 중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문화적 차이인데, 한국에서는 며느리들이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각종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도 키워야 하며 한국은 밥을 다양한 반찬과 함께 먹는데, 필리핀은 그렇지 않기에 이런 부분들에서 이주여성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언어능력을 요구하기 이전에는 한국어를 못하는 이들이 의사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결혼의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에서의 취업과 관련되어 있다. 대부분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하는 여성들은 경제적인 이유가 큰데, 한국으로 이주해서 고향으로 돈을 송금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언어적으로 소통이 안되고 , 앞서 말했듯이 집안에서 본인이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면 직장을 갖기도 힘들뿐더러 갖고 나서도 많은 어려움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어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국가들에서도 언어능력 요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2. 한국에서 여행이나 어학연수 등으로 필리핀에 온 남성들이 필리핀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버려서 남게 되는 아이들을 코피노라 부르는데, 코피노에 대한 필리핀 사람들의 인식은 어떠하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2. 우선 필리핀 내에서 코피노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한다던지 그들에 대해 차별적인 시선을 던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코피노 이전에도 필리핀이 스페인과 미국,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자피노와 같은 아이들이 생겨났었고, 지금은 이런 아이들 본인조차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해서 부끄러워하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가령 누군가가 ‘너희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하고 물어보면 ‘우리 아버지는 외국인인데 누군지는 나도 몰라’라는 식으로 대하곤 한다. 물론 이러한 아이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Q3. 매년 필리핀 인구의 약 10분의 일이 해외로 이주를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3. 필리핀에서 해외로 이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서 가는 경우이다. 필리핀 내에서도 일자리가 부족하고, 특히 질적으로 좋은 일자리들은 더더욱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일을 하고 받는 급여도 해외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받는 것에 비해 턱없이 작다. 그렇기에 아마 다들 경제적인 이유에서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의 지역에 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집으로 돈을 송금하는 것 때문에 많이 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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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조정기(2013), 「필리핀의 국민영웅 형성과정 연구」, [호셀 리살의 경우]
김희재 외(2013), 「필리핀의 해외이주역사」, [필리핀의 해외이주에 관한 법제도적 고찰]
필자소개
필자 얼굴 이미지
  • 라뿌라뿌와 아이들
  • 소속 : 국제지역학부(국제개발협력)
집필후기
 
팀원

박성은 국제개발협력학과

박다은 국제개발협력학과

강한솔 국제개발협력학과

박해림 국제개발협력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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