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글로벌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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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에서 찾은 해양인문학, 리스본
호카 곶Cabo da Roca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였다. 1415년에 항해왕 엔리케가 북아프리카의 세우타를 정복했다. 이후 바스코 다 가마, 알폰소 데 알부케르케 등의 항해사와 정복자가 등장했고 포르투갈은 전성기를 누렸다. 이시기에 포르투갈은 해양강국이었다. 우리 역사에서는 포르투갈과 같은 해상진출에 대한 경험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그런 경험의 차이가 두 나라가 가지는 해양인문학에서의 시야와 문화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현지조사에서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그 배경은 무엇인지 주로 알아보았다. 또한 대항해시대의 해상진출의 경험과 기억이 포르투갈을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현대 포르투갈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포르투갈의 해양인문학이 어떤 모습인지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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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포르투갈의 해양인문학
Ⅲ. 한국 해양인문학과 발전방향
Ⅳ. 부산의 해양인문학 활용 방안
Ⅴ 결론
Ⅰ . 서론
글로벌 챌린지 사업은 해외의 해양도시를 직접 현지조사해서 부산의 미래에 대한 답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해양인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인재의 양성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해양강국 대한민국, 해양수도 부산’ 이라는 슬로건에 어울리지 않게 한국의 해양인문학은 아직 정확한 개념도 규정되지 않았다.1) 부산이 진정한 해양도시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한다면 우선 부산이 가지는 해양인문학적 인 토대와 발전방향부터 정확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조의 생각이었다. 그 조언을 얻고자 우리가 선택한 나라가 바로 포르투갈이다.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였다. 1415년에 항해왕 엔리케가 북아프리카의 세우타를 정복했다.2) 이후 바스코 다 가마, 알폰소 데 알부케르케 등의 항해사와 정복자가 등장했고 포르투갈은 전성기를 누렸다. 이시기에 포르투갈은 해양강국이었다. 본 조는 그 경험에 주목했다. 우리 역사에서는 포르투갈과 같은 해상진출에 대한 경험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그런 경험의 차이가 두 나라가 가지는 해양인문학에서의 시야와 문화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를 위해 본 조는 현지조사에서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그 배경은 무엇인지 주로 알아보았다. 또한 대항해시대의 해상진출의 경험과 기억이 포르투갈을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현대 포르투갈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포르투갈의 해양인문학이 어떤 모습인지 밝히고자 한다. 또한 포르투갈의 해양인문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의미를 우리의 해양인문학 발전과정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논하겠다. 나아가 그 논한 바를 바탕으로 부산의 미래설계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Ⅱ . 포르투갈의 해양인문학
우선 본 조는 해양인문학을 ‘해양을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인간의 각종 활동과 영향’을 연구 대상으로 삼겠다.3) 또한 해양인문학이 해양도시의 정체성 형성과 발전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정의하겠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의 해양인문학은 어떠한 배경과 특성을 가질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라는 특정시기의 선두주자였다. 현재 포르투갈의 많은 해양문화가 그 시기를 기점으로 탄생하거나 혹은 유래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의 해상진출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현지조사를 통해 본 조는 포르투갈의 해상진출의 요인을 우선적으로 정리했다. 사실 포르투갈은 그 이름의 유래에서부터 해양국가적인 특성을 가진다. 포르투갈이라는 국명의 유래는 포르투갈 제 2의 도시이자 항구도시인 포르투(Porto)에서 기인한다.4) Porto는 포르투갈어로 ‘항구’라는 의미다. 그러나 현재 포르투의 항구가 포르투라는 이름의 어원이 된 것은 아니다. 도시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올라가지만 현재의 구획이 갖추어진 것은 중세시기이다. 이때 포르투는 다른 유럽의 중세도시처럼 성과 그 밖의 마을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중 도루강 근처에 있던 마을지구가 바로 포르투라는 이름의 어원이다. 현재 히베리아 지구5)로 불리는 이곳은 도루강의 수운을 활용한 교역이 활성화되었다. 이곳을 시작으로 포르투갈은 확장되었으니 포르투갈은 그 시작부터 해양ㆍ상업 국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은 경계선에 선 국가이다. 우선 포르투갈은 대서양에 접한 대서양국가이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오랫동안 유럽의 중심부였던 지중해와 멀지않다. 한편으로 다른 해양문화가 존재하던 북해와도 해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문학적으로는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의 경계에 있었다.6) 포르투갈은 대표적인 가톨릭국가지만 역사적으로 이슬람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무어인이 지브롤터를 넘어온 AD711년부터 포르투갈의 마지막 영토를 재정복한 1249년까지 포르투갈의 역사는 이슬람과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7) 이슬람과의 오랜 싸움은 포르투갈에게 여러 영향을 주었다. 우선 가톨릭의 이데올로기화다. 포르투갈의 가톨릭은 일종의 호국신앙으로 변했다. 현지조사에서의 예를 들어보자. 리스본 대성당8)은 원래 이슬람교의 모스크가 있던 자리이다. 재정복과정에서 리스본을 정복한 포르투갈은 모스크를 허물고 성당을 건축했다. 그러나 여전히 무어인의 위협은 남아있었으며 이를 대비하고자 대성당을 군사적인 방어가 가능한 형태로 건설한다.
그러나 모든 접촉이 이렇게 공격적으로 형성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포르투갈의 독특한 문화예술로 사랑받는 아줄레주(Azulejo)에 주목해보자 아줄레주는 메소포타미아지방을 시작으로 하는 타일예술로 이름의 유래 역시 아랍어 aljulej 또는 azulej라는 말에서 유래한 이슬람 문화이다.9) 문화적으로 포르투갈은 이슬람세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편으로는 교류과정에서 바다너머 아프리카의 풍부한 산물을 알게되었다.10)
리스본 대성당
국립 고미술관에 있는 아줄레주
기독교의 수호와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 바다 건너의 부에 대한 환상과 대서양과 직접닿았지만 지중해와 멀지 않다는 지리적인 이점 등은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포르투갈이 해상진출의 계기와 원동력을 제공했다. 이후 여러 항해로 포르투갈의 항로는 점차 확장되었고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으로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은 전성기를 맞이했다.11) 해양대국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바로 본 조가 현지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탐방한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렘 탑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출발하기 마지막 밤에 항해의 성공과 자신의 무사를 신께 기원한 장소이다. 이후 항해와 엔리케를 기림과 동시에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을 찬양하고자 마누엘 1세의 명으로 1497년 Diogo Boytac이 1947년 설계하여 1502년 공사가 시작되었고 1601년에 완공되었다.12) 한편 벨렘 탑은 테주강 하구를 바라보는 탑으로 리스본 항구를 출ㆍ입항 하는 선박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감시탑이다.13) 두 건축물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동시에 등재되었다.14) 두 건축물에서 본 조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건물을 수놓은 장식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기둥은 밧줄을 형상화한 조각으로 되어있으며 벽면과 천장의 장식은 밧줄과 산호초, 파도, 조개 껍질, 앵카와 캐러밸 선박 등의 조각으로 꾸며져 있다. 이 장식요소는 전부 해양적인 요소가 강하다. 특히 주목되는 장식이 바로 밧줄 문양이다. ‘밧줄’문양 장식은 서양 건축이나 장식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장식 모티브 이다.15) 우선 밧줄이 왜 해양적인 특색을 가지는 장식인지부터 설명하겠다. 밧줄을 선상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우선적으로는 선박의 계류에 계류삭16)으로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돛과 여러 깃발의 제어에 사용하며 물건의 운반과 보관에 사용한다. 선상에서 밧줄의 육지에서의 그것보다 무궁무진하며 때문에 밧줄은 선상문화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물품 중하나이다. 한편 전통적인 해석방식으로는 ‘구속’, ‘속박’, ‘지배’ 등의 이미지가 있다. 이 둘을 결합시킨다면 “포르투갈 인들이 바다를 복종시켰다.”로 설명 될 수 있다.17) 이러한 해양적 장식문양은 대항해시대 이후 건설된 페나궁전과 포르투의 볼사궁전에서 나타난다. 이는 대항해시대에 탄생한 해양문화가 이후 왕실문화에도 그 영향력이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해양문화가 유럽에 전통 문화에 비해 비주류적인 점, 그리고 왕실을 비롯한 귀족문화가 가장 보수적이면서 완고한 측면을 가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대항해시대로 만들어진 포르투갈의 해양문화는 보편성을 가진 주류문화로 편입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렘 탑
영광스러운 대항해시대 이후 포르투갈의 해양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리스본 대지진과 관련한 것이다. 리스본 대지진은 모든 성인의 축일인 1755년 11월 1일 아침에 일어났다. 지진 직전까지 리스본은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여전히 부유한 해상국가의 중심이었다. 인구는 25만에 달했지만 그중 많은 수가 흑인과 이민자를 포함한 이방인이었다.18)19) 그러나 지진이 일어났고 얼마안가 쓰나미가 리스본을 덮쳤다. 자연재해 이후 10만명이 사망했다는 추정치가 나왔다. 이후 사망자에 대한 추정치는 점차 감소해 3만 명 안팎으로 추정한다. 리스본 인구의 1/10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사망자 이외에도 건물의 절반이상이 파괴되었다. 포르투갈뿐 아니라 외국인도 피해를 입었다. 영국 상인들은 700만 파운드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고 함부르크 상인집단도 200만 파운드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이후 정부에 의해 리스본은 재건되었지만 손실까지 복구되지는 않았다.20) 약해지던 해상국가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가 끝장난 순간이다.
리스본은 대지진 전후로 완벽하게 달라졌다. 지진과 쓰나미로 파괴된 도시는 서서히 복구했지만 시내의 랜드마크인 리스본 대성당과 산 조르지 성 역시 피해를 받아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이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 카르모 수녀원이다. 카르모 수녀원은 대지진으로 붕괴된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카르모 수녀원 현지조사에서 우리는 두 가지 특징을 알 수 있었다. 첫째로 과거의 아픈 기억을 기억하는 일종의 다크투어리즘21)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를 받았으며 그 피해를 상기해 미리 대비하는 이유를 상기하는 시설이다. 이는 수녀원 내부에 설치한 고고학박물관에서도 알 수 있다. 박물관은 붕괴하기 이전의 모습과 무너진 잔해, 지진 당시의 모습을 전시한다. 그러나 카르모 수녀원은 어두운 모습만 강조하지는 않는다. 박물관에는 남미에서 건너온 2구의 미라가 전시되어 있다. 뜬금없이 미라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르투갈은 지진 극복과정에서 경제적으로 남미 식민지에 의존했다. 브라질입장에서는 수탈이었겠지만 박물관의 미라는 그 시절 브라질의 도움을 상징한다. 한편 수녀원은 문화공간으로 사용한다. 내부에는 가설 공연장이 들어서있으며 그곳에서는 연극, 전통 음악공연의 장소로 활용되며 그림을 그리는 학생과 화가 역시 있다. 카르모 수녀원은 관광객과 시민에게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주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항해시대가 끝났지만 포르투갈은 여전히 그 시절 쌓아올린 해양인문학적 자산을 향유하면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 활용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해양인물들은 도시 건축물과 광장,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상징으로 폭 넓게 이용되고 있다. 포르투갈의 인도총독 알부케르케는 본인의 이름을 딴 알부케르케 광장이 벨렘지구 복판에 존재한다. 바스코 다 가마는 본인의 이름을 딴 다리가 건설되었고, 그의 무덤은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포르투갈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엔리케의 경우 포르투갈 각지에 그의 동상이 설치된 것은 물론 그의 이름을 딴 통조림, 선착장이 있다. 시내의 기념품 상점에는 그의 얼굴을 그린 장식품을 팔고 그가 만든 항해학교의 이름을 딴 맥주까지 있다.
발견기념비의 모습
포르투갈의 해양산업 역시 활발하다. 특히 요트와 마리나사업이 활발하다. 리스본 벨렘지구부터 알파마지구까지 요트 선착장만 6개에 달한다.23) 이들 요트와 마리나사업의 많은 부분을 대항해시대의 스토리를 가져와 운영하고 있다. 한편 포르투에서는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도루강을 따라 유람선 영업이 활발하다. 특히 포르투만의 특색인 ‘포르투 와인’24) 과 유람선을 접목시킨 상품이 인기가 많다. 유람선가운데 많은 수가 전통적인 와인 운반선의 모습을 하고 있다. 포르투의 유람선은 ‘항구’와 ‘와인’이라는 포르투의 형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개념을 적절하게 융합하여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직접적인 경제이득을 넘어서는 홍보효과의 역할을 한다.
본 조가 조사한 포르투갈은 해양국가 그 자체였다. 또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도시 ‘리스본’과 ‘포르투’ 역시 해양도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포르투갈의 건축물과 상징, 도시의 문화와 산업까지 도시의 많은 부분이 육지의 관점이 아닌 해양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본 조는 포르투갈의 오랜 해양과의 접촉 혹은 해양에서의 생존 경험이 포르투갈의 정체성을 형성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해양인문학에 뿌리를 둠과 동시에 해양인문학의 성과를 더욱 꽃피울 뿐 아니라 범위를 넓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Ⅲ. 한국 해양인문학과 발전방향
한국에서 해양인문학은 비주류다. 본 조는 국내 해양인문학이 발전하지 못한 것을 역사적 이유에서 찾았다. 분명 우리 역사에도 주목할 해양활동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해양활동은 지속성을 가지고 이어지지 못했다. 오랜 기간 농업중심의 경제활동만이 우대를 받았으며 상업은 천시대상이었다. 농업의 우대와 상업의 천시는 자연스레 해양활동에 대한 천시로 이어졌다. 이 사조가 유지되면서 전통시대 해상활동의 명맥이 이어지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국내에서는 해양도시가 성장하지 못했다. 물론 이때에도 섬을 중심으로 한 해양문화나 수운을 활용한 조세제도와 초량왜관 등 해양활동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중앙과 육지중심적인 활동의 주변부에 불과했다. 가령 조선시대에 많은 지도가 제작되었지만 해도를 나타낸 지도는 하나도 없다. 한국은 포르투갈과 같은 두드러지는 해양경험이 없다. 이후 근대시대에 비로소 적극적인 해상활동이 시작됐다. 사실상 한국의 해양활동은 근대시기에 처음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주변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이 문제가 더욱 돋보인다.
국립 고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중국 도자기의 모습
국립 고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일본에 도항한 포르투갈인들의 모습
포르투갈 현지조사에서 본 조는 포르투갈의 해양사와 대항해시대의 문화를 다룬 장소에서 본 조는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이름을 빈번하게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국립 고미술관에는 포르투갈의 해양사를 전시한 공간에서 남미에서 온 귀금속을 바탕으로 한 세공품 전시실 바로 옆에 동아시아에서의 교류를 전시하고 있다. 중국제 도자기와 수납장, 중국인을 그린 그림, 일본의 조총과 은세공품, 마카오의 위치를 포함한 지도, 인도양부터 일본까지의 항해도와 선박의 모습까지 그러나 거기에 한국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특히 충격을 받은 곳은 볼사궁전이었다. 포르투에 있는 볼사궁전에 있는 국가들의 방에는 당시 19세기 말 포르투 상인들이 교류하던 20개 나라의 국장(國章)이 그려져 있다. 그곳에는 일장기와 국화로 상징되는 일본의 문양이 있다. 문장은 볼사궁전을 처음 건설할 당시에는 그 문장이 없었지만 일본의 사절단이 포르투에 왔을 때 추가된 것이다. 동아시아는 근대이전 비슷한 시기에 해상교류에 제한을 두었다. 그러나 그 이전시기 그리고 제한된 시기에도 두 나라는 부분적인 해상교류가 존재했고 그 기억이 바다를 통해 포르투갈에 까지 남아있다. 그러나 그 흐름에서 한국은 완벽하게 빗나가 있다. 때문에 동아시아 삼국이 해양에 대한 인식과 중요성이 근대시기에 갑작스레 변화했다하더라도 한국보다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한국의 해양인문학은 단절되어있었고 주변 국가에 비해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근대시기부터 반전이 일어났다. 근대적인 어업이 시작되었고 수출주도형 경제개발과 삼면이 바다와 적대적 세력에 의해 가로막힌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해운업이 발전했다. 자연스럽게 해안가를 중심으로 공업단지가 형성되었으며 부산, 인천, 울산과 같은 많은 해항(海港)도시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 발전은 물리적 성장에 한정된 성장이었다. 개발논리에 따른 성장에 인문학은 상대적으로 뒤쳐졌다. 바로 이 부분에서 괴리가 발생했다고 본 조는 판단했다. 많은 해항도시가 탄생하고 성장했지만 급격한 성장에 따른 반대급부로 해양도시의 정체성이 형성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한편 인문학의 시선 역시 여전히 육지중심적인 시야에서 벗어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목포대와 부경대를 중심으로 해양에서의 인문학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25) 그러나 한국해양재단에서 출판한 『한국해양사』26)에서 알 수 있듯이 해양인문학에 대한 연구는 아직 겉핥기에 가깝다.27)
특히 많은 연구가 해양을 육지중심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해양사에서 그 예시를 찾아보자. 제 1권 3절 「5세기 고구려의 패권과 서남해 연안항로의 경색」의 저자는 정치적 변동에 따른 역사를 연구하면서 해양을 정치적 변화에 부수적인 존재로 한정해 서술하고 있다. 또한 해양에 대한 실증적 자료 역시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해양인문학 분야에서도 해양에서의 사건과 문화를 해양의 시선이 아닌 익숙한 육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해석하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포르투갈 현지조사에서 본 조는 해양인문학이 도시와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했으며 그것이 여러 산업을 넘어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해양인문학 역시 포르투갈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해양인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야 현재의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까? 본 조는 현지조사에 기초해 포르투갈의 해양인문학처럼 육지중심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바다에서 바다와 육지, 그리고 인간생활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겠다. 그래야 포르투갈과 같은 해양도시, 해양국가의 정체성을 형성, 도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 조는 포르투갈에서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부산의 도시정체성과 미래 해양산업에 대한 약간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Ⅳ.부산의 해양인문학 활용방안
부산의 도시정체성은 부산이라는 이름의 유래에서 알 수 있다. 바다에서 배를 타고 들어올 때 보이는 산의 모습을 부르던 釜山이라는 지명은 항구도시면서 육지의 산을 잔뜩 끼고 있는 부산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나타낸다. 초량왜관과 해군기지인 수영(水營) 그리고 조선통신사의 출발지였던 역사는 부산의 전통적 해양도시를 상징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시의 중심지는 작은 분지지형인 동래였다. 근대이후 부산의 해양성은 일본에 의해 발전된 측면이 강하며 때문에 부산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식민도시라는 정체성이다. 또한 피란과정에서 항구를 통해 들어온 피란민이 산에 거주해 만들어진 산복도로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현재 350만의 인구와 800만의 광역경제권을 가진 부산은 해양도시지만 그 거대함과 역사적 배경 때문에 해양도시와 육상도시의 성격을 함께 가지는 복합적인 도시로 발전했다.
때문에 부산을 더 나은 해양도시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부산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을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부산이 가지는 여러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초량왜관과 조선통신사의 존재이다. 왜관과 통신사는 부산이 한국의 다른 지역에 비교해서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해양경험의 하나이다. 특히 본 조는 지금도 시행되고 있는 조선통신사 축제의 활용을 말하고 싶다. 현재 조선통신사 축제는 행렬과 해신제 등이 복원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축제는 전통행사 재현 등 과거 역사적 사건의 재현에 머물러 있다.28)
여기에 본 조는 조선통신사 축제가 가지는 해양축제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것을 추천한다. 광복동일대에 한정되어 있는 축제 장소를 영도대교 등의 해안으로 넓히고 포르투의 와인운반선 활용처럼 선박의 외형을 복원, 이를 영도 앞바다에 띄워 행렬을 늘려 통신사가 해양을 통한 교류의 상징임을 강조하고 부산이 가지는 해양성을 알리는 것이다. 한편 해신제의 의미를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전통적 제사가 아닌 ‘해상에서의 안전’을 기원하던 의식인 만큼 해양문화를 알리는 장소로 활용의 필요성이 있다.
통신사뿐 아니라 해양과 상업에 관련한 역사적 공간을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은 자신을 지배했던 이슬람을 적대했지만 그럼에도 이슬람의 문화와 상업에는 긍정적이었다. 또한 포르투갈은 이슬람의 문화를 자신들이 상업 활동에 차별이나 적대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특히 포르투 상업거래소로 사용하던 포르투의 볼사궁전에 있는 아랍의 방에는 ‘알라여 여왕을 보호하소서 ’라는 말이 아랍어로 적혀있다. 이는 다른문화에 관대하며 상업이익을 우선시하는 포르투갈의 해양문화를 상징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다양한 문제로 아직 그 정도의 관용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더 많은 교류를 위해 식민시대와 근대시대의 해양과 상업유산을 적극적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이 유산은 일종의 다크투어리즘 형태로 활용해야 한다.
다음으로 해양인물의 적극적인 발굴과 활용을 말하고 싶다. 포르투갈이 바스코 다 가마와 엔리케와 같은 해양인물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이를 산업과 문화부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과 달리 부산은 그런 움직임이 부족하다. 부산광역시에서 부산의 상징으로 지정한 인물 중 해양과 관련 있는 역사인물은 대부분 임진왜란에 복무한 수군장수이며 나머지는 안용복이 유일하다.29) 아쉽게도 이런 인물들은 부산태생도 아니며 부산을 상징하기에는 부족하다. 때문에 상술한 인물 이외에도 시민과 관광객이 부산을 해양도시로 더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인식시킬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 필요하다.
부산은 국내에서 해양도시의 타이틀에 가장 맞는 도시이다.30) 한편 부산광역시 역시 부산의 도시발전 정책비전을 동북아의 해양수도로 설정했다.31) 그에 걸맞게 부산에는 2017년 기준 2700만 명의 관광객이 왔으며 그 중 240만 명이 외국인 관광객이었다.32) 그러나 해양산업에 친숙하다고 주장하기엔 어폐가 있다. 부산의 해양관광은 대부분 해수욕장에 한정되어 있다.33) 부산은 국내 최대의 요트 선착장이 있으나 요트산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부자 운동’이며 요트 인구 또한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고 인식 역시 부정적이다.34)35)인구 350만의 항구도시답지 않게 유람선 노선은 제한적이며 국제 여객터미널 또한 일본을 제외한 해외로 가는 정기여객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여러 번의 해운사고로 여객선박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해국제공항의 성장세가 높아지는 것에 비하면 초라하다. 부산의 역량에 비해 해양관광은 이제 막 첫발을 내딛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해양인문학은 부산의 해양관광산업에 대한 친숙함을 끌어올리고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Ⅴ. 결론
포르투갈은 특유의 해양에 대한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 다른 국가와는 다른 독특한 해양인문학 자산을 쌓아올렸다. 포르투갈은 그 자산을 여러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1년에 포르투갈에 오는 외국 관광객은 17년 기준 2200만 명 수준이며 관광수익은 151억 5,300만€이다.36) 이중 많은 수가 요트를 비롯한 해양관광과 리스본과 포르투 두 도시의 가치를 활용한 여행이다. 이 수치는 동년도 대비 부산은커녕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 방문객(1300만 명)37)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다. 이 밖에도 많은 부분에서 포르투갈은 한국이 가지지 못한 해양 인문학 자산을 가지고 있다. 비록 우리가 포르투갈의 역사적 건축물이나 세계유산을 모방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은 포르투갈의 경험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의 해양인문학을 쌓아올린 과정과 그 활용을 부산의 경우에 대비해 활용해야 하며 결과적으로 부산을 진정한 해양도시이자 시민과 관광객 역시 거리낌 없이 부산의 해양문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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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광 공사 https://kto.visitkorea.or.kr/kor/notice/data/statis.k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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