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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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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리버풀의 버려진 항만을 활용한 도시재생 사례 연구
Albert Dock, Liverpool본 연구에서 리버풀은 자본 중심적 투자로 진행된 재개발이 아닌 도시 재생 기구를 지역 곳곳에 설치함으로써 지역 기업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도시 재생을 이룩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버려진 곳을 활용해 저 비용으로 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도시로 선정되었고 이는 부산에 항만도시재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더 나아가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알버트 도크에 비틀즈스토리, 해양 박물관, 노예 박물관 등 도시 고유의 문화를 그대로 옮겨놓기도 한 반면에, 테이트 리버풀이라는 현대 미술관을 설립하면서 세계 문화도시로 거듭난 성공사례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에 있어서 도시 정체성과 도시의 고유한 문화의 발현의 중요성을 함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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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이 논문을 작성하는 모든 조원은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조원 전체는 취업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부산의 청년고용 및 일자리 현황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부산지역의 청년 고용현황은 타 7개 지역에 비해 매우 부진한 상황이다. 부산은 산업구조전환의 부진으로 인해 일자리가 부족하고 그것이 타 지역으로의 인구유출로 이어져, 청년층 인구유출이 -13.4%로 전남, 전북 다음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계속되는 청년층의 인구유출은 노령화를 가속화 시키는 동시에 지역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이와 더불어 부산은 최근 항만기능 이전과 항만배후산업의 쇠퇴로 인해 빠른 도시쇠퇴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빠른 도시쇠퇴문제는 곧 부산의 청년고용과 일자리창출에 대해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부산의 쇠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 항만도시재생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고, 도시재생을 통한 부산의 일자리창출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번 연구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과거의 리버풀은 1960-1980년대 산업구조 변화를 겪으며 쇠퇴항구도시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방치된 항구 주변의 창고와 시설을 ‘머지사이드 구조계획(Merseyside County Council Structure Plan)’ 수립을 통하여 문화 및 산업공간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쇠퇴하던 항구도시에서 세계문화도시로 거듭난 항만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머지사이드 구조계획은 버려진 부두인 ‘알버트 도크(Albert Dock)’를 수리해 문화예술단지로 조성, 과거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이용한 세계 최초 ‘국제 노예박물관’, 해양도시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머지사이드 해양박물관’ 등을 개관하면서 현대미술, 해양역사, 노예사, 비틀즈 등 다양한 분야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세계문화도시로 성장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리버풀의 세계문화도시로의 성장은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였고, 항만도시를 재생시키면서 경제 성장과 문화자산을 이용한 창의적 산업을 통하여 일자리를 증가시켰다.
부산 역시 항만도시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해양관광단지 위주의 개발계획, 지역사회의 문화적 일체감 부족으로 인해 잠재적인 역사와 문화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만·해양도시라는 특색을 지닌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다면 영국 리버풀과 같이 국제적인 항만재생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따라서 리버풀의 버려진 항만을 활용한 도시재생 사례 연구는 부산의 북항재개발과 같은 버려진 부지활용과 더불어 부산 고유의 잠재적인 역사, 문화자원을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항만도시재생에 큰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리버풀 알버트 도크의 버려진 부지 활용을 통해 리버풀이 역사성을 어떻게 풀어내고 문화자원을 창조하였는지 분석하고 부산의 잠재적인 역사와 문화자원 구현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알버트 도크를 문화 관광단지로 탈바꿈함으로써 버려진 부지에서 문화자원을 활용한 관광도시로서의 성공하였는가에 대한 현황을 조사하고 앞으로 부산의 문화기반 구축과 동시에 기타산업과 어떤 식으로 연계할건가에 대해 도움을 얻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는 도시재생 전문가 김정후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도시재생의 필요성에 대한 자문을 얻고 부산의 항만도시재생과 관련하여 ‘북항재개발사업’의 합리적인 활용방안을 탐색하고 문화도시로서의 성장가능성을 제시하는데 목적을 둔다.
2. 조사 방법
리버풀의 버려진 곳을 활용한 도시재생 사례를 연구함에 있어서 리버풀의 도시재생의 정책적 방면과 현재 부산의 항만도시개발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우선 리버풀을 포함한 영국의 도시재생 정책에 대한 문헌조사를 선연구로 하며 부산의 도시개발 현황 파악 및 현지조사의 목적에 부합하게 실패사례와 성공사례를 분석하고 현지조사를 통해 부산의 도시재생을 모색하고자 한다. 둘째, 알버트 도크 일대를 현지조사 함으로써 문헌조사에서 얻은 이론적 배경을 토대로 리버풀의 도시재생사례가 성공을 하였는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알버트 도크의 테이트리버풀, 비틀즈스토리, 해양박물관, 노예박물관을 방문하여 버려진 부지의 관광지로써의 변화, 기타 상업과 더불어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현지조사를 진행한다. 셋째, 김정후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헌조사에서 부족했던 정책적 방면의 조언과 도시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자문을 얻고자 인터뷰를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리버풀에 거주하는 Vivian과의 참여관찰을 통해 현지인이 느끼는 리버풀의 도시재생 상황에 대해 관찰하고 부산의 도시개발 및 도시재생에 있어서 주민들의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
(1) 문헌조사
본 연구의 현지조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리버풀의 알버트 도크와 항만 재생사업인 머지사이드 구조계획에 대한 문헌조사를 실시한다. 리버풀의 도시재생의 큰 범주 안에서 리버풀의 역사와 항만재생사업의 진행, 리버풀 도시재생사업의 결과에 대한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한다. 리버풀의 버려진 항만을 활용한 도시재생 사례 연구를 통해 부산 북항 재개발 적용가능성 검토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다음과 같이 문헌조사를 실시한다. 우선 부산의 도시재생 현황을 파악하고 부산에서 진행한 도시재생 사례를 토대로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나누어 도시개발을 넘어서 도시재생으로의 강구방안을 모색한다. 다음으로 리버풀의 도시재생을 포함하는 영국의 도시재생을 선 연구하며 나아가 리버풀의 도시재생에 대해 문헌조사를 진행하고 버려진 곳을 활용한 대표적 사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참여관찰과 비 참여관찰
문헌조사에 있어서 도시재생의 중요 요인 중 하나는 주민들의 만족도에 있다. 리버풀의 주민 만족도와 삶의 질 향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리버풀에 거주하는 Vivian과의 참여관찰을 진행한다. 또한 국제 문화도시로서의 리버풀의 발전현황을 알아보고자 현지인 Vivian과 동행하여 주민의 시각에서 리버풀을 바라보고자 한다. 또한 관광객의 입장에서 리버풀의 도시재생을 바라보고 부산의 도시재생에 있어서 외부적으로 도시의 관광효과를 연구하며 내부적으로 도시재생을 통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다.
(3) 인터뷰
문헌조사에서 부족했던 리버풀 도시재생의 정책적 함의를 모색하고자 김정후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리버풀 도시재생에 관한 칼럼을 작성하셨기에 리버풀로 이동하기 전 리버풀의 도시재생에 관해 자문을 얻고자 하며 전체적으로 현재 부산이 도시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언을 얻고 앞으로의 부산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모색하고자 한다.
3. 영국의 도시 정책과 리버풀의 항만재생 사례-알버트독
3.1 리버풀의 역사
1801년 리버풀의 인구는 약 77,000명이었으나, 1821년 인구는 118,000명까지 다다르게 되고, 1851년에는 376,000명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세기 초 수많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리버풀로 왔고, 1840년대 감자기근 동안 정점을 찍었다.
리버풀 항구는 1800년대에 호황을 맞았고, 이 시기에 새로운 부두들이 많이 지어졌다. 19세기 중반까지 리버풀은 영국에서 런던에 버금가는 두 번째 도시였다. 리버풀 시와 항구는 영국에 해양 무역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영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무역 항구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곧 리버풀이 영국의 부두 건설 및 항만 관리와 관련된 기술과 방법을 주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리버풀은 1807년 노예무역이 폐지되기 전 까지 노예무역의 중심지이자, 세계 인구 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실제로 리버풀에 가보면 그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노예박물관이나, 타이타닉 출항지, 해양박물관, 그리고 이민자들의 역사를 반영하는 세계 각국의 음식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1880년, 리버풀은 공식적으로 하나의 도시가 되었고, 1881년까지 인구는 611,000명에 이르게 된다. 1895년 리버풀의 경계는 Wavertree, Walton, Toxteth의 일부, 그리고 West Derby까지 확장된다.
1901년 리버풀의 인구는 685,000명에 이르고, 1904년 리버풀의 경계는 또 다시 Fazakerly를 포함할 만큼 확장된다. 20세기 초에는 수많은 빌딩과 갤러리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세계 1차 대전을 치루면서 13,000명을 넘는 리버풀 사람들이 죽음을 맞게 되었다. 1928년에 진행된 서베이에 따르면, 리버풀 인구의 14%가 빈곤에 시달렸는데, 이 빈곤은 오늘 날 우리가 말하는 빈곤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 시기의 빈곤 계층은 겨우 생존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살아갔다.
20세기 초 리버풀은 주택 부족에 시달렸다. 인구 과밀 문제는 빈민 주택가(슬럼)과 마찬가지로 만연하는 문제였다. 의회에서 임대 주택을 건설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게다가 리버풀은 1930년대 까지 심각한 수준의 경기 침체를 겪였고, 이는 곧 생산가능인구의 3분의 1이 실업상태에 놓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세계 2차 대전 동안 리버풀은 중요한 항구였던 만큼 표적이 되었고, 그 결과 머지사이드에서 3,875명이 사망하고 10,000채가 넘는 집들이 파괴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더 많은 집들이 파손되었다.
2차 대전 이후 리버풀 의회는 파괴된 주택들을 대체해야하는 문제에 직면했고 이는 빈민 주택가(슬럼)을 포함한다.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리버풀은 1950-60년대 중심 지역을 재개발하고 많은 수의 임대 주택과 아파트를 건설했다. 복잡한 도심에서 외곽으로 인구 이주가 나타난 마을들이 Kirkby와 Skelmersdale 도시 근처에 세워졌다. 테라스가 있는 집들이 철거되고 고층 아파트로 대체되면서 불행히도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1974년 리버풀의 경계가 변화하면서 이는 머지사이드(Merseyside)라 불리는 행정 구역의 일부분이 되었다.
20세기 말 리버풀에는 공학 산업, 시멘트 제조업, 설탕 정제산업, 제분 산업등이 성행했다. 1950-60년대 리버풀 지역 경제가 잠시간 호황을 누렸지만, 영국 내 여러 지역들이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리버풀 역시 1970-80년대 다시금 침체되면서 실업률이 높은 지역이 되었다. 이러한 정황들은 1981년 Toxteth 폭동이라는 사회 문제로 귀결되었다. 20세기 말 리버풀은 낙관적인 징후를 엿볼 수 있었다. 리버풀이 위치한 북서지역은 북미와의 무역에 굉장히 중요한 항구였기 때문에 리버풀은 아주 중요한 항구로서 역할을 이어갈 수 있었다. 1980년대 알버트 도크가 재개발되면서 이곳은 바, 상점, 레스토랑 등이 있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리버풀은 1980년대부터 문화유산을 명소로 이용해 관광업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머지사이드 해양 박물관(Merseyside Maritime Museum)은 1980년에 개관했고, 테이트 미술관(The Tate Gallery of Modern Art)은 1988년에 개관했고 그 외에도 여러 박물관, 광장, 센터 등이 설립되었다.
3.2 영국 도시정책의 변화
(1) 1980년대
1980년 이전 수십 년간 민간과 공공부문의 적절한 역할과 시장과 국가 간 관계에 대한 논쟁이 대두됐다. ‘큰 정부’에 대한 비판과 많은 정부가 답이라는 전제에서 비롯된 이러한 논쟁은 정부가 실제로 문제의 일부이며 해답은 규제완화를 통해 시장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는 논거가 되었다. 이런 새롭고 독특한 접근이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에 의해 고안되었다.(이 시기는 신자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도시사업에 있어 공공부문 투자가 민간 부문을 강화하는 새롭게 고안된 방식에 따라 증가했다. 그 첫 번째 방식은 도시 개발 조합(Urban Development Corportaions, 이하 UDC로 칭함.)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UDC는 두 곳에 설립되었는데, 첫 번째는 런던 도크랜드 개발 조합이었고, 두 번째가 머지사이드 개발 조합이었다. 후에 이 사업은 총 13개의 UDC를 포괄할 만큼 확장된다.
두 번째 방식은 1981년에 고안된 것으로, 기업 유치 지구(Enterprise Zone,이하 EZ로 칭함)의 설립이었다. 1981년에 총 11곳의 EZ가 지정되고, 1984년에는 14곳의 EZ가 지정되었다.
UDC(도시 개발 조합)와 EZ(기업 유치 지구)는 국한된 지역 내에서만 작용했으며, 도심지역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또 다른 계획이 고안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도시 개발 보조금(Urban Development Grant, 이하 UDG)이다. UDG는 도심지 기업 설립과 함께 진행되었다. 이 두 계획은 그 동안 주의하지 못했거나 큰 위험 부담이 있었던 기회들을 발굴해 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도시 재생 정책을 둘러싼 주요한 문제들이 발생했는데, 이 문제는 아래와 같이 5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도시 문제에 대한 정의와 대응 규모
2. 정책 분열과 합동 부족
3. 장기적인 전략 접근이 결여됨
4. 자본이 선도하는 도시 재생(property-led regeneration)에 지나친 의존
5. 통치, 관리통제주의와 관료주의와 같은 문제
전반적으로, 1979년부터 1991년까지는 사회 복지 계획으로부터 민간 영역과 자본 중심 접근으로 포커스의 변화가 있었다. 지나친 정부의 개입이 초기 대처 정부에서 발견된 문제였다면, 정부에서의 개인 및 집단 성향, 그리고 시장자유에 대한 규제, 같은 정부에서 발생한 도시 재생방면의 문제는 영리, 자산 그리고 시장이 이끄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2) 1990년대
1990년대 초에는 정책에 있어 서서히 조정이 일어났다. 이전 시기에서 유지되어 온 요소들이 있는 동시에 그 시기를 특징지었던 자본이 선도하는 재생에 불만이 계속해서 쌓여오고 있었다. 게다가, 도시 재생을 진행했지만 이렇다 할 이익을 보지 못한 공동체나, 사회적으로 배제된 공동체들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었다.
정부가 마주한 핵심 쟁점은, 영역 기반 계획들의 일관성 없는 일과 1980년대의 도시 정책에 포함된 거버넌스의 레벨을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도시 재생으로 인해 혜택 받은 소외된 지역 사회들을 어떻게 보장할 지에 대한 것이었다.
정책에서의 상당한 변화는 다중부채꼴의 협력과 경쟁적 가격 제시의 등장과 함께 1990년대에 일어났다. 이전의 정책들은 부동산 부활에 기반한 공공 부문-민간 2방향 협력으로 특징지어졌고, 중앙정부와 투자의 ‘트리클다운 이론(사회의 최부유층이 더 부유해지면, 더 많은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그 부가 서민들이나 그 아래층들에게로도 확산된다고 보는 이론)’에 의해 통제되었다. 대신에, 이 기간에 생겨나던 정책들은 공공 부문, 민간, 지역 사회와 자발적 부문들 간 3방향 다중부채꼴 협력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들은 도시 재생에 드는 돈을 위한 경쟁적 가격 제시였던 자원 배분의 새로운 접근에 뒤이어 일어났다. 인근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경제적 박탈의 규모에 따라 측정된 필요의 입증에 근거하여 재정을 분배하기보다, 새로운 재정 지원 메커니즘은 경쟁적 가격제시 과정에 기반을 두고 재정을 분배하기 위해 변화하였다. 중앙 정부를 위한 재정은 단순히 요구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보단 경매 입찰의 질과 불우한 지역 내의 개혁 유도를 겨냥한 경제적 기회들에 따라 분포되었다.
(3) 1997년-2000년대
노동당 정부가 집권을 하면서 1997년은 영국의 도시 정책에 있어 새로운 경계선이 되었다. 이 시기의 도시 정책은 주로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사회적 배제, 그리고 도시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인근지역과 하우징 산업이 주가 되는 공동체의 재생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이었고 두 번째는 쇠퇴하는 지역, 도심, 그리고 이전에 산업과 상업이 지역 경제의 주가 되었던 지역들을 재생하는 정책이다.
노동당 정부가 고안해낸 새로운 접근법은 바로 ‘도시 르네상스’라는 맥락 속에서 경제적, 사회적 차원 간 상호관계에 초점을 두는 것이었다.
이 접근법은 보다 일관성 있는 방법으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사회적 배제가 도시 정책의 중심이 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동당의 도시정책에 있어 핵심 요소는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국가 도시 재생기구(English Partnerships)
English Partnerships은 1993년도에 설립되었다. 국가적 도시 재생 기구인 EP는 물리적 개발과 재생에 집중한다. EP의 주 역할은 개발 협력을 체결해 나가면서, 토지 재개발을 통해 환경을 강화시키면서, 전략적 위치의 자산과 토지 자산의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역 개발 에이전시(Regional Development Agencies)
RDA는 일자리 창출, 토지 반환, 신생기업 지원과 그 지역의 주로 궁핍한 지역에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1999년도 노동당이 고안해낸 새로운 메커니즘이다. RDA는 당시 스스로를 주택과 지속가능한 지역사회에 집중하도록 맞춘 EP의 일을 이어받았다.
-도시 재생 회사(Urban Regeneration Companies)
‘도시 르네상스’의 목표와 목적을 전달하기 위해 수립되었던 다른 계획들이 많다. UTF(1999)는 도시 재생 회사들(URCs)을 효율적인 협력을 통한 지속가능한 재생의 수단으로 세우는 것을 제안했다. 도시 재생 회사들은 민간 부문이 이끄는 기관들이며, 그들은 특정한 해상 표류중인 지역들에서 투자와 개발을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3 리버풀의 항만재생사례 -알버트독
알버트독(The Albert Dock)은 1846년 리버풀의 항만에 설치된 기념비적 건축물이다. 알버트독은 최초의 폐쇄적 도킹 시스템을 지니고 있는데, 사면을 창고라인으로 폐쇄한 부두로 상품들을 창고에서 곧 바로 배에 선적할 수 있으며 선적 과정에서 상품 파손 위험을 줄이고 상품을 도둑맞거나 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면, 차, 실크, 설탕 등과 같은 귀중품들을 보관하는데 유용이 쓰였다.
그러나 이 알버트독이 리버풀의 선박 시스템 개혁에 있어 랜드마크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완성이 된지 20년 후부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유인즉슨, 알버트독은 범선에 맞추어 건설되었는데, 증기선이 발전함에 따라 알버트독이 범선보다 큰 증기선을 수용하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세기 초까지 알버트독은 리버풀 선박 항구의 7%정도만 수용하게 된다. 또 다른 설계 문제점은 부둣가가 부족한 것 뿐 아니라 큰 선박들의 진입을 방해하는 작은 입구였다. 이후 1940년대에 알버트독은 바닥면적의 14% 가까이가 파괴되었고, 세계 2차 대전의 여파로 알버트독의 오너가 재정적 부담을 안고 동시에 해양 기술의 변화로 도킹 시스템이 쇠락하면서 알버트독 역시 천천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따라서, 1960년대 초에 알버트독을 철거하고 부지를 재개발하자는 요청이 빗발치게 되지만, 다행히도 1970년대 철거 계획이 무산되고 1972년까지 알버트독은 빈 부지로 남아 문을 닫게 된다.
이후 알버트독과 그 부지를 재생하려는 시도가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의회가 넘쳐나는 계획이나 제안들을 손쓸 수가 없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던 와중에 1981년 알버트독 재생에 힘을 가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바로 MDC(Merseyside Development Corporation) 설립이다. 공적 자금을 리버풀 남부두의 물리적 재생에 투자하면 민간 투자자들을 이끌기 쉬울 것이라고 여겼다. 2년의 협상을 마치고, MDC는 알버트독의 재생사업을 책임 질 알버트독 회사(Albert Dock Company)를 설립했다.
알버트독 재생사업은 저하된 독 시스템 복원을 선두로 시작되었고, 1986년 머지사이드 해양 박물관이 알버트독으로 이전, 1998년에는 테이트 리버풀이 개관되었다. 많은 이들이 테이트 리버풀을 알버트독에 자리하게 한 것이 리버풀을 현대 미술의 허브로 자리 잡도록 함으로써 성공적인 결정이라고 판단한다. 1998년, ITV(영국 방송사)가 알버트독에 새로운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방송을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2년 후 2000년에 비틀즈 스토리 박물관이 개관함으로써 알버트독에 문화적 요소들이 더욱 더해졌다.1990년대에 수많은 호텔, 레스토랑, 회사들이 그곳에 분점을 설립했으며, 오늘날 알버트독은 북서지역의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되었고, 또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도시로 뽑히게 되었다.
알버트독의 재생은 건축 자산과 문화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재생사업 중 주요한 일환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알버트독은 도심과 통합되지 않고 그저 부둣가 외곽에 위치한 동떨어진 랜드마크라고 여긴다. 이러한 문제는 도심 재생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에 늦게야 인지되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심과 알버트독 부근을 잇는 요소가 필요하다는 비평도 나온다.
전반적으로, 알버트독 재생의 가치는 그 결점들을 훨씬 넘어서며 항만 재생을 통해 도시의 부둣가를 가치 있는 장소로 탈바꿈하는 결과를 낳았고 리버풀의 역사적 정체성과 문화적 요소들을 강화시켰다.
4. 부산의 도시재생
현재 부산은 인구의 감소와 급속한 노령화를 당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젊은 인구의 유출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조성된 시가지의 급속한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들로 비추어보아 부산은 현재 ‘도시 재생’이 필요하다. 따라서 4장에서는 앞서 리버풀의 도시재생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4.1.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부산은 도시재생 사업으로 크게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과 ’행복마을 만들기’ 두 가지 사업으로 나누어진다. 우선 부산‘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부산의 중구・서구・동구・부산진구・사하구・사상구 등 6개 구 54개 동을 대상지역으로 하고 있는 사업이다. 사업기간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개년 사업으로 올해 7년차에 들어섰다. 그리고 1,500억원의 비용이 드는 사업이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부산 도시재생의 성공적 사례로 언급되는 사업이다. 53명에 달하는 마을계획가와 활동가들이 이들 지역에서 잊혔던 이야기를 재발견하고, 쓸데없는 공간들을 공동체 공간으로 재창조하였다.
우선, 이 도시재생사업의 주요성과는 우선, 주거생활 환경의 대폭 개선이다. 핸드레일 및 계단도로 정비 그리고 보도설치 등으로 깨끗하고 걷기 좋은 산복도로를 조성하였다. 8곳 486m의 도로가 새로 만들어졌고, 총 9.28km의 보도가 정비되었다. 생활경관조명으로 밤길이 전보다 안전해졌으며 폐공간과 유휴지를 쉼터, 소공원 그리고 체육시설 등으로 바꾸어 주민들의 편의시설을 확대하였다. 358면의 공영주차장도 들어섰다. 그리고 정감 있는 조형물과 타일 벽화로 옹벽이 꾸며졌다.
둘째, 마을공동체의 회복도 이 프로젝트의 주요 성과 중 하나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주식회사 등을 만들어 일자리 창출, 마을경제 자립 기반이 마련되었다. 마을카페와 공동작업장에서 마을신문을 만들거나 구술기록집을 발간하는 등 공동체 활동도 증가하였다. 그리고 텃밭음악회, 마을합창단, 상자텃밭 운영 등으로 지역이 활력을 되찾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문화 및 관광 인프라 구축 덕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동구 초량동의 이바구공작소와 김민부전망대, 중구 대청동4가에 위치한 금수현의 음악 살롱, 서구 아미동4가의 최민식갤러리 등 8곳의 스토리텔링형 공간이 마련되면서 이야기가 있는 산복도로 조성에 성공하였다. 산복도로 투어버스도 운영되며 산복도로 조망9경도 확인할 수 있다.
넷째, 골목경제 활성화 및 주민 삶의 질 제고를 들 수 있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빈 점포들이 감소하고 창업이 증가하면서 골목상권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취약계층 집수리사업과 찾아가는 원스톱 의료지원 서비스 등 찾아가는 산복도로 주민지원서비스 제공으로 지역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 부산형 도시재생 모델 정착을 들 수 있다. 마을경관을 활용한 아시아 대표 문화예술 마을이 된 ‘감천문화마을’, 건축물과 인물 테마의 골목길 재생 성공사례인 ‘초량이바구길’, 그리고 안전마을이자 공동체 활성화의 모범사례인 ‘아미동비석문화마을’ 등이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로 인해 정착한 부산형 도시재생 모델들이다.
마지막으로,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이 같은 성과로 각종 부문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으며 벤치마킹의 모델이 되었다.
2013년 대한민국 지역희망박람회 지역발전대상, 민관협력 우수사례 공모대회 대상, 지역공동체 활성화 발표대회 최우수상, 도시재생대학 통합발표회 대상 및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우간다, 탄자니아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스리랑카를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들, 유럽의 네덜란드, 독일 등 각국의 고위 공무원들과 대학 및 기업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하기도 하였다.
부산시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대형 개발 위주의 재건축·재개발 방식과 달리 주민이 주도해 마을 원형을 살리면서도,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강조하였다. 이 같은 원칙을 내세우며 차별화된 재생사업을 벌이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낙후한 산복도로는 산뜻하게 변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에 제기되는 비판점 한계 역시 있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주민공동체의 자생력을 기르기 위하여 마을기업이나 행복마을사업 등을 같이 하는데, 상당수가 기반이 허약하여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끊기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진짜 르네상스를 위해서라면 보완책 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4.2.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
부산 도시재생 사업의 두 번째 모델은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은 마을 공동체 복원을 통한 통합형 도시재생사업이다. 주로 공간기반조성, 주민역량강화, 마을 경제력 증대가 사업의 주요 목표이다.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은 주거 환경(생활 환경)개선, 교육 환경 개선, 문화 환경 개선, 복지 환경 개선 등 4개 분야로 추진된다. 주거 환경(생활 환경)개선 분야는 불량 주택 개조 및 보수, 골목길 정비, 주민 쉼터 조성, 공동 주차장 설치, 역사 문화 벽화 조성 등의 사업이 추진되고, 교육 환경 개선 분야는 북 카페 설치 운영, 학교의 지역 사회 센터화, 방과 후 공부방 운영, 어린이 영어 교실 운영, 어린이 영어 교실 운영, 학습 멘토링제 운영 등의 사업이 추진된다. 문화 환경 개선 분야는 지역 문화 공간 조성, 폐가 및 공가를 활용한 예설 공간 조성, 미술 공동체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의 사업이 추진되고, 복지 환경 개선 분야는 복지 공간 조성, 노인 건강 교실 운영, 노인 일자리, 주민 공동체 등에 관한 사업이 추진된다.
부산의 도시재생 사업은 주로 마을 공동체 위주의 도시재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거주민 생활 환경 개선에 국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마을 위주의 도시재생은 부산의 항만도시라는 독특한 정책성을 확립하는데 부족함이 있으며 따라서 부산이라는 항만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항만도시재생이 필요하다. 따라서 다음으로 부산의 항만도시 재생사업과 추진방향 및 문제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4.3 부산의 항만도시재생사업-북항재개발
바다와 항만을 가진 도시에서는 항만을 새롭게 개선하는 항만재개발과 리모델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다양한 항만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국내의 경우 부산의 북항재개발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부산의 항만도시재생사업은 부산의 도시재생사업으로 언급되면서도 예산문제를 비롯해 주민참여와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부산시가 북항 재개발과 관련해 2015년도 중점추진사업으로 제시한 충장로 지하차도 건설사업과 부산역-재개발지간보행테크설치 등 추후 예산 확보에 대해 협의하기로 했을 뿐 구체적인 예산 마련 방안이 논의 되지 않았다.
또한 부산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도시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북항재개발사업에 대하여 어떻게 인지하고 있느냐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동의 논의, 즉 주민참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주민들은 행정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제시해야 하며 조화와 균형을 모색하는 주민합의 도출이 필요하다.
또한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항만도시재생사업이 맹목적으로 ‘첨단’만 추구하는 개발이 아닌, 기존의 역사와 문화를 충분히 소화하는 ‘항만재생 작업’이 필요하다.
5. 현지조사
현지조사는 연구계획서 상의 연구목적에 따라 크게 탐방조사, 인터뷰, 참여관찰 및 비 참여관찰 세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탐방조사는 알버트 도크의 테이트 리버풀, 비틀즈스토리, 해양박물관, 노예박물관을 방문하여 버려진 부지의 관광지로써의 변화, 기타 상업과 더불어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현지조사를 진행했다.
알버트 도크는 문헌조사 내용보다 4개의 기관이 매우 밀집된 형태이다. 버려진 항만물류창고를 4개의 기관을 유치함으로서 상당한 관광객들이 방문하며, 관광지로써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해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아래의 표1)는 GVA(총부가가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리버풀이 1997년부터 2014년까지 102.9%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1998년 테이트리버풀의 유치와 2000년 비틀즈스토리의 박물관 개장과 더불어 서비스산업과 더불어 상승한 효과라고 볼 수 있다.
표 1. GVA 변화율 (1997~2014)
또한, 리버풀은 알버트 도크의 항만도시재생을 이룸으로써 테이트 리버풀, 비틀즈 스토리와 같은 문화 도시기반을 구축하고 꾸준히 문화도시로써 노력을 하면서 문화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아래의 표2)는 리버풀의 관광객 증가 자료이다.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12년부터 2014년의 관광객 증가를 살펴보았을 때 리버풀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알버트 도크의 재생사례는 버려진 물류창고를 관광지로써 변화시켰다는 문헌 조사와 일치한다.
표 2. 리버풀의 관광객 증가 자료
특히나 흥미로운 점은 유료, 무료 관광지에 대한 관광객 수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래의 표를 보면 리버풀에 소재한 관광지들이 상위에 올라가 있다. 실제로 평일에 리버풀을 방문하였을 때 알버트 도크 테이트미술관, 해양박물관, 비틀즈 스토리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모습을 관찰했으며 알버트 도크 주변상권인 식당도 관광객들로 붐볐다. 아래의 표3)는 2014년 기준 유료명소 관광객 수를 나타내는 표이다.
표 3. 유료명소 관광객수
다음으로 리버풀에 거주하는 이주민 2세 현지인과의 참여관찰 및 비 참여관찰은 도시재생의 중요 요인 중 하나인 주민들의 만족도 조사에 목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또한 국제 문화도시로서의 리버풀의 발전현황을 주민의 시각에서 리버풀을 바라보고자 했으며 관광객의 입장에서 리버풀의 도시재생을 바라보고 부산의 도시재생에 있어서 외부적으로 도시의 관광효과를 연구하며 내부적으로 도시재생을 통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해 연구하고자 했다.
참여관찰 및 비 참여관찰을 진행하며 리버풀에 거주하는 이주민 2세의 견해에 따르면 리버풀은 라임 스트릿근처에 다양한 국가의 음식점이 존재하고 리버풀이 비록 작은 도시임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면서 국제적인 도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내부적으로 도시재생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참여관찰자의 연령이 다소 많지 않아 과거의 리버풀과 현재의 삶의 질을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리버풀 내에서 다른 국적의 유학생들과의 교류와 참여 관찰자가 느꼈을 때의 리버풀의 국제적인 관광도시로서의 역할은 문헌조사 및 연구계획서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헌조사에서 부족했던 리버풀 도시재생의 정책적 함의를 모색하고자 김정후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은 주민들의 도시재생 정책에 대한 합의도출 과정, 문화기반의 도시재생의 지속가능성, 항만도시재생을 통한 주변 산업의 활성화 위주로 진행되었다.
주민들의 도시재생 정책에 대한 합의도출 과정은 민주주의가 높은 도시에서의 정책적 합의도출과 반대로 도시재생을 열심히 시행함으로써 민주주의 의식을 끌어올린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리버풀은 기본적으로 교육열이 낮고 범죄율이 높고 사회구성원이 노동자 중심이다. 그러나 도시재생에 성공했다는 것은 주민들과 도시정책에 있어서 수많은 충돌과정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주민과의 합의도출에 충돌이 발생했을 때 정부와 주민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구축되어야 한다.
리버풀의 도시재생의 산업 활성화는 1998년부터 나타난다. 리버풀의 항만도시재생은 약 10년 만에 성과를 보여주며 리버풀 주민의 약 60퍼센트의 주민들이 항만 노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도시가 아닌 전형적인 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산업변화에 있어서도 유동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리버풀은 알버트 도크의 문화기반 구축을 통해 문화도시로 성장을 시작하였으나 이후 다양한 산업지표에서 성장과 변화를 보인다. 리버풀의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해 리버풀 직무의 변화는 1998년부터 2014년까지 13.5%의 증가를 보였으며 이는 실업률감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래의 표4)는 리버풀의 직무변화율을 나타낸다.
표 4. 직무의 변화율
6.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리버풀의 버려진 항만을 활용한 도시재생 사례를 연구하여 부산의 버려진 부지 활용방안과 해양도시 정체성 확립가능성에 대해 검토하였다. 본 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선 본론에서 언급했듯이 리버풀의 항만도시재생 사례는 머지사이드 구조계획에 따라 버려진 항만물류창고인 알버트 도크를 재생시키며 국제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리버풀의 도시재생이 다른 도시들의 도시재생과 큰 차이점이 있다면 자본위주의 새로운 건물구축을 통한 도시재생이 아닌 기존에 있던 부지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리버풀 도시재생은 알버트 도크 내에 버려진 부지에 테이트리버풀, 비틀즈 스토리, 해양박물관, 노예박물관을 한곳으로 모아 관광지의 집적효과 가진다. 현지조사의 김정후 교수님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버려진 부지를 활용하는 도시재생은 자본위주의 도시재생보다 적은 비용이 사용되며 기존에 비인기의 박물관을 버려진 부지에 이동시켰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버려진 부지 활용은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효율적이며 저비용으로 관광도시로서의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져다준다. 또한 부산의 항만도시재생사업과 더불어 맹목적인 첨단위주의 항만도시재생이 아닌 버려진 부지를 활용하여 항만도시재생을 추진한다면 북항재개발과 같은 예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둘째, 리버풀의 알버트 도크는 항만 안에 해양박물관과 노예박물관을 설립함으로써 해양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과거 리버풀은 세계적인 무역도시로써 항만이 활발하게 사용되었지만 범선의 규모변화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쇠퇴한 항구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기존 비인기의 해양박물관을 항만 근처 알버트 도크에 배치하면서 타이타닉과 같은 과거의 리버풀의 해양역사, 항만도시의 특색과 함께 세계적인 노예시장의 불명예를 활용하여 항만역사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리버풀의 항만도시의 재생은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항만도시로써의 리버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따라서 부산의 북항과 같이 항만근처 버려진 부지에 기존의 박문관이나 역사를 유치시킨다면 항만도시라는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고 관광지로써 경제적 효과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리버풀의 항만도시정체성 확립은 도시가 가지는 고유한 특색을 되살리는 기반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1998년 테이트 리버풀이 개관은 리버풀을 현대 미술의 허브로 자리 잡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또한 2000년 비틀즈 스토리 박물관이 개관함으로써 알버트 도크에 문화적 요소들이 자리 잡았다. 리버풀의 문화요소를 통한 관광화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일환이다. 문화의 범주 안에는 역사,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된다. 리버풀은 과거의 타이타닉 출항지라는 역사, 테이트 리버풀을 성공적으로 유치하면서 세계 문화도시로서의 성장, 비틀즈라는 세계적인 가수를 관광 상품화 하면서 세계 문화의 주류가 되고자한다. 문화는 끊임없이 생성되며 과거의 역사는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문화를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활용한다면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이루어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버풀의 도시재생 연구는 주민들의 합의를 도출 방법을 연구함에 있어서 의미를 가진다. 부산도 리버풀과 같이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감천문화마을과 같이 거주민들의 삶의 질과 관련해서 많은 반대를 직면하고 있으며 4.3 본론에 언급했듯이 주민들의 항만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인지가 불명확 하다. 리버풀은 리버풀 알버트독 회사(Albert Dock Company) 설립과 함께 현지조사 인터뷰 내용과 같이 지역회사에 사업권을 우선으로 배분하고 주민들의 합의를 도출해 나가며 민주적인 도시로 거듭났다. 따라서 부산의 도시재생 사업도 부산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자체적인 회사설립의 필요성과 지역기업에 우선권배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위한 도시재생이 아닌 거주민들을 입장에서 도시재생을 이루어 낸다면 더욱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리버풀은 자본 중심적 투자로 진행된 재개발이 아닌 도시 재생 기구를 지역 곳곳에 설치함으로써 지역 기업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도시 재생을 이룩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버려진 곳을 활용해 저 비용으로 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도시로 선정되었고 이는 부산에 항만도시재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더 나아가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알버트 도크에 비틀즈스토리, 해양 박물관, 노예 박물관 등 도시 고유의 문화를 그대로 옮겨놓기도 한 반면에, 테이트 리버풀이라는 현대 미술관을 설립하면서 세계 문화도시로 거듭난 성공사례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에 있어서 도시 정체성과 도시의 고유한 문화의 발현의 중요성을 함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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