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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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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리즘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일대
  • 탐방일시 :2020.10.25 ~ 2020.10.25
  • 조회수 :719
  • 좋아요 :0
  •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 키워드
    일제강점기, 다크투어리즘, 문화, 근대, 현대

제주도 서남부의 대정읍에 위치한 대정읍에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을 대비해 주둔해있었고 여러 시설물들을 제주시민들을 동원해 지었다 그것은 훗날 광복이후 4.3사건으로 이어지고 그 잔재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게 되어 현재 일제강점기와 4.3사건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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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크투어리즘

다크투어리즘이란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 말이다. 블랙 투어리즘(Black Tourism) 또는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이라고도 하며, 국립국어원에서는 ‘역사교훈여행’으로 우리말 다듬기를 하였다.
대표적인 장소로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비슷하게 대학살이 자행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911테러가 발생했던 곳인 그라운드 제로 등을 꼽을 수 있다.
대한민국 최대의 섬인 제주도는 현재 관광으로 많이 유명한 섬이지만 사실 다크 투어리즘 장소들이 상당히 많다. 이 말은 즉 상당히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유독 제주도가 이렇게 다크투어리즘 장소가 많은 이유는 섬이라는 고립된 지형과도 많은 관련이 있다. 위의 사진과 같이 많은 장소가 있지만 올레길에 포함되어 차량으로 이동하기에 무리인 곳들이 많았던 관계로 특정 몇 장소만을 직접 눈으로 보고 올 수 있었다.

2. 알뜨르 비행장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일대에 위치한 옛 비행장으로 현지의 지명인 모슬포라는 이름을 따와 모슬포 비행장이라고도 불린다, 알뜨르 라는 단어는‘아랫쪽’을 뜻하는 제주어‘알’과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 ‘드르’가 합쳐진 말이다. 비행장이 위치한 지역처럼 제주도 아래쪽에 위치한 넓은 들판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제주에서 일본이 비행장으로 사용한 곳은 알뜨르 비행장 이외에도 많았다. 현재의 제주국제공항 위치에 있던 정뜨르 비행장으로 불린 일본 육군 서비행장, 현재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해있던 진뜨르 비행장으로 불린 일본 육군 동비행장, 일본이 마지막으로 제주에서 태평양전쟁의 저항을 준비하던 특공부대용 비밀 비행장, 교래리 비행장 등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알뜨르 비행장 뿐이다.

격납고의 모습

격납고의 모습

밭 사이사이로 보이는 격납고의 모습

밭 사이사이로 보이는 격납고의 모습

넓은 활주로 옆을 보면 넓은 지대에 밭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낮게 비행기를 숨겨 놓은 격납고들이 보인다. 현재 한 20여개의 격납고들이 철거되지 않고 밭들 사이에 흉물스럽게 존재하고 있다. 일본의 패전 이후 농민들이 창고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활주로를 비롯하여 비행기 격납고와 탄약고 등은 10년에 걸쳐 세워졌고 후에 확장공사까지 진행하는데 모두 인근의 모슬포지역의 주민들을 동원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1933년 일본 해군에 의해 최초 조성되었으면 당시 6만평 규모였다. 4년뒤 1937년 14만 7000여평을 추가매입수탈하여 확장. 1차 완공 당시 규모가 20만평에 달했다. 완공 당시 중일 전쟁 중이었고 이 알뜨르 비행장이 중국을 향하는 전투기와 폭격기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였다. 이 역할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 바로 난징 대학살이다. 1945년부터 일본 해군 901 항공대의 전진기지로 사용되었고 동중국해 대잠작전의 거점으로 이용되었다. 확장을 거듭해서 해방 직후에는 80만평에 달했으나 전쟁 말 자원 부족에 지역주민 강제 동원이란 비효율적 방식으로 공사해 완공도 채 하지 못했다. 현재 사진에서 보이는 격납고 내의 비행기는 철근으로 제작된 제로 전투기 모형으로 평화조형물로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염원을 담은 리본이 묶여 있다.

3. 일제 지하벙커

처음 다크투어리즘 코스 지도를 따라 지하벙커를 찾아 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사유지이고 경작되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밭들을 지나가도록 되어있었고 밭을 지나 표지판을 따라 가다보니 이렇게 생긴 콘크리트 건축물을 볼 수 있었다 안내문에서 관제탑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바로 옆에 넓게 펼쳐져있는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에서 비행기들을 관제하는 시설이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저 높이에서 관제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재차 알아보니 이 콘크리트 건축물은 석적 수조로 당시 비행장 일대 주둔부대에 대한 식수 공급을 하던 시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관제탑을 지나자 갈아놓은 밭 뒤편으로 폐 콘크리트 건물 같은 것이 보였고 혹시 지하벙커인가 하였으나 완전히 무너진 상태의 건물이었다.

관제탑의 모습

관제탑의 모습

관제탑 설명

관제탑 설명

지하벙커 설명

지하벙커 설명

지하벙커 내부의 모습

지하벙커 내부의 모습

그 뒤편으로 조금 높은 언덕이 있었는데 뒤편에서 바라보아서 그런지 안내판을 확인 할 수 없었으나 반대방향으로 이동해서야 안내판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 지하벙커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670번지에 위치해있으며 알뜨르 비행장이 처음 만들어지고 난 이후 1945년에 40만 평으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지어진 일본군 해군 비행장의 부속시설이다. 현재 지하벙커를 비롯해 잔디로 덮여 있는 활주로와 비행기 격납고 등과 같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군사시설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미국의 일본 본토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도를 최후의 방어진지로 삼고 제주도민들을 대규모로 강제 동원하여 만들어졌다.
사진으로 보다시피 안내문과 같은 표식이 없는 한 그저 언덕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수풀에 덮여져 있어 찾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들어가는 입구도 상당히 좁았고 내부는 바깥의 언덕의 크기에 비해서는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좁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지하벙커를 찾으면서 보았던 폐 콘크리트 건물도 같은 선상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무너지긴 했지만 같은 지하벙커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일본의 입장에서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기 위한 입장에서 상당히 여러 겹으로 군사들을 배치하고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비행기의 경유거리를 생각했을 때 거점들이 많이 필요했고 대한민국의 제주도는 그러한 관점에서 상당히 유용한 장소였다. 이미 반도 내에서는 일제의 잔재라고 할 만한 것들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지만 제주도에서는 아직까지도 철거하지 않고 다크투어리즘의 장소로 사용되어진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또 꼭 찬란하고 좋은 역사만이 남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4. 제주 섯알오름 4.3 학살터
송악산(송 오름) 북쪽에 알 오름 3개가 동서로 뻗어 있는데 그중 동쪽의 오름은 동오름, 서쪽은 섯알오름, 가운데는 셋알 오름이라고 한다. 그중 서쪽에 있는 섯알 오름은 자그마하고 낮아서 ‘알오름’으로도 불린다. 이곳 꼭대기에는 일제 강점기에 설치한 고사포 진지가 있고 그 남쪽 기슭에는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학살터와 위령비가 있다. 본래 제주 다크투어리즘 코스대로라면 알뜨르비행장과 지하벙커를 돌고 난 이후 섯알오름의 4.3 학살터를 지나 셋알오름의 일제 고사포진지, 일제 해안 동굴진지 등을 따라 송악산을 가는 것이 맞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섯알오름 학살터까지만 가게 되었다. 지하벙커를 다녀와 다시 주차장에서 우측의 자그마한 오름이 보이는데 그곳이 섯알오름이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보이는 것은 바로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학살터의 내용을 그린 그림과 사진, 그리고 4.3학살터의 내용을 적은 비석과 추모비가 세워져 있었다.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역사들을 마주하다 같은 민족끼리 학살을 자행하는 비극적인 일을 마주하는 느낌은 너무 달랐다. 오름을 조금 더 올라가 추모비의 뒤가 바로 그 4.3학살이 자행되었던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저 2군데의 웅덩이지만 무고한 희생이 있었던 곳이다.

제주 섯알오름 4.3 학살터

제주 섯알오름 4.3 학살터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면 한국전쟁 발발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민족을 압살한 예비검속법을 악용하여 발발 당일 요시찰인 및 형무소 경비강화를 시행하였고 6월 29일 불순분자 구속, 6월 30일 구금자 처형 등의 내용을 전문으로 제주도 내의 각 경찰서에 시달함에 따라 당시 모슬포 경찰서 관내 지서에 6월부터 7월 까지 무고한 제주시민 344명을 예비 검속자로 구인하여 모슬포와 한림에 분산하여 수용해두었었는데 이 와중에 한국전쟁의 판도가 국군이 부산까지 밀려나는 형국을 보이자 모슬포에 주둔 중이던 국군이 수용 중이던 인원 중 210명의 인원을 재판도 거치지 않고 섯알오름 남쪽 기슭에서 집단 학살해버린다.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족들이 시신을 옮기려하자 경찰들이 공포를 쏘며 위협하여 옮기지 못하였고 이후 사건 6년 후에야 몇구의 시신이 개인 묘역과 만벵디 공동묘역으로 안장되었고 또 후에 발굴된 유해들은 백조일손지묘에 안장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은 그에 대한 흔적들을 모조리 말소하고자 했기 때문에 아픈 흔적이라고 할 것은 한민족간의 전쟁이었던 6.25전쟁의 흔적뿐이었다. 그렇기에 다크투어리즘 자체도 생소하고 다른 다크투어리즘적인 요소들마저도 생소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번 현지조사를 통해서 제주 4.3 사건이라는 6.25전쟁에 묻혀버리고 보복을 당하고 연좌제에 두려움에 떨던 제주시민들의 비극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제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 가운데에 있는 일제의 군사시설물들을 통해서 더욱이 과거 조상들이 겪었던 슬픔을 직면할 수 있었다.

학살터의 모습 2

학살터의 모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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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네이버지식백과 알뜨르비행장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48702&cid=42865&categoryId=42865
2.네이버지식백과 다크투어리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52275&cid=40942&categoryId=31919
3.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4413903120000&pageNo=1_1_1_0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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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현
  • 소속 : 사학과
  • 이메일 : 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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