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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역사의 산 증인, 관덕정
제주 관덕정, 제주목 관아일명 구시가지로 알려진 제주시 삼도동 근처에는 제주동문시장, 제주시청 등 활발한 시가지이자, 여전히 제주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곳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 수많은 관광객과 주민들, 그리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한 이 지역에 하나 눈에 띄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목 관아와 그 앞에 있는 관덕정이라는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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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섬’, ‘환상의 섬’, ‘신혼여행지’, ‘감귤’ 등 수많은 수식어가 공통적으로 가르키는 지역은 어디일까? 우리나라 남해안에 위치한 섬, 제주도이다.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학적 특성을 가진 제주도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바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곳이었다. 왜구들의 출현이나 1920년대 중후반 출현한 일본인들의 해상 약탈, 많은 선박이나 사람들이 표류하는 일과 같은 해양 그 자체가 가지는 특성에서 비롯된 일이나, 섬이라는 밀폐된 공간성을 이용하여 유배를 보내거나 역사 속에서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제주도는 크게 북부와 남부로 나누어져 북부는 제주시, 서부는 서귀포시가 대표적으로 존재한다. 이번 현지조사에서는 마라도와 우도와 같은 섬 속의 섬들을 제외하고는 북부에서의 활동시간이 길었다. 제주시(제주도 북부)의 특징을 간단히 서술하고 넘어가자면,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과거부터 제주성을 비롯한 시설들이 존재했던 제주시의 중심이으며 현재는 제주시청이 위치한 삼도동 ~ 이도동 지역, 또 다른 하나는 현재 제주도청이 있으며 일종의 신시가지 같은 연동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본고에서는 그중 각종 관아시설이 존재했던 전자에 집중하고자 한다. 일명 구시가지로 알려진 제주시 삼도동 근처에는 제주동문시장, 제주시청 등 활발한 시가지이자, 여전히 제주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곳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 수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 그리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한 이 지역에 하나 눈에 띄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목 관아와 그 앞에 있는 관덕정이라는 건축물이다. 특히 관덕정은 그 바로 앞에 도로를 두고 있어 처음 보게되면 서울의 궁궐, 정자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제주 상도동에 위치한 관덕정의 모습
제주목관아 전경
연희각(延曦閣)은 제주목 관아 내에서 절제사가 근무하던 홍화각 다음으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근처에 귤림당을 비롯하여 각종 음식을 보관하던 예고지, 호적을 보관하던 호적고지, 서리(胥吏)들이 집무를 보던 예리장방지 등 터가 남아있는 모습을 보아 제주목의 책임자가 근무하던 곳이라는 티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보통 처첩들이 거처하는 내아(內衙)터가 집무를 보는 연희각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했는데, 제주목의 경우 목사의 처첩들이 거처하는 것이 아니라 친인척이 유람을 위해 방문하거나 자제들이 찾아 왔을 때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연희각 정면
필자가 생각하기에 제주목 관아의 가장 큰 특징이자 볼만한 곳이라면, 귤림당(橘林堂)이라 할 수 있다. 귤림당은 휴계장소로, 거문고를 타거나 바둑을 두고 시를 지으며 술을 마시던 장소로 이용된 곳이다. 이곳이 왜 특별하냐면, 이원조(李源祚) 목사의 글에 나오듯이 귤림당만이 연희각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귤림당의 뒤편에는 감귤나무가 깔려있는데, 공무를 하다 귤향을 맡으며 산책하고 이를 배경으로 휴계를 하면 피로가 없어졌다고 한다. 하나 궁금한 점은, 어째서 제주의 귤림당만이 공무를 집행하던 연희각과 가까이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것도 제주가 섬이고 중앙(한양)에서 먼 곳에 위치해 있기에 그랬던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귤림당이 제주목 관아 중 가장 주목해야 하는 곳이다.
귤림당 전경
귤림당 설명
귤림당 뒤편의 감귤남, 감귤향이 상쾌한 곳이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제주목 관아를 보면 제주목 역사관도 빠질 수 없는 곳이다. 과거의 관아 건물이나 중요한 곳은 아니지만, 21세기 현재 이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총 관람시간은 10분이면 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 곳이지만, 3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져 있는 엄연한 전시관이다.
제 1전시실의 경우 제주목의 발굴 당시의 모습, 제 2전시실은 목사의 생활상과 행렬도, 제 3전시실은 제주읍 성내 주요건물 및 변천사 등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고, 마지막에는 목사가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체험공간이 있다.
다시한번 언급하자면 이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이 공간이 어느정도의 중요성을 띈 공간이며,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박물관처럼 조선시대 제주를 2020년으로 불러와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주목 역사관의 시작
제주읍성 조형도
과거 제주읍성과 현재 제주시가
3. 관덕정 속 벽화
관덕정은 1448년 안무사(安撫使) 신숙청(辛淑晴)이 창건한 후 1480년에 목사 양찬에 의해서 중수되었다. 이후 실록 기사에 따르면 명종 14년, 숙종 16년, 영종 29년, 정조 2년, 순조 33년, 철종 2년, 고종 19년에 총 7차례 보수되었다.
건립목적은 병사들의 활쏘기나 말타기 등 군사적인 측면의 보강이었고, 이를 위해 넓은 공간을 마련하였기에 제주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인원이 운집할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번 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관덕정의 벽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이곳의 벽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림의 주제에 고사나 자연환경 등 군사목적으로 건립된 관덕정에 알맞았고, 제주의 특징을 잘 반영하였기에 눈여겨 보아야 한다. 벽화는 총 8개가 존재하는데, 그 구성은 강영주(2020)가 “건물 중앙 좌우에 파노라마 형식으로 <적벽대전>, <호렵도>를 구성하고, 바깥쪽으로는 제주의 관리가 지녀야 할 덕목인 은일과 입조 등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상산사호도>나 <취과양주귤만거>의 고사인물도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중략) 모두 제주의 풍속과 자연환경, 생활상의 일부를 반영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라고 하였다. 벽화사진은 방문 당시 관덕정 근방이 공사중이었던 관계로 내부에서 벽화를 찍지 못해 제주목관아 사이트에서 벽화 사진을 가져오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하겠다.
(1) 군사적 교훈
적벽대첩도(赤壁大捷圖). 조조군을 화공으로 이기는 모습
호렵도
(2) 유교적 교훈
상산사호(商山四皓)
취과양주귤만헌(醉過楊洲橘滿軒). 제주의 특산물인 귤이 그려져있다.
(3) 지역특색
제주삼읍삼도총지도(濟州三邑三都總地圖). 한라산을 강조하고 있다.
(4) 기타
홍문연(鴻門宴). 유방이 항우보다 먼저 함양에 이르자 항우가 이를 축하하는 그림
십장생도(十長生圖)
월공산수도(月公山水圖). 장수할 수 있는 山ㆍ海ㆍ石ㆍ松ㆍ竹ㆍ芝草ㆍ鹿을 그린 그림이다.
이처럼 제주 관덕정은 벽화를 포함하여 건물 자체로도 기존 건설목적인 군사적 소양 증진을 비롯하여 관리가 가져야할 덕목 등 항상 제주목 관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4. 마무리
이상으로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관덕정 내부 벽화나 역사에 대해서는 실록의 기록이나 외부의 정보를 통해 알 수 밖에 없었지만, 현재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의 구성 속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충분히 서술하였다고 생각한다.
이 장소는 3박4일의 제주도 현지조사 중 첫 번째 조사지였다. 필자가 이 곳을 방문한 후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를 첫 번째 조사지로 선정한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교통이 편리하고 가까운 곳임은 분명하고, 이 공간이야말로 제주의 중심에서 제주를 대표하며 제주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던 제주도청, 경찰서, 식산은행, 미군정청 등을 볼 때 중요한 지역이였고, 본고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신축민란이나 4.3사건의 시발점 등 한국 근현대사의 일부가 이루어진 곳이다. 즉, 제주에서 일어난 일들은 거의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가 보아왔던 것이다. 특히 다른 곳의 관덕정이 철거당할 때 제주의 관덕정은 철거당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 가치가 높다. 그야말로 제주의 산 증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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