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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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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영토박물관, 독도 박물관
울릉도 독도박물관독도박물관은 경상북도 울릉군에 위치한 박물관이다. 독도 전문 박물관으로, 1997년 개관하였다. 울릉군에서 대지를 제공하고, 삼성문화재단에서 건물을 기증하였으며, 이종학 등이 자료를 기증하여 박물관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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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한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대한민국 가장 동쪽, 동해에 한가운데 위치한 독도는 우리 고유의 영토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동안 동해 바다에 울릉도와 함께 있는 독도를 ‘우산도’로 명칭하며 고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옛 문헌들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에 속한 것으로 기록되어왔다.
하지만 독도는 대륙국가와 해양국가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독도의 세력권 확보를 주도할 가치가 매우 크다. 본고에서는 독도박물관을 방문한 후 조사한 정보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현지 답사를 통해 그들만의 문화를 몸소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에 접근하여 독도박물관과 얽혀있는 문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독도의 역사
① 해상왕국 우산국
독도의 역사는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이어진다. 정확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지만『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1500여년1), 울릉도와 독도에 우산국(于山國)이라는 해상왕국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우산국은 막강한 해상력을 기반으로 한반도의 동남쪽 해변을 대상으로 약탈행위를 일삼았다. 이런 이유로 신라는 자국민 보호를 위하여 우산국을 복속시켜 신라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고려 건국 이후 우산국은 고려시대까지 한반도 지배세력과 군신 관계를 유지하며 독자적인 국가로 존재하였다. 고려는 다양한 교류 및 지원을 통해 우산국을 자국의 영토로서 적극적으로 관리했으나 원나라의 침략으로 고려가 혼란한 시기에 동북여진족과 왜구가 우산국을 빈번히 약탈하였다. 이로 인해 우산국의 지배세력이 약해졌고, 결국 독자적인 국가 지위를 잃어 고려의 부속도서인 울릉도와 우산도로 남게 되었다.
② 조선의 쇄환정책과 울릉도 쟁계, 그리고 수토정책
조선은 해상을 통한 외세 침략을 막기 위한 목적 등으로 섬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고, 관리를 보내 순찰 관리하는 새환정책을 시행하였다. 중앙의 쇄환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동남해안 주민들은 수시로 이 섬을 드나들며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시기에는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를 비롯한 여러문헌에서 기록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울진현 정동(正東)바다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 우리 태조 때, 유리하는 백성들이 그 섬으로 도망하여 들어가는 자가 심히 많다함을 듣고, 다시 삼척 사람 김인우(金麟雨)를 안무사(安撫使)로 삼아서 사람들을 쇄출(刷出)하여 그 땅을 비우게 하였는데, 인우가 말하기를, "땅이 비옥하고 대나무의 크기가 기둥 같으며, 쥐는 크기가 고양이 같고, 복숭아씨가 되[升]처럼 큰데, 모두 물건이 이와 같다"
울릉도와 독도의 지리적 위치와 연혁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왕조가 15세기 초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관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료이다. 이외에도 조선에서 울릉도를 인식한 지도가 존재한다. 동해 바다에 울릉도와 우산도를 함께 그린 지도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팔도총도」2), 「동국대전도」3)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사료는 조선후기에 제작된 천하도로 지도에 천하총도(天下總圖)라고 적혀있는데, 동아시아의 세계관인 천원지방 사상이 반영되어있는 것으로 유명한 지도이다. 지도의 가장 중심에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있는데 조선에 만연하였던 중화사상의 영향임을 파악할 수 있다. 천하총도 속 강원도 지도에는 울릉도와 우산이 표기되어 있는데 당시 조선의 영토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천하총도(天下總圖)
③ 울릉도 재개척과 영토 편입
수토정책과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동해를 통한 일본인들의 침입이 잦자 조선정부는 울릉도에 다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재개척을 시행하였다. 재개척은 1883년 16호 54명의 조선인이 울릉도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1887년이 되면서 12개 마을에 1,134명이 울릉도에 거주하였다.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제 41호」를 통해 울릉도와 죽도, 석도7)(독도) 등 일대의 부속 도서 모두를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통합하여 ‘울도군’으로 승격시키고, 도감을 군수로 승격하여 관할하도록 하였다. 또한 강원도의 27번째 지방관제로 편입시켜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널리 알렸다. 8)
④ 제국주의 시기 일본의 독도 침탈 그리고 현재
일본이 제국주의길을 걸으면서 독도의 침탈을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침탈은 계획적인 이유였다. 독도는 동해 중앙 바다에 위치하였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임은 분명하였고, 독도에 서식하던 가제의 불법적 포획을 통한 국가적 이익 증대와 러일전쟁 승리를 위한 교두보 확보를 이유로 삼은 것이다. 전술하였듯 일본 정부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하였으나 이전 사실을 무시한 채 박탈하였다.
메이지 정부는 독도를 “다른 나라가 점령한 형적이 없다”고 하며 1905년 2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울릉도를 다케시마라는 이름을 붙여 불법적으로 편입해 버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시마[隱岐島]에서 서북으로 85해리 거리에 있는 섬을 다케시마[竹島]라고 칭하고 지금 이후부터는 본현(本縣) 소속의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정한다.
명치 38년 2월 22일
시마네현 지사 마츠나가 다케요시[松永武吉]9)
이 문서는 독도를 무주지로 규정하였으나, 독도는 무주지가 아니며 영토 편입 절차를 완벽하게 무시한 불법행위였다. 이러한 문서에 대해 대한제국에 문의한 경우도 아니었으며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고, 시마네현 현보에만 고시함으로 보아 의도적인 행위였다.
대한제국이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게 된 시기는 1906년 3월이었는데, 울도 군수 심흥택이 울릉도에 상륙한 일본 시마네현 조사단으로부터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펴닙되었다는 말을 듣고, 정부에 보고하였다. 5월 1일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기사에서 ‘무변불유(無變不有)’라는 제목으로 사건을 보도하여 일본의 독도 강점에 대한 반대 뜻을 보여주었다.10)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난 이후의 시기이다. 당시의 일본은 1905년 11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시키고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목을 점차 조여오고 있었다. 일본의 만행으로 독도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희생된 첫 번째 땅이 되었던 것이다. 제국주의 시기의 하나의 문서로 일본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해방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연합국의 처리 방침에 따라 침략으로 뺏은 영토를 모두 반환 받을 수 있었다. 1946년의 연합국 최고 사령부 관할지도에서 울릉도·독도·제주도 등이 일본에서 분리반환 되었음을 명확히 규정하였다.
연합국 최고 사령부 관할 지도
1948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이라는 정부를 수립한 이후 국제적으로 독립을 승인 받았다. 그러나 1951년 연합국이 일본의 전후 처리를 위한 샌프라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에서 분리되는 한국의 영토로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 만을 명시하였음을 말하며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주장에 1952년 1월 대한민국은 평화선 선언을 선포하고 한국 측 해역에는 일본 어선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더불어 독도 영유권 확보를 위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독도 의용 수비대11)
는 꽃다운 청춘 3년을 바쳐 독도를 지켜왔다. 독도의용수비대 정신을 이어받은 독도경비대는 독도를 개발하였고 이 과정에서 7명의 경찰관이 안타깝게 순직하였다. 이들과 같은 노고로 독도는 계속해서 한국의 고유 영토로 지켜지고 있다.
연합국 최고 사령부 관할 지도
독도 박물관 내부 기념비
또한 독도는 1965년 최종덕 씨가 독도 공동어장 채취권을 획득하고 서도에 거처를 마련해 본격적으로 생활을 시작하면서 최초의 독도 주민이 되었다. 1987년 최종덕씨가 사망하자 그의 동료였던 김성도 씨가 공식적인 독도 주민이 되었으며, 2007년에는 독도리 이장으로 취임하였다.
많은 이들이 독도를 지키기 위해 오랜 역사 동안 노력해왔다. 제국주의 시기 고작 40여 년의 시간으로 인해 아름다운 땅 독도의 권리를 잃어버리는 일은 발생해서는 안되는 문제이다. 독도박물관은 이러한 정신을 잇기 위해 개관하였으며, 울릉도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널리 알려주고 있었다.
2. 독도의 과학
지금까지 독도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역사적 사실 이외에도, 독도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 역시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다. 따라서 독도박물관에서 특별전시로 구성되었던, 독도의 과학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다.
① 독도의 실효적 지배
울릉도에서 독도가 육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학자 가와카미 겐조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육안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정부의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부정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진행하였는데, 독도박물관에서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전시를 구성하였다.
과거에도 울릉도에서 독도가 육안으로 보였다는 기록을 남긴 사료들이 존재한다.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1454년)에는“우산 무릉 두 섬은 울진현 정동쪽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두 섬은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울릉도 사적」(1864년)에서도 “서쪽으로는 구불구불한 대관령의 모습이 보이고, 동쪽으로 바다를 바라보니 동남쪽에 섬 하나가 희미하게 있는데 크기는 울도의 3분의 1이 안 되고 거리는 300여 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렇듯 과거 사료에서 육안으로 확인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떠할까?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려면 기본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는 날은 연 평균 50일 내외로 알려져 있으며 날씨가 맑은 늦가을에 집중되어 있으며, 북풍이나 북동풍이 불 때도 독도가 잘 관측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공식적 시달거리 공식에 울릉도와 독도의 높이와 거리 등 기본적 사항을 대입하면 울릉도의 87.8m 이상의 높이에서 독도를 관측할 수 는데 다음과 같다.
② 풍요의 섬 독도
울릉도와 독도가 또 달리 매력있는 이유는 풍요로운 해양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동해의 중심수역에 위치하였기에 주변 해역은 청청해역으로 각종 어류들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는 터전이다. 이렇듯 동해의 중심수역에 위치한 울릉도와 독도 주변의 자원이 풍부한 이유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동해에서는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여 다양한 어장을 형성하는데, 울산 앞바다에서 나타나는 용승 현상 해양에서 비교적 찬 해수가 지형, 전향력의 위도 변화, 바람 등의 원인에 의하여 아래에서 위로 표층해수를 제치고 올라오는 현상이다.
은 바다 심층부의 영양분을 표층으로 끌어올려 동해상으로 전파시켜 동해 해상을 풍요롭게 한다.
독도박물관 속 소용돌이 전시 사진
독도 인근 해역을 지나는 대마난류와 북한 한류는 울릉난수성 소용돌이와 독도 냉수성 소용돌이를 형성시키는데, 이 흐름이 강할수록 오징어 어장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다음 사진을 통해 보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독도박물관 속 소용돌이전시 사진
또한 “독도효과”라는 현상으로 독도 인근 해역이 풍요롭다고 밝히고 있었다. 독도효과는 독도 인근 해역의 해류가 독도에 부딫히면서 마찰을 발생시키고, 이로 인해 해수가 상하 운동하는 현상인데 이러한 효과로 심층의 영양염을 표층으로 끌어올린다. 즉, 식물 및 동물 플랑크톤이 활성화 되면서 독도의 어장이 더욱 다채로워지게 됨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독도박물관 조사를 통해 얻은 독도의 역사와 과학적 지식을 살펴보았다. 白門不如一見으로 직접 박물관 답사를 통해 접근하니 그 동안 답사자가 알고있던 독도에 대해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이 가득하였다. 늘 독도는 우리땅으로만 주장하였지, 논리적인 제시를 하지 못하였는데 현지 조사를 통해 물리적인 거리는 멀지만 가까워진 것만 같다. 그들만의 문화와 그들이 이루어내고자 한 모든 것들을 현재의 우리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아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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