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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송학동 고분군과 소가야의 역사

고성 송학동 고분군
  • 탐방일시 :2020.08.11
  • 조회수 :929
  • 좋아요 :0
  • 위치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470
  • 키워드
    고분, 소가야, 가야연맹, 고성, 해상도시, 교류

가야를 대표하는 고분인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가야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되는 고분의 형식이나 유물들을 통해서 해상 도시로서의 고성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알게 된다. 또한 소가야가 강대국으로 성장할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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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송학동 고분군 전경

고성 송학동 고분군 전경

고분의 축조 과정

고분의 축조 과정

1. 고성 송학동 고분군: 작지만 깊은 소가야와 고성의 역사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원래 10여 기의 대형봉토분이 1고분군과 2고분군으로 나뉘어져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지개간으로 훼손되면서 남아 있는 봉토분(封土墳)은 1호분을 중심으로 소형의 봉토분들이 서쪽에 2기, 동쪽에 3기 모두 6기가 분포하고 있다.
무덤 양식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고성 고분군의 형식적인 양식은 구덩식 돌덧널무덤과 굴식 돌방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고분들은 주로 봉분을 먼저 성토한 후 그 상부에 매장 주체부를 놓는 분구묘의 형태를 띠며, 가야 지역에서 분구묘가 확인되는 곳은 고성 지역이 유일하다.
고분의 가장 고지대에 축조된 1호 무덤을 분석한 결과 흙을 쌓아 구릉처럼 만든 뒤 돌무덤방을 만든 가야 고유의 형식을 보이면서도, 겉모양이 일본고분 양식인 원형 분구에 사각형 붙여 놓은 평면 형식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유사하다. 하지만 전방부가 둥글다는 점과 여기에 대형의 돌방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전방후원분이 아니라는 의견이 충돌하게 되면서, 고분의 양식에 대해서 한일 양국 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양국 간의 논쟁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다음 주제로 가서 고분에 얽힌 여러 나라의 모습과 고분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추가로 설명하고자 한다.

2. 고분의 특징과 논쟁에 대한 분석

1호 무덤을 제외한 같은 형태를 가진 나머지 6기의 무덤은 1호 무덤 주변을 감싸는 모습인데, 이는 1호 무덤이 소가야 내 연맹의 지도자, 우두머리의 무덤임을 암시해준다. 가야 대표 고분이 송학동 지역에 위치 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소가야의 지배 세력들의 요충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 된다.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고분 양식에 대한 양국 간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1999년도부터 2001년도까지 조사를 거친 결과 전방부가 둥근 형태이고 큰 돌방이 배치되어있음을 발견하면서, 1호 무덤은 일본 양식의 전방후원분이 아니라 동쪽의 3기 무덤이 겹친 형태임이 밝혀졌다.
또한 3기의 무덤 전체를 조사한 결과 돌덧널무덤 주변에 작은 돌덧널이 붙어있는 형태로 고성지역에 있는 내산리 고분군과 유사하다. 이는 고자국 고유의 고분 형태로 알 수 있으며 다른 문화에서 온 것이 아닌 삼국시대 소가야의 정체성을 갖춘 고유한 고분으로 생각 할 수 있다.

고분의 발굴 과정을 담은 모형

고분의 발굴 과정을 담은 모형

고분에서 출토된 접시와 항아리

고분에서 출토된 접시와 항아리

송학동 고분은 가야, 백제, 일본 등 다양한 문화권의 고분 방식이나 문화에 혼재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먼저 겉 무덤은 직사각형의 무덤 칸을 파고 안쪽에 돌을 쌓은 구조안 대가야 지역의 재지 문화의 구덩식돌덧널과 유사하다. 그리고 중앙부는 백제지역의 판 모양의 돌을 이용해 방을 만들고 출입구를 만든 뒤 봉토를 쌓은 굴식돌방의 특징이 혼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이 고분은 무덤 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널길과 내부 천장에 붉은색 색상이 칠해져 있음을 보아 채색된 고분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런 채색 방식은 일본 규슈 지방과 긴키 지방의 고분과 상당히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후쿠오카현 아사쿠라 가마 출토품 중에 소가야식 토기인 삼각 투창 고배, 수평구연호, 고배형 기대 ․유공광구소호 등이 발굴되기도 하여서 고분과 부장품들을 통해서 한일 관계사 연구에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1호 무덤의 동북쪽에는 동외동 조개더미가 자리하고 있으며 여러 종류의 묘와 청동류의 금속기구가 발견되어 고성의 문화와 당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조개더미는 선사시대 당시에 고성만의 해안선을 따라서 위치했는데 당시 선사인들이 해안에서 채집한 조개를 이 곳에 버려두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더미에서 중국 한나라의 청동거울이 발견되기도 하면서 소가야와 중국과의 교류 역시 확인 할 수 있다.

소가야(고자국)지역의 유물을 전시 중인 고성박물관

소가야(고자국)지역의 유물을 전시 중인 고성박물관

3. 소가야(고자국)의 역사

고자국은 여섯 가야 연맹체의 한 나라로써 고자군, 고자미동국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설화에 따르면 김해 구지봉에서 나온 6동자중 막내인 말로왕이 건국하였다고 한다. 6세기까지 삼국사기나 일본서기의 기록으로 언급됨에서 알 수 있듯이 꽤나 오래 존재한 가야 연맹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고성은 영남지방 최남단에 위치해 있으므로 신라와 백제라는 강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9년경에 고자국을 포함한 가야 남부 8개의 소국(지금의 고성, 창원 사천 지역)들이 금관국을 공격했던 포상팔국의 난을 일으켰으나, 신라의 개입으로 인해 패배한다. 그 후 3년 뒤 소가야는 골포, 칠포라는 소국들과 힘을 합쳐 신라의 갈화성을 공격했으나 다시 크게 지고 만다.
대게 고자국과 같은 작은 연맹국가는 이와 같은 큰 전쟁을 여러 차례 겪으면 쇠퇴하고 나라가 멸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소가야는 세력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두 차례의 난은 확실한 연구가 되지 못해서 의문점이 존재한다. 포상팔국의 난 자체도 연대가 부정확해서 알 수 없고 추정하고 있는 209년에 신라에 의해 전쟁에서 두 차례 패배했다. 하지만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소가야를 바라봤을 때는 포상팔국의 난과 여러 차례의 전쟁 이후에 소가야의 고고학 유적들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확실한 연대 측정과 연구가 필요하다.
게다가 5세기 금관가야가 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신라 지원 공격으로 인해 약화된다. 그 후 고자국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백제-가야-신라-일본을 연결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남해안-남강을 연결하는 관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송학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백제계 토기와 금동제 고배, 신라계 장식마구, 일본계 토기와 장식마구 등은 다양한 외래 유물들은 고성의 성장과정을 설명 해낼 수 있다.
금관가야가 쇠퇴 끝에 멸망하게 되고 가야 전기 연맹이 해체되었다. 소가야 연맹은 신라와 같은 강국의 압박으로 와해되고 세력이 약해지면서 고령의 대가야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대가야마저 신라 진흥왕에 의해 정복되면서 소가야와 가야연맹의 수백 년의 역사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비록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연맹체제의 약소국이고 남부에 고립되어 가야 외부로 확장하지 못했지만 일본이나 백제, 신라 등 여러 국가와의 교역을 통해 소가야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소가야라는 이름처럼 대가야나 금관가야와 같이 연맹을 주도하고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고 일반적인 작은 나라처럼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역사 안에서 독자적인 문화체계와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역을 통한 발전을 하면서 나라의 명맥을 유지 할 수 있었다. 강대국으로의 성장가능성을 보인 소가야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였으면 좋겠고 조금 더 자세한 연구를 통해 더욱 뚜렷한 소가야의 역사를 알 수 있었으면 한다.
고성 지역의 모습을 담은 고지도(古地圖)

고성 지역의 모습을 담은 고지도(古地圖)

4. 가야는 왜 사라졌을까?

소가야를 포함한 가야연맹 자체의 성장과정에서도 의문점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가야에 대한 장점을 얘기하라 하면 해상과 육로를 넘나드는 지리적 위치, 활발한 교역, 뛰어난 금속 기술 등을 말할 것이다. 왜 가야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지 못하고 무너졌을까? 정답은 가야의 장점으로 언급했던 지리적 위치가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역사의 흐름을 바라보면 서방 지역에서 중국, 그렇게 한국으로 전파되는 문화가 대부분일 것이다. 가야는 좋게 보면 남부에 폐쇄적인 지역에 위치해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삼국에 가려져서 선진 문물 수용이 가장 늦을 수 밖에 없는 위치이다. 결국 가야는 중국 지역의 새로운 문화를 얻지 못하였고 남부의 유리한 고지에서 갇혀 사는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모습이다.
고구려를 예를 들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산지가 많고 식량을 얻기 힘든 북방지역이라는 좋지 않은 여건에서 활발한 주변 연맹국가 세력들과의 정복전쟁에서 승리하고, 최고 강대국이었던 중국 지역과의 잦은 충돌하며 점점 나라가 강해져갔다. 결국 가장 위험해보이고 불리한 위치의 고구려였지만 만주와 한반도 일대 등 가장 넓은 영토를 장악하고 중국을 위협할 수 있었던 삼국시대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다시 가야로 돌아가 보면 평야와 해양의 좋은 여건에서 활발히 영토를 넓히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개성강한 여섯 연맹 국가 간의 갈등이 심하였고 삼국 초기에 강하지 못했던 신라와의 전쟁이 많았고 강국과의 전쟁 경험도 부족한 상태였다. 결국 삼국은 중앙집권화와 군사력의 발전으로 강대국이 되었지만 가야만 홀로 뒤처지면서 결국 삼국시대 역사의 조연으로 밖에 남지 못하게 된 것이다.

5. 소가야 이후의 고성

후기 가야 연맹이 신라에 의해 멸망한 후 신문왕 5년 9주 5소경 행정구역 정비 당시 청주(지금의 진주)내에 고자군을 설치하였고 경덕왕 16년에 현재까지도 이 지역의 명칭으로 쓰이는 고성군이라는 이름으로 변하게 된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진주목에 속현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후 2차의 당항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왜군의 함대를 공격해 57척을 격침하는 중요한 대승을 올렸던 중요한 해전의 역사가 있기도 하다.
고성은 서부경남의 최남단으로서 한반도 내륙지방과 일본지역을 이어주는 지리적 특성으로 해양 요충지 역할을 해왔으며 광복 후에는 주요 요직 인사들을 배출하는 등 인재의 고장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6. 끝으로

고성 지역의 고자국은 우리 역사의 수많은 해상지역 중 작고 외딴곳에 위치한 소국이었다. 그럼에도 삼국시대부터 해상문화의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강대국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이면서 성장하였다. 그 결과 400여 년간 국가를 지속 할 수 있었다.
삼국시대의 숨은 해상 국가인 소가야, 고자국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고성의 수천 년 간의 역사적 흐름, 다양한 문화가 담겨있는 고성 송학동 고분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곳을 방문하길 권한다.
송학동 고분군을 관람하면서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무관심을 받던 소가야라는 작은 국가를 고분과 그에 관한 유물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많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성군 정도의 아주 작은 영토를 가졌음에도 400여년을 지속하면서 독특한 개성을 만들며 성장했다는 모습이 인상 깊다. 강대국들의 위대하고 강인한 역사를 다시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한번쯤은 우리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어도 각자 만의 개성을 가지고 문화를 발전시킨 ‘작은 나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자세한 연구와 우리들의 인식을 통해서 소가야와 같은 작은 국가들을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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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372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3,00260000,38&pageNo=1_1_1_0#
고성박물관 https://www.goseong.go.kr/gsmuseum/index.goseong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http://www.gayatumuli.kr/gayatomb/songhagdong.php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55009&cid=40942&categoryId=33375
고성 송학동고분군(固城 松鶴洞古墳群) 시굴조사 현장설명회자료」(동아대학교박물관,2000)
이영훈- 한국 미의 재발견-고분미술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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