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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의거. 민주주의를 향한 함성

국립3.15민주묘지, 기념관
  • 탐방일시 :2020.08.11 ~ 2020.08.11
  • 조회수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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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 성역로 75 국립 3.15 기념관
  • 키워드
    3.15 부정선거, 민주주의, 김주열 열사, 이승만 독재 정권

3.15부정선거에 분노한 마산 시민들은 의거를 통해 항거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격렬한 시위 가운데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3.15민주묘지는 순국열사들의 혼을 기리는 곳이며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시초를 기억하기 위해 찾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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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15 마산 의거 발생 배경
마산은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인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부산, 목포와 더불어 항구로서 군사, 지리적 전략요충지였던 관계로 일본인들이 다른 곳보다 빨리 들어와 각종 시설물을 주도적으로 건설했던 곳이다. 또한 마산은 바다와 접했기 때문에 외부와 쉽게 교류와 유통이 가능한 항구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지역에 비해서 다양한 사상이 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 민중들은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었다.
1960년대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인 자유당 소속이었던 이승만은 장기 독재 집권을 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1960년대 대선인 5대 대선에서도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선거 한 달 전인 1960년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미국 육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서거 하였다. 이에 대통령은 단일 후보 당선이 확실해졌고, 부통령에 이기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 계획은 더욱 구체화 되어 갔다. 선거 당일에는 계획한 대로 부정선거의 개표와 조작을 행했으며 이미 이승만과 이기붕의 표가 4할이 넘는 투표함이 따로 있었다. 심지어 투표자들을 3인 1조로 조직해서 투표하게 했으며 투표하기 전에 누구를 투표했는지 참관인에게 보여주고 투표함에 넣는 공개투표로 진행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선거 당시 마산에 있는 47개 투표소 중 3군데만 참관인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 중 제1투표소에 민주당 참관인이었던 안맹선은 부정 선거를 참지 못해 투표함을 넘어뜨리게 됐는데, 투표함에서 사전투표용지가 쏟아져 나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당 마산 시당부는 선거 포기 선언을 했고, 그 후 3. 15의거가 시작되었다.

2. 3.15 마산 의거
민주당 마산시당 간부 30명을 시작으로 많은 마산 시민들은 남녀노소 거리로 나와 항거를 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간부들이 연행되고 시위가 종결되나 싶었는데, 마산 시청 개표장 앞에서 재집결해 부정선거 개표가 진행되는 시청 앞에서 격렬한 시위가 전개 되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시위는 계속 되었고 총과 같은 무력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저녁에 마산 시청 앞에서는 시위 인원인 만명이 넘을 정도로 늘어났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서 마구잡이로 총격을 가했다. 9명이 사망했고 8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마산 시민들과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정부와 언론은 사건을 묻어가려고 했지만 진실은 밝혀졌다. 전북 남원 출신이었던 김주열은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 예정이었던 1학년 학생이었다. 3월 15일 마산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게 김주열이 실종된 지 한 달여가 지나고 3.15의거가 폭력적인 시위였다는 것을 알려준 충격적인 사건이 바로 4월 11일 마산시 앞바다에서 그렇게 찾고 있었던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던 일이다. 한 낚시꾼에 의해 인양되었는데,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었다. 이 사건을 계길 마산 제2차 봉기를 시작으로 4월 19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3. 3.15 민주묘지 기념관
3.15민주 묘지와 기념관은 당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을 기리고 자유, 정의, 민주의 숭고한 3.15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 되었다. 기념관은 3.15 의거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당시 사건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데에 아주 효과적인 장소이다. 또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터나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물건들도 같이 전시되어 있어서 3.15의거가 있었을 당시 사회의 분위기도 함께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3.15 부정선거와 의거가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을 알게 해주었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먼저 연도별로 대한민국의 근대사가 소개되어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갈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이승만의 독재가 지속 되고 있었기 때문에 3.15 선거를 앞두고 특히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사상적으로 억압하고 강요했다. 기념관에 전시된 한 학생의 일기장을 통해 학교에서 학생들의 사상을 억압하고 강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아침 첫 시간부터 이 대통령 각하란 제목으로 글짓기를 했다. 나는 일국의 원수인 이 각하를 존경하나 부패한 나라를 잡지 못하고 못된 간신들이 끌고 있다는 것은 학도로서 그냥 있을 수 없고 자유당이 하는 짓은 무조건 싫다.’ 학생의 일기를 읽으면서 필자는 학생의 눈을 통해서 무차별적으로 선거운동을 자행한 자유당의 횡포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3.15는 갑작스럽게 한 번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까지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학생들의 일기장과 학습장

당시 학생들의 일기장과 학습장

상영관 영상의 한 장면

상영관 영상의 한 장면

전시관에는 당시를 재현한 모형들이 많았는데 먼저 투표장소를 재현해 놓은 전시실을 볼 수 있다. 분명 필자가 가보았던 투표장의 모습과 비슷했지만, 그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완장을 차고 경직된 복장과 표정을 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에게서 압박과 감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3.15의거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이 있다. 마산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부정선거에 항거하며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은 비록 모형이었지만 그 당시의 긴박함과 긴장감을 그대로 느낌을 보여준다.
옆에는 당시 숨진 민주 열사들의 얼굴, 이름, 나이가 나열되어 있었다.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앳된 얼굴을 한 나이도 평균이 10대인 청소년들이었다. 대표적으로 김주열의 열사를 들 수 있다. 4.19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 열사의 사망 사건에 대해서 ‘3. 15의 눈’이라는 제목으로 김주열의 책상과 유품, 시신의 모습이 사진을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김주열의 머리에 박힌 최루탄의 크기와 각도, 길이 등을 도래해 보도한 기사가 있었는데 최루탄의 크기는 20cm 였다. 전시글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인 권찬주 여사님의 말씀과 행보였다. 김주열 열사의 죽음 앞에서 권찬주 여사님은 “자식 하나 바쳐서 민주주의를 찾는데 조금만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남은 삼형제 다 바친들 아까울 게 있겠습니까?”하셨다고 한다.
이 외에도 민주화 운동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분들의 일기장, 성적노트, 학습자료 등의 유품을 통해 그분들의 삶을 그려 보았다. 제1전시실 끝에는 3.15의거 당시 발사된 최루탄 여러 개가 전시되어 있었다. 총알보다 훨씬 컸기에 위협감도 너무 컸다. 전쟁에서가 아니라 불과 몇 십년 전 의거에 참여 한 사람들이 맞은 것이다. 가만히 서서 벽에 박힌 최루탄을 보면서도 상상이 가지 않았고 믿기지 않았다. 3.15의거 당시의 흔적은 마산 무학초등학교 담장에도 남아있었다. 3월 15일 밤,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들이 시청을 목표로 무학초등학교 앞 도로에 집결해 시청 앞에서 무학초등학교 방향으로 시위대를 밀어붙이며 시위 군중을 향해 무차별 실탄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경찰의 무자비한 발포가 자행된 다음날, 경찰은 공포탄을 쏘았다고 발뺌 했지만 담장에 있는 총알 자국의 위치를 통해 살상을 목적으로 사람의 가슴과 머리를 겨냥해 발사한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3.15의거를 만화를 통해 알기 쉽게 표현 한 곳이 있었다. 3.15의거가 일어나기 전 학교의 모습을 말풍선에 있는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학생들을 일요일에 학교에 등교를 시켜서 마치 선거 유세장처럼 정치적으로 사상 교육을 시키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교사들은 가정방문을 해서까지 자유당 선거 운동을 일삼았다. 전시관을 다 둘러본 후에 마지막으로 영상관에서 3.15를 기리기 위해 기획한 영상을 관람 할 수 있다. 약 10분짜리 영상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서 3.15의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실제 투표하는 모습, 의거 당시의 모습, 사상자의 모습 등을 통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3.15를 느낄 수 있었다.

3.15 기념탑

3.15 기념탑

3.15 기념관 앞

3.15 기념관 앞

4. 국립 3.15 민주묘지
기념관 옆에는 3,15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립묘지가 있다. 민주 묘지를 가기 위해 높은 계단을 올라가면 양쪽으로 열린 문을 볼 수 있다. 자발적으로 마산 시민들이 힘을 합쳐 민주주의의 첫 문을 열었기 때문에 이 문은 당시 열사들의 용기와 강인한 의지를 보여준다. 마치 당시 의거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바랐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갈망을 나타내주는 듯 했다. 탑 뒤에는 거울처럼 빛나는 금속이 있는데, 햇빛을 받아 주변을 투명하고 반사하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동시에 3.15의거 정신의 후광을 받아 앞으로 발전할 민족의 밝은 미래를 상징한다.
바로 옆에는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3명의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 정의의 상이 있다. 그들은 단결된 행동과 강력하고 정의로운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들을 통해 3.15의 정신을 떠올릴 수 있다. 입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구속에서 탈출하고 해방을 나타내었고 자유, 민주, 정의를 향해 도전함을 상징한다. 민주의 문을 통과하면 정의의 벽을 볼 수 있다. 벽에 당시 의거의 현장을 두드러지게 입체적으로 새겼는데, 정의를 위해 저항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리고 3.15 정신을 계승하고 승화하는 의미로 횃불을 들고 손을 볼 수 있다. 마산지역 정신사에 대대로 이어온 대민족 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상징하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의지를 꺼지지 않는 등불로써 나타냈으며, 민족의 미래를 밝힌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5. 방문후기
3.15의거에 대해 배우고 생각을 하면서 ‘나라가 국민에게 자유와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보았다. 기본적인 것이 보장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시위에 나간 사람들도 다 필자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올바른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시위를 통해 의견을 냈으며, 친구들과 뜻을 같이 함으로써 세상을 바꾸자고 일어났다. 하지만 정말 힘들었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해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전 보다는 밝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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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국립 3,15 민주묘지 기념관 전시글, 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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