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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간직된 도시민의 휴식처, 용두산 공원

용두산 공원
  • 탐방일시 :2020.08.12 ~ 2020.08.12
  • 조회수 :1125
  • 좋아요 :0
  • 위치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2가 용두산길 37-55
  • 키워드
    용두산 공원, 역사, 부산, 근현대사, 휴식처

용두산 공원은 도시민의 휴식처를 넘어서 역사가 깊은 공간이다. 용두산 공원의 내부에는 이순신 동상, 백산 안희제 선생 등 여러 기념물이 존재하며, 용두산 공원 일대에는 초량왜관, 부산 근대 역사관 등 우리가 직접 역사를 맛볼 수 있는 장소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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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량왜관을 통한 용두산 공원의 역사

용두산 공원의 역사를 살펴보면 용두산 공원 일대가 일본의 조계지였으며 거류지였음을 알 수 있다. 용두산 공원의 일대가 일본의 조계지 및 거류지로 사용된 이유는 일대 주변에 초량왜관이 존재한 것과 1876년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
강화도 조약의 제4관의 내용은 조선국 부산 초량항(釜山草梁項)에는 일본공관이 있기에 오랫동안 양국 국민의 통상구역이 되어 있기에 새로 만든 조관(條款)에 따라 무역사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위에 언급된 부산 초량항은 항구가 아니라 용두산 아래 바다와 영도 쪽 바다 사이의 좁은 물목이다. 그 좁은 물목에 일본공관이 있다고 한 이유는 현 용두산 주위의 초량왜관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간 물품을 매매하는 통상이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초량왜관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기에 근대 당시 일본이 이를 침략적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일까?
초량왜관은 조선 시대 때 왜인과 교류를 위해 1678년(숙종 4년) 부산 동구 초량에 설치하였던 용두산 주변의 상업적인 관청이다. 초량왜관은 높이 대략 180cm의 돌담을 쌓았으며 6개의 감시초소를 설치했다. 감시초소를 설치한 이유는 왜인들이 정해진 시간 외에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하기 위함이었다. 즉 초량왜관을 통해 왜와 교류를 하면서 왜인들이 용두산 일대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그 인원은 점점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초량왜관 내부는 한 곳에 모든 관청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관수가, 재판가, 대관가, 의가, 벌금 도가 등 여러 곳에 따로 분포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원활한 업무 분할을 위해서였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일본 사신들과 왜인들에게 내륙 이동 및 한양 상경을 제한하였으며 일본과 조선의 교류가 중단되었다. 따라서 초량왜관에서만 모든 교역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이 때문에 초량왜관은 내부 시설이 점차 넓어지고 규모가 확대되어 면적이 11만 평에 이르는 광활한 부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또한, 그 당시 에도 막부를 새로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쓰시마 번을 통한 대조선 외교 실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하지만 쓰시마 번은 농지 부족으로 농사가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힘들었으며 이를 느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쓰시마 번이 조선과의 외교 및 교역 업무에 이용해야 했다. 그는 조선과 교역하기 위해 조선에 신하를 파견하여 마침내 조선은 일본과의 교역을 수락했다. 이로써 쓰시마 – 부산포를 연결하는 길이 일본 조선 양국 교류의 길이 되었으며, 조선이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고 한일 선박의 왕래가 잦아지는 등 서로 교류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에 양국 간 교류로 인해 초량왜관에 그릇 공장이 설치되었다.
초량왜관의 그릇공장은 1929년 일본학자 아시가와 노리타카에 의해서 ‘부산요’라고 불렸다. ‘부산요’는 조선 정부가 재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조선 기술자를 차출해주면 왜관에서 연봉을 지급하고 일본 스타일의 그릇을 만들어 일본으로 보내게 하였다. 일본은 지속적해서 흙과 조선 도공, 사기장에 대한 요구를 해왔다. 이에 1644년 가마가 왜관 내에 정식으로 설치되었으며 ‘하시쿠라 주스케’라는 일본 사기장이 일본 측 기술자로 파견되었다. 또한 ‘부산요’에 백토 80석, 약토 10석, 황토 50석, 조선 사기장 6명이 요청으로 투입되었으며, 기술자는 불규칙적으로 계속 파견되었다. 이렇게 ‘부산요’의 규모는 점점 커졌으며 초량왜관의 역할도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초량왜관도 결국에는 일제 침략을 피할 수 없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인해 인천, 원산, 부산이 개항되면서 초량왜관이 있던 용두산 일대가 전관 거류지로 설정되었다. 초량왜관이 있었던 곳이 용두산 일대였으며 그 일대는 이전부터 일본의 조계지였기에 일본은 이를 노려 용두산 일대를 전관 거류지로 만들었다. 일본은 용두산 주변의 대략 11만 평 부지에 거류지역소, 영사관, 경찰서, 상업회의소, 금융기관 등 근대적 시설들을 설치하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난 이후, 현재까지 용두산 공원 일대가 ‘해방로’로 불린다. 이처럼 용두산 공원은 한반도와 일본 간 교류의 역사와 일제강점기 아픔의 역사를 함께 담고 있다.

용두산 공원에는 용두산 타워라고 불리는 부산타워, 팔각정, 이순신 장군 동상, 시민의 종 등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있다. 그중 부산타워는 부산 남포동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부산타워를 통해 부산 중구 남포동의 모습뿐만 아니라 일제의 부산 근거지였던 용두산 공원 일대를 가까이 맞이할 수 있다. 용두산 공원의 역사를 잘 알고 부산타워를 방문하면 부산의 풍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용두산 공원 내 시민의 종
그리고 부산시민 10만 명의 기부금 참여로 만들어진 시민의 종은 용두산 공원 중심에 위치되어 있다. 매년 3월 1일과 8월 15일, 1월 1일 정오에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 특히 3월 1일 타종식 행사에서 길놀이, 태극무, 독립만세운동 연극 등을, 광복절 타종식 행사에서도 길놀이, 태극기 그리기와 페이스 페인팅 같은 태극기 물결행사 등 3월 1일 타종식 행사와 유사하게 진행되어 진다. 3월 1일 또는 광복절 타종식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대한독립을 위해 힘쓰신 조상님들을 기리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날을 기억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타워와 팔각정 앞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존재하는데, 이 동상은 전 경상남도 이상용 도지사가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마음으로 건립하였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용두산 공원에 존재하는 이유는 동상 아래 수록된 내용에서 알 수 있다.
동상에 수록된 내용은 부산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처음으로 침략한 곳이었기 때문에 치욕스런 그 날을 기억하고 이순신 장군이 7년 동안 싸우는 동안에 부산 앞바다의 승리가 전쟁에서 가장 컸기에 그것을 자랑하기 위함이 있다고 하였다.
동상 건립문에 언급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부산에 왜적들이 먼저 침공했다는 전쟁의 고난과 부산 앞바다에서 왜적과 투쟁했던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마음을 용두산 공원에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용두산 공원에는 백산 안희제 선생의 흉상이 있는데, 위 동상은 1989년 9월 7일 백산 안희제 동상 건립위원회가 건립하였다. 백산 안희제 동상 건립문 내용에서 독립 운동가로 활동하신 백산 안희제 선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동상 건립문 내용에는, ‘1885년 8월 4일(음력)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난 님은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워 선비의 서슬푸른 의리 정신을 몸에 익혔다. 1905년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구국의 한마음으로 서울로 올라가 보성전문, 양정의숙에서 경제학을 배웠다. 이때 교남 교육회를 만들어 의령을 비롯하여 영남 각지에 학교를 설립, 민족 교육의 씨앗을 뿌렸다. 나아가 1909년에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격동된 서른 살 안쪽 청년 80여 명과 함께 비밀결사 대동 청년단을 조직하였다. 기어코 나라를 빼앗기자 나라 밖으로 떠나 러시아와 중국을 무대로 민족해방운동을 모색하다가 귀국하여 1914년 가을께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창립하고, 장차 백산무역 주식회사로 발돋움케 하였다....<중략>...’ 이 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대한 자주독립을 위해 공부를 하고 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에도 힘썼으며 백산상회 및 백산무역 주식회사 건립을 통해 독립자금을 모았다. 또한, 그는 대동 청년단을 조직해 항일 운동을 진행했으며 백산 선생을 포함한 부산 부에 거주한 한국 자본가들이 기미 육성회를 조직하여 한국 청년들 중 수재를 선발하고 일본 등 외국에 유학시켜 장학금을 전달하였다. 이처럼 백산 안희제 선생은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신 독립 운동가임을 알 수 있다.
부산시가 부산 용두산 공원에 백산 안희제 선생의 흉상을 세운 이유는 동상 건립문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동상 건립문 내용 끝 부분에 ‘일제에 맞선 투쟁에서 한 걸음도 비켜서지 않고, 그 한가운데로 나아가 비타협 절대 독립의 독립전쟁 노선을 굳게 관철해 나간 님의 의리정신, 민족의 협동 단결로 민족 해방을 달성하고 민중의 협동 단결로 민중 경제를 건설해야 한다는 님의 협동 정신, 자력을 중심으로 민족자주독립, 민족자립경제 건설을 이룩하고자 하였던 님의 자력 정신을 이어받아 올곧은 부산정신, 민족정신으로 뻗어 내리게 하고자 이곳에 님의 흉상을 세운다.’ 는 내용이 있다.
위 내용의 뜻은 백산 안희제 선생이 가지고 있는 민족자주정신과 협동 정신을 본받아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 전 시민이 계속 이어나가자는 뜻이다. 필자도 용두산 공원에 안희제 선생의 흉상과 동상 건립문을 보면서 대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투쟁하신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꼈으며 백산 안희제 선생님의 정신을 본받아 자신의 본분에 책임을 다하고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백산 안희제 선생의 흉상을 통해 역사를 다시 생각해보고 이순신 장군과 백산 선생 등 조국수호를 위해 노력하신 위인들을 배우고 기릴 수 있다. 용두산 공원에서 부산의 깊은 역사를 배우고 싶으면 이순신 동상, 백산 안희제 선생의 흉상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용두산 공원의 꽃시계 광장

용두산 공원의 꽃시계 광장

용두산 공원의 꽃시계 광장 2

용두산 공원의 꽃시계 광장 2

용두산 공원 내 시민의 종

용두산 공원 내 시민의 종

3. 용두산 공원 일대 속 역사

용두산 공원 내부뿐만 아니라 용두산 공원 주변에도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40계단, BIFF 거리, 광복동 패션 거리, 백산기념관, 부산 근대역사관, 국제 시장, 미술의 거리, 보수동 책방골목, 자갈치시장, 용두산 문화의 거리, 부산영화 체험 박물관 등이 있다.
그중에서 부산 근대 역사관은 부산의 근대 역사를 자세하고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부산 근대 역사관 건물은 1929년에 지어졌으며,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 건물이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한국인들이 농사를 지내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등 기본적인 삶의 조건인 토지 및 농토를 빼앗는 식민지 수탈기관이다. 즉 부산 근대역사관 건물의 첫 시작은 식민지 수탈기관의 건물이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위 건물은 미국 해외공보처 부산문화원이 되었다. 하지만 부산 시민들의 계속된 반환 요구로 미국 부산 문화원은 철수되었다. 철수된 이 건물은 1999년 대한민국 정부로 반환되었으며 이는 부산시가 인수하였다. 즉 부산 근대 역사관 건물이 일본 혹은 미국의 침략적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의미 있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부산광역시는 시민들에게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리는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 건물을 근대 역사관으로 만들었다. 부산 근대역사관 1층에는 근현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근대자료실 및 영상실이 있으며 2층, 3층에는 전시실이 있다. 2층에는 ‘부산의 근현대 연표’, ‘부산의 근대개항’. ‘일제의 부산 수탈’, ‘근대도시 부산’과 같은 부산역사와 관련된 제1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3층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근현대 한미관계’, 와 같은 근현대 침략 역사에 대한 제2전시실과 ‘부산의 근대거리’ 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존재한다. 기획 전시실은 시즌 별로 전시 주제가 달라지는데, 2020년 10월 4일까지 ‘2020년 근대역사관 특별교류전 ‘카메라 든 헝가리 의사 보조끼 데죠’와 관련된 전시가 계속될 예정이다.
‘2020년 근대역사관 특별교류전 ‘카메라 든 헝가리 의사 보조끼 데죠’와 관련된 전시는 헝가리대사관, 헝가리문화원, 서울 역사박물관과 부산근대역사관이 우호를 증진하고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한 기획 특별 교류전인데, 헝가리 부다페스트 홉 페렌츠 동아시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조끼 데죠’의 대한제국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보조끼 데죠’(Bozóky Dezsô, 1871~1957)라는 인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의관이며 군함을 타고 대한제국으로 들어와 인천, 서울, 거문도, 부산을 차례차례 방문하였다. 그는 방문했던 도시들의 모습을 사진과 글 등 기행문으로 남기면서 당시 대한제국의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위 기획 전시는 인천, 서울, 거문도, 부산 순으로 구성되었으며 그의 기행문을 모아놓은 책, 「동아시아에서의 2년과 근대의 카메라, 대한제국 주요 도시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엽서 그리고 스테레오 전망 사진, 대한제국의 모습을 소개한 외국 잡지 및 신문 등도 전시된다. 위 전시를 통해 외국인이 보았던 대한 제국의 시점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부산 근대역사관을 통해 근현대 침략 역사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거나 근현대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장소이다.

현재 보수동 책방골목

현재 보수동 책방골목

현재 보수동 책방골목 2

현재 보수동 책방골목 2

또한, 보수동 책방골목도 역사가 깊은 장소로 유명하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국제시장 입구 보수동 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에 집결된 책방을 말한다. 광복 이후 현 국제시장이 태평양 전쟁으로 주택가가 철거되어 빈터로 놓여 있을 때 일본인이 남기고 간 책들을 팔았다. 보수동 앞길이 개인 소유가 되자 책 장사가 한둘 씩 늘기 시작했으며 6.25전쟁을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었을 때는 피란민이 가져온 책을 팔았다. 피난 온 학교 교수들과 학생들의 책 구매가 늘어나자 임시건물이 세워지고 그곳에 헌책방 골목이 형성되었다. 지금까지도 책방 골목은 남아있으며 헌 책을 언제든지 구매하고 팔 수 있다. 보수동 책방 골목도 6.25 전쟁의 아픔이 담겨 있는

△ 용두산 타워(부산타워) 및 이순신 동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백산기념관도 존재하는데, 백산기념관은 백산 안희제 선생의 기념관이다. 백산기념관이 있는 장소는 백산 상회를 설립 및 운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였으며, 이 백산상회를 백산 무역주식회사로 확장하여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와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에 활동자금을 지원하였으며, 국내 항일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하였다. 즉 백산기념관이 있는 장소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등 독립을 위한 투자가 이루어진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부산시는 백산기념관을 통해 백산 안희제선생의 애국심을 기리고 후세에 그 뜻을 길이 전하고자 하였다.
앞에 언급된 장소를 통해 우리는 부산의 근현대 역사를 잘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도 40계단, BIFF거리, 광복동 패션 거리, 국제 시장, 미술의 거리, 자갈치시장, 용두산 문화의 거리, 부산영화 체험 박물관 등 여러 가지 볼거리가 존재한다. 광복동 패션거리, 미술의 거리, 부산 영화 체험 박물관을 통해 눈이 즐거워질 수 있으며 국제 시장 및 자갈치 시장을 통해 다양한 먹거리를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자갈치 시장은 앞서 언급했듯이 해조류가 유명하니 꼭 먹어보길 바란다. 이처럼 우리가 용두산 공원 내부와 외부를 잘 활용한다면 부산의 근현대역사를 배우는 부산 여행 코스를 만들 수 있으며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용두산 타워 및 이순신 동상

용두산 타워 및 이순신 동상

4. 용두산 공원의 시작 및 후기

용두산 공원은 처음부터 온전한 공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용두산 공원에는 용두산 신사가 존재했는데, 이 신사는 초량왜관이 건립된 1678년에 건립되었다. 용두산 신사는 당시 초량왜관에 거주하던 왜인들의 종교적 행위를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 때 당시 신사에는 참배를 강조하려는 침략적 의도가 담겨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강제 개항과 일본인들의 진출이 함께 본격화되면서 일본 공사관이 초량왜관에 설치되었으며 용두산 신사에 스사노오 대신, 도요쿠니 대신 등 과거 조선 진출의 침략과 관련된 몇몇의 신들이 연속해서 합사되었다. 또한, 침략과 관련된 신들이 계속 합사되면서 한반도를 침탈한 조선총독부는 용두산 신사를 황신숭배와 관련된 신사로 만들었으며 그 외 다른 곳에 신사를 설치하여 한반도를 야금야금 먹어가기 시작했다. 따라서 용두산 공원 일대에는 왜관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황실 숭배 관련 신사가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조선과 일본 간 교류의 흔적도 보여주지만, 일제강점기의 아픈 흔적도 함께 남아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후 1944년 1월 8일에 용두산 공원으로 고시되었다. 용두산 공원으로 고시된 이후로 2번의 화재로 인한 일부 문화재 훼손 그리고 우남 공원으로 명칭이 바뀌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용두산 공원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용두산 공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용두산 공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부산 시민들 덕분이다. 필자는 이러한 시민의식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윈스턴 처칠이 말한 명언 중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늘 역사에 관한 관심은 필요하다. 또한 ‘역사’라는 존재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하게 서술된 역사를 살펴보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은 계속 생각과 탐구를 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며 역사에 관한 꾸준한 관심과 호기심이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후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끝까지 가지고 살아야 하며 여러 사람과 의견을 주고받는 등 여러 방식으로 역사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하면서 역사를 잊고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일이며 과거의 아픔을 다시 겪지 못하도록 할 힘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꾸준히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역사에 관심 가지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답사는 ‘직접’ 방문하고 배운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이런 점에서 매력적인 답사는 필자를 성장시켜준 요소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나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 답사를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발견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이며 ‘답사’는 우리의 성장을 모색하는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따라서 우리는 호기심과 열정을 안고 답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갈치 시장의 먹장어 구이

자갈치 시장의 먹장어 구이

자갈치 시장의 산 낙지

자갈치 시장의 산 낙지

필자가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자갈치 시장과 국제 시장을 방문한 적 있다. 가족과 함께 자갈치 시장과 국제 시장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위 기억으로 필자는 부산은 맛있는 음식과 즐거움이 넘치는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필자는 계속은 아니지만 몇 번씩 부산을 방문한 적 있다. 항상 부산을 방문하면 차에서 용두산 공원에 있는 부산 타워를 멀리서 본 기억이 난다. 그 당시 필자는 용두산 공원이 역사가 깊은 곳임을 몰랐으며 그저 단순한 놀이터라고 생각했었다.
따라서 이번 답사를 통해 용두산 공원과 그 일대를 처음 방문하면서 용두산 내부에 있는 이순신 동상, 백산 안희제 선생의 흉상, 시민의 종과 용두산 공원 일대의 초량왜관, 부산 근대 역사관 등을 보면서 필자는 용두산 공원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놀이터 혹은 도시민의 휴식처로 알고 있었는데, 필자는 답사를 통해 용두산 공원이 휴식처를 넘어 역사적으로 귀중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어렸을 때와 현재가 달라진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필자가 점점 성장하고 있으며 생각이 꽉 채워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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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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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ntents.history.go.kr/front/ti/print.do?treeId=05017&levelId=ti_017_0420&whereStr=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treeId=0210&levelId=tg_003_0770&ganada=&pageUnit=10(우리 역사넷_국사편찬위원회)
https://tour.busan.go.kr/board/view.busan?boardId=ATTRACTION&menuCd=DOM_000000102001005000&dataSid=272(부산문화관광)
http://yongdusanpark.bisco.or.kr/facil/facil01/facil01_1/index.asp(용두산공원)
전성현(동아대학교)/역사문화학회/지방사와 지방문화/지방사와 지방문화/제20권 제1호2017.05161 - 192 (32 pages)
박화진(부경대학교)/동북아시아문화학회동북아 문화연구동북아 문화연구 제39집2014.06493 - 510 (18 pages) KCI등재
박화진(부경대학교)/동북아시아문화학회동북아 문화연구동북아 문화연구 제60집2019.0967 - 91 (25 pages)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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