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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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미술관까지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리모델링을 통해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된 오르세 역은 당대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역이었으나 이후 활용가치가 떨어져 여러 행사를 치루는 장소로 변해갔다. 건물 활용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었으나 미술관으로의 활용 방안이 채택되었고 현재의 오르세 미술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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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건축을 위해 에펠탑보다 많은 양의 철근을 사용하고 많은 양의 유리를 사용해 천장을 돔 형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열차로 인해 플랫폼의 규격이 맞지 않게 되면서 오르세역은 점차 통근열차의 역으로 그 역할이 제한되었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죄수 및 해외 추방자 수용소로, 1958년 드골 장군의 정계복귀 선언장소로, 1960년은 영화 촬영장소 등으로 선정되며 오르세역은 여러 가지 다양한 행사를 치루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후 건물의 규모와 높이로 인해 건축허가가 나지 않고 보존·활용책을 검토했고 1848년부터 1914년까지의 예술품을 보존·전시하는 현재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된다.
만국박람회
오르세 미술관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국박람회는 때놓을 수 없다. 1851년 5월 1일 영국 런던 수정궁에서 개최된 런던 만국박람회를 시작으로 서양 열강은 앞다투어 만국박람회를 개최 자국의 뛰어난 건축, 과학, 예술, 문화,를 소개했다. 이후 160여 년 동안 만국박람회는 인류가 변화를 이해하고 교육과 혁신, 협력을 촉진했다고 평가된다. 영국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는 이런 만국박람회는 20세기 전 총 4회 개최한다. 1885년 1867년 1889년 1900이다. 특히 1900년대 만국박람회는 많은 부분에서 영국의 런던 만국박람회를 뛰어넘은 만국박람회로 유명하다. 지난 세기를 기념하고 새로운 세기를 향한 발전을 계속하자는 의미에서 개최된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아르누보1) 건축양식으로 유명한 그랑팔레와 프티팔레를 건설하고 오르세 역을 건설한다. 또 파리 대 관람차와 마트료시카 인형, 디젤엔진, 유성영화, 에스컬레이터, 텔레그라폰 등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는 것들도 등장한다. 1889년 에펠탑을 필두로 한 철제 건축물과 1900년 아르누보 양식의 그랑팔레, 프티팔레 최신 기술이 접목된 오르세역으로 영국과의 신경전에서 프랑스는 승기를 가져온다.
과학과 인상주의 그리고 오르세
인상파의 그림
이런 인상파 화가들에게 힘을 실어준 또 하나의 과학기술은 바로 1841년에 등장한 튜브에 든 유화물감이다. 기존의 천연재료에서 물감을 추출하는 방식은 외부에서 작업을 어렵게 했다. 그러나 튜브에 든 화학 물감은 외부 작업을 어려움을 해소했고 화가들이 재료를 챙겨 외부로 나가게 했다. 여기에 다리를 놔준 것이 철도이다. 기차를 이용 화가들은 외부로 이동해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를 그린 것이다. 철도역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것이다.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인 모네가 [생 라자르 역 : 기차의 도착]이 그린 것도 모네에게 기차역이 가지는 의미가 특별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기차역으로 지어진 오르세 역에 전시된 것은 한편으로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에 대한 소감
필자는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조명의 활용과 공간의 활용에 따라 전시의 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오르세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이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 접하던 작품들과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작품들 때문에 전시자의 기량과 관계없이 작품만으로 좋은 전시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를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이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오르세의 중앙홀
글을 마치며
오르세 미술관은 ‘근대’의 모든 키워드와 함께한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을 통한 철강과 유리, 이동수단으로서 기차, 근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튜브형태의 유화물감과 인상주의 그리고 만국박람회. 근대 각국의 선진문물과 자국을 홍보하는 ‘만국박람회’를 개최했고, 많은 관람객이 이동수단인 ‘기차’를 통해 파리로 관광을 왔기에 새로운 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관람객들에게 프랑스 공업의 생산력을 선보이기 위해 역은 다량의 철강과 유리를 사용했고 오르세 역은 그 웅장한 모습을 선보였다. 이후 화가들은 튜브형태의 유화물감이 등장하고 프랑스 전역에 깔린 철도와 기차를 이용해 여러 장소로 이동해 그림을 그렸고 이 시기 그림들은 이후 인상주의라는 화풍으로 불린다. 이처럼 오르세 미술관 한 장소를 통해 근대라는 키워드를 설명할 수 있는 장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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