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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미술관까지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 탐방일시 :2020.01.07 ~ 2020.01.07
  • 조회수 :1074
  • 좋아요 :0
  • 위치
    1 Rue de la Légion d'Honneur, 75007 Paris, 프랑스
  • 키워드
    근대, 만국박람회, 오르세역, 인상주의, 기차역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리모델링을 통해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된 오르세 역은 당대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역이었으나 이후 활용가치가 떨어져 여러 행사를 치루는 장소로 변해갔다. 건물 활용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었으나 미술관으로의 활용 방안이 채택되었고 현재의 오르세 미술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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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1898년 봄 옛 감사원의 잔해가 남아 있던 토지에 공사를 시작 1900년 오르세 역은 그 웅장한 모습을 선보인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개최로 인해 5000만명이 박람회장을 방문할 것이라 예상되었기에 교통편을 확충할 필요성이 있었다. 오르세 역은 당시 최신기술이었던 엘리베이터와 경사로를 통해 다른 역보다 편리하게 짐을 운반할 수 있는 철도역이었다. 또 고급 호텔의 역할도 했기에 관람객들은 기차시간을 맞추기에 보다 편리하게 건설되었다.

건축을 위해 에펠탑보다 많은 양의 철근을 사용하고 많은 양의 유리를 사용해 천장을 돔 형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열차로 인해 플랫폼의 규격이 맞지 않게 되면서 오르세역은 점차 통근열차의 역으로 그 역할이 제한되었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죄수 및 해외 추방자 수용소로, 1958년 드골 장군의 정계복귀 선언장소로, 1960년은 영화 촬영장소 등으로 선정되며 오르세역은 여러 가지 다양한 행사를 치루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후 건물의 규모와 높이로 인해 건축허가가 나지 않고 보존·활용책을 검토했고 1848년부터 1914년까지의 예술품을 보존·전시하는 현재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된다.

만국박람회

오르세 미술관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국박람회는 때놓을 수 없다. 1851년 5월 1일 영국 런던 수정궁에서 개최된 런던 만국박람회를 시작으로 서양 열강은 앞다투어 만국박람회를 개최 자국의 뛰어난 건축, 과학, 예술, 문화,를 소개했다. 이후 160여 년 동안 만국박람회는 인류가 변화를 이해하고 교육과 혁신, 협력을 촉진했다고 평가된다. 영국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는 이런 만국박람회는 20세기 전 총 4회 개최한다. 1885년 1867년 1889년 1900이다. 특히 1900년대 만국박람회는 많은 부분에서 영국의 런던 만국박람회를 뛰어넘은 만국박람회로 유명하다. 지난 세기를 기념하고 새로운 세기를 향한 발전을 계속하자는 의미에서 개최된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아르누보1) 건축양식으로 유명한 그랑팔레와 프티팔레를 건설하고 오르세 역을 건설한다. 또 파리 대 관람차와 마트료시카 인형, 디젤엔진, 유성영화, 에스컬레이터, 텔레그라폰 등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는 것들도 등장한다. 1889년 에펠탑을 필두로 한 철제 건축물과 1900년 아르누보 양식의 그랑팔레, 프티팔레 최신 기술이 접목된 오르세역으로 영국과의 신경전에서 프랑스는 승기를 가져온다.

과학과 인상주의 그리고 오르세

인상파의 그림

인상파의 그림

과학 기술의 발달은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본래 서양 미술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여준 것에 그 중심을 뒀다. 주름진 옷이나 물결의 움직임 등 섬세한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사진기의 등장으로 미술계는 큰 충격에 빠진다. 어떠한 회화보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이 등장한 것이다. 그렇기에 미술계에서는 새로운 개념을 생각한다. 색채라는 것은 결국 빛에서 파생되는 것이기에 색채보다 빛에 중심을 둔 사람들 바로 ‘인상파’가 등장하는 것이다. 색채에 중심을 두지 않고 빛에 중심을 둔 인상파는 소재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소재를 선택한다. 예를 들면 씨를 뿌리는 농민이나, 일하는 노동자들, 피곤에 지친 채 여행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것이다.

이런 인상파 화가들에게 힘을 실어준 또 하나의 과학기술은 바로 1841년에 등장한 튜브에 든 유화물감이다. 기존의 천연재료에서 물감을 추출하는 방식은 외부에서 작업을 어렵게 했다. 그러나 튜브에 든 화학 물감은 외부 작업을 어려움을 해소했고 화가들이 재료를 챙겨 외부로 나가게 했다. 여기에 다리를 놔준 것이 철도이다. 기차를 이용 화가들은 외부로 이동해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를 그린 것이다. 철도역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것이다.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인 모네가 [생 라자르 역 : 기차의 도착]이 그린 것도 모네에게 기차역이 가지는 의미가 특별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기차역으로 지어진 오르세 역에 전시된 것은 한편으로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에 대한 소감

필자는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조명의 활용과 공간의 활용에 따라 전시의 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오르세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이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 접하던 작품들과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작품들 때문에 전시자의 기량과 관계없이 작품만으로 좋은 전시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를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이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오르세 미술관의 전시는 조명의 활용이 굉장하다. 오르세 역으로 건설되었을 때 많은 양의 유리를 사용 많은 태양광을 흡수하도록 건설되었으나, 태양광은 미술품에 변색을 가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오르세 미술관은 미술품이 태양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피하면서 태양광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중앙 홀에는 천장의 유리로 인해 많은 양의 태양광이 쏟아지는데, 중앙 홀에는 석재 조각품 중심으로 전시를 함으로써 태양광을 활용함과 동시에 태양광에서 오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유화 전시는 태양광이 닫지 않는 곳에 전시했으며, 중앙홀에는 독립되고 폐쇄된 공간을 조성해 전시했다. 이런 공간활용은 두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우선 앞서 언급한 태양광이 미술품을 비추지 않아 변색을 방지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폐쇄된 공간에 관람객이 진입했을 때 외부 소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의 경우 파리의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너무나도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예술 전공 국제학생증을 보유한 학생에게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오르세 미술관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폐쇄된 공간에 미술품을 전시함으로써 이런 소음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오르세의 중앙홀

오르세의 중앙홀

글을 마치며

오르세 미술관은 ‘근대’의 모든 키워드와 함께한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을 통한 철강과 유리, 이동수단으로서 기차, 근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튜브형태의 유화물감과 인상주의 그리고 만국박람회. 근대 각국의 선진문물과 자국을 홍보하는 ‘만국박람회’를 개최했고, 많은 관람객이 이동수단인 ‘기차’를 통해 파리로 관광을 왔기에 새로운 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관람객들에게 프랑스 공업의 생산력을 선보이기 위해 역은 다량의 철강과 유리를 사용했고 오르세 역은 그 웅장한 모습을 선보였다. 이후 화가들은 튜브형태의 유화물감이 등장하고 프랑스 전역에 깔린 철도와 기차를 이용해 여러 장소로 이동해 그림을 그렸고 이 시기 그림들은 이후 인상주의라는 화풍으로 불린다. 이처럼 오르세 미술관 한 장소를 통해 근대라는 키워드를 설명할 수 있는 장소라 생각된다.

위치보기

1)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Art nouveau)는 1890년 ~1910년 사이 유행한 건축 양식이다. 덩국식물 모티브와 구불구불하고 유연한 선으로 장식된 철제 난간, 섬세한 꽃무늬의 반복적인 패턴, 긴 실루엣의 여인 이미지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런 양식 뿐 아니라 아르누보는 세기 전환기의 시대적 요구와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일종의 예술운동이었다.
참고문헌
1. Annie Dufour, 박재연 역『오르세미술관 카탈로그』(오르세미술관, 12013)
2. 온라인 전시회 「1900-2013 철도역에서 오르세미술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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