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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제국의 군사지구 재현을 통한 절대왕정의 영광과 위기

앵발리드 파리 군사박물관
  • 탐방일시 :2020.01.05 ~ 2020.01.05
  • 조회수 :562
  • 좋아요 :0
  • 위치
    129 Rue de Grenelle, 75007 Paris, 프랑스
  • 키워드
    군사, 나폴레옹, 야경, 절대왕정

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잘 알려진 파리의 앵발리드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영광부터 위기까지를 모두 담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군사박물관은 프랑스의 민족성을 몸소 보여주며 프랑스 역사의 단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첨부파일

상세내용보기

"나는 내가 깊이 사랑한 프랑스 국민에게 둘러싸여 센 강에서 쉴 수 있기를 바란다“

앵발리드 전경

앵발리드 전경

나폴레옹의 유언이 새겨져있으며, 그의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곳. 앵발리드는 프랑스 제국의 화려했던 영광과 위기의 흔적이 함께 공존하는 장소이다.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다리라 불리는 알렉산드르 3세 다리를 건너 센강 남쪽으로 향하면, 앵발리드는 드넓게 펼쳐진 잔디 광장을 앞에 두고 황금 돔 성당을 중심으로 우뚝 서 있다. 관람객들에게 앵발리드는 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앵발리드는 군사입체모형박물관, 해방훈장박물관, 군사박물관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념물들이 집합되어있는 파리 최대 종합전시장이다. 하지만 앵발리드의 공간은 단순히 기념물과 박물관들이 밀집되어있는 집합체만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프랑스 제국의 오랜 역사의 단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앵발리드란 상이군인 혹은 부상당한 군인을 뜻하는 말로서 루이 14세 치세인 1670년에 왕국을 위해 부상당한 부상병과 노쇠한 퇴역군인들의 안식처로 건립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현재까지도 요양소로서 당시의 기능 수행하고 있으나, 앞서 말했듯 여러 박물관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앵발리드는 중앙에 위치한 황금 돔을 중심으로 동쪽, 서쪽, 북쪽으로 구분된다. 이번 답사에서는 북쪽구역에 위치한 나폴레옹의 유해가 위치한 화려한 황금 돔과 군사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첫 번째로 향한 곳은 황금 돔이라고 불리는 궁정교회이다. 이곳은 1679년부터 쥘아르두앵-망사르의 설계를 통해 바로크 건축양식을 토대로 107미터 높이의 황금장식 돔과 함께 건설되었다. 궁정교회는 화려한 건축물로서 앵발리드의 기념비적인 상징물이며, 프랑스 바로크 양식 건축물의 대표 사례가 되었다. 건축물의 모습 역시 상징적이지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가 1821년 유배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사망한 후 그의 유해가 1840년 궁정교회 아래에 이장하여 적갈색 관에 안치되면서 프랑스 제국의 영광을 표식하는 상징물로 되새김 되었다. 내부에 들어서면 교회의 중앙 천장에는 아름다운 천장화가 구성되어 있었고, 아래에는 나폴레옹 황제의 묘소가 놓여 있었다. 관 주변으로는 대리석 제단과 나폴레옹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는데, 나폴레옹의 묘소와 어우러져있는 기념물들의 전체적인 호흡들은 가히 웅장하였으며 프랑스 국가주의의 위엄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치된 궁정교회를 뒤로하고 향한 곳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진 군사박물관이었다. 군사박물관은 군대와 전쟁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전시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군인들이 사용했던 무기, 군복, 훈장 등을 전시하였으며, 군대와 관련이 있었던 영웅들의 유물과 무덤 역시도 전시되어 있었다. 군사박물관은 프랑스 제국의 영광을 몸소 보여주는데 그렇다면 군사박물관의 유물들이 제국의 영광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프랑스 절대왕정의 위엄은 중세시대의 정치체제와 달리 상비군과 관료시스템의 정비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프랑스의 절대왕정의 권위와 권한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이유는 이전 유럽의 봉건제는 지방 제후, 즉 영주들이 경제 및 정치부분에서 강력한 실권을 가지고 지역의 실질적인 정치자로서 사회제제에서 존재하였다. 따라서 왕의 권위는 지방 제후들의 존재로 다소 약할 수 밖에 없었는데, 상비군의 등장으로 모습이 달라지게된다. 봉건제의 체제는 지역적인 분권이 나타났고, 제후 밑의 기사들은 신속한 동원과 출병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하였다. 상비군 시스템으로 신속한 동원이 이루어져 더불어 제후들의 쉽게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 체제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절대왕정의 권위를 뒷받침하여 희생했던 병사들을 추모하며 그들을 기념했던 공간이 바로 군사박물관이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

전시방식들은 유물을 나열하는 기본적인 기법 방식을 수용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중앙의 넓은 정원에는 프랑스 군대가 사용하였던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대포들은 주로 프랑스 혁명기에 수집한 것으로 1871년 앵발리드에 설치되었던 포병박물관에 있던 유물이었다고 한다.1) 전시실로 들어서면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는데, 다음 이동한 곳은 중세 전시실이었다. 중세 전시실은 13~17세기의 갑옷, 창과 칼, 투구 등의 무기들을 전시하였다. 또한 동시대의 무기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다른 점들을 비교할 수 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봉건체제의 군대 모습에서 절대왕정체제의 군대 모습으로 변화하는 면모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근대 전시실은 루이 14세 시대부터 나폴레옹 3세의 통치 시기까지의 군대사를 다루었는데 왕조에 따라 전시실이 구분되어 있었다. 전시의 특별한 점은 각 시기별 프랑스 군대의 특징을 구성해두었다. 한정된 시간으로 현대 전시실은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살펴볼 수 없었지만, 제1·2차 세계대전과 무기의 현대화된 모습을 유물과 영상자료로 감상할 수 있었다. 하나하나의 전시실을 살펴보면서 17세기부터 이루어진 절대왕정부터 20세기의 1·2차 세계대전까지 무기의 변화들과 군대사, 전쟁사 과정들을 통해 역사에 의해 변천하며 반영된 전시 형태들이 프랑스의 영광과 위기를 함께 살펴볼 수 있었던 점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앵발리드를 프랑스제국의 군사지구 재현을 통한 절대왕정의 영광과 위기라고 평가하고 싶다. 필자가 감상한 곳은 궁정교회와 전시실 일부분 이지만 이를 통해 느꼈던 바는 제국의 영광을 도모한 곳으로 프랑스 국민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건설한 종합 정시장이라 판단되었다. 프랑스 국민들이 가장 기념하고자하는 나폴레옹의 상징과 더불어 당시의 모습들을 재현한 공간들은 그들의 민족성을 강화를 자극시키는 곳으로 상기되며, 역사적 단면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가고자 한 장치로 생각된다.

위치보기

1) 통합유럽연구회,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는 유럽사」, 책과함께(2018), 175p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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