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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의 유일한 총림, 선암사
순천 선암사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사찰을 선암사(仙巖寺)라 하며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터에 가람이 배치되어 있다. 선암사는 여느 사찰과 다를 바가 없지만 우리나라 사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계종이 아닌 태고종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또한 선암사의 경내에는 보물 제395호 선암사 삼층석탑과 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가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이러한 선암사는 2009년 12월에 사적 제 50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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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세운 비로암(毘盧庵)을 통일신라 도선(道詵)이 재건한 것이라 한다. 이후 선암사는 고려 선종 9년(1092) 의천(義天)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사찰이 거의 불타버리다시피 한 선암사는 이후 부분적으로 조금씩 중수되다가 숙종 24년(1698) 호암 약휴(護巖 若休)에 의해 크게 중건되었다. 영조 35년(1759) 봄 또 다시 화재를 당해 계특대사가 중창 불사를 단행했는데, 화재 발생이 산강수약(山强水弱)한 조계산 선암사의 지세 때문이라고 해석해 화재 예방을 위해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으로 하고 절 이름을 해천사(海川寺)로 바꾸었다.
그런데도 순조 23년(1823) 다시 화재가 일어나자 해붕(海鵬), 눌암(訥庵) 스님이 주도해 대대적으로 중창 불사를 했다. 그 후 옛 모습을 되찾아 산과 절 이름을 다시 조계산과 선암사로 되돌렸다. 또한 선암사에서는 조선시대 말기 호남을 대표하는 함명태선(涵溟太先), 경붕익운(景鵬益運), 경운원기(擎雲元奇), 금봉기림(錦峯基林) 등의 4대 강백(講伯)을 배출하였다. 이후 1919년 본말사법(本末寺法)에 의하여 전국 사찰을 30본산으로 지정하였을 때 선암사는 전남의 4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어 순천, 여수, 광주 지역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현재 선암사는 태고종(太古宗) 유일의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써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는 종합수도도량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바로 선암사는 우리나라의 총 6개의 총림 중 태고종 유일의 태고총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고종이란 무엇일까? 불교의 한 종파인 태고종은 고려 말 한국불교를 원융회통의 정신으로 통일한 태고 보우국사의 통불교(通佛敎) 전통을 계승한 정통 종단이다. 해방 후 50년대부터 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불교는 비구(比丘)-대처(帶妻) 간의 갈등으로 분규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법원의 판결에 의해 대처파가 패소하면서 대처승들이 강제로 종단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결국 대처파는 1970년 1월 박대륜을 종정(宗正)으로 하고 고려 말 불교를 통합한 태고 보우국사의 이름을 딴 ‘태고종’을 정식 선포하였다. 태고종은 ‘대중교화’를 이념으로 머리를 기를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고 불교 교육기관과 언론 출판기관, 어린이 교육 및 복지기관, 사회복지기관 등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선암사는 한국 불교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으로 그 법맥을 이어가고 있다.
선암사로 이르기까지의 진입로에는 장대한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승탑 밭, 붉은 색의 장승 한 쌍을 볼 수 있어 눈이 즐거웠다. 장승을 지나 계속 큰 길로 걸어 올라가면 왼편의 계곡에서 작은 무지개다리와 큰 무지개다리를 볼 수 있다. 두 무지개다리 중 큰 무지개다리가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승선교(昇仙橋)이다. 이는 숙종 24년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을 보려고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뜻을 이룰 수 없자 자살하려 하자 한 여인 나타나 대사를 구했고 대사는 이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우고 절 입구에 승선교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를 지나서 그대로 올라가면 일주문(一柱門)의 누문인 강선루(降仙樓)가 보인다.
승선교의 겨울 전경
강선루의 상단
일주문은 강선루를 지나 처음으로 들어서는 문으로 실질적인 사찰의 경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주문 현판에는 ‘조계산선암사(曹溪山仙巖寺)’라는 산명과 사찰명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선암사의 일주문은 여타 사찰처럼 규모가 크지 않아 여느 집의 대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선암사에는 여타 절처럼 사천왕문(四天王門)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주기 때문에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오르막 계단 위에 범종루(梵鐘樓)가 있고 범종루 아래로 누하진입(樓下進入)을 하면 만세루(萬歲樓)를 볼 수 있다. 전라도 지방 사찰에서 이러한 누하진입은 보기 드문 방식이다.
일주문의 상단
범종루 전경
이를 지나면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으로 일주문과 범종루를 잇고 중심축에 위치한 대웅전(大雄殿)을 볼 수 있다. 선암사의 대웅전은 단아하면서도 정중함이 절로 우러나오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사찰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대웅전은 선암사의 흥망과 함께 하여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소실된 후 현종 원년(1660) 3대사가 주축이 되어 중수하였으나 1759년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1760년 상월, 서악 등에 의하여 다시 중건되었다. 그 후 1823년의 화재로 대웅전이 다시 타자 1824년 현재의 대웅전 건물을 중건하였다. 한편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동·서의 삼층석탑이 눈에 띄는데 이는 외관상 크기와 양식이 비슷하며 보물 제395호로 지정된 것이다. 대웅전뿐만 아니라 선암사 경내에는 산신각(山神閣), 팔상전(捌相殿), 지장전(地藏殿), 원통전(圓通殿) 등 다양한 전각을 볼 수 있다.
대웅전
대웅전과 삼층석탑 중 1기
이러한 선암사의 가람 배치는 매우 독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산사는 그 위치와 건물구조에 따라 강진 무위사처럼 소박한 가람의 배치, 부안 내소사처럼 규모를 갖춘 화려한 절, 구례 화엄사처럼 궁궐 같은 장엄한 가람의 배치, 영주 부석사처럼 장대한 파노라마의 전망을 가진 가람의 배치 등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선암사 가람 배치 안내도
그러나 선암사는 이도저도 아니고 크고 작은 다양한 크기의 당우들이 길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절이었다.
선암사는 역사가 깊은 절인 만큼 주위의 눈길이 닿는 곳 대부분이 문화재였다. 그리고 필자는 평소 성보박물관이란 단순히 유물을 관람할 수 있고 이를 보존·관리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해당 사찰만의 특색을 만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보박물관의 소장 유물들을 유심히 관람하는 편이다. 하지만 선암사의 성보박물관은 장기 수리로 인해 불화, 조각, 의식구, 기타 성보를 비롯한 소장 유물들 관람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만약 선암사를 다시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성보박물관의 소장 유물들을 관람하고 싶다.
비록 선암사의 성보박물관을 비롯해 바다, 즉 해양 인문학적 유물들을 만나볼 수는 없어 아쉬웠지만 선암사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사찰임은 분명했다. 특히 선암사를 둘러보면서 길이 막힌 곳이 없고 사방으로 열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암사를 처음 방문한 입장에서 필자는 어떻게, 어디로 움직여야할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방으로 열려있다는 것은 즉, 의도된 동선으로 관람하는 것이 아닌 발걸음이 가는 대로 둘러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더 끌리는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어쩌면 불규칙함 속에 있는 전각과 이를 메워주는 나무에서 조화로움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만일 우리나라 고유의 산사를 느끼고 싶다면 순천 선암사 방문을 추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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