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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바다가 기억하는 그날의 현장,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남해 관음포는 500년 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들이 퇴각하는 일본군을 격멸시켰고 역사적인 격전지이자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으로 안치한 곳이자, 이를 기념하기 위한 유허비와 노량해전기념관도 같이 있다. 이런 역사적인 현장과는 더불어 공원에서는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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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이다. 우리 고장의 바다, 남해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필자의 고향인 창원에서는 차로 몇 분만 나가면 바로 은빛으로 빛나는 바다를 볼 수 있다.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소금기를 가득 먹은 짠 내 나는 바다의 향기로 온 신경을 덮는다. 바다를 가까이에 볼 수 있는 것은 자연이 준 하나의 축복과 같다. 또 바다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드넓고 푸르른 바다는 말이 없지만, 역사의 시작과 함께 이 땅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을 보았고, 오늘날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거대한 흐름에 맞춰 흐를 뿐이다. 이처럼 바다는 직접 말해주지 않지만, 이야기해준다. 그날의 기억을 말이다. 이제 고개를 돌려 본격적인 남해안으로 떠나본다. 부산에서 차로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남 서남부의 대표적인 해양도시인 남해군이다. 조금만 더 바다 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작은 포구가 하나 보인다. 바로 남해군의 ‘관음포’라는 곳이다. 관음포에서 바라본 바다 역시 이전에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했다. 관음포의 바다를 보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바다의 소리를 들어 보았다.
관음포의 사전적인 설명으로는 남해군 고현면 북쪽에 위치한 바닷가 포구이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 말기부터 시작한다. 고려 말에는 끊임없는 왜구의 침입으로 남해안 근처의 백성은 고통을 받고 있었고, 고려 조정에서도 이로 인해 조세를 거둘 수 없어지자 국가 재정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때 나타난 무장 중 하나인 정지 고려 말 최영과 이성계와 같이 왜구가 한반도에 침입하자 왜구 토벌에서 큰 공을 세운 명장이다.
장군이 이곳 관음포 앞바다에서 침입한 왜구를 크게 섬멸시켰다 관음포 대첩이라고도 하며, 최영장군의 홍산대첩, 나세장군의 진포대첩, 이성계의 황산대첩과 함께 고려말 왜구를 물리친 4대 대첩으로 불린다,
.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서는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이 지휘한 노량해전에서 물러가는 왜구를 마지막으로 크게 물리친 격전지이다. 노량해전 당시 이순신은 유탄에 맞아 결국 장렬히 전사하게 되었고, 이후 후대 사람들이 이곳을 이순신이 순국한 곳이라고 하여 ‘이락파(李落波)라고 부르고 그를 추모하게 되었다.
첨망대에서 본 관음포
이충무공유허비각의 모습
관음포의 또 다른 이름인 이락파(李落波)라는 말처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맨 처음 안치한 곳이 바로 관음포이다. 그래서 관음포에서 들어가는 입구 앞에는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유언이었던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전급방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 전쟁이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 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유언으로 알려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라고 알고 있는 말이다.
라는 비석이 노량해전의 요약물과 함께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야 옆에 늘어진 나무 사이에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이충무공 유허비와 함께 보호각도 마련되어 있다. 전몰유허비각에는 ‘대성운해(大星殞海)라고 쓰인 글자가 보였다. 그 글자 뜻대로 “큰 별이 바다에서 지다” 다시 말해 이순신 장군의 장렬한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을 전하는 것 같았다. 이 전몰유허비각을 뒤로 한 채 굽이 구비한 산길을 지나가서 보면 남해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보인다. 첨망대라는 이름을 가진 이 전망대는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들이 싸웠던 노량해전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광양만이 보이는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이 보이고, 각종 공장의 기계 소리도 들리고 있는 산업의 현장밖에 보이지 않지만, 당시 전투의 해전도와 함께 전망대의 풍경을 보고 상상하고 있으면, 바다는 조용했지만, 당시 치열했던 전장의 모습들, 조선과 명의 수군들 그리고 달아나는 일본군의 모습들까지, 그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전투에 임했던 이순신 장군의 감정들이 관음포 앞바다에 녹아서 잔잔히 파도치는 것 같았다. 한반도 남해안에는 많은 조선 수군의 해전들이 있었지만, 마지막 전적지인 관음포에서만 느껴지는 감정인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쁨과 위대한 영웅을 잃은 슬픔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왼쪽으로 돌면 큰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노량해전 기념관이었다. 또 그 너머에는 아주 큰 공원을 볼 수 있었다. 노량해전 기념관은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전망대처럼 관음포 앞바다를 볼 수 있었다. 기념관에는 주로 임진왜란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전쟁의 대표적인 해전들과 당시 사용했던 전쟁 무기들을 전시하고 있었던 곳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동인과 서인의 당파 싸움으로 인해 전쟁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던 당시 조선 조정의 상황에서부터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 일본의 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인물로서 혼란한 시대를 통일하고, 눈을 돌려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가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했던 전쟁 준비와 이후 일어난 임진왜란의 개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도록 글과 그림으로 설명해 놓았다. 또 전쟁에서 당시 사용했었던 무기류들도 일부 소개해놓았다. 조선군과 명나라 수군이 사용했던 활과 칼, 총통과 일본군이 주로 사용했던 조총들을 볼 수 있었다. 이때까지 필자는 조총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지만, 이곳에서 직접 보면서 당시의 기술이라고는 전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한 나무의 모습과 정교하게 연결되어 철제 부품들이 아주 인상 깊었다. 조총은 원래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서 일본에 전해졌고, 전국시대 전국시대 : 센고쿠 시대라고 하며,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의 일본의 사회적, 정치적 변동이 일어났던 내란의 시기이다.
통일에 큰 활약을 했고, 이는 그대로 임진왜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런 모습은 임진왜란이 단순히 지역전이 아닌 상당한 부분이 국제전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처음 본 조총의 위력을 확인한 조선군이 느꼈을 공포감을 어땠는지 실감이 간다. 뿐만 아니라 명나라 군대가 사용했던 무기류나 다양한 조선군의 활도 기념관에서는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박물관인 진주국립박물관에서 보던 유물들이 그대로 이 기념관에서도 전시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복제품이 아닐까 싶었지만, 대부분이 발굴과 기증을 통해 전시된 유물이었다. 최근에 갔던 기념관 규모의 전시관들을 대부분 그림과 사진 위주로 그리고 전시 유물 역시 주로 복원품을 전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곳 노량해전 기념관은 규모는 분명 작은 크기의 전시관이었지만, 그래도 있을 것들은 잘 있는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량해전 기념관 계단을 통해 내려가 보면 조선의 문무 관리들의 의복에 대해 전시를 해놓았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군인들이 입는 전투복과 공무원들이 입는 양복과 같은 역할일 것이다. 조선 시대의 사람들 역시 일상복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복과 예복, 전쟁을 위한 전투복, 지방 출장을 위해 입었던 복장까지 다양한 의복들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이런 옷들이 문무 관리 등 상위계층에만 집중되어 전시된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당시 백성들이 입었던 옷들도 같이 보여줄 수 있었더라면, 좀 더 다양한 조선의 의복을 볼 수 있고, 당시 양반과 일반 백성의 의복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기념관 안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3D 영상을 볼 수 있는 영상관도 함께 있었다. 어른부터 어린 아이까지 노량해전과 관련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장치들을 기념관은 마련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볼거리가 많았던 기념관이라고 생각한다.
노량해전 기념관
기념관 근처 공원의 모습
또 기념관 안에는 기본적으로 충분히 많은 전시물과 전시자료가 있어 노량해전이 일어났던 전적지로서 역할을 쉽게 알 수 있는 곳이었다. 기념관 밖을 나오면 포의 해변 근처에는 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에서도 기념관과 첨망대와 마찬가지로 넓은 바다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기념 공원에는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있었다. 모든 작품이 임진왜란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작품들이었다. 공원 중앙에는 이순신 장군의 커다란 동상과 거대한 칼의 모습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벽 주위 당시 노량해전을 현장을 그림으로 그린 벽화들로 풍성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임진왜란을 주제로 하여 하나의 현대적인 예술을 보는 것처럼 잘 꾸며져 있다. 특히 필자가 인상 깊었던 것은 벽화의 그림이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그려진 노량해전의 현장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몰려오는 파도와 함께 감각적으로 잘 나타내었고, 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실감이 났다. 한마디로 표현해본다면 예술과 역사의 콜라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남해 관음포라는 공간을 종합해보자면 임진왜란에서 노량해전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현장의 하나로서 전투의 모습을 관음포의 바다를 통해 당시의 사건에 대해서 한눈에 직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 또 오늘날에는 그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현대적인 예술을 통해 승화시켜 놓은 곳, 그리고 우리 고장에서 이렇게 잘 정비된 기념관과 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놀랍기도 했다. 글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다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관음포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자는 바다가 가지고 있었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이 남해를 보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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