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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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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 강화조약이 체결된 곳, 춘범루
춘범루(슌판로)춘범루(春汎樓) 회담장은 ‘슌판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1895년 청일 강화회담이 열린 곳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8개월 20일 만에 드디어 청일 전쟁의 끝매듭을 짓게 된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장소다. 춘범루는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때의 폭격으로 모두 전소되어, 현재의 춘범루는 종전 이후 재건된 것이다. 춘범루는 지상 4층 규모의 고급 호텔 겸 복어요릿집으로 이용되고 있다. 비록 당시의 모습을 잃고 호텔, 요릿집으로 탈바꿈 했지만 대신 바로 옆에 지어진 일청강화기념관은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건물로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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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범루에서 맺어진 청·일 강화조약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를 둘러보다 보면 눈에 띄는 역사적 담판의 장소가 있다. 바로 춘범루(春汎樓) 회담장이다.(춘범루는 ‘슌판로’라고 하기도 한다) 1895년 3월 20일부터 개최된 청·일강화 회담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陸奥宗光), 청나라 북양대신 리홍장을 비롯한 양국의 대표 11명이 참석했다. 그리고 1895년 4월 17일, 1894년 동학혁명 처리 문제로 맞붙은 양국은 결국 1895년 4월 17일에 춘범루에서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춘범루는 전쟁이 발발하고 8개월 20일 만에 드디어 청일 전쟁의 끝매듭을 짓게 된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장소다. 이 정도 사실은 역사시간에 청일강화조약에 대해 배우게 된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이다.
춘범루(슌판로) 회담장
시모노세키 회담 당시의 현장 재현 사진
복어와 춘범루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를 둘러보다 보면 가장 독특하게 눈에 띄는 것이 ‘복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니, 시도 때도 없이 다양한 복어들이 시모노세키를 찾은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는 것이 ‘참 재밌는 도시’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시모노세키의 복어 캐릭터가 있는 맨홀
사실 복어 요리는 일본에서 역사에서 오랫동안 금지된 적이 있었던 음식이다. 여담이지만 “복어는 먹고 싶고 목숨은 아깝고”라는 복어에 관련한 속담이 있다. 이 속담 또한 복어가 금지되었던 시절에 나온 속담으로, ‘복어’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복어가 금지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조선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무렵에 꽤 많은 수의 일본 병사들이 복어의 독에 숨을 거두었는데 이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는 복어 요리는 금지하게 된다. 도쿠가와 막부는 복어를 먹은 병사가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하면 그 가문 전체를 처단하는 법을 제정하게도 했다. 이 법의 의미는 복어를 먹고 죽어 나가는 병사를 줄이고자 하는 휴머니즘 차원의 의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병사들의 목숨은 오직 통치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하찮은 복어 따위에 바쳐 죽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이 내막에 도사리고 있는 진짜 이유였던 것이다.
춘범루의 풍경을 담은 그림
다시 돌아와서, 조슈항의 고위 관리가 시모노세키에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 대접하기 위해 그를 춘범루로 모셔오는데 그 때, 복어 요리를 대접하였다. 미식가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처음 맛 본 복어요리에 반해 이후, 복어 요리를 해금시켰다고 일본의 정사(正史)에서 전한다.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을 하다 보면 다른 이야기도 발견할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가 여관의 주인에게 식사로 생선을 올리라고 했지만 강한 태풍으로 인해 생선을 준비할 수 없었다. 이토가 “불쌍한 지역 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구나”하고 탄식하자 그들끼리만 몰래 감춰두고 먹었던 복 요리를 만들어 내놓게 되는데. 그 맛에 감탄한 이토는 야마구치현에서만 복어 요리를 팔 수 있도록 허락하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야사로서 큰 신빙성은 없는 이야기지만 흥미롭다.
춘범루에 대한 오해
우리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지어진 춘범루 위에서 간몬 해협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미리 조사했던 바에 따르면 이토 히로부미가 이홍장에게 전략적으로 간몬 해협을 지나는 일본 군함을 보여줌으로써 군사력을 과시하였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이는 시모노세키 조약이 맺어질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야사이다. 조약이 체결된 당시 이홍장은 철저하게 굴욕적인 패배자의 입장이었다. 일본은 연이은 압승으로 청의 북양함대 기지를 점령하며 청나라 본토까지 집어삼킬 기세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홍장에게 의도적으로 자신의 군사적 위협을 과시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만약 춘범루를 직접 방문하여 이곳에 대한 소개를 듣지 못하였다면 시모노세키 조약이 맺어질 당대의 분위기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무쓰 무네미쓰의 흉상
이토 히로부미와 무쓰 무네미쓰의 흉상
청일 전쟁은 일본 군부와 외교의 합작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군사력에 무쓰 무네미쓰의 외교술이 뒷받침되었다. 우리 모두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가슴 속에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쓰 무네미쓰는 메이지 시대의 정치가로 1892년 8월 제2차 이토 히로부미 내각의 외무대신이 되었고 청일 전쟁 후 강화 담판에서 시모노세키조약을 성립시켰다. 그는 일본의 전설적인 외교관으로 뛰어난 외교술로써 불평등 조약을 체결했던 15개국 모두와의 조약 개정(치외 법권 철폐)을 이루었다.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추앙받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그를 철저한 일본의 국익을 위하여 조선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무쓰 무네미쓰가 이토 히로부미에 비해 더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실제 일본이 만든 역사물에서는 조선 침략에 대해서 이토 히로부미 못지않은 야욕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에선 당시 수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를 두려워하며 조선 파병을 미루려하자 그를 부추겨 조선 파병을 하도록 한 인물로 등장하고, 만화 ’왕도의 개’에서는 아예 청나라, 조선침략의 최종 흑막으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무쓰 무네미쓰,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 3명이 배후에서 개입했다는 사시을 알게 되었다.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는 청일 전쟁에 대한 개전 이유를‘이웃 조선과의 우호와 일본 방위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마치 조선을 위해서 일본이 자비를 베풀었고 미개한 조선의 근대화를 열어주었다는 위선과 오만이 넘친다. 그의 비망록 <건건록>은 일본 외교력의 원천이라고 한다. 이 기록 역시 조선에 대한 경멸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학창시절 일제에 의한 식민지화에 대한 역사를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이라면 시모노세키 조약의 역사적 의미와 그 결과를 제대로 파악하고,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현재의 정세를 비춰볼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정식 복어요리점 슌판로
시모노세키 슌판로 본점은 쇼와 천황, 황후 폐하를 비롯한 많은 황족들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갓포 료칸이다. 료칸이란 일본에 있는 독특한 숙박 시설으로 그 중 갓포 료칸은 요리 그 자체를 중심으로 삼는 곳이다. 슌판로는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아미다이지초에 있으며 예부터 신선한 자주복 요리를 제공해 왔다. 여러 세대에 걸쳐 계승되어 온 장인의 기술로 시간부터 온도까지 모든 부분에 정성껏 심혈을 기울여 자주복을 조리한다. 유명한 복어 전문점에서는 가장 맛이 좋은 종인 자연산 자주복만을 취급한다고 알려져 있다.
고급 숙박 시설인 슌판로의 객실은 단 7개로 일본풍과 서양풍의 인테리어가 조화를 이루었다. 간몬 해협을 밤에는 건너편 강가로 기타큐슈의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지며 2개의 가족탕을 대절하여 사용할 수 있다. 성인 2명이 슌판로에서 복어 요리가 포함된 1박을 보낸다면 약 59,000엔의 숙박비가 예상된다. 정원은 2명에서 5명으로 석식에는 복어 가이세키 코스가 제공되어 복어 회, 복어 튀김 등을 맛볼 수 있다. 또한 성인 고객에게는 요리장이 추천해 드리는 야마구치현의 향토주가 제공된다. 대학생인 우리들이 슌판로에서 숙박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라고 느꼈다. 단품 식사로 제공되는 복어 요리를 맛볼 수 있다고 하나 슌판로 홈페이지의 문의 전화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춘범루를 둘러본 감회
이번 시모노세키 탐사를 통해 직접 춘범루의 웅장한 외각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으나 현재 고급 호텔이자 요릿집인 이곳의 내부를 살펴볼 수 없었던 점이 가장 아쉬웠다. 시모노세키 조약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역사적 유적지를 고급 갓포 료칸으로 재탄생시켜 사람들의 발길이 닿게 만들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느꼈다. 우리나라의 소중한 역사적 유적지나 문화재를 옛 모습 그대로 훼손시키지 않고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발걸음만이 과거의 유산을 숨 쉬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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