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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찰과 그에 담긴 역사, 시모노세키 성하 마을

시모노세키 성하 마을
  • 탐방일시 :2018.06.26
  • 조회수 :1428
  • 좋아요 :0
  • 위치
    1 Chome-2-3 Chofukawabata, Shimonoseki, Yamaguchi Prefecture 752-0979 JAPAN
  • 키워드
    일본, 절, 성하마을, 모리, 보리사, 코잔지, 쇼잔지, 시모노세키, 조카마치

같은 불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일본대로 그들만의 불교를 정착시켰다. 코잔지는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죠후에 있는 소토슈의 국보 사찰로, 불교의 종파 중 曹洞宗[조동종]의 사찰이다. 천수관천안관세음보살상이 앉아 있다고 한다. 쇼잔지는 일본 시고쿠[四國] 지방의 도쿠시마현[德島縣] 묘자이시[名西市]에 있는 절이다. 납골당과 공양탑이 있다. 코잔지에 위패가 있다면 쇼잔지에는 묘지가 있다.

시모노세키 성하 마을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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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찰

일본의 사찰은 생화 불교, 장례 불교적 성격이 강하다. 즉, 생활 속에 깊이 관여되어 있는 종교라고 한다. 일본은 죽기 전 법명을 받아야하고 죽으면 불교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유명한 가문은 보리사 (菩提寺, 한집안에서 대대로 장례를 지내고 조상의 위패를 모시어 명복을 빌고 천도와 축원을 하는 개인 소유의 절)를 꼭 가지고 있다. 만약 법명을 받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다면 그 가문에서 퇴출되어 기록에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조카마치 조후에 있는 코잔지와 가쿠온지가 바로 죠후 모리가 번주의 보리사이다. 또한 개인이 소유하다보니 우리나라와는 다른 재미있는 불교의 양상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가족 계승이라는 것이다. 즉, 승려가 결혼을 하면 그의 자손이 승려가 되어 절을 물려받는 것이다. 더 재미난 것은 일본의 절은 그 주위의 토지가 전부 그 절의 것이다. 큰 절의 스님이라는 것은 일본의 부자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코잔지 (功山寺) - 공산사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죠후에 있는 소토슈의 국보 사찰이다. 가마쿠라 시대의 명칭이지만 팔작집 지붕, 노송나무껍질로 만들어진 지붕 등의 건축 양식을 본다면 우로마치(14세기) 시대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불교의 종파 중 曹洞宗[조동종]의 사찰이다. 선을 중시하는 종파여서 그런지 천수관천안관세음보살상이 앉아 있다고 한다. 가까이 가서 보고 싶지만 어두워서 보기가 힘들다. 가쿠온지에는 죠후 모리가의 3대 5대 17대 번주의 위패가 있다고 한다면 코잔지엔 3대 5대 17대를 제외한 초대 번주부터 모든 번주의 위패가 있는 곳이다.
일본만의 불교와 분위기 건물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우리나라 불교는 뭔가 조용하지만 어딘가 소란스럽다. 불경을 외는 소리가 불전 앞에서 맴돌며 스님 한분이 마당을 빗자루로 쓸고 있을 것 같다면 이곳의 절은 조용하다. 닭이 걸어 다닌다. 닭에게 먹이를 주려 할머니 한분이 닭의 뒤를 쫒는다. 하지만 닭의 걸음걸이도 할머니의 걸음걸이도 조용하다. 일본의 조용함과 절이 조화롭게 이루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코잔지 (功山寺)

코잔지 (功山寺)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이곳은 명치유신의 성지라고 불린다. 사찰 뒤편으로 보면 말을 타고 있는 상이 하나 보인다. 그는 바로 노시다 쇼이의 제자이자 메이지 유신의 삼걸로 뽑히는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이다. 19세기 이 사람 근대적인 군대체제를 만든 장본인으로써 당시 조슈항에 식군대를 만든 사람이다. 다카스키 신사쿠 또한 당시 쇄국정책을 군대를 만들 당시, 일본이 군대에 들어가 전쟁을 치르려면 무사계급 혹은 사무라이 계급만 가능했다. 만약 농부의 아들이 전쟁에 참여 했다면 시신을 치우는 역할, 혹은 부상자들을 옮기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였으며 칼을 들고 총을 들고 직접 군대에 참여 할 수 있는 계급은 사무라이 계급이었다는 것이다. 즉, 전쟁 참여에도 계급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카스키 신사쿠는 계급을 초월한 근대적인 군대를 만드는데 사무라이 계급뿐만이 아닌 승려, 농민의 아들, 양민의 아들 등 일본의 건장한 남성으로 확대시켜 신분을 초월한 근대적인 군대를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막부 말기 다카스키 신사쿠의 군사가 바로 이 절에서 거병을 하는데 이 군대를 기병대라고 한다. 하지만 이 기는 기마병의 기(騎)가 아닌 기이할 기(奇)를 쓴 기마병이라고 한다. 이름에서부터 당시 얼마나 독특했는지 알 수 있는 명목이다. 코잔지는 모리저택의 뒤편에 위차하고 있다. 이곳에 주둔한 이유는 에도막부 즉, 중앙 정부에서 쳐들어 왔을 때 막기 위한 요새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람이 우리나라 식민지에 많은 영향을 준 사람으로도 평가가 되고 있다. 1862년 막부 사절 수행원으로 나가사키에서 청나라 상하이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청나라는 아편 전쟁등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던 차였다. 당시 일본에서 청나라는 선진 국가였는데 서양의 식민지로 전락해 가는 과정을 살펴본 그는 귀국하는 배 안에서 쓴 일기인 《유청오록》(遊清五録)에 다카스기는 서국 열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돌아온 그는 학교로 돌아가 학교 선생이 되는데 그의 제자로 배출 된 사람이 제 1대 조선총독부의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이다.

지금 일본 정치계에서도 다카스키 신사쿠의 후예라고 부르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 역시 다카스키 신사쿠의 후예이며 아베 신조의 신자가 다카스키 신사쿠의 신자와 같은걸 쓴다고 한다. 또한 다카스키 신사쿠가 죽고 난 이후 이 사람의 제자들은 가나가야 조약 [미일화친조약(日米和親条約)]등 자신들이 당했던 불평등 조약을 조선에 그대로 사용하며 정한론의 사상이 나온 것도 이 사람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다카스키 신사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있는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 굴러온 작은 눈덩이가 일본을 만나 커지면서 조선에서 엄청난 눈덩이를 맞았다. 도미노처럼 굴러오며 커지는 눈덩이처럼 연결되어 있는 역사를 느끼고 싶다면 사찰에 담겨진 역사를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쇼잔지(笑山寺) _ 소산사

일본 시고쿠[四國] 지방의 도쿠시마현[德島縣] 묘자이시[名西市]에 있는 절이다. 납골당과 공양탑이 있다. 코잔지에 위패가 있다면 쇼잔지에는 묘지가 있다. 쇼잔지에는 13층 석탑이 중요하다. 탑 위를 보면 부자연스러운데 원래 맨 위에 있어야 하는데 없어져서 보주를 임의로 올려 두었다. 그리고 맨 밑 기단에 보면 범어가 써져 있는데 동서남북이라고 적혀있다. 이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 백호, 청룡, 주작, 현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절 뒤편에 많은 묘지들이 세워져있다. 마치 일본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으스스한 묘지들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왠지 힌 옷을 입고 머리에는 촛불을 끼워서 짚 인형과 나무로 만든 망치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절 앞에 긴 길이 나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하게 생겼다. 그 길은 바로 신의 길이라고 해서 죽은 가운데에 죽은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이다. 그 길을 보다보면 밟고 싶은 장난기가 생긴다.

쇼잔지 13층 석탑

쇼잔지 13층 석탑

쇼잔지 입구

쇼잔지 입구

쇼잔지 뒷편 무덤

쇼잔지 뒷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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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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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민
  • 소속 : 신문방송학과
  • 이메일 : r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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