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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뿌리 깊은 가문을 엿볼 수 있는 곳, 강릉 선교장

강릉 선교장
  • 탐방일시 :2018.08.19
  • 조회수 :743
  • 좋아요 :0
  • 위치
    강원 강릉시 운정길 63 선교장
  • 키워드
    조선, 민속문화재, 전통가옥, 숙박체험, 한옥

전형적인 조선시대 사대부가 상류주택의 구조를 대표하며 1965년부터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되었으며 그 후 개인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선교장은 300여 년 동안 전통가옥으로서의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미와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후한 인정미를 지닌 후손들이 현재까지 거주하는 살아 숨 쉬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강릉 선교장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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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의 구조를 대표하며 1965년부터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되었으며 그 후 개인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선교장은 300여 년 동안 전통가옥으로서의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미와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후한 인정미를 지닌 후손들이 현재까지 거주하는 살아 숨 쉬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교장은 한국의 유형 문화재로서의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릉의 문화를 대표하며 특히 경포 호수권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문화 시범도시인 강릉의 문화 관광 자원으로서 부각되며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강릉 선교장 입구 1

강릉 선교장 입구 1

강릉 선교장 입구 2

강릉 선교장 입구 2

예전에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라고 하여 선교장이라 지어진 이름이지만 그 호수는 현재 논이 되었다. 하지만 대 장원의 뒤 야산에 있는 노송의 숲과 활래정의 아름다운 연꽃 그리고 멀리보이는 백두대간의 사계절이 변화하는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 이며 그 절경을 바라보는 운치는 한국 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한국 방송공사에서 20세기 한국 TOP10을 선정할 당시 한국 전통가옥 분야에서 선교장이 한국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11대손 가선대부 무경 이내번이 1703년에 건립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며 안채, 열화당, 행랑채, 동별당, 서별당, 활래정 등 그 외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선교장 입구에서부터 우거진 나무들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기는 듯하였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매하여 들어가면 제일 먼저 연꽃으로 둘러싸인 호수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히 한국 최고라 할 수 있는 전통가옥으로 가장 규모가 큰 가옥답게 웅장한 전경이 한 눈에 체 담기도 힘든 듯하였다. 특히 배치구조가 독특하여 수많은 유물을 간직하기도 하였다.
강릉 선교장 내 호수

강릉 선교장 내 호수

선교장 본채 안으로 들어가는 문

선교장 본채 안으로 들어가는 문

그 아름다운 호수 뒤로 보이는 경내의 활래정은 강원도에서 유일한 궁궐건축양식으로도 유명하며 그 곳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통문화체험관에서 옛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도 있다.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했던 날에는 따로 체험을 하는 곳이 없었지만 날짜와 시간을 잘 맞춰온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사실 활래정은 가장 늦게 지어진 곳이기도 하다. 입향 초기 안채주옥을 짓고 기거하였으나 아름다운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조선의 풍류와 시인묵객들이 구름과 같이 찾아오므로 100여 년 동안 계속해서 건물을 증축하여 현재의 열화당, 별당, 중사랑, 행랑채 등을 지었으며 1816년 현재의 활래정과 앞 연못을 만들고 연꽃을 심어 배산임수의 명당과 걸맞는 현재의 선교장의 전경이 완성된 것이다.

특히 활래정에서는 미리 예약을 하면 전통차를 시음할 수도 있다. 연꽃에 둘러 싸여 음유시인들이 묵던 정자에서 차를 마신다면 마치 신선계에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 것만 같아 다음 번에는 꼭 예약을 하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예로부터 선교장은 대궐 밖 조선 속 제일 큰집으로서 손님 접대에 늘 후하여 아낌이 없고 만석군 부호임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하며 소작인들이 배고픔을 모르며 살게 함을 상생의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선교장이 아직도 건재함이 모두 천복이라고 얘기하곤 한다고 한다.

선교장이 인기가 많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무래도 ‘한옥스테이’ 체험이 아닐까 싶다. 안채 서쪽에 있는 서별당과 서별당 아래에 있는 연지당은 명품고택에서 숙박이 가능한 한옥스테이체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선교장에 장기간 머물던 시인묵객들을 위한 거처로 사용되던 홍예헌 역시 한옥 숙박 체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별당은 과거 집안의 모든 식구들이 공부를 하던 곳이며 서별당 바로 아래에 위치한 연지당은 집안의 홀몸이 된 여인들이 안채의 살림을 도와가며 각자 지내던 곳이다. 또한 연지당의 앞마당은 받재마당이라 하여 안채로 반입되는 재물을 확인하기도 하던 마당이었다.

그 옆으로 길을 따라 쭉 걸으며 내려오면 더위에 지친 몸을 잠깐 식힐 수 있는 기분 좋은 휴게쉼터가 위치해있다. 전통 한옥구조로 지어진 휴게쉼터는 한옥문살을 통해 선교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서 더욱 몸과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었다. 전통차와 다과 커피 등을 판매하는 카페 옆쪽으로는 열화당이 작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열화당은 원래 선교장의 남자 주인의 거처로 ‘일가친척이 이곳에서 정담을 나누며 기쁘게 살자’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건물 앞의 테라스는 조선 말기 러시아식의 건물로 러시아공사관에서 조선에게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의외로 전통한옥과 잘 어우러져 왠지 이국적이면서도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고즈넉한 한옥이 주는 편안함과 함께 전통차도 마시며 책 한 권을 읽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잠깐 더위를 식히고 옆에 있는 책들과 기념품을 구경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 다시 나와서 둘러봐도 또 새로운 듯 할 정도로 넓은 선교장은 꼼꼼히 돌아보고 제공되는 체험을 다 해보려면 넉넉히 1시간에서 2시간을 잡아야할 것 같았다.
현재 작은 도서관으로 사용 중인 열화당

현재 작은 도서관으로 사용 중인 열화당

언제 봐도 아름답고 여운이 남는 전통가옥이 주는 느낌은 언제 느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 한 체 다시 한 번 돌아보기도 하였다. 선선한 여름 밤, 조상들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이 곳 선교장에서 다양한 체험과 함께 더불어 하루 밤 마치 조선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한옥스테이를 체험해본다면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만 같다.

선교장의 전체적인 전경 1

선교장의 전체적인 전경 1

선교장의 전체적인 전경 2

선교장의 전체적인 전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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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https://knsgj.net/history
필자소개
필자 얼굴 이미지
  • 김민주
  • 소속 : 영어영문학부
  • 팀명 : 강릉부릉부릉
  • 이메일 : j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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