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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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유교 문화가 살아숨쉬는 남해 향교
남해 향교태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고 난 후에도 남해 향교 안 소나무들이 더 푸른빛을 냈던 것은 옛 것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또 우리 것에 끊임없는 애정을 쏟는 남해 마을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여전히 굳건한 모습으로 위엄을 갖춘 남해 향교를 방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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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부터 서쪽 방향으로 약 10분 정도 짧게 걷다 보면 조선의 유교 문화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남해 향교를 만날 수 있다. 그 마을의 특색을 알린다는 장소 사전의 취지에도 딱 알맞고 오래 전에 세워진 곳이라 유서도 깊어서 역사적으로도 의의가 크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솔직히 별다르게 큰 기대는 가지지 않고 향교로 갔던 것이 사실이다. 아니, 솔직히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목조로 된 건물 곳곳이 부서져있거나 장식물들은 빛이 바랜 모습으로 부식되어있고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진 모습을 떠올리며 캐리어를 끌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남해읍의 골목길을 걸어갔던 것 같다.
GPS를 켜서 지도의 안내를 받으면서도 막상 도착해서는 작고 낡은 건물을 찾아 조금은 길을 헤매고 다니겠거니 하였는데 이게 웬걸 짧은 오르막이 시작되기 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저 앞에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제법 번듯하고 오히려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있는 향교의 모습이 보였다. 근처에 다다르자 남해 향교 관련 단체복을 입으신 분들이 여러 명 계셨는데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향교의 주변을 다시 정돈하면서 가꾸고 계셨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조그만 향교 하나에 여전한 관심을 쏟는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면서 주변 전경 사진을 찍었다. 한바탕 폭우가 휩쓸고 간 후의 파란 하늘과 마치 시원한 샤워라도 방금 마치고 나온 것처럼 묵은 먼지를 털어낸 듯 향교의 모습은 머릿속으로 가을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만큼 청명하고 시원하였다.
남해 향교 입구
남해 향교 주변 전경
향교 내부의 사진을 더 찍기 위해서 들어가려 했으나 출입문은 닫혀져 있었다. 조금이나마 향교의 모습을 더 담기 위해서 담장 주변을 계속 서성거리자 아까 향교 관련 관리자 분들 중 한 분이 오셔서 태풍의 여파로 향교 안이 재정비가 필요하니 근처 사무실에서 기다려준다면 내부를 더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셨다. 생각보다 향교가 너무 멀쩡한 것도 놀랐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향교를 가꾸고 있다는 것에도 놀랐는데 유교 정신 계승을 위해서 마을에서 독자적으로 더 노력을 기울이고 보다 체계적인 관리를 위하여 따로 사무실까지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남해읍 사람들의 그 노력에 감동 반, 놀라움 반. 그러면서 옛 것이라고 무조건 오래되고 낡은 것으로 치부했던 내 선입견이 부끄럽고 전통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계속 지켜나가려는 남해 마을 사람들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남해 향교 1
남해 향교 2
대부분의 향교가 그러하듯이 남해 향교 역시 명륜당(明倫堂)을 포함하여 크게 다섯 가지의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향교 입구에 있는 문을 외삼문(外三門)이라 한다. 외삼문(外三門)이란 말 그대로 향교의 외벽에 설치되어 있는 세 개의 문을 말하는데, 건물 안 대성전(大成展)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문은 내삼문(內三門)이라 일컫는다. 문이 세 개나 있는 이유는 쓰임에 따라 사용하는 문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오른쪽에 있는 동문(東門) 들어갈 때에만 사용하는 문이고, 왼쪽에 있는 서문(西門)은 나올 때에만 사용하는 문이다. 또, 중앙에 있는 문은 신로(神路)라고 하여 제사나 분향 같은 차례를 지내는 날만 제물을 나르기 위해 사용할 뿐, 평상시에는 열어두지 않는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대성전(大成展)이 있다, 내삼문(內三門)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는 대성전(大成展)에는 공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대성전(大成展)은 문묘의 여러 시설 가운데 공자의 위폐를 향사하는 건물로서 향교의 여러 건물 가운데서도 그 중요도가 높다고 할 수가 있다. 남해 향교의 경우에는 현재 5성위와 함께 송조 2현과 우리나라의 성현 18현의 위패를 봉안하여 종향하고 있다고 한다.
명륜당
옛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지방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위해 국가적 교육기관이지만 사실 최초 설립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조선 현종 10년 즈음에 사당인 대성전을 고쳐 세웠고 한참 후 고종 29년에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과 서의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 위치로 옮겼으며 계속해서 그 밖의 다른 건물들도 모두 옮겨 세웠다고 한다. 건물의 위치 변동이 많긴 했으나 전체적인 배치는 전형적인 모습을 띄지만 그러나 이 남해 향교에는 국내 다른 향교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서재의 남쪽으로 담장을 바로 붙여서 돌단들을 쌓아올린 점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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