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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역사의 출발지, 목포진(木浦鎭)
목포진 역사공원목포는 조선시대 서남해 방어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지역이다. 그 중에도, 목포진 역사공원은 수군의 진영이 있었던 곳이기에 의미 있고, 목포 역사의 출발지가 되기에 중요한 장소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수군교대 재현 행사를 즐길 수 있다. 최근에 와서는 등록문화재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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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아버지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는 도중 라디오를 통해 ‘목포는 항구다’라는 노래를 몇 번 들었던 기억, 그리고 중고등학생 때 국사 수업 시간에 배웠던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목포. 목포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거의 전부였는데, 작년에 처음 먹어보고 첫눈에 반한 홍어로 인해 전남 목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홍어는 국산 홍어, 그 중에서도 많이 삭히면 삭힐수록 코가 더 뻥 뚫리고 맛이 더 좋다. 산지에서 제대로 된 홍어를 먹고 싶다는 생각과 이왕이면 역사와 문화도 한번 공부해볼까라는 생각에 목포로 떠났다.
목포는 소도시이지만 유달산, 근대역사관, 갓바위 등 가볼 곳이 많은 곳이다. 그렇지만 지금 소개하려 하는 곳은 바로 ‘목포진 역사공원!’ 목포에 오면 꼭 한번 들러야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목포역사의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이며 진의 우두머리인 만호(萬戶, 본래 1만 명의 군사를 거느린 부대장이라는 뜻으로 사용됨, 조선시대에는 각 도(道)의 여러 진(鎭)에 배치한 무관벼슬)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진’으로도 불리기도 하는 목포진. 1987년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7호로 지정된 이 진지는 전남 목포시 만호동 1-56번지에 있다.
목포진 역사공원
홍살문
목포는 지리상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있어서 서해로 연결되는 요충지 역할을 한다. 과거 호남의 남쪽 지역과 영남 일부의 조운선이 통과했으며, 특히 나주의 영산창(조선 초기 전국에 설치, 운영되었던 9개의 조창 중 한 곳으로써, 전라도 나주와 그 주변 지역의 세곡을 모아 한성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기능 담당)에서 출항한 조운선이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침략해서 여러 물자를 약탈해 가려는 왜적들이 자주 출몰하였으며, 이들을 경계하기 위해 진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무안현(務安縣) 목포(木浦)와 보성현(寶城縣) 여도(呂島) 등은 모두 왜적이 드나드는 요해지(要害地)이온데, 병선(兵船)을 정박하여 세운 곳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사오니, 청하옵건대, 목포와 여도에 따로 병선을 설치하고 만호(萬戶)를 임명하여 보내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21(임진, 1439)
이처럼 목포는 옛날부터 요해지로서 주목받았고, 왜적의 침략을 경계하고 예방하기 위해 이 지역에 진을 설치하게 되었다. 수군만호는 당시에 있었던 선상수어(船上守禦)의 원칙에 따라 병선을 이끌고 해상을 오가며 방어와 수색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고, 해당 영(營)과 진(鎭)에는 군량과 군기를 쌓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쳐들어오는 적을 선상에서 막는 선상수어의 방식이 어려워지자 1502년(연산군) 무렵에 성을 축조하였다. 현지에 있던 비석 글에 따르면 당초 진성의 규모는 석축둘레 1306척, 높이 7척 3촌이었으며, 우물과 못이 각 1개소씩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나라 서남해 방어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목포진은 근대적 행정 군사제도의 개편 요구에 따라 1895년(고종 32년) 7월 고종 칙령 제141호에 따라 폐진되었다. 폐진된 이후 목포진 유적비만이 남아있던 곳을(정확히 말하자면, 1897년 개항 당시만 해도 청사의 일부가 남아 있었고, 무안감리서·일본영사관·해관으로 임시 사용되었다. 그 후 진지 주변은 영국영사관기지로 편입되었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다시 민가로 전용되었다.) 과거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객사와 홍살문, 객사문 중 내삼문 등을 추정 복원하여 역사공원으로 개장한 것이다.
내삼문
객사
객사(客舍)란 고려, 조선시대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안치하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달을 보며 임금이 계신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리는 향망궐배(向望闕拜)를 하는 한편, 관찰사 순행 시는 집무실로, 사신 관리들에겐 숙소 및 접대장소로 이용된 공간이다. 목포 수군 진영 중에서 가장 메인이 되었던 장소라는 느낌이다. 객사의 현판에는 목포의 객사라는 뜻인 ‘木浦之館(목포지관)’이라고 쓰여 있다. 홍살문은 궁전, 관아, 릉 등의 정면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이고, 내삼문은 외삼문과 함께 객사문(客舍門)을 구성한다. 객사, 객사문, 홍살문뿐만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담도 기존의 옛 석축돌을 최대한 활용하여 전통 석축 쌓기 방식인 막돌 바른층 쌓기라는 방식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복원했다고 하니 여기를 와 본 것이 더욱 뜻 깊고 뿌듯해졌다.
비석 3개
객사문 밖으로 다시 나와서 왼쪽을 보면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계단을 올라가는 중에는 휴식공간인 육각정자가 있고, 거기서 몇 계단을 더 오르면 목포항을 비롯하여 시내의 일부가 눈에 보인다. 소도시답게 낮은 건물이 많았고, 아담하고 소박해서 더더욱 평온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육각정자
목포항, 시내 전경
목포시는 2016년부터 역사공원 내에서 수군교대식 재현행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수군 교대식은 경계근무를 마친 수군이 지휘관에게 근무상황을 보고하고 순장패(경계근무자 신분증)를 다음 근무자에게 전달하여 임무를 교대하는 의식이다. 이 행사는 수군이 목포진 성곽을 순찰하고 경계근무를 서는 것, 만호가 입장하는 것, 수군들이 임무를 교대하는 것 등의 내용과 수군 무예시범을 제공한다. 무예시범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 말기까지 무관들이 배운 24종류의 무예를 기초로 한 것이다. 또한 원하는 관람객들은 조선 수군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도 있다.
2018년 8월 현재, 목포 만호동과 유달동 일원을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고 해서 문화재청이 제718호 등록문화재로 등재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조선시대 목포의 시작을 알리는 ‘목포진지’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분들도 이미 목포시 관광 랜드마크로 떠오른 목포진 역사공원을 꼭 한번 가서 목포의 역사를 떠올리고, 도시가 주는 정겨움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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