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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함과 웅장함의 공존 - 진남관
진남관여수 진남관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수군의 중심기지이다. 국내 최대의 단층 목조 건물로 국보 제304호로 지정되어 의미가 깊으며, 내부 공간을 넓히고 간결함과 웅장함이 공존하게 하는 기법을 사용해 18세기 초에 건립됐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의의,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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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함과 웅장함의 공존 - 진남관
“명을 정벌할 테니 길을 내 달라.”
1592년, 당시 조선은 지배계층 간에 권력 다툼으로 어지러웠고, 전란에 전혀 대비되어있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일본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을 시작으로 불과 보름 만에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은 엄청난 기세로 조선을 삼켰다. 궁궐은 버려지고 전쟁이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평양성까지 함락되었다.
대부분의 조선군이 무너졌지만,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만은 일본군을 연달아 격파했다. 서해를 통해 수군을 북상시키고 바다를 통해 식량과 무기를 공급하려던 일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과 수군들의 활약과, 명나라의 연합군의 도움으로 일본군은 점점 뒷걸음질 치게 되었고 경상도 일대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명과의 휴전 협상에 실패한 일본이 다시 한번 무력으로 침략을 시도하지만 (1597, 정유재란) 도요토미의 죽음으로 일본군이 철수하며 전쟁은 끝이 난다. 이 전쟁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임진왜란’이다.
진남관 입구 모습
현재 진남관은 보수공사를 진행 중이라 진남관 내부에 직접 들어서 보지 못했지만, 진남관 바로 아래의 ‘임란유물전시관’을 관람하고 올 수 있었다. 임란유물전시관은 임진왜란 당시의 전란 기록이나 이순신 장군의 유물, 전술 등을 살펴볼 수 있도록 다양한 모형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들어서면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을 교란하기 위해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어 세웠다고 하는 석조물이 전시관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7구의 석인 중 6구는 사라지고 남아있는 1구가 전시돼있는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전시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물은 거북선을 작게 재현해놓은 모형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2개월 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여수 선소에서 거북선을 건조하고, 마치 침입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철저히 대비했다고 한다. 모형 안에 들어섰을 때 거북선의 내부에 실제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어 정말 신기했고, 내부가 2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어 인상 깊었다.
진남관 임란유물 전시관
거북선 모형 내부
처음에 용도를 들었을 때, 지휘소로 사용된 만큼 수군이 움직이는 바다 바로 앞에 세워져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바다와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 의아하기도 했지만, 진남관에 올라서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지휘를 내리셨을 이순신 장군님을 떠올리니 건물이 더욱 장엄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실제 내부 모습을 살펴보고 올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19년도에 복원 사업이 끝이 난다고 하니 여행 중에 꼭 들러서 건물의 웅장하면서도 간결한 매력을 느껴보고 온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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