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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초 해저 터널, 그 숨겨진 이야기

해저터널
  • 탐방일시 :2018.01.01
  • 조회수 :992
  • 좋아요 :0
  • 위치
    경남 통영시 도천길 1
  • 키워드
    해저터널, 통영, 일제강점기, 바다터널, 통영대교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에서 미수동을 연결하는 해저 터널이 있다. 이곳은 2005년 9월 14일 등록문화재 제201호로 지정되었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1년 4개월에 걸쳐 만든 동양 최초의 바다 터널이다. 예전에는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주요 연결로였지만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개통되면서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이곳은 24시간 개방하고 있으며 휴무일과 입장료 없이 언제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해저터널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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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초’ 해저 터널, 그 숨겨진 이야기

해저터널의 입구. 꽤 많은 사람들이 해저터널 안을 거닐며 구경하고 있었다.

해저터널의 입구. 꽤 많은 사람들이 해저터널 안을 거닐며 구경하고 있었다.

경상남도 통영에는 1930년대 초, 약 1년여에 걸쳐 만든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 있다. 만드는 기간 동안 양 끝의 바닷물을 방파제로 막고 완공 후에 다시 방파제를 철거하였다. 당동에서 미수동을 이어주는 이곳은 2005년 9월 14일 등록문화재 제201호로 지정되었다.1) 해저터널의 ‘해’자도 보이지 않는 통영항에서 출발을 했는데도 안내 표지판이 어찌나 친절한지 조금의 헤맴도 없이 손쉽게 해저터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저터널을 찾는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표지판이 많을까, 해저터널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높아져갔다. 마침 날씨가 쾌청하고 춥지도 않아 나들이를 온 가족들의 단란함이 곳곳에 반짝였다.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라는 타이틀에 피어오르는 여러 가지 호기심을 갖고, 동그랗게 벌린 터널의 입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무엇보다도 먼저, 해저터널이라고 해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비롯한 갖가지 해양 생물들을 볼 수 있는 통유리로 된 터널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해저터널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이 와서 본다면 그저 흔한 콘크리트 터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터널 입구에 ‘용문달양’이라고 쓰인 한자는 용문을 거쳐 산양에 통한다는, 바닷속 세계를 지나 육지 세계에 도착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해저터널의 입구부터 미적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며 터널 내부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무언가 기념을 하기 위한 공간이거나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단순히 이동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건축물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 그 역할만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속되는 주황빛의 아련한 불빛과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늙은 내부의 벽은 충분히 잘 어울리지만,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반대편 입구를 향해 계속 걸어가다가 이곳이 육지 터널과 다른 점이 뭘까, 하는 의문이 점점 강하게 들 때쯤 이곳이 해저터널임을 알 수 있는 ‘해저 13M’라고 쓰인 입간판이 있다. 이곳이 터널의 가장 깊은 곳임을 알려주는 캐릭터의 입은 분명히 웃고 있지만 무거운 역사를 담고 있어서 그런지 약간의 슬픔도 보이는 듯했다. 조금 더 가다 보면 굽어지는 길이 시작되는데, 거기서부터 벽면에 통영을 소개하는 홍보 안내판들이 죽 붙어 있다. 단순히 통영의 관광지나 축제, 통영을 빛낸 문화예술인의 이야기 말고도 해저터널의 공사진행 모습이 담겨 있거나 통영운하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안내판도 있어 이곳의 깊은 역사를 알기에 유용했다. 반대편에서 다시 입구로 천천히 돌아 나올 때쯤, 아까보다 확실히 관광객들이 늘어난 것이 느껴졌다. 여타 관광지에서의 북적거리고 활기찬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휩싸인 터널의 입구가 나의 시야에서 점점 작아져 갔다.

터널 입구에 ‘용문달양’이라고 쓰인 한자

터널 입구에 ‘용문달양’이라고 쓰인 한자

해저 터널 입구

해저 터널 입구

엄청난 감각으로 터널 밖의 수압이 느껴진 것도 아닐 텐데 왜 터널에 있는 내내 가슴 한 켠이 묵직했던 것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해저터널의 칙칙한 콘크리트가 담고 있는 그 시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통영 해저터널은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주요 연결로로서 사용되다가 현재는 휴무일도 입장료도 없는 부담 없는 관광지가 되어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연인들의 산책로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관광지가 되기 전에 해저터널로서 그 존재가치를 분명히 하고 있었던, 우리는 모르던 그때가 있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 패운이 짙어지던 일본의 지배 아래, 통영시에 만들어진 해저터널은 사람뿐만 아니라 우마차, 자전거, 자동차, 가마까지 갖가지 이동 수단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였다. 해저터널이 지어진 목적은 통영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어민들의 편리한 이동을 위해서였다. 이순신 장군에게 떼죽음을 당한 조상의 한이 서린 곳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이 싫어서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슨 이유건 간에 그리 정당하고 떳떳한 이유는 아닌 듯하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서린 곳이 멀지 않은 곳에도 있다. 바로 1926년 여수에 지어진 마래 터널이다. 이곳의 내부는 우리나라 노역자들이 정과 쇠망치로 작업을 했는데 마감을 하지 못해 벽이 울퉁불퉁한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꼭 인권을 유린당하고 수탈을 당하는 직접적인 고통만이 아픔이 아니다. 이렇게 자국의 땅에 지어진 건축물 하나 우리의 뜻대로 하지 못한 역사 또한 아픔이고 눈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한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의 바다 밑에 지어진 해저터널은 그 존재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어민들이 오가기 쉽게 하기 위해서 지어진 곳이었다면 그토록 처연한 빛을 내비치고 있었을까.

뽀얀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으로 이루어진 입구도, 훌륭한 구조적 아름다움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착 가라앉은 기운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해저터널에 서린 이야기를 모두 알고 난 뒤에는 왜 해저터널이 다른 관광지들과는 다른 차분한 여운을 주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만 해저터널 속의 촉촉이 젖은 공기가 바다 근처의 습기가 날아온 것인지 미처 마르지 못한 그 시절 사람들의 눈물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콘크리트의 어중간히 뿌연 가루가 어둡던 우리의 역사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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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이버, <통영해저터널>, http://www.utour.go.kr/01198/01963/01213.web?amode=view&idx=1635&, (2018.1.21)
참고문헌
* 네이버, <통영해저터널>, http://www.utour.go.kr/01198/01963/01213.web?amode=view&idx=1635&, (201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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