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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살아 숨 쉬는 그곳 - 장생포고래문화마을

장생포고래마을
  • 탐방일시 :2018.01.03
  • 조회수 :1092
  • 좋아요 :0
  • 위치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로 244
  • 키워드
    고래, 문화, 마을, 역사, 바다

여기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는 장생포고래체험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문화마을, 고래바다여행선 등이 들어간다. 특히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서는 고래산업이 한창이던 그 시절 그때의 마을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여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해진 고래잡이를 다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제는 고래를 실물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이 시대에 더 이상 고래사업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으로 보였다. 옛마을은 60~70년대 한창 울산 장생포가 번창할 무렵의 마을의 모습이다. 추억의 장생포 국민학교, 이발소, 사진관, 방앗간, 서점, 구멍가게, 철공소, 전파사, 참기름집, 도장집, 연탄가게 등 예전 그 시절 모습으로 그대로 복원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장생포고래마을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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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바다는 어머니라고 말했다. 인간이 바다에게 무한한 정신적, 물질적 선물을 받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특히 이는 바다와 가장 가까이 접해 살아가는 해양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크게 공감할 것이다. 우리가 다녀온 울산 역시 그러했다. 울산은 어떤 선물을 받았을까 하니 제일 먼저 고래가 떠오른다. 바다는 울산에 고래를 내어 주었고 울산 사람들은 기꺼이 고래를 받아 삶을 영유하며 그 속에서 경제적 부 또한 축적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왜 고래인가? 왜 특히 장생포가 고래로 유명할까? 장생포를 돌아보며 우리는 고래의 자취를 다시 새겨볼 수 있었다.

장생포와 고래의 역사

장생포 하면 고래를 떠올리기 쉽다. 이렇듯 장생포구가 고래잡이 즉 포경사업으로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던 것은 18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니콜라이 2세가 ‘태평양어업 주식회사’를 설립한 때가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후 러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은 이미 식민지나 다름없던 조선의 포경사업을 독점하여 우리나라 전역의 포경장소들을 정비하고 그 중 장생포를 거점으로 삼는다. 1945년 광복을 맞은 후 조선포경 주식회사의 설립으로 우리나라 자체의 포경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장생포는 한국의 고래잡이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고래잡이는 1970년대 후반에 한창 번성하였으나 1986년 고래잡이가 법 제도 하에 금지되어 이와 함께 장생포 마을은 쇠락한다. 이런 고래잡이 역사를 최근에는 울산에서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일으켜 고래문화특구를 장생포에 지정하였다. 이렇듯 과거 장생포 주민들은 고래를 하나의 경제적 자원으로써 받아들였고 이는 이들의 삶에 대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입구.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입구.

고래기름착유장

고래기름착유장

고래해체장

고래해체장

고래와 함께한 옛마을

여기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는 장생포고래체험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문화마을, 고래바다여행선 등이 들어간다. 특히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서는 고래산업이 한창이던 그 시절 그때의 마을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여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해진 고래잡이를 다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제는 고래를 실물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이 시대에 더 이상 고래사업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으로 보였다. 옛마을은 60~70년대 한창 울산 장생포가 번창할 무렵의 마을의 모습이다. 추억의 장생포 국민학교, 이발소, 사진관, 방앗간, 서점, 구멍가게, 철공소, 전파사, 참기름집, 도장집, 연탄가게 등 예전 그 시절 모습으로 그대로 복원한 모습이 아직 대학생인 우리에게는 신선함과 어딘가 모르게 푸근함까지 주었다. 특히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곳은 고래기름착유장과 고래해체장이었다. 고래잡이 사업이 그때까지는 크게 와닿지 않았었는데 어떤 방법으로 기름을 착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모형과 실제의 크기와 비슷하게 고래의 모형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사람들이 작업하는 모습까지 있어 한걸음 더 다가가 이해할 수 있었다. 거대한 고래를 보니 실제로 잡아왔던 어부들은 얼마나 기이하고 놀랐을까 하다가도 이 거대한 고래를 용도에 맞게 하나하나 해체하여 이웃들과 나누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장생포 옛마을 풍경

장생포 옛마을 풍경

선장의 집

선장의 집

선장님께 직접 듣는 고래이야기

옛고래마을 한편에는 선장의 집이 자리 잡고 있다. 고래와 함께 포경선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지만 아직 그 포경선을 타고 저 멀리 바다에서 고래와 사투를 벌이며 장생포를 포경산업의 중심지로 이끄신 분이 계셨다. 오랜 바다 생활으로 지친 얼굴과 거친 손을 보니 고래를 싣고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큰 배를 바다 내음 따라 타고 돌아오셨을 모습이 그려졌다. 친히 선장님께서는 우리를 맞아주시며 부경대학교 학생임을 반가워하셨다. 그리고는 찬찬히 선장의 집을 보여주셨다. 고래잡이에 쓰인 포를 보여주시며 선장 모자도 씌워주셨다. 선장의 집에서 선장님께 고래 이야기를 듣고 둘러보니 장생포의 전성기시절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오래된 인연을 지닌 이곳 장생포문화마을에서는 아직도 고래는 살아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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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영필, 『장생포 그곳에 가면』, 책만드는집, 2013
http://www.whalecity.kr/index.php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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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혜민
  • 소속 : 사학과
  • 이메일 : q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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