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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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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의 현장에서 새로운 기억의 장소로 - 태화강 동굴피아
동굴피아일제강점기 당시의 군사기지 목적으로 이용된 울산비행장의 군수물자를 보관할 창고로 조성되었던 4개의 남산 동굴은 울산 사람들의 눈물로 채워졌습니다. 이렇게 아픈 역사를 가진 남산 동굴은 1960년대부터는 막걸리집으로 울산시민들에게 추억을 선사하였습니다. 붕괴위험으로 폐장된 지 30년이 지나 울산에서는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다른 면에서는 추억을 기억하고자 남산 동굴을 2017년 8월에 새로이 단장하여 개장하였습니다. 태화강을 사이에 두고 태화강 공원과 마주한 남산 동굴은 ‘태화강 동굴피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울산시민들 곁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태화강 동굴피아는 각기 떨어져 있던 4개의 동굴 중 3개를 연결하여 3개의 테마로 이어서 관람할 수 있게 조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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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라는 지리는 울산에게 삶의 터전과 희망이 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면에는 적으로부터 침입을 쉽게 받은 표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과 가까웠던 울산 바다는 예로부터 왜구들의 침략이 잦았고, 그 후 나라를 잃은 일제강점기에도 울산의 고난은 상당하였습니다. 울산을 이루는 산, 토지, 강, 바다와 같은 자연 그리고 그 곳에서 삶을 이루는 사람들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중 울산 바다의 시작이자 울산의 상징인 태화강과 태화강을 둘러싼 주변에는 많은 역경이 있었습니다. 바다로 쉽게 오갈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울산에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군사목적으로 건설된 건축물이 많이 있습니다. 대왕암공원의 울기등대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비행장인 울산비행장도 울산의 일제강점기 당시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울산비행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규슈와 서울의 중간 지점이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울산 달동에 최초로 형성되었습니다. 일본은 이때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부지를 마련하는 방법으로 달동 일대 농민들의 농경지를 강탈하는 방법을 시행합니다. 강탈당한 농경지는 울산비행장으로 개장하게 되었으나 1930년대부터 운영난에 빠지게 되면서 휴항하게 됩니다. 이후 1940년대 태평양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품의 운반기지 역할을 위해 다시 개항하게 됩니다. 운반기지가 형성이 되었으니 군수물자를 보관할 창고가 필요했던 일본군은 비행장 근처 남산에 4개의 인공동굴을 만들었고, 이 동굴이 채워질수록 울산사람들의 곡소리는 날로 커져가게 되었습니다.
제 1동굴의 입구
남산 동굴의 역사를 보여주는 조형물
제 1동굴을 시작으로 하는 태화강 동굴피아는 각기 떨어져 있던 4개의 동굴 중 3개를 연결하여 3개의 테마로 이어서 관람할 수 있게 조성하였습니다. 동굴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안전모를 착용하고 동굴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 1동굴에서는 일제 강점기 당시 남산 동굴의 조성부터 이용된 목적, 그 역사를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제 1동굴 안에는 남산 동굴이 군사물자 창고의 역할로 조성될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로 그 역사를 알 수 있게 했습니다. 동굴을 만들 당시의 인부들의 모습,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버팀목인 수직루버 등을 설치하여 수탈의 현장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제 2동굴의 동물 조형물
제 4동굴은 테마 동굴로 태화강 동굴피아가 개장한 당시인 여름에는 오싹한 공포체험 주제로 조성되었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눈사람, 트리 등의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계절별로 변화하는 제 4동굴의 모습은 태화강 동굴피아를 찾는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하는 하나의 요소입니다. 태화강 동굴피아는 각기 다른 인공동굴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동굴과 동굴사이의 통로에도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태화강 동굴피아를 탐방하면서 가장 눈에 띈 점은 폐쇄된 동굴의 재해석 입니다. 폐쇄된 동굴을 여러 가지 테마로 조성하면서 울산의 이야기를 접목한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울산 공단의 화려한 불빛을 상징하는 은하수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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