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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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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담(談)은 웅천읍성
웅천읍성1407년, 조선의 태종은 웅천의 내이포, 현재의 진해를 동래의 부산포와 더불어 왜인들에게 개방했다. 1541년(중종 36) 폐쇄될 때까지, 제포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선과 일본의 무역중심지였다. 개항 이후 남해안으로 불법으로 이주해 오는 왜인들이 늘자 남해선 방어를 위해 1439년(세종21) 세종대왕은 가장 일본인의 출입이 잦았던 웅천 즉, 오늘날 진해 지역에 읍성축조를 명하니 이것이 바로 웅천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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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담(談)은 웅천읍성
반짝반짝 빛나는 봄날 햇살의 벚꽃들. 3월이 되면 진해 군항에는 사랑하는 연인들과 단란한 가족들의 웃음꽃으로 가득 찬다. 넉넉히 피어 살살 떨어지는 분홍빛 벚나무들을 따라 걷다보면 진해 해군기지 입구까지 다다른다. 1904년, 일제는 태평양, 아시아 정복을 위해 이곳을 해군 전초기지로 낙점하고 해군 기지를 세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로부터 약 500년 전, 이곳은 무역을 갈망하던 일본에게 조선이 유일하게 열어준 항구였다. 1407년, 조선의 태종은 웅천의 내이포, 현재의 진해를 동래의 부산포와 더불어 왜인들에게 개방했다. 1541년(중종 36) 폐쇄될 때 까지, 제포는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조선의 대일본무역의 중심지였다. 개항 이후 남해안으로 불법입주해오는 왜인들이 늘자 남해선 방어를 위해 1439년(세종21) 세종대왕은 가장 일본인의 출입이 잦았던 웅천 즉, 오늘날 진해 지역에 읍성축조를 명하니 이것이 바로 웅천읍성이다.
늠름한 풍채의 견용문.
동문의 든든한 옹성벽
성벽 아래의 명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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