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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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골왜성, 상전벽해를 담(談)다.
안골왜성시대착오는 곧 멸망이다. 이미 16세기는 대항해시대였고 무역과 바다의 시대였다. 하지만 조선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했다. 그 과오는 19세기 쇄국정책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정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식민지 지배를 초래했다. 인골왜성은 시대를 읽지 못한 지배자를 둔 백성의 한이 응축된 곳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라, 모두 바다를 바라보며 나가는 이때, 해양수산부를 없애는 등 다시 조선의 과오를 반복하려 한다. 우리는 역사라는 거울을 경계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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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골왜성, 상전벽해를 담(談)다
미로같이 얽힌 본성의 입구. 공략하기 매우 힘들 것 같다. 호랑이 아가리라는 별명이 딱 맞는 듯하다.
사실 왜성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유적지다. 우리나라에 다른 국가 양식의 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주제이다. 수치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을 보며 다시는 아픈 역사를 겪지 말아야한다는 다짐을 새길 수도 있고, 많은 생각과 교육을 할 수 있는 유적지이다. 그러나 차를 대고 내려 본 이 안골왜성의 관리는 전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주차장은 따로 조성되어있지 않았고, 관광안내소는커녕 그 흔한 브로슈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오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만한 경관이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본성, 지성을 안내하는 표지판만 휑하니 서있었다. 본성으로 향했다. 지그재그로 얽힌 입구가 나를 맞이했다. 일본인들은 이 입구를 ‘호랑이의 아가리’ 라고 표현했다. 곧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본성 천수각에서 바라본 간척지. 옛날에는 모두 바다였다.
시대착오는 곧 멸망이다. 이미 16세기는 대항해시대였고 무역과 바다의 시대였다. 하지만 조선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했다. 그 결과는 참혹한 전쟁이었으며, 파괴와 멸망이었다. 그런 과오는 19세기에도 이어져 쇄국정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초래했다. 그 결과는 식민 지배였다. 안골왜성을 건축하는데 약 5만 명의 인원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1) 무거운 돌을 나르고 왜군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쌓아올린 이 성은 시대를 읽지 못한 지배자를 둔 백성의 한이 응축된 곳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라, 모두들 바다를 바라보며 나가는 이때에 해양수산부를 없애는 등 다시 조선의 과오를 반복하려 한다. 역사란 거울과 경계를 삼으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침략자들이 쌓은 성의 꼭대기에서 우리의 바다를 바라보자, 그리고 다짐하자.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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