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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시의 해양 실크로드 속 개원사

개원사
  • 탐방일시 :2018.01.30
  • 조회수 :898
  • 좋아요 :0
  • 위치
    176 West St, Licheng Qu, Quanzhou Shi, Fujian Sheng, China 362000
  • 키워드
    천주시, 개원사, 해양실크로드, 홍일법사, 고선진열관

과거 천주시는 해양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많은 배들과 무역 상인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천주시에 위치한 복건성에서 가장 넓은 사찰인 개원사는 이러한 해양 무역의 흔적과 함께 1000년이라는 유구한 세월의 역사가 잘 보존되어 있는 귀한 장소이다.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충분히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개원사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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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시의 해양 실크로드 속 개원사

이번 기초모델 학술교류 및 하문 현장 실습을 통해 중국 복건성의 하문시와 천주시를 방문하였습니다. 하문시는 근래 TV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유명 여행지로 급부상하였는데, 외국 조계지였던 구랑위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이색적인 건물과 거리로 주목 받아 ‘중국 내 작은 유럽’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또한 천주시는 과거 중국의 해양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매우 영향력 있는 곳이며, 복건성의 경제 중심지 중 한 곳으로 현재까지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주시는 하문시를 비롯한 중국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이번 답사를 통해 처음으로 중국의 천주시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현장 실습 장소를 사전 조사할 때 천주시와 관련한 단행본, 논문들이 우리나라에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결과보고서에서 소개할 천주시에 위치한 개원사(開元寺)와 관련한 자료들은 더욱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답사할 곳의 정보가 적을수록 개원사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커져갔고,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개원사를 답사할 수 있었습니다.

개원사는 당(唐)나라 686년 현종 때 세워졌으며, 본래 명칭은 연화사(莲花寺)였으나 후에 흥교사(兴教寺), 용흥사(龙兴寺)라고 불리다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한자와 중국어에 능숙한 교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개원사 내에 세워진 비석과 설명문들을 공부 했었는데, 실제로 사전 조사 때 인터넷과 책에서 읽었던 앞의 설명들이 나와서 현장에서 직접 배우고 느끼는 재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개원사는 이렇게 1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개원사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보이는 두 개의 큰 5층 석탑이 개원사의 웅장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찰의 규모도 복건성 내의 최대여서 천주시를 방문한다면 개원사를 둘러보는 일은 필수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사진1] 개원사 도면

[사진1] 개원사 도면

개원사의 입구를 들어가면 [사진1]과 같은 사찰 내부의 큰 도면이 있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앙의 석가모니상이 있는, 즉 부처를 모셔두는 대웅보전입니다. 그리고 양 끝의 서쪽 인수탑(仁壽塔), 동쪽 진국탑(鎭國塔)이라 불리는 5층 석탑이 있습니다. 카메라 속에 넓은 잔디밭과 높은 나무 사이로 찍히는 석탑의 모습이 그 세월에 바래져 굉장히 멋있었습니다. 또한 오른쪽에는 홍일법사(弘一法師) 기념관과 그 앞에 동상이 있으며, 고선진열관이 개원사 내에 존재하였는데, 이 점이 특이하였습니다.
[사진2] 개원사 대웅보전

[사진2] 개원사 대웅보전

[사진3] 개원사 대웅보전

[사진3] 개원사 대웅보전

대웅보전에 들어서니 넓게 탁 트인 구조가 시원스럽게 펼쳐졌습니다. 대웅보전은 80 여개의 돌기둥이 받치고 있다 하여 백주전(百柱殿)이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축조 당시 종종 자주빛 구름이 대지를 뒤덮었다고 하여 자운대전(紫云大殿)이라고도 합니다. 주황빛이 도는 기와와 향을 피우는 사람들, 두 명씩 걸어가는 스님들, 그리고 넓은 장소에 굵고 푸른 나무들 듬성 듬성 있는 대웅보전은 사람은 많았지만 조용하고 여유로웠으며 또한 엄숙해 보였습니다.
개원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남송(南宋) 시기에 세워진 두 석탑입니다. 처음에 멀리서 탑을 보았을 때 목탑으로 착각하였는데, 실제 목조건물을 모조해 지었다고 합니다. 서쪽의 인수탑과 동쪽의 진국탑은 5층 석탑인데 그 높이가 무려 50m에 조금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넓은 사찰 내의 어느 곳에서도 고개를 돌리면 석탑을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까이서 보면 팔각형으로 된 탑에는 정교한 석각이 새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3세기에 중국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가 천주시에 대해서, 이 곳에 모든 부가 몰려있다고 하였고 또한 1346년경 아라비아의 지리학자인 이븐 바투타는 천주시가 세상에서 가장 큰 항구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세계 각지의 물산들이 넘쳐났던 곳입니다. 옛 천주항은 외국 배들이 드나들었던 세계무역항이었고 천주는 유명한 해양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맞이하면서 바다의 주도권이 서양 자본주의 세력에게 넘어갔으나, 그 이전에도 충분히 중국인들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인들이 해외 상인들과 활발한 해상 무역 활동을 펼쳤다는 사실은 강의 시간을 통해 배워왔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해상 무역이 활발했던 과거의 그 지역에 와서 그 나라의 눈으로 다시 한 번 배우고 그 장소를 눈으로 담는 일은, 수업 시간 때 교수님의 말씀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천주시의 개원사를 접하셨는데, 개원사의 양쪽에 있는 높은 석탑이 과거에 배가 천주항으로 들어올 때 등대와 같은 지표가 되어 천주를 찾기 쉽게 만들어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항구와 가까운 곳의 개원사는 배들을 안내하는 든든한 곳이며 두 개의 석탑이 더욱 웅장해 보였습니다.

[사진4] 멀리서 본 인수탑

[사진4] 멀리서 본 인수탑

[사진5] 가까이서 본 인수탑

[사진5] 가까이서 본 인수탑

[사진6]는 홍일법사의 동상입니다. 동상 뒤로는 홍일법사의 기념관이 세워져, 홍일법사가 살아온 세월을 알 수 있는 사진과 함께 그의 독창적인 서체를 엿볼 수 있는 많은 서예 작품들이 걸려있습니다. 홍일법사는 젊은 시절, 글 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서예 등의 예술에도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사가 되어 많은 중국인 예술가들을 길러 내었다고 합니다.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어렵지만 ‘예술교육가’가 가장 어울릴 것입니다.
또한 서양회화를 국내에 최초로 도입하였으며 오선지를 써서 음악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기념관에는 실제로 오선지를 사용한 악보를 걸어놓은 모습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념관 내부의 인체 모델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사진도 인상적이었는데 이 교육법을 미술학교에 도입시킨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사진6] 홍일법사 동상과 기념관

[사진6] 홍일법사 동상과 기념관

[사진7] 고선진열관

[사진7] 고선진열관

다음의 [사진7]에서 보이는 건물은 개원사 사찰 내 동쪽에는 홍일법사 기념관과 함께 있는 고선진열관입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건물 외관만 찍을 수 있었습니다. 총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진열관을 들어가면 1층에는 ‘송해대선’이라 불리는 송나라 시대의 선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규모가 상당하여, 2층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며 배의 내부를 관람할 수도 있습니다. 커다란 배를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 크기를 더욱 실감할 수 있었고 이 크기의 배가 발굴된 것이 신기했습니다. 또한 이 선박은 무역선으로, 배의 내부를 그림과 모형을 통해 잠자는 곳, 그리고 요리하는 곳 등을 재현해 놓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에 발견된 유물들도 함께 전시를 해놓고 있습니다.

처음 고선진열관을 관람한 이후에는 사찰 내에 이러한 배 박물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생뚱맞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개원사의 답사를 전체적으로 끝마친 후에는, 천주시가 과거부터 해양 실크로드의 출발지로 해상 무역에 있어서 중국 내 중심이 되었던 지역임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개원사 내의 고선진열관이 두 개의 석탑처럼 과거의 천주시의 중요성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아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4박 5일의 학술교류 및 현장 실습의 기간 동안 하문과 천주시를 답사하면서 기억에 남지 않는 곳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주시의 해양 실크로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개원사는 코어 사업을 통해 해양인문학의 역량을 기르고 있는 저를 비롯한 우리 학생들에게 가장 기억될 만한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국사를 전공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중국을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던 저에게, 해외 학술 세미나와 현장 답사를 통해 직접 중국의 유적지를 답사하고 유물을 관람하게 된 것은 학문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열의를 더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대학원생과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기초모델 학술교류 및 현장 답사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위치보기

참고문헌
- 조영록, 2014, 「구산선문의 원류를 찾아서 2 중국해역의 우리 불적 답사기」, 동국대학교 출판부
- 이송란, 2002, 「중국 천주 개원사의 인도식 쌍주와 바닷길 무역」, 미술사연구 16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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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희
  • 소속 : 사학과
  • 이메일 : g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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