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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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동 :일제가 만든 거리
대청동 근대건물 거리북항의 부두로 곧게 이어지는 ‘큰 길’인 대청로는 일제에 의한 도시 형성을 잘 보여주는 장소이다. 일제시기 일본인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은행을 중심으로 도심을 형성하였고, 해양도시들은 여기에 더하여 항구가 그 축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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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근대 식민자본의 흔적 – 구 한국은행 부산지점과 부산근대역사관
인천, 군산, 목포, 울산, 마산, 부산 등 한국의 해양도시는 대부분 일제시대에 일본과의 교역, 특히 미곡의 송출을 계기로 현대적인 해양도시로 변모했다. 이 시대 문화의 지층은 최근 각 도시들에서 활발하게 복원되고 있다. 비록 그 흔적이 많지는 않지만 부산의 ‘원도심’에서도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식민지 시대 조선은행이 위치했던 한국은행 부산지점과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위치했던 부산근대역사관은 그 대표적 사례다.
구 조선은행–한국은행
구 동양척식주식회사-부산근대역사관
대청동은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큰 길’이다. 그 중심에는 두 개의 은행, 즉 조선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위치했다. 대부분의 개항도시에서처럼 이 두 은행은 도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금융을 매개로 하는 수탈의 형태를 띠었다는 것을 웅변한다. 일본이 식민화한 근대 도시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Oriental development Company)와 식산은행을 축으로 하여 도시 건설이 이루어졌고, 이들이 있는 곳이 곧 그 도시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그러한 근대 식민도시들 중 해양도시들은 이 2개의 주요 건물과 항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삶의 터전이 형성되었다. 한국의 많은 항구들이 일제시기 근대적 항구로 재탄생 혹은 만들어진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다른 해양 도시들에 가더라도 이 세 축 ‘항구의 부두’,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을 중심으로 도시들의 과거로 떠나볼 수 있다.
조선식산은행은 일본 왜관이 있던 자리로서 해방이후 한국은행 부산지점이 되었다. 한국은행 부산지점은 이제 문현 금융단지로 이전했지만 그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다. 물론 그 건물이 일제시대 조선은행 부산지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형태나 위용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운명은 더 복잡해서 해방 이후에는 미국문화원으로 변모했다. 1982년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역사적 현장이 되기도 했던 그곳은 지금은 한국에 반환되어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남았다. 부산근대역사관은 아마도 일제시대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의 기본적인 외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관은 3층 건물인데 2층과 3층이 주전시실이다. 인상 깊은 것은 북항과 남항 그리고 영도의 해안선이 계속되는 매축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중앙대로가 애초에는 해안선이었고 부산역과 제1부두가 모두 매축을 통해 새로 만들어진 땅 위에 건설되었던 것이다.
구 한국은행부산지점 (구 조선식산은행)
바로 옆 근대역사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을 증명함!
좌측 구 조선식산은행 우측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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