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OP

도시속의 바다 바다 옆의 도시 해양도시 인문지도

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역사

역사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부터 부산근대역사관까지

부산근대역사박물관
  • 탐방일시 :2017.10.27
  • 조회수 :1154
  • 좋아요 :1
  • 위치
    부산 중구 대청로 104
  • 키워드
    근현대사, 부산근대역사, 남포동, 일제강점기, 미군정, 부산역사

왁자지껄한 국제시장 입구를 지나면 가로수길이 펼쳐진다. 중앙역 방면으로 조금 걷다보면 부산근대역사관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등 역동적인 역사를 걸으며 부산은 현재의 모습을 갖춰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0년 대 부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치욕이라 생각하는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부산근대역사박물관

상세내용보기

부산근대역사관 전시를 보면서

1층에는 1900년대 사진이 전시돼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부산의 근대역사 특히, 일제강점기에 대한 유물과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 입구에 부산의 역사와 한국사를 연계시킨 연표가 펼쳐지는데 1875년 운요호가 부산에 도착하여 부산포가 개항되는 것부터 근대역사가 시작된다.

부산근대역사관 입구

부산근대역사관 입구

1층에 전시중인 1900년대 사진. 이 시절에 철교가 있었다는 것에 놀랬다.

1층에 전시중인 1900년대 사진. 이 시절에 철교가 있었다는 것에 놀랬다.

2층 입구에 부산근대역사연표

2층 입구에 부산근대역사연표

거주지 비교

거주지 비교

일제강점기 시절의 부산

1876년 부산포 개항이후 용두산은 중산으로 불리웠다. 영선고개는 한국인의 거주지이고 평지나 항구에서 가까운 곳은 일본인의 거주지가 됐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극명한 차이가 보인다. 일본인들의 거주지인 용두산과 광복동 일대는 매축을 통해 일궈진 곳이다. 부산항은 항구에 비해 시가지가 좁아 매축, 매립 및 착평이 많은 곳에서 진행됐는데 한국인들의 거주지였던 영선고개(영선산) 또한 착평을 통해 이동이 용이한 평지로 바뀌었다. 그 자리가 현재 중앙동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의 수난에 대한 영상. 이 영상에서 크게 다룬 부분은 위안부문제였다. 전체 위안부 중 부산·경남에서 57%에 달하는 여성이 끌려가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이 영상 자체가 감정에 극히 치우쳐있고 개연성이 없다고 느꼈지만 위안부를 다룬 부분만은 이해가 쉬웠고 우리가 더 깨어있어야 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의 수난에 대한 영상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의 수난에 대한 영상

일제는 본격적인 부산 수탈을 위해 행정적, 금융적, 경제적 지배를 서서히 진행한다. 행정적 지배를 위해 부산부청을 설치하고 낙동강 하구에 둑을 쌓음으로서 김해평야를 확장했다. 제국주의의 시대적 변모에 따라 일제의 부산 수탈은 식량 수탈에서 군수물자, 노동력 수탈로 변화한다. 식민주의가 절정이었던 30년대에 대륙침략정책을 위한 공업화는 조선인 노동력 수탈을 기반으로 추진되어 조선인 노동자들의 반자본투쟁은 반일·항일운동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일제강점기 무역의 골격은 조선쌀과 일본 공산품의 교환이었다. 하지만 일본 공산품은 조선의 가내수공업을 파괴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모여든 일본상인들은 상설시장을 개설하였다. 3·5일장을 다닌 조선상인들은 크게 위축되었다. 더군다나 매축을 통해 이동이 편했던 대청동에 일본인의 상점이 들어서고 조선인들 또한 그 상점을 이용하게 됐다. 이 설명을 보는 순간 나는 현재 우리나라의 전통 빵집이라는 것이 일제강점기 때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빵집을 광복이후 한국 사람이 물려받아 이어진 것이라는 수업시간 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부산근대역사박물관의 컨텐츠를 보면서

부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알게된 새로운 사실이 참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은행에 대한 것이었다. 부산에 일본상인이 모여들면서 많은 일본은행이 설립됐다. 물자수출입이 자유로운 부산에 위치한 제일은행이 곧 중앙은행역할을 했다고 한다. 일본인에 비해 자본조달이 어려웠던 조선상인은 계를 만들어 자금을 융통하였고 최초의 지방민족은행은 경남은행이라고 한다.

부산근대역사박물관은 전시 콘텐츠가 참 좋은데 그 중 하나가 부산 매축·매립과정을 보여주는 지도와 1938년 부산 시가지를 보여주는 모델이었다. 부산항 매립과정을 단순히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어떤 부분을 매립했는지 전구가 깜빡이며 위치를 밝혀주고,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시가지와 건물이 들어섰는지까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부산항 매립과정 지도와 설명관

부산항 매립과정 지도와 설명관

1938년 부산시가지를 압축, 재연해놓은 관

1938년 부산시가지를 압축, 재연해놓은 관

1938년 부산 시가지 미니어처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부산에 백화점이 있었다는 것, 여러분은 알고 있었는가? 눈깔사탕과 일본 공산품을 전시·판매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급건물이 부산에 있었다는 것이다. 동래에서 전차를 타고 백화점을 구경하러 올 만큼 부산의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극장도 있었다. 부산극장 뿐만 아니라 태평관, 보래관, 행관 등 극장이 있었고 서민들도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일제강점기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내가 근대역사관을 관람하고 나서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일본의 조선 점령이 마냥 수탈과 치욕이기만 했을까. 백화점이 들어서고, 평야가 넓어지고, 시가지가 개발되고 상점이 들어서는 등 조선의 근대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부분은 있지 않을까하고. 제국주의의 역사가 있었던 국가에서 식민지시절 하 서민들의 생활을 연구하는 분야에 대한 궁금증이 증가했다.

3층에는 미국과 부산의 관계에 대한 전시가 이어진다. 전시관 초입에 역사관 자체의 역사가 나온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마산지점이 부산으로 이전하여 설립된 것이 이 터이고, 미문화원과 미국영사관으로 사용되다 반환운동으로 1999년 부산시의 소유가 됐다고 한다. 그 후 이 터는 부산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재개관한다.

일본과 독일처럼 한국도 전후 전범처벌에 한계를 겪었다는 것을 여기서 처음 알았다. 미국 점령초기 일제행정기구를 정부에 존속시키거나, 일본인을 행정고문으로 쓰기도 했고 친일파 재기용으로 민중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미군 정기 3년동안 한국 실정에 어두운 미군정의 정책혼선, 일본 및 남북 간 경제적 단절로 혼란이 중첩됐다. 그 와중에 일본인 철수와 동포귀환, 부산항 물자에 따라 몰려든 사람들로 인구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식량난, 주택난, 실업난, 살인적 물가상승 등 사회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부산 달동네의 시초인 무허가 판자촌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다.

3층 부산근대거리재현관 입구

3층 부산근대거리재현관 입구

광복동일대를 재현해 놓은 근대거리재현관.

광복동일대를 재현해 놓은 근대거리재현관.

근대거리재현관 안에 있는 일본인의 상점

근대거리재현관 안에 있는 일본인의 상점

전차영상실

내 기준으로 부산에 있는 박물관 중 부산근대역사관을 콘텐츠가 좋은 박물관으로 꼽는 이유는 ‘전차’ 때문이다. 1930년대 광복동 일대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공간 끝에 전차가 놓여있다. 전차 안에서는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애니메이션과 생생한 소리재현을 통해 1930년 대에 전차를 타고 시내구경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2층과 3층에 걸쳐 배운 내용을 전차 안 영상을 통해 총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부산근대역사관에서 가장 좋았던 전차영상실

부산근대역사관에서 가장 좋았던 전차영상실

전차영상실 내부

전차영상실 내부

위치보기

참고문헌
댓글0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