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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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항을 감싸안은 예수 상처럼
부산의 리우데자네이루를 만드는 동항성당남구 우암동의 동항성당은 북항의 대형크레인과 부산항대교의 화려한 조명을 배경으로 예수 상이 세상을 향해 두팔 벌리고 있는 사진으로 유명해서 최근에 부산의 리우데자네이루라며 사진작가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과연 화려하고 멋진 야경을 자랑하지만, 이곳은 6ㆍ25전쟁 직후에도,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도 갈 곳 잃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산의 항구를 그렇게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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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리우데자네이루 – 부산 동항성당
부산에서도 숨은 곳, 숨은 이야기들이 많다. 타향살이로 부산을 산 지 10년이 지나서야 부산의 면면에 색을 발견하게 되었다. 최근에 여러 블로그 사진으로 알게 된 ‘부산의 리우데자네이루’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진 부산의 동항성당도 그 중 한 곳이다.
동항성당 야경 - '한국의 리우데자네이루' 동항성당과 북항 야경: 21세기 동북아 허브라고 일컬어지는 부산항의 북항과 부산항대교의 화려한 조명이 동항성당의 예수상과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화려하면서도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이 정도의 야경을 찍을 수 있다.
부산의 동항성당
부산의 동항성당은 사실 ‘야경’으로 유명해지기 전에도 이미 부산을 넘어 전국으로 유명해진 가톨릭교회이다. 1951년 전쟁 통에 전국의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어 비집고 구겨진 삶을 살고 있을 때, 포구 언덕이 엎드린 소 같다는 우암동(牛岩洞)의 항구마을도 피난민들을 안아 주었다. 하지만 비 피할 곳 없어 소 막사를 내어주고, 처마와 처마가 이어지는 틈에도 판자촌을 잇는 틈을 내어주었던 우암동이었다. 오늘날에도 빽빽하게 들어선 집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곳곳의 공동화장실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동항성당 주변-피난민들을 받아들인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우암동
피난민들이 건물 사이의 작은 틈새를 활용해 집을 지었던 흔적이나 피난민들의 동네화장실에서 유래되어 지금까지도 주민들을 위해 개방된 공동화장실이 눈에 띤다.
동항성당은 그 우암시장 맞은편 골목길을 약간 걸어 올라가면 있었다.
동항성당은 입구에서 본 것과 다르게 제법 넓었다. 1951년에 기존의 공소 신자들과 피난민 신자들이 함께 지은 천막 공소가 소실되자 판자로 다시 공소를 지었다고 한다. 1954년 이태준 야고보신부가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지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본당은 몰려드는 피난민을 수용하기 위해 1957년에 신축한 건물이다. 이 시기 전후한 동항성당은 그야말로 종교와 출신을 따지지 않고 피난민들에게 안식처였다고 한다.
동항성당 본당 - 동항성당 본당 전경
빈민구제의 꿈
외국에서 건너온 천주교와 개신교의 뜻있는 종교인들이 한국의 근현대사에 남긴 아름다운 역사가 많지만, 그 중 한 사람이 1958년에 3대 신부로 독일에서 건너온 하 몬시뇰 신부(독일명 안톤 트라우너)였다. 그는 당시 천주교 신부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부임한 후, 다방면의 빈민구제활동으로 유명하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돌아갈 고향을 잃었거나 가족을 기다리며 정착한 부산의 피난민들은 지역주민과 함께 가난하고 고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고 한다. 부두나 시장에서 하루벌이 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던 사람들에게 간간히 오는 외국의 다양한 구호물자는 가뭄의 단비였을 것이다. 유럽 각지에서 보내온 보급품이 동항성당에 도착하면 종교를 따지지 않고 굶주린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하 신부는 성당 옆 천막에 국수기계를 들여놓고 직접 국수를 뽑기도 했다고 한다. 독일에 있던 하 신부의 어머니 카로리나 여사는 독일에 있던 집과 재산을 정리해 성당 옆에 걸인과 행려병자를 돕기 위해 '사랑의 집'를 짓고 본인은 독일의 양로원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피난민들은 그를 ‘파란 눈의 성자’라고 불렀다.
동항성당 센터 - 구. 사랑의 집. 현재는 마리아피정센터로 변경
그 가난하던 시절에도 배움은 단 하나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사제관이 너무 넓다며 시각 장애우 고아 7명을 길러 공부시켰을 뿐 아니라 독일지인들의 후원을 받아 100여명의 학생들을 후원해서 가난한 나라의 인재로 길러냈다. 여자아이들의 교육이 중요하다며 한독여자실업학교(현재는 해운대로 이전한 부산문화여고)를 동항성당 옆에 세웠다. 이러한 그의 활동으로 인해 이미 2006년 교황 베네딕토 2세에 의해 몬시뇰(교황 명예의 고위원로사제의 호칭)을 수여받았고, 2015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 받았지만, 우암동 주민들에게는 ‘파란 눈의 성자’라는 말로 더 유명하다.
이렇게 싹틔운 빈민구제에 대한 꿈은 1986년에 부임한 김수영신부가 부랑민들의 정착을 위해 동항성당 내에 ‘평화의 집’을 세우게 되면서 다시 꽃피우게 되었다. 오늘날 부산 우암동, 서울 명동, 밀양 삼랑진, 여주 등지로 확대된 <오순절 평화의 마을>의 씨앗이 바로 남구 우암동 동항성당이었던 것이다.
부산 북항의 밤
부산 북항에 기세등등한 크레인에 불이 하나둘씩 켜진다. 부산항 대교의 화려한 LED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면 부산의 북항은 한국 경제의 상징처럼 화려하게 반짝인다. 이를 놓칠세라 급하게 예수상이 보이는 동항성당 뒤쪽 골목으로 급하게 올라갔다.(반드시 동항성당을 나와서 골목 밑에서 다시 뒤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동항성당 뒤쪽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을 찾다가는 사제관을 무단침입하게 되니 주의할 것!!) 길고양이들이 골목마다 지키고 섰던 골목을 통해 드디어 동항성당 뒤쪽 언덕에 올라갔다. 마침 여기서 오랫동안 야경찍으시는 분도 먼저 자리를 잡으셨다. 많이들 찍는 예수 상을 배경으로 나도 화려한 북항의 모습을 찍었다. 한 컷, 두 컷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암동 골목골목에도 저녁식사 준비하는 우암동 마을에도 하나둘씩 불빛이 정겹다. 여름을 처음 겪어본 아기 고양이가 이쁘다. 어느새 화려한 북항 사진은 뒷전이고 함께 온 선생님과 미리 사가지고 온 맥주 한 캔을 땄다. 아기고양이가 어느새 다가와 몸을 비빈다. 북항의 화려한 불빛도 좋고 한국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하는 저 부두의 거대한 크레인도 좋지만, 다정하게 밝은 가로등과, 고단한 하루 마치고 들어서는 집으로 향하는 골목과, 그 골목에서 오랫동안 갈 곳 없고 가난하고 사람들을 안아주었던 저 예수상이 아름다웠다.
그러므로 추천한다. 부산항을 감싸안은 예수 상을 배경으로 야경 찍으러 동항성당과 우암동을 한번 오시라고..
동항성당 골목집-북항의 화려한 야경과 밥 짓는 냄새나는 골목길: 가정집에 불이 하나하나 들어온다. 저녁상 앞에 다들 고단한 하루 끝낸 가족들이 둘러 앉아 있을까?
동항성당 고양이-동항성당 뒷길에서 만난 아기고양이: 우암동 골목골목마다 고양이가 한 마리씩 지키고 서 있다. 낯선 사람이 무서운지 근처를 배회하다가 자꾸만 스치니 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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