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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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다, 나의 오랜 '갯마을'
신평소공원전철역을 비롯하여 신도시까지, 부산 기장에 위치한 일광은 요새 개발로 한창 바쁘다. 그렇지만 기장 앞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일광의 작은 마을 입구 앞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원이 있다. 오영수 작가의 소설 ‘갯마을’의 배경이기도 하였고 이 소설을 바탕으로 1965년 부산 어촌의 모습을 오롯이 담은 영화 갯마을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그 곳.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시선으로 바다의 의미를 생각하며 그 공원, 그 바다를 걸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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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같은 나의 부산, 나의 바다
잃었을 때 더욱 간절히 그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 젊음과 건강이 그 대표주자 격이고 문자 그대로 생명을 잃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초신성, 헤어진 연인, 쓸쓸한 밤 갑자기 생각나는 연락 끊긴 동창생의 얼굴, 작년까지 분명 즐겨 들었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 노래의 제목, 필통 사이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다가 필요할 때 사라져버리고 마는 지우개, 한쪽만 고장나버린 이어폰, 그리고 고향.
고향.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따르면 ‘1.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4.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감히 나의 언어로 정의를 내리자면 고향은 잃었을 때 그 빛을 발하는 장소다. 사무치게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 곳, 빼앗긴 들에 봄이 오길 기다리며 노래했던 그 곳.
그러고 보면 한 평생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 토박이인 나로서는 아직 고향의 의미를 몸소 체험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잃어보기는커녕 부산은 내 삶에 공기 같은 존재로, 내가 사는 곳이 부산이었고 나의 생활은 대부분 부산 안에서 이루어졌다. 부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유년기를 보냈던 다대포 앞바다, 무서운 파도로 내 안경을 몇 번이나 집어삼킨 해운대, 대학 시절 밤낮없이 맥주 한 캔 들고 배회했던 광안리, 첫 이별의 쓰디쓴 눈물을 삼켜주었던 일광해수욕장까지.
강산(江山)은 변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고구려 주몽이 했다는 이 말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변한다는 뜻이지만 그 속뜻은 잠시 제쳐두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집중해보자. 강산(江山)은 강과 산이라는 뜻으로 문자 그대로 보면 10년이면 강도 산도 변한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태산 같은 높은 산은 천재(天災)로 무너졌다거나 인재(人災)로 불에 타 예전 모습을 잃었다는 소식과 산과 내륙을 가로질러 흐르던 강줄기가 차가운 콘크리트에 덮여버리거나 댐에 막혀 그 물길이 더 이상 흐를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간간이 접할 수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주몽이 산을 보고 한 말이라 하니 만약 그가 바다 근처에 있었다면 바다가 변한다는 말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바다는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함없어 세월 앞에 변하는 모든 것들의 대변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백사장 모래가 유실되거나 간척사업에 갯벌이 없어져 해안선이 변하기는 하지만 어딘가의 바다가 말라버려 그 자리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일광 동백 방파제
갯마을과 신평소공원
늦은 8월 어느 토요일 밤 10시.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등학생 때 대구에서 전학을 온 녀석으로 내륙 지방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바다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가진 녀석이다. 그 애정이 얼마큼인가하면 이 날 밤, 우리는 토스트를 먹으러 송정에 들렀다가 울산 간절곶에서는 햄버거를 먹었고 마지막으로 기장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그 존재조차 몰랐던 신평소공원에서 마무리 운동까지 알차게 해안선 여행을 했던 것이다.
신평소공원은 기장군 일광면 신평마을에 위치한 공원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여느 공원과는 달리 공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배 조형물과 공원 앞으로는 기장 앞바다가 펼쳐져 있어 육지에 존재하는 다른 공원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튿날, 10년간 기장군민으로 살아온 나의 좁은 식견에 탄식하며 신평소공원에 대해 나름의 조사를 해보았더니 오영수 작가의 소설 ‘갯마을’과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김수용 감독의 영화 ‘갯마을(1965)’의 배경이 된 곳이었다. 비교적 감상에 시간이 걸리는 소설은 천천히 읽기로 하고 영화부터 감상하기로 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결혼한 지 10일 만에 풍랑에 남편을 잃은 청상과부 ‘해순’이 새로운 남자 ‘상수’를 따라 갯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과부가 되어 다시 갯마을로 돌아온다는 것으로 영화 내용 자체는 시대적 괴리가 있어 현대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고 스토리의 개연성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부산 사투리와 마을 사람들 전체가 동원되어 그물질로 고기를 잡아 올리는 1960년대 어촌마을의 모습을 비롯해 점점 사라져가는 기장 해녀의 모습까지 꽤나 볼거리가 쏠쏠했다. 그 중에서도 나의 이목을 끈 것은 영화 속 1965년의 기장 앞바다의 풍경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한 가지 가슴 뛰는 질문이 떠올랐다. ‘1965년의 바다는 2017년에도 과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갯마을의 배경이 된 신평마을. 신평소공원에 팻말이 서있다.
신평소공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배조형물, 금방이라도 바다를 가를 것 같다.
바닷놈은 바다로 돌아간다.
의문을 풀기 위해 날씨가 좋은 날 카메라를 챙겨 다시 신평소공원을 찾았다. 하늘과 이마를 맞대고 있는 새파란 바다와 바다를 가를 듯, 하늘을 날아갈 듯 자리하고 있는 뱃머리까지 밤의 암막을 걷어낸 낮의 신평소공원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공원 전체 풍경을 카메라에 몇 컷, 눈 속에 몇 장 담고 해순이 물질하던 바다를 찾아 나섰다. 영화의 한 장면을 갈무리해둔 자료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생각에 순간 눈앞이 깜깜해진 순간,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익숙한 모습의 해안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영화 갯마을의 한 장면
해순이 물질하던 바다.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잠시 사족을 달자면 나는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음악을 사랑하고 문학작품들과 예술작품들을 사랑하고 우리네 판소리를 사랑하며 제일을 꼽자면 한글을 사랑한다. 570년 전의 문자가 전해져 아직도 그 문자로 소통하며 산다는 것에 적잖이 감동 받아 전공으로 국어국문을 선택했으며 무사히 졸업까지 한 나로서 50년 전의 해안선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일광 앞바다를 마주한 순간, -과장 조금 보태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했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시대와 시대를 초월해 이어지는 것만큼 누군가 그 자리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은 가슴 설렐 일이며 기대되는 일이다. 결혼한 지 10일 만에 바다에 남편을 잃은 청상과부 해순도 바다가 그리워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모두 미역밭 같고, 콩밭에 가면 콩이랑이 온통 바다로 보인다.’하였고 풍랑에 형을 잃은 해순의 시동생 성칠은 ‘바닷놈이 배 안타고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푸념을 늘어놨으며 바다에 남편도 자식도 떠나보낸 해순의 시어머니도 ‘저 소리, 저 파도소리 안 듣고 어떻게 사냐?’며 한사코 바다를 떠나기를 거부한다. 어쩌면 누구보다 바다가 미웠을 그들이 바다를 떠나지 못한 것은 그래도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려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영화를 보는 내 들었던 의문을 해소했다는 쾌감과 바다는 언제까지고 나를 기다려 줄 것이라는 안도감이 나를 덮쳤다. 언젠가 내가 부산을 떠났을 때, 아니면 진정으로 고향을 잃었을 때 그 자리 그 곳에 그대로 있어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퍽 심심한 위로가 되었다. 평생 부산에서, 바다에서 나고 자란 나는 바닷놈으로 나도 언젠가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바다야, 그 때 그대로 지금 이대로
나의 부산과 나의 바다는 아직 잃어본 적이 없어 별다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곳으로 처음에 썼던 것과 같이 아직 고향이라기에는 뭐한, 아직은 공기 같은 존재다. 그런 나의 부산과 바다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딱 한가지다. 공기 같은 나의 바다야, 그 때 그대로 지금 이대로 있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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