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거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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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체험관 속 고래와 인디아나 존스-장생포고래생태체험관
장생포고래생태체험관고래박물관을 넘어 다음에 나타나는 고래생태체험관에서는 살아있는 고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도 살아있다. 대체 어쩌다가 인디아나 존스는 장생포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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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박물관을 동선에 따라 나오면 박물관 뒤편으로 나오게 된다. 이 곳에서는 박물관 3층에서 볼 수 있었던 바다가 정확히 어떤 바다인지를 알려준다. [사진 1] 또 이 해면을 직접 왕복하는 유람선 역시 운행 중이다. [사진 2] 그 후 고래생태체험관 쪽으로 계속 걷다보면 장생포고래문화특구 기념 탑과 같은 여러 탑들을 지나 고래생태체험관에 도착하게 된다. [사진 3]
[사진 1] 한국계 귀신고래 회유해면
[사진 2] 고래바다여행
[사진 3] 고래생태체험관
생태체험관은 생태체험관이란 이름 보다는 조금 더 수족관에 가까워 보였다. 3층 규모의 박물관 공간 중 절반이 돌고래들이 뛰어노는 유리 수조여서 이 공간이 이 박물관이 가장 많이 보여주고 싶은 공간이라는 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 4]
돌고래에 대한 설명을 제쳐 둔다면, 작은 물고기들을 풀어 둔 수족관이 있었고, 어린이들을 위한 4D 영화관이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과거의 장생포의 포경업, 포경 관련 건물, 포경업 과정 등이 미니어처를 이용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 5]
[사진 4] 돌고래
[사진 5] 미니어처
사실 생태체험관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이 곳은 포경업의 역사와는 크게 관련이 없고 도리어 아이들에게 ‘고래’라는 존재가 얼마나 인간과 친한 존재인지를 말해주는 데 그 목적이 있어 보였다. (사람들을 보고 빵긋 웃는 표정을 보이는 돌고래, 사육사와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 등...) 하지만 장생포의 포경업과 그의 역사는 생태체험관 바깥에서 진정 드러나고 있었다.
제목에서 말한 ‘인디아나 존스’가 그것인데, 인디아나 존스의 모티브 중 하나인 미국의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1884년 1월 26일- 1960년 3월 11일) 의 흉상과 [사진 6] 인디아나 존스의 동상들이 있었다. [사진 7] 앤드루스는 몽골의 고비 사막에서 공룡알 화석을 발견하고, 고비 사막의 붉은 절벽을 ‘불타는 절벽’이라 명명하는 등 고비사막 – 몽골 – 중국 등의 탐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미국 자연사 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한국에 온 것은 고래 때문이었다. 역사 속에서, 그리고 고래박물관 속에서 나타나듯 고래는 매우 가치가 높은 물고기다. 그래서 앤드루스는 울산으로 향했고, 마침내 울산에서 1912년 울산의 한국계 귀신고래의 존재를 최초로 알렸다.1) 그에 의해 알려진 귀신고래, 그가 겨울마다 돌아오는 해면이 바로 박물관 앞 해면인 것이다.
[사진 6]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흉상
[사진 7]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동상
귀신고래 뿐 아니라 수많은 고래가 이 곳으로 몰려들 것은 당연했고, 1912년, 당시 한반도를 지배하던 일제는 이곳에서 1911년부터 1933년까지 한반도 연안에서 귀신고래 1304마리를 잡은 것으로 집계했다. 이후에도 남획이 계속돼 결국 1970년대 한국 연안에서 귀신고래는 사라졌다.2) 탐험가의 정신이 결국 한 종의 동물을 그 지역에서 몰아낼 뻔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장생포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크게 성장했고, 지금의 장생포를 만들 수 있었다. 흉상 또한 그 것을 감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장생포는 단순한 항구에서 앤드루스로 인해 포경 산업의 중심지, 그리고 고래문화특구로 성장했다. 나는 우리나라, 혹은 세계의 지금은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는 앤드루스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앤드루스의 흉상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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