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거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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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박물관과 인천에서 바라본 일몰 -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1960~70년대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테마로 한 체험중심의 전문박물관이다. 수도국산 달동네는 한국전쟁과 1960~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며 크게 번성하였으나 2000년대 후반 도시 재개발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그러한 달동네 속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쉽도록 전시하였다. 이 박물관을 통하여 인천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해왔는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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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어원을 모른 채 단어로만 훑어보자면 그저 낭만적으로만 느껴질 수도 있는 단어일 것이다. 말 그대로 높은 산 위 달과 제일 가까운 동네라고도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내 설명문에 따르면, ‘달동네’는 ‘높은 산자락에서 판자촌 주민들이 임시천막을 쳐 방에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일 정도의 동네’라 그러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 ‘도시 저소득층의 집단 밀집 주거지’와 같다고도 표현하고 있었다.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이러한 달동네의 역사와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사람들에게 인천 속 달동네가 생겨난 시대상과 함께 그 당시 사람들이 격동의 산업화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하였는지, 어떠한 일을 해내가야 했는지, 어떠한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 등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공간이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1층 전시실의 옛 70년대 물품들이 눈에 띈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입구에서
처음 이 박물관 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1층에 전시된 60‧70년대 사람들의 일상물품 전시품들과 다방의 모습, 그리고 그 당시 학생들이 입었던 옛 교복을 입어보며 내가 직접 겪어보진 못했으나 매체를 통해 느껴왔던 옛 시대의 추억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코카콜라가 아닌 칠성 코라, 미국에서 들여온 튼튼한 석유박스, 생강차나 인삼차를 팔곤 했던 다방의 모습들… 이러한 전시품들은 물론 일상에선 접해볼 수 없는, 색다른 볼거리로서는 적당했지만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이라는 이름과는 동떨어진 전시실이 아닌가 의아했던 나는, 이윽고 지하 1층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지하 1층 실제 달동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실의 모습이다.
전시관에 전시 되어있던 ‘괭이부리말 아이들’ 책
수도국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한참을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이후 안내원분이 인천에 왔다면 꼭 석양을 바라봐야한다는 말씀에 감사를 표하며 일정을 옮긴 후 추천받은 자유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며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서 내려다보는, 하늘 꼭대기까지 보이는 공간 속 저 멀리 까지 붉게 번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 석양 속에서 비치는 인천의 모습에는 달동네에서 살았을 수많은 사람들도 함께 했으리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토록 반짝이는 도시 속에서, 어둠에 잠겨들어 달과 함께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지금은 모두가 석양에 가라앉아 침묵과 평화가 함께하고 있지만 이내 밤은 사람들이 피워낸 불빛으로 야경을 뽐내며 빛나게 만들 것이다. 이곳은 산업화로 사람이 살 곳을 얻고 살 곳을 잃는 모순적인 공간이지만, 그럼에도 그 꿋꿋이 세상의 희망을 잃지 않고 빛나는 삶의 불꽃들이 가득한 공간이기에.
바다 위, 수많은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불꽃이 피워 올린 듯한 석양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나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저 밑에서 바라보는 하늘과는 차원이 다른 풍경이었다. 풍경을 보기까지의 오르막길이 고되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그만큼 아름다운 바다가 우리를 맞이하며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인천의 저녁이라고, 이것이 인천의 아름다움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던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인천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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