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망굴이 바라보는 탐욕의 바다
해망굴은 바다를 바라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망굴은 일제의 탐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바다는 넓고 깊다. 바다는 그렇기에 많은 이미지가 있다. 넓은 바다의 포용, 거친 바다의 무서움 등의 관념이 혼재되어 있으며, 많은 관념 속에는 탐욕도 지니고 있다. 바다에 띄워진 배는 탐욕의 산물이며 배들의 목적은 결국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것이다. 바다는 언제나 탐욕을 표면에 띄우고 있다. 고깃배들이 더 많은 생선이 잡히기를 기원하고, 콜럼버스가 향신료 때문에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그리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함대까지 탐욕은 실로 다양하다.
군산에는 ‘해망굴(海望屈)’이라는 터널이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굴’이라는 뜻으로 군산 시내와 바다를 연결하는 터널이다. 한쪽 출입구는 군산 앞바다를, 다른 한쪽은 군산 시내로 연결되어 있다. ‘바다를 바라보다’를 표면적으로 생각하면 해망굴은 자칫 낭만적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해망굴이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해망굴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 모이는 물자를 쉽게 반출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1) 전라도에서 갖가지 물자가 군산에 모였고, 모인 물자는 탁한 바다를 통해서 일본으로 갔다. 해망굴은 바로 일제의 탐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군산 앞바다는 탐욕의 바다였다. 자그마한 항구였던 군산에 탐욕으로 도시를 세웠다. 수많이 들어오는 물자를 일본으로 수송하기 위해서 해망굴은 튼튼하게 지어졌다. 해망굴은 결국 탐욕의 바다를 바라보기 위해서 더 나아가 바다 넘어 탐욕의 나라를 위해 튼튼히 설립된 것이다. 너무 튼튼히 지어진 나머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이곳에 부대 지휘소를 짓기도 하였다. 이에 연합군이 이곳에 폭격을 가하였고 그 흔적이 해망굴 입구에 있다.
해망굴의 내부는 튼튼하다. 너무 튼튼한 나머지 한국전쟁 때 인민군의 지휘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튼튼히 지어진 해망굴을 통해 일제는 자신들의 욕망을 바다로 옮겼다. 군산 앞바다의 특징을 보면 일제의 탐욕의 크기를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탁류 얼러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은 다 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채만식 [탁류]).”
해망굴이 바라보는 바다는 탁류이다.
군산 앞바다는 탁류이다. 금강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퇴적물과 함께 조차 때문에 하루에 2번 갯벌이 드러난다. 바다가 사라지면 바다 위에 떠있던 배들은 바다 아래에 있는 갯벌에 갇힌다. 자연적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군산을 철저하게 욕망의 도시로 만들었고 그 욕망을 탁한 바다 위에 올렸다.
해망굴은 지금은 군산의 고즈넉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해망굴 위에는 공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평온하게 걸어 다니기도 하고, 그 공원에서 군산의 바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평범한 바다처럼 보이지만 80년 전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차에 갖가지 재화를 싣고 이 터널을 지나 군산항으로 옮기고, 바다 위에 있는 배에 자신들의 탐욕을 실어서 자신들의 나라로 보냈을 것이다.
해망굴은 탐욕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관광지로 변했지만, 아픔은 그대로 남아있다. 해망굴이 지어진 배경을 알고, 그곳에서 바라본 바다는 더 이상 바람 따라 물결이 살랑 흔들리는 바다가 아니었다. 그곳은 탐욕으로 탁해진 바다로, 꿈이 깨어졌던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