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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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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 - 토루

토루
  • 탐방일시 :2018.01.31
  • 조회수 :861
  • 좋아요 :0
  • 위치
    福建省漳州地区南靖县书洋镇
  • 키워드
    토루, 전통민가, 중국, 복건성, 남경

이 곳은 과거 미국이 위성으로 보았을 때 핵 기지로 의심을 받은 곳으로 조사 이후 주거용 건축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 200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객가인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한 가문이 모두 그곳에 살고 있으며 일직선대로 한 일가가 살고 있다고 한다.

남경토루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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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토루1

남경토루1

토루(土樓)는 15세기~20세기에 걸쳐 지은 46채의 가옥으로, 타이완 해협 내륙에 있는 푸젠성 남서쪽에서 120㎞ 떨어진 지역에 있다. 쌀, 차, 담배 경작지 사이에 흙으로 지은 토루는 방어 목적의 집단 주택이다. 여러 층으로 된 토루는 안쪽에 개방형 마당이 있고, 마당을 중심으로 원형이나 사각형 모양으로 건축되었다. 토루의 출입구는 단 하나이며, 1층 이상에만 바깥으로 난 창문을 만들었다. 요새화된 높은 진흙 외벽에 기와지붕을 얹었고 널찍한 처마가 있다. 한 채의 토루에 최대 8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토루 한 채에 한 씨족 전체가 살면서 마을 단위의 기능을 했기 때문에 ‘씨족 소왕국’ 또는 ‘번잡한 소도시’라고도 했다. 가장 정교한 건축물은 17세기~18세기에 만든 것이다. 토루 내에서는 가족 단위로 수직적으로 구분하여 거주하였는데, 한 가족 당 한 층에 있는 방 2개~3개씩을 사용했다. 외관은 단순해 보이지만 내부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장식이 많은 경우도 있다.

남경토루2

남경토루2

토루는 공동생활과 방어 조직의 형태를 지닌 건축의 전통과 기능을 보여 주는 특별한 사례이다. 특히 자연환경과 조화로운 관계를 지녔다는 면에서 인류 정주 공간의 뛰어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토루의 벽은 항토(夯土:달구질을 통해 흙을 다져 쌓는 방법)로 만들어진 것으로 대다수 중국 전통 목조구조처럼 주위를 에워싸는 구조가 아닌 진정한 내력벽이다. 또한 종족이 모여서 거주하는 대형의 군체누방 건축으로 하나의 주호가 단독으로 거주하는 단일의 작은 건물이 아니다.

대개 언론매체에서는 이러한 토루를 모두 객가 토루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사실과는 다소 다르다고 한다. 이는 객가인들의 토루가 가장 먼저 소개되었기 때문이며, 수많은 복건성 민남인들도 토루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토루의 유형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굉장히 많은 유형이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원루로 현지주민들은 이를 원채라고 부른다고 한다. 원루는 복건 토루 가운데 가장 특이한 형식으로 1층은 보통 식당과 주방, 2층은 창고 3층부터는 침실 등으로 사용하는데 최근에는 혼합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편 이 토루가 만들어진 가장 주된 이유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방어이다. 토루 안에는 곡식창고는 물론 우물과 가축까지 함께 지냈고 이에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장시간 방어가 가능했다. 이 토루에 대하여 유엔 산하 유네스코의 고문으로 있는 사람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신화와 같은 산지의 양식”이라는 찬사를 보냈고, 도쿄 예술대학의 한 교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비행접시”라고 했다. 흥미로우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은 앞서 말한 ‘원’ 모양이 왜 생겨난 것인가였다. 방어 때문에 원루를 택했다는 설과 동아시아 전통 우주론의 기본 명제인 천원지방(天圓地方)과 연관되었다는 견해도 있었다.

남경토루3

남경토루3

토루는 그동안 봐왔던 전통건축과는 외형적으로도 그 의미로도 낯설었기에 더욱 새롭게 받아들여졌다.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인근의 산간지방은 도적떼들이 상습적으로 출몰했고, 과거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러한 형식의 주택을 만들어낸 것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20세기 말에 와서야 그 존재가 밝혀졌다는 사실이었다. 그 정도로 토루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 스스로를 감추고 살았고 그렇기에 이토록 신비로운 것이 아닌가 싶다. 답사 당일에는 기상이 매우 좋지 않아 이동하는 데 다소의 불편함이 있기도 했지만, 비가 왔기에 토루와 인근의 장수 마을의 풍광이 색다른 운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나의 성과도 같은 토루는 인간의 무궁무진한 능력에 대한 또 한번의 경이로움을 낳았다.
토루를 향해 가던 길은 4일차 되던 날이었다. 그간 남보타사, 중산로, 하문대학 등 푸젠성 곳곳을 답사해보았다. 하문공과대학 학생들과의 세미나를 통해 해양에 대한 다양한 시선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토루에 대해서는 사실 가기 전에는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저 TV 프로그램인 신서유기에서 나왔던 적이 있었고 굉장히 신기하게 생겼다는 것, 처음 위성으로 발견되었을 때는 핵 기지로 의심받았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상으로 처음 접했다 보니 그 당시에도 그냥 와 저런 것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직접 와서 봤을 때는 정말 경이로움이 들었다.
현대에는 무수히 많은 건축자재들과 설비기기들이 인간의 뛰어난 건축예술을 돕고 있다. 아니, 사실상 그 기기들이 건축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기기들은 인간들이 만들고 설계한 것이기에 현대의 건축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에 대해서 부인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현대의 건설기기들도 없던 시절에 이토록 거대한 하나의 요새를 한 일가가 구축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군대를 다녀온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산성 등의 경우에는 수많은 노동력이 동원되고 ‘안되는 것은 되게 하라’라는 요구가 하달되었을 것이기에 어떻게든 만들 수는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가문이 들어가서 사는 토루는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왜구에 늘 시달렸던 해안으로부터, 도적에 시달리게 되는 산속으로부터 스스로의 가문을 보존하고자 과거 중국인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남경토루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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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편으로 국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리바이어던에서 말하고 있듯이 국가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는 이들이 고통에 몸부림칠 때 그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고자 토루라는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21세기에 이른 오늘날 국민의 안위는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현대국가의 과제이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 1조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렇다. 이는 홉스가 말했듯이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을 만든 주체, 창조주는 그 국가에 사는 국민이다. 창조주는 창조물에 대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창조주의 보호를 위해 탄생한 창조물은 주권을 가진 존재를 지켜야만 한다. 근대 시기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이번에 다녀온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무수히 많은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러할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국가 스스로도 붕괴하고야 마는 것이다.

남경토루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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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대국굴기에서 찬란했던 고대의 영광이 어쩌다가 근대의 그림자로 퇴색되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보았다. 그들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고대 중국은 명실상부 세계 최강이자 세계 최고, 세계 최대의 국가였다. 모든 문물은 중국을 통했고, 서양 역시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렴풋하게 중국을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었다. 과장을 보태어 말하자면, 한 무제의 정벌로 흉노는 쫓겨났고 그 일파인 훈족이 게르만 족의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훈족을 감당하지 못한 게르만 족은 유럽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서양인들이 자부하는 그 위대한 로마제국은 게르만에 의해 점점 무너졌다. 이는 과도한 억지가 될 수 있으나 고대 중국의 강건함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사료된다. 대국굴기에서 언급했듯, 15세기 이후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던 국가들은 모두 해양을 지배했던 국가들이었다. 매우 흥미롭게도 중국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 역시 명대의 해금정책이 실시되면서였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는 도태되고 낙오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낯선 것을 환영했던 원 제국과 청 제국은 소수의 이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륙을 차지했고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중국 왕조로 남아있다.
카(E.H.Carr)는 말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조지 버나드 쇼 역시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라고 했다. 그렇다. 역사는 인류에게 과거의 반면교사로서 미래에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길잡이를 해주는 것이다. 역사는 결코 과거에 대한 학문이 아니다. 미래를 보는 학문이다. 과거의 역사에서 그러했듯 해양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핵심요소가 될 것이며, 현재 그리고 나아가 미래에 우리가 또다시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자 한다면 해양에 대해 지금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남경토루6

남경토루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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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황한민, 「복건성 토루의 역사적 변천과 그 현대적 변용」 (1) ,(2) 『건축』45(4) (대한건축학회, 2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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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우
  • 소속 : 사학과
  • 이메일 : w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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