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거리와 건축
거리와 건축
객가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곳, 토루
토루토루는 중국 고대시기에 북쪽 지방에 거주하던 한족이 북방민족의 남하 등으로 인해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외부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토루를 짓고 토루에 사는 사람들은 객가인으로 불리며, 이들은 같은 조상, 성씨를 단위로 하여 토루에 공동으로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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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루에 대하여
토루는 객가인의 전통가옥이다. 객가인은 중국 광동성, 복건성, 장시성, 대만에 거주하고 있으며 고대에 화북지역에서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생겨났다. 4세기 경 중원지역을 포함하여 현재 중국 일대를 통치하고 있던 서진(西晉) 말기에 흉노족이 반란을 일으킨 영가의 난으로 인해 서진을 통치하고 있던 집단이 남쪽으로 이주했고 이후 5호16국 시대에 북방유목민족의 남하 그리고 당나라 말기의 황소의 난 등으로 화북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집단이 남쪽으로 이주했던 것이다. 객가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발전시켰으나 소수민족이 아닌 한족이 이주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한족의 문화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객가인들이 지은 토루는 현재 장시성, 복건성, 광동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복건성에 위치한 복건토루는 중국 송나라 시대에 생겨나 명청시기에 증가하여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 7월 복건토루는 정식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10년에는 중국 국가 4A급 관광지구로 선정되었다가 2011년에는 복건토루 남경 경관지구가 5A급으로 승급되었다. 복건토루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산 속에서 지어진 대형 토착민 건축물로 산세에 기대어 중국전통건축 규범인 '풍수' 이념을 반영했다. 토루는 일가가 단체로 거주하고 방어하고자 하는 요구를 반영했으며 교묘하게 산과 산 사이 좁은 곳의 평지와 현지의 목재, 흙, 돌 등을 이용하여 지어 절약, 견고함, 방어 등의 면에서 강점을 지닌다.
복건토루의 건축자재는 매우 특이한데, 찹쌀, 대나무, 물 등으로 지어져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하다. 또한 태풍과 지진에 강하다. 토루는 일반적으로 3층에서 5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은 주방, 2층은 창고, 3층 이상은 침실로 사용된다. 토루 하나에 200명에서 700명 가량 거주 가능하다. 이러한 토루는 당나라 대의 병영, 성벽과 요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복건성에 있는 토루들 중에서 복건성 장저우 시 남경현에 있는 남경토루는 매우 유명하다. 남경토루는 '토루왕국'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토루들의 모양의 가지각색이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원형, 네모형 이외에도 부채형, 팔괘형, 탑형, 합자형, 전방후원형, 우산형, 방원결합형 등이 있다.
남경토루로 가는 길
안개 속에서 본 남경 토루 마을
남경토루의 멋
남경토루를 대표하는 토루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전나갱토루군(田螺坑土楼群)이다. 전나갱토루군은 하나의 네모난 모양의 토루를 중심으로 4개의 원형 토루들이 있는 모양으로 사채일탕(四菜一汤)이라고도 불린다. 중간의 네모난 모양의 토루와 오른쪽 위쪽의 원형 토루는 청나라 가경 원년(1796년)에 지어졌고, 이후 진창루(振昌楼), 서운루(瑞云楼), 문창루(文昌楼)가 차례대로 지어졌다. 전나갱토루가 이러한 이름이 지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 객가인들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식량을 구하고자 오리를 키우기 시작했지만, 오리에게 적당한 먹이가 없어 걱정하였다. 하지만 오리들은 밭에 있는 다슬기들을 먹으며 잘 자랐고 그 오리들은 맛이 좋아 유명해져서 잘 팔렸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에는 아직도 강가에 오리들이 살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 오리를 잡아다 요리해 먹는다.
유창루 토루 입구
객가인의 삶 속으로
유창루의 정중앙에 위치한 제단
각 토루의 조상신은 각기 다른 성씨를 갖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씨, 장씨, 황씨 등이 있다. 1층에는 정중앙의 제단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각 가정마다 주방, 가게들이 있었다. 비록 현재는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인해 차,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지만 주방은 여전히 1층에 위치해 있어 실제로 요리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 2층은 창고이고, 3층부터는 침실로 쓰이는 거주 공간인데, 2층부터 복도에 빨래를 많이 널어 놓았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1층과 달리 2층부터는 인적이 드물어 실제로 토루 내부에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함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3층의 방문 앞에는 빨간 바탕에 금색으로 된 '복(福)'이라는 한자가 쓰여진 종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중국 가정집이나 상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객가인들이 소수민족이 아니라 한족이기 때문에 여느 중국인과유사한 풍속을 볼 수 있었다.
유창루에서의 생활상
남경 토루의 제단
현재 토루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한번도 토루를 벗어나 도시로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비록 현재 토루에 살던 청년층은 도시로 진출했지만, 중년층, 노년층들은 여전히 토루에 거주하며 토루를 유지, 보수해나가고 있다. 어쩌면 토루가 현재까지 굳건한 이유 또한 그곳에 거주 중인 사람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토루를 보며 역사를 돌아보다
남경토루는 주변의 산세에 의해 둘러싸여져 있어 마치 한 송이 매화가 대지에 떨어져 있는 모습과 같고, 한 마리의 나비가 하늘에서 떨어진 형상과도 같아서 인간의 기예와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진 기묘한 경관을 자아낸다. 주변에는 토루와 농경지들 그리고 산뿐이었는데, 남경토루의 경관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객가인들이 외세의 침입을 피하고 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이 험한 산세에 요새와 같은 집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 객가인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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