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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 War- 독일 베를린 장벽 - 베를린 체크포인트 찰리

베를린 체크포인트 찰리
  • 탐방일시 :2018.01.13 ~ 2018.01.24
  • 조회수 :978
  • 좋아요 :0
  • 위치
    Friedrichstraße 43-45, 10117 Berlin, 독일
  • 키워드
    체크포인트찰리, 냉전, 베를린 장벽, 검문소, C

체크포인트찰리는 1961년부터 1990년까지 연합군과 외국인, 외교관, 여행객들이 동 베를린과 서 베를린을 드나들 수 있었던 베를린 장벽을 따라 세워진 유일한 관문이었다. 이곳 검문소의 주요 업무는 서독의 연합군이 동독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록하고, 동독에서의 체류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외국인 여행객 역시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동독에서 서독 쪽으로 나올 때는 검문을 받지 않았다.

체크포인트 찰리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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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크포인트 찰리

체크포인트 찰리

체크포인트 찰리

독일 베를린으로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역시 유럽!’이었다. ‘역시 유럽!’이라고 한 이유는 옛 유럽 건물양식들을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아무데서나 카메라를 들어도 이국적이고 아름답게 나왔기 때문이다. 베를린에 들렸으니 베를린의 모든 유적지는 다 가보자는 심산으로 베를린 대성당, 국회 의사당 등등 여러 유적지를 다녔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쯤 들린 곳이 체크포인트 찰리였다. ‘체크포인트 찰리’라는 장소를 가기 전 유적지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체크포인트 찰리에 검색해 보았다. 동독과 서독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베를린 장벽을 따라 검문소가 설치되었고 검문소에 각각 A(Alpaha), B(Bravo), C(Charlie), D(Delta)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중 C검문소가 가장 유명해서 체크포인트 찰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2. 겨울공기보다 차가웠던 냉전

체크포인트 찰리에 도착한 후 그 옆에 위치한 박물관에 들어갔다. 박물관에는 입장료를 내야했다. 입장료를 내고 설명이 적혀있는 팜플렛을 손에 들고 입장했다. 아쉽게도 한국어가 없었기 때문에 영어로된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에는 단순히 체크포인트 찰리에 관한 설명이 있을 줄 알았는데 냉전 당시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상황들을 함께 전시해 놓았다. 냉전이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극체제하에서의 사회주의진영과 자본주의진영 간의 정치 ·외교 ·이념상의 갈등이나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이다. 냉전 때문에 우리나라는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졌고, 독일 또한 서독과 동독으로 나누어졌다. 그래서 인지 우리나라의 6.25전쟁에 관한 설명도 나와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리려고 했던 곳인데 6.25전쟁에 관한 우리나라 전시물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독일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아직도 냉전 상황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체크포인트찰리 박물관 내 한국전쟁에 관한 자료

체크포인트찰리 박물관 내 한국전쟁에 관한 자료

3. 탈출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앞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앞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체크포인트 찰리는  많은 사람들의 탈출 시도 장소이기도 했다. 특히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바로 '페터 페히터'의 사건이다. 냉전 당시 많은 동독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으며 페터 페히터 또한 동독 사람이었는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가고자 했다. 하지만 벽에 도착했을 때 총에 맞아 동독지역인 '무인지대'에서 어떠한 의료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로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독일에서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국경수비대에 대한 시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페터 페히터가 사망한 장소에는 기념비가 세워지고 이렇게 새겨졌다.

"er wollte nur die Freiheit" "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얼마 전 우리나라로 귀순한 북한병사가 생각이 났다. 이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4. 말 한마디에 무너진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

독일 베를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베를린 장벽은 동독과 서독을 가르던 벽이었다. 그런데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이듬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동독과 서독이 하나가 되었고 둘로 나누어진 지 41년 만이었다. 독일의 통일은 어이없게도 이탈리아 ANSA 통신 소속 한 기자의 ‘오보’ 때문이었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전 동독에서 1989년 9월 25일부터 월요시위가 일어났다. 언론 자유화, 여행 개방 등이 주요 사안이었는데 규모가 날이 갈수록 커지자 당국은 1989년 11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여행 자유화 정책을 발표했다. 여기서 동독 집권단 대변인 권터 샤보프스키(Guenter Schabowski)가 동구권 여행 자유화에 대해 발표를 하던 중 한 이탈리아 기자가 “서독도 포함이 되느냐”고 물어보았는데 전날 정치국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모르던 샤보프스키는 “그렇다”고 말했다. 이후 “언제부터 국경을 개방하느냐”는 추가 질문에 “즉시”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독일어가 서툴렀던 이탈리아 기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오보를 내보내게 되고, 결국 이 오보를 들은 동서독 시민들은 포클레인 등을 동원에 베를린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보를 보자마자 베를린 장벽을 부수러 간 독일 시민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저런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면 우리도 또한 독일시민들처럼 행동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5. 평화의 상징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

체크포인트 찰리를 다녀온 다음날 베를린 장벽을 보기 위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를 갔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의 동쪽에 1990년 세계 각국의 미술 작가들이 그린 105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야외 공개 갤러리로 알려져 있다. 갤러리에 그려진 그림은 변화된 시간을 기록하고 행복감과 더 나은 희망,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더 자유로운 미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가끔 낙서도 있었긴 하지만 대부분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그림들이 많았다. 그림도 볼 수 있고 그와 동시에 냉전의 역사를 잘 보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6. 냉전과 평화

독일의 베를린 장벽과 체크포인트찰리를 방문하고 난 후 독일은 역사를 아주 잘 보존하고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몸소 실감했다. 베를린 장벽을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로, 체크포인트찰리 검문소를 관광지로 변화시킨 것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는 매일 전쟁의 불안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이 무엇일까?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랫동안 남북이 갈라져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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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네이버 지식 백과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세계역사유적 1001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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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주
  • 소속 : 사학과
  • 이메일 : 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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