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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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안의 섬, 마라도
제주도 마라도대한민국 가장 남쪽, 남해에 위치한 마라도는 대한민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다.
마라도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흔적이 남겨져 있는 곳은 아니다. 면적이 아주 작으며 육지와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처음 등장한 역사적 년도가 1883여 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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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라도의 역사
2. 마라도의 탄생
-마라도 야생화, -마라도 조류, -마라도 3대 해산물
3. 마라도의 사람
4. 마라도의 종교
대한민국 가장 남쪽, 남해에 위치한 마라도는 대한민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다. 제주도에서 남쪽으로 약 11km 떨어져 있으며 남쪽에 위치한 섬이기 때문에 연평균 기온이 높다. 남서쪽으로 이어도가 있지만, 국제법으로 섬이 아닌 '암초'이기 때문에 마라도가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이라는 사실이 정확하다. 행정구역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로 원래는 가파리였지만 1981년 4월 1일 마라리로 분리되었다. 이것은 행정리의 경우이고, 법정리로는 가파리 소속이다.
마라도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흔적이 남겨져 있는 곳은 아니다. 면적이 아주 작으며 육지와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처음 등장한 역사적 년도가 1883여 년 정도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만을 나열하기 보다는 현지 답사를 통해 마라도에 남아있는 문화들을 천천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마라도의 역사
가파초등학교 분교
마라도 등대
마라도의 역사는 1883년(고종 20)부터 이어진다. 마라도 내에 위치한 기념관에 따르면 1883년 대정골 모슬포 주민이던 나씨, 김씨, 이씨, 강씨, 한씨, 황씨, 심씨 등이 함께 마라도로 이주하여 화전을 일구었다고 한다. 개척 이전의 마라도는 금섬으로 불려지는 섬이라 인근 지역 사람들이 접근을 꺼렸다. 그 당시 모슬포 사람들 사이에서는 ‘망종1) 이전에 금섬에 이르면 흉년이 온다’라는 말로 마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섬은 원시림으로 뒤덮여져 있고, 주변 해역의 파도가 높고 기후 변화가 심했기 때문에 당시의 교통 수단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망종이 지나면 날씨가 어느 정도 풀리기 때문에 간혹 섬으로 상륙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상륙하여 나무와 해산물을 채취해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1883년 모슬포읍 사무소의 소장 자료에 의하면 당시 대정골에 거주하던 김씨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자 친척들이 고을 원님에게 섬의 개척을 건의하였다고 한다. 이후 나씨, 이씨, 강씨 등이 지원하여 6세대가 마라도에 이주한 것이다. 이들은 생활을 위해 농경에 필요한 경작지를 마련하였다. 경작지가 생기자 점차 이주해오는 주민들이 많아졌고 1915년에는 일본인들이 이곳에 등대를 설치하기 위해 입도하였으며 3월 마라도에 등대가 설치되었다. 무인 등대로, 최초의 점등은 아세찌링 가스를 사용했으며 세계해도에 표기되었다.
등대가 완성되고 난 후 일본인들은 섬 밖으로 다시 나갔고 해방 후 행정구역이 가파리로 편성되었다. 1955년에는 마라도 등대가 유인등대로 변경 되었고, 1958년에는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장이 개교 되었다.
1981년 조사 당시의 마라도에 거주하는 주민은 25가구로 총 108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인구 수는 일정하게 유지되었는데 젊은이들이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제주도로 나가는 것 정도로 변화가 있었다.
마라도는 2005년 청정자연보호 특구로 지정되었는데 해양 영토와 해양 자원 등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항목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2. 마라도의 탄생
마라도는 화산섬이다. 하지만 섬에 분화구를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섬 어느 곳을 파도 지하수가 솟아나지 않는 것을 통해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분출하면서 바다 위로 솟아올라 섬이 된 것이라 추정한다. 마라도를 이루고 있는 기반은 동서로 500미터, 남북으로 1,300미터가 빙 둘러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현무암이다.
이러한 마라도는 우리나라 705개의 유인도 중에서 434번째로 크고, 제주도에 딸려있는 8개의 유인도 중에서는 2번째로 작은 섬이다. 중심부에 높이 34미터의 구릉이 있고, 남북이 긴 타원형으로 섬 전체가 대체로 평평하다. 즉 남에서 북으로 얕아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대마도와 마주하고 서쪽으로는 상하이와 마주치는 최남단의 땅이 되었다.
마라도는 원래 마래섬·마라섬이라고 불렸는데 마래섬의 ‘마래’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冠의 뜻을 지닌 만주어 차용어 ‘마흐래’와 유사하다는 설이 있다고 기념관에서는 밝혔다. 20세기 이후에는 한자로 표기하면서 마라도가 되었다는 설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천연보호 구역으로 마라도가 보호되고 있다. 육상식물은 대부분 파괴되어 경작지로 변했지만, 바다와 가까운 탓에 해상식물은 매우 풍부하다. 녹조류, 갈조류, 홍조류 등 총 72종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한국의 미기록 종들도 발견되었다. 주변 경관 역시도 아름다워서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따라서 마라도의 생물 몇몇개를 살펴보도록 하자.
① 마라도 야생화
마라도에는 야생화의 정원이라고도 불린다. 바닷 바람을 견디고 갯바위 틈에 솟아난 야생화들이 100종이 넘는다. 갯무, 개자리, 갯장구채, 괭이밥, 뚜껑별꽃, 벋은 씀바귀, 개여뀌, 순비기나무, 계요등, 가는등갈퀴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몇가지를 자세히 소개하자면 갯무는 보라색이나 자주색, 또는 흰색 꽃이 피는 꽃이다. 이 꽃은 4~5월에 짧은 꽃자루에 무리지어 피는 총상꽃차례로 핀다. 꽃잎은 주걱 모양으로 4장이 달려 있으며 자라고, 어린 잎은 식용으로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개자리는 콩과 식물로 길가에서 볼 수 있는 한두해살이풀, 전체에 털이 없고 줄기는 60cm 정도로 비스듬히 자란다. 나비 모양의 노란 꽃잎이 꽃대에 모여 핀다.
② 마라도 조류
마라도는 섬 전체가 천연보후구역이기 때문에 난대성 해양 동식물은 물론 한국 미기록종과 신종 생물도 발견된다. 긴꼬리딱새, 가마우지, 황금새, 물수리, 쇠솔딱새, 바다직박구리 등이 있다. 긴꼬리 딱새는 마라도 곰솔 군락 주변에서 볼 수 있는데 수컷의 꼬리 길이는 30cm 정도로 길며 숲속 사이를 날아다닌다. 가마우지는 마라도에 보통 떼를 지어 다니는데 해상이나 절벽과 바위 섬에 앉아서 생활한다. 마라도 주변 갯바위에서 날개를 펼치고 깃털을 말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바다직박구리는 내륙의 직박구리와는 달리 바닷가 근처에 생활하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텃새이다. 암수의 깃털색이 확연히 구분되며, 수컷은 머리 꼭대기에서 뒷목, 등, 목, 앞가슴은 짙고 어두운 파란색이다. 암컷은 전체적으로 누런빛이 도는 어두운 회갈색으로 가슴과 배에는 비늘무늬가 있다. 마라도의 해식동굴이나 해안 절벽의 선반, 암초의 틈과 구멍에서 번식하며 갯바위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톳 짜장면과 해물 짬뽕
해녀
해녀의 모습
3. 마라도의 사람
마라도의 주민들은 생업을 이어나기 위해서 농업, 목축업, 수산업 등 다양한 활동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주변의 환경 때문에 수산업이 가장 발달되어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어선을 이용한 고기잡이와 해녀들에 이루어지는 채취업인 잠수업으로 나뉘어진다. 본고에서 살펴볼 부분은 해녀들에 의해 이루어진 잠수업이다.
‘제주에는 남자들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량에 휩쓸려 죽는 경우가 많아 여자가 남아 돌아 거지마저 처첩을 거느리고 사는데 전복을 따내는 일을 맡은 ‘포작배’는 홀아비로 늙어죽는 이가 많았다. 그것은 임금에게 진상하는 전복의 수량이 매우 많고 더구나 관리들이 공물을 핑계로 제 잇속 채우는 경우가 많아 포작배는 아무리 애써 일해도 이것을 다 채우지 못하고 더러 일하다가 지쳐죽거나 견디다 못해 도망쳐 버리기도 하는데 포작배가 열에 두셋만 남게 되어도 공물의 양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그 몸은 오랫동안 바다에 있고, 그 아내는 오래 옥에 갇혀 원한을 품고 견디는 모습은 말로 이루다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웃에 홀어미가 있어도 차라리 빌어 먹다가 죽을지 언정 포작배의 아내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2)
마라도에는 배를 댈 만한 포구가 없기 때문에 ‘바다밭’이 마라도를 지탱해왔다. 해녀들의 삶은 제주 여성의 삶을 표방한다. 그들이 하는‘물질’은 매우 중요한 생계수단 이었다. 특히 마라도 해녀들은 타 제주도의 해녀들과는 달리 유난히 단합이 잘되었다. 모두가 모여야 일을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바다 밭이 매우 위험해서 서로 보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라도 해녀의 물질도구는 태왁과 망사리 그리고 제주 본섬에 ‘조락’이라고 불리는‘바릇찰리’를 사용하였다. 바릇찰리는 문어나 오분재기 등 망사리에서 쉽게 빠져버리는 작은 해산물들을 보관하는 보조망사리이다. 태왁은 바다작업을 할 때 몸을 의지하는 용기이며 크기는 약 20cm 정도이다.
마라도의 바다는 험하고 깊기 때문에, 해녀들에게 강한 체력과 기술을 익히게 했다고 한다. 어느 바다 해녀들이 자맥질을해 내려가는 깊이가 20m면 기록이라고 하는데, 마라도는 수심 25~30m 정도까지도 내려간다고 한다.
4. 마라도의 종교
마라도는 섬으로 고립되어있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그들만의 특별한 종교적 형태가 나타난다. 이 모습은 마라도 내에서도 곳곳이 확인할 수 있었다. 마라도에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신봉되는 하르방신, 할망신, 그리고 각 부계 친족마다 모시는 조상신이 있다. 섬을 주관하는 주신인 하르방신은 천상에 거주하면서 지상 세계에는 아기씨인 할망신을 만나기 위해서 강림한다고 한다. 근엄한 성품과 대우를 소홀히 하면 재앙을 내리는 엄격함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할망신은 말 그대로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자비롭고 자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신으로 도서 내에 머문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의 일상사를 살펴 주민의 안전을 바라는 신이다. 마지막으로 조상신은 생전의 친족원들 사이에 갖고 있던 성품을 그대로 반영하여 사후에 저승으로 돌아가거나 이승 세계로 빈번히 돌아와 후손을 돌보는 신으로 여겨진다. 셋 중 마라도 주민들은 할망신을 가장 정성스럽게 보살핀다. 실제로 할망당을 마라도 내에서 답사할 수 있었다. 할망신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마라도가 개척되기 오래 전에 가파도에 거주하던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마라도의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배를 타고 가족과 더불어 마라도로 건너왔다. 이 일가족은 당시 섬에 울창했던 숲에서 나무를 베어가고 또 주변 해안에 풍성한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서 마라도에 이르렀다. 이 일행중에는 아이를 돌보는 아기씨인 처녀가 끼어 있었다. 이 처녀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갈 곳이 없는 소녀였는데 이 씨 집에서 키워져 함께 지내고 있었다. 이 소녀는 목소리가 고와 옥을 굴리는 듯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한다. 그런데 마라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기에 앞서 일행은 뱃전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붙였는데 선주와 그 부인이 같은 내용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는 의젓한 백수 노인이 나타나 “그대들이 이 섬을 떠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무사히 떠나고 싶거든 아이 보는 아가씨를 섬에 두고가야 한다. 만약 내맘을 어길 경우에는 모두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내 말을 명심하시오”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잠에서 깬 부부는 서로 꿈 이야기를 나누고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서둘러 돌아가려고 하는데 여지껏 쾌청하던 날씨가 돌연히 변하여 안개가 뒤덮이고 풍향을 헤아릴 수 없는 강한 바람이 불어와 도저히 배를 뛰 울 수가 없었다. 바람은 점점 거세어지고 파도가 드높아지자 두 부부는 서로 상의하여 꿈에 노인이 지시한대로 아이 보는 처녀를 두고 가기로 결심하였다. 부인은 한 꾀를 생각해내어 처녀에게 “ᅌᅤ야 저 건너 바위 위에 애 기저귀를 널어 두었는데 얼른 가서 걷어 오너라”고 말하였다. 처녀가 부인이 가리킨 장소를 향해 떠나자 선주는 급히 배를 바다에 띄었다. 배는 믿어지지 않게 순풍을 맞아 섬을 뒤로하고 미끄러져 나갔고 이어서 거칠던 바람도 멎고 안개도 걷히었다. (…) 중략
그 후 3년이 지나 이씨 부부가 다시 섬에 이르러보니 처녀는 죽어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다. 이 때부터 섬을 찾는 사람들은 불쌍하게 죽은 처녀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처녀의 무덤을 찾아 제물을 드리며 섬에서의 일정을 안전하게 돌보아 줄 것을 기원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녀는 점차 섬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셔졌고 그 무덤은 오늘날 처녀당 혹은 할망당으로 불리워지고 있다.3)
할망당
지금까지 마라도의 역사와 탄생, 사람, 그리고 종교에 대해 알아보았다. 섬 안의 섬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간만큼 흔히 찾는 제주도가 아닌, 색다르게 부속 섬을 답사하니 보다 더 큰 사실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마라도는 해양문화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답사지이다. 인류가 살아가면서 바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이며 바다를 통해 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장점들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확실하다. 이번 제주도 현지조사에서 이틀째 방문한 마라도에서 해양문화의 면모들을 파악하여 흥미로웠던 조사로 기억 남는다.
눈이 즐거운 아름다웠던 자연경관과 입이 즐거운 톳이 들어간 마라도의 자랑 짜장면, 그리고 바다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들로 귀까지 즐거움을 얻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마라도의 종교들이다. 마라도는 절과 성당 그리고 그들만의 신인 할망당 까지 여러 가지의 종교가 융합되어 자리매김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러한 마라도의 매력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더불어 신비로운 마라도의 모든 것을 미리 사전 학습하고 방문하여 더 많은 가치를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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