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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짜장면은 어느 나라 음식이라고요? - 짜장면박물관

짜장면 박물관
  • 탐방일시 :2018.08.16
  • 조회수 :2293
  • 좋아요 :0
  • 위치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로 56-14
  • 키워드
    짜장면, 중화요리, 중식, 차이나타운, 화교

‘중국집 요리’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식, 짜장면. 그런데 실제 중국에는 우리가 중국집에서 흔히 먹는 것과 같은 짜장면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한국식 짜장면은 한국음식일까? 짜장면 박물관을 함께 탐방하면서 여러분들만의 답을 찾아보자!

짜장면 박물관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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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짜장면은 어느 나라 음식이라고요?

구)  공화춘, 현) 짜장면 박물관

구) 공화춘, 현) 짜장면 박물관

‘중국집 요리’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식, 짜장면. 그런데 실제 중국에는 우리가 중국집에서 흔히 먹는 것과 같은 짜장면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실제 중국인들은 짜장면을 만들 때 짠 맛이 나는 춘장을 많이 넣지 않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만든 짜장면은 거의 하얀색에 가깝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새까만 짜장면은 인천 차이나타운에 정착한 화교들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달콤한 캬라멜을 춘장에 섞어 만든 것인데, 이 짜장면을 최초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중화요리점이 바로 ‘공화춘’이다. 아쉽게도 ‘공화춘’은 1983년에 폐업하여, 지금은 ‘공화춘’에서 파는 짜장면을 맛볼 수 없게 되었다. 대신, ‘공화춘’은 짜장면 박물관으로 재탄생하면서 짜장면의 유래와 역사뿐만 아니라 당시 ‘공화춘’의 접객실과 주방 또한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50년대 면 요리 상차림

1950년대 면 요리 상차림

칼판 주방 재현 전시

칼판 주방 재현 전시

그렇다면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이 짜장면을 개발한 화교들은 언제, 어떻게 인천에 정착하여 차이나타운을 형성하며 살아가게 되었을까? 이 비밀에 대한 해답은 짜장면 박물관 제 1전시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인천에 정착한 화교들은 대부분 산동성 출신 사람들로,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인들을 따라 국내로 들어와 경제적인 문제와 자국 내 정치적 혼란 등을 피하고자 인천에 정착하여 지금의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교들이 외국에 정착할 때면 주방에서 사용하는 식칼인 ‘육도’와 ‘채도’, 이발소에서 사용하는 면도칼인 ‘체도’, 그리고 양복점에서 사용하는 가위인 ‘전도’, 이렇게 세 종류의 칼을 지참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화교들이 주로 음식점, 양복점, 이발소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음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육도’와 ‘채도’로 생계를 유지하고자 했던 화교들이 과연 처음부터 번듯한 식당을 차려 짜장면을 팔 수 있었을까? 머나먼 타국에서 그들이 ‘공화춘’과 같은 식당을 차리기까지의 여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원래 짜장면은 손수레 노상점에서 만들어 팔던 음식이었다고 한다. 화교들이 국내에 정착하기 시작했던 1890대 인천에서는 외국과의 무역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배에 물건을 싣고 나를 수많은 짐꾼과 인력거꾼 필요했다. 이러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쿨리’라고 불리는 산둥지방 출신 사람들이었고, 노상점 상인들은 이 '쿨리‘들을 상대로 그들의 고향음식인 ‘짜장면’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짜장면’은 별다른 재료 없이 춘장에 수타면을 비벼 즉석에서 간편하게 만들어 먹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짜장면을 먹고 있는 쿨리

짜장면을 먹고 있는 쿨리

사자표 춘장

사자표 춘장

이러한 짜장면이 어쩌다가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음식이 되었을까? 어떤 이는 짜장면이 빨리 나오는 음식이기 때문에 성격이 급한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짜장면이 사랑받게 되기까지엔 좀 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짜장면은 맛이 한국식으로 획일화가 되면서 짜장면이 대중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맛을 획일화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사자표 춘장’이다. 현재까지도 중국식당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춘장이 이 ‘사자표 춘장’이라고 한다. 국가에서 시행한 ‘분식장려운동’또한 짜장면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이 원조해주는 밀가루 소비를 증대시키기 위해 쌀밥보다 분식을 먹는 것을 장려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이 운동은 쌀밥을 판매하는 한식당 매출에 타격을 주었고, 주로 밀가루로 음식을 조리하는 중국 식당이 수혜자가 되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 운동 덕분에 짜장면의 가격은 당시 외식 중 가장 저렴할 수 있었고,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
짜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다보면 함께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더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철가방이다. 광복 이후, 짜장면은 ‘신속배달’이라는 구호 아래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짜장면을 배달할 때 사용할 배달가방도 함께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짜장면이 처음부터 우리가 잘 아는 ‘철가방’에 담겨 배달되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처음에는 짜장면이 나무로 된 배달가방에 담겨서 배달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나무가방은 오래 가지 못했다. 너무 무거운데다가 음식물이 나무에 스며들어 위생에 좋지 않다는 단점 때문에 오래 사용되지 못했다. 나무가방을 뒤이어 플라스틱 배달가방도 등장했지만, 이 또한 금형 비용이 비싸다는 이유로 일반화되지 못했다. 이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알루미늄판과 함석판이 등장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철가방’이 만들어져 사용되게 된다. 최근 이 철가방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디자인문화재단에서 선정한 ‘지난 반세기 한국인의 일상을 대표할 수 있는 생활 속 디자인’중 하나로 선정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중국집 철가방

중국집 철가방

짜장 관련 레토르트 식품들

짜장 관련 레토르트 식품들

요즘에는 굳이 중국집을 가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쉽게 짜장면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레토르트 식품과 인스턴트식품이 대중화되면서 짜장 분말과 짜장 라면이 등장하였기 때문. 학교 급식 단골 메뉴인 ‘짜장밥’으로, 그리고 심야 시간에 출출할 때 끓여먹는 ‘짜장 라면’으로, 짜장면은 우리의 생활양식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진화하며 우리 삶에 녹아들어있다. 그렇다면 짜장면은 어느 나라 음식일까? 우리의 문화가 담긴 우리나라 음식일까? 아니면 중국에서 온 중국음식일까? 정해진 정답은 없다. 누군가는 짜장면을 ‘차이나타운의 음식이다’라고 정의내리기도 한다. ‘짜장면 박물관’에 방문해보고, 여러분들만의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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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자장면의 유래와 자장면 이야기”, 오마이뉴스, 2001년 04월 23일
* 짜장면 박물관 내 안내판
* 두언문 「한국화교와 짜장면의 한국화」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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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민
  • 소속 : 영어영문학부
  • 팀명 : 하양해양탐사
  • 이메일 : 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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