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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 제주에서 꽃 피운 예술 혼, 추사 김정희 - 추사관

추사관
  • 탐방일시 :2018.01.03
  • 조회수 :717
  • 좋아요 :0
  •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 키워드
    제주, 추사관, 추사, 김정희, 기념관, 추사체, 세한도, 모슬포

김정희를 대표하는 것을 말해보라 한다면 단연코 추사체와 세한도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이 위대한 두 가지 업적이 ‘제주도’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이곳, 추사관에 전시되어있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보면서 왜 하필이면 제주도에서 두 가지의 업적이 완성될 수밖에 없었을까? 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추사관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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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관 전경

추사관 전경

버스를 타고 좁은 도로를 달려가 도착한 곳은 한적한 작은 마을이었다. 거리엔 사람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쌀쌀한 바람까지 불어와 약간의 쓸쓸함마저 느껴졌다. 추사 김정희 선생도 유배되었을 당시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선생이 유배 생활을 했던 이곳, 대정읍은 모슬포라는 포구를 끼고 있다. 모슬이라는 말은 제주 방언으로 모래를 뜻하는 모살에서 유래되었다곤 하는데, 지역 사람들 사이에선 ‘못살 포구’라 모슬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를 한다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엔 차가운 바닷바람이 몰아쳐 모래 폭풍을 일으켜 앞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고, 여름엔 습기를 가득 머금은 축축한 바람이 불어와 더운 여름을 더더욱 덥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이 이러하였으니 김정희 선생의 삶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힘든 환경에 주저앉지 않고 예술로 그 고통을 승화했던 것 같다. 그의 힘 있으면서도 독특한 추사체도 이 시기에 완성되었고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세한도도 이 시기에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선생의 추사체를 살펴보면 다소 거친 붓터치에 고독함이 묻어나지만, 그 속에 정갈함과 힘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임창순은 이러한 추사체를 “추사가 제주도 유배를 거치며, 울분과 불평을 토로하면서 험준하고도 해학적인 면을 갖춘 서체가 만들어졌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로 그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갈라지는 듯한 붓 선에는 자신의 유배에 대한 억울함,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울분, 유배지까지 가는 데에 대한 그리고 유배지에서의 고단한 삶이 깊이 배어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서체 자체에 정갈함이 있어 품위가 느껴지고 캐리커처처럼 특징을 잡아낸 글자 모양에선 익살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무량수각. 김정희 선생이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충남 예산 화암사에 보낸 현판의 탁본이다. 무량수각은 무량수불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을 의미한다.

무량수각. 김정희 선생이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충남 예산 화암사에 보낸 현판의 탁본이다. 무량수각은 무량수불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을 의미한다.

세한도. 김정희 선생의 대표적인 문인화.

세한도. 김정희 선생의 대표적인 문인화.

처음 세한도를 접한 것은 중학교 미술시간이었다. 그 당시, 세한도는 권력을 잃었던 김정희 선생의 제주도 유배시절에도 이전과 다름없이 선생을 대해 준 제자의 의리와 절개, 고마움을 담은 그림이라 배웠다. 당시에는 설명을 듣고 이 그림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추사관에서 다시 이 그림을 보니 제자에 대한 고마움의 감정이 절절히, 하지만 티나지 않게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이러한 해석과는 또 다른 느낌도 받았다. 따뜻한 날엔 풍성함을 자랑하지만 겨울이 되면 다 떨어져 버리고 마는 낙엽수와 달리 상록수는 낙엽수보단 조금 빈약한 외관을 가지고 있어도 봄여름가을겨울 할 것 없이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꼿꼿하게 서 있다.

세한도에 나오는 이 상록수들이 꼭 그러하다. 제일 오른쪽에 보이는 상록수는 그 표면이 거칠거칠하고 잎도 많이 달려 있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오래된 나무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다. 이 오래된 상록수가 나에겐 마치 김정희 선생 본인으로 보였다. 모래를 머금은 제주의 찬바람을 견뎌내고 꼿꼿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 선생은 노송 그 자체였다.

추사관에서 나와 모슬포에서 불어오는 모래 섞인 바람을 맞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의 이 바람, 이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김정희 선생의 예술혼이 더더욱 불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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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강희진, 『삼백 개의 이름으로 삶과 마주한 추사 김정희』, 2015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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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인주
  • 소속 : 일본학과
  • 이메일 : 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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