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사람들
사람들
게와 물고기를 통해 본 이중섭 - 이중섭미술관
이중섭미술관화가 이중섭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흰 소>이다. 여전히 강렬한 선으로 소의 강인함을 보여주면서도 소의 웃고 있는 것 같은 온화한 표정을 클로즈업해 담아낸 <황소>도 유명하다. 소 하면 이중섭, 이중섭 하면 소를 떠올릴 정도로 이중섭은 많은 소를 그려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이중섭은 아이들과 게, 물고기를 소재로 한 그림도 많이 그려냈다. 특히 제주도와 관련된 그림에는 이 소재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그의 서귀포시에서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가난 때문에 평생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물지 못한 그의 자취가 제주 서귀포시에도 묻어 있었다. 이곳, 이중섭미술관에서 그가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와 그가 바라본 서귀포시를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상세내용보기
이중섭의 황소
하지만 그 못지않게 이중섭은 아이들과 게, 물고기를 소재로 한 그림도 많이 그려냈다. 특히 제주도와 관련된 그림에는 이 소재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그의 서귀포시에서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당시 제주도는 오늘날과 같은 휴양도시가 아니었다. 전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피난 도시였다. 이중섭도 그러한 이유로 제주도를 찾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전쟁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온 그였지만 그곳에서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양할 가족에 비해 배급품은 턱없이 부족하고 수용소는 사람들로 넘쳐난 탓에 편히 누울 곳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정부에서는 부산 피난민 몇몇을 제주도 서귀포시로 보낼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고 이중섭은 이 피난민 대열에 자기도 합류해야겠단 결심을 하게 된다. 적어도 그곳에선 자신의 아이들과 아내가 다리 펴고 누울 수 있는 공간은 주어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귀포시로 가기까지의 여정과 서귀포시에서의 생활도 만만찮았다. 배급과 이웃의 원조로도 그의 두 아이가 배부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중섭은 두 아이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두 아이와 함께 서귀포 앞바다에 나가 게와 물고기를 잡아주곤 했다. 그리고 그는 훗날 이러한 날들을 회상하며 서귀포에서의 삶을 화폭에 담아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작품에 아이들, 게, 물고기가 자주 나오는 이유인 것이다.
이중섭미술관의 은지화 “게와 가족”
이중섭 미술관 앞에서
위치보기

이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