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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함께한 의인 김만덕 - 김만덕기념관

김만덕기념관
  • 탐방일시 :2018.01.02
  • 조회수 :637
  • 좋아요 :0
  • 위치
    제주 제주시 산지로 7 김만덕 기념관
  • 키워드
    제주, 김만덕, 기념관, 바다, 거상

드라마 ‘거상 김만덕’으로 김만덕의 위업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기녀이자 여성, 섬나라 주민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거상으로 불리기까지, 의인으로 불리기까지의 그의 삶을 따라 김만덕기념관을 방문하였다. 김만덕, 그녀는 ‘거상’, ‘의인’, ‘제주도민’ 등의 단어로 곧잘 표현된다. 그런데 이러한 그를 표현하는 데에 빠뜨릴 수 없는 또 다른 단어가 바로 ‘바다’다. 그의 모든 인생은 바다와 함께였다. 그에게 시련을 준 것도 바다였으며, 그를 도와준 것도 바다였다. 이곳, 김만덕기념관에 와서 바다와 함께 살아간 그의 성품과 베풂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김만덕기념관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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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기념관 전경. 김만덕기념관을 오른쪽에 두고 바로 앞을 바라보면 수평선이 보인다.

김만덕기념관 전경. 김만덕기념관을 오른쪽에 두고 바로 앞을 바라보면 수평선이 보인다.

동문시장을 뒤에 두고 강변을 따라 죽 내려가다 보니 특유의 바다 냄새가 조금은 차가운 바람에 실려 와 내 코를 자극했다. 바다 냄새가 더욱 진해질 즈음, 김만덕기념관에 도착하였다. 김만덕기념관은 바다를 바로 마주 보는 김만덕의 객주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김만덕. 그는 ‘거상’, ‘의인’, ‘제주도민’ 등의 단어로 곧잘 표현된다. 그런데 이러한 그를 표현하는 데에 빠뜨릴 수 없는 또 다른 단어가 바로 ‘바다’라고 생각한다. 그의 모든 인생은 바다와 함께였다. 그에게 시련을 준 것도 바다였으며, 그를 도와준 것도 바다였다.
김만덕은 상인 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풍족하게 지냈다. 그러나 12세 때, 그의 아버지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도 전염병으로 사망하면서 그는 고아가 된다.

이것이 바다가 준 첫 번째 시련이며, 김만덕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 시발점이다. 이후 그는 한 기녀의 눈에 띄어 기적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의 나이 24세 때, 관청에 끊임없이 청을 한 결과, 그는 양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그 즉시 포구 근처에 물산객주를 열게 된다. 그는 육지에는 제주의 특산품인 전복, 미역, 말총, 귤 등을 팔았고 제주도로 옷감, 화장품 등의 사치품을 들여오면서 거상으로의 기반을 다졌다. 결국, 어떻게 보면 자기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갔던 바다가 지금은 전복이나 미역 등 여러 해산물을 제공함으로써 자기의 조력자가 되기도 한 것이다. 바다의 베풂으로 그는 점차 장사 규모를 늘려나가 쌀과 소금도 취급하게 되었고 마침내 제주도 최고의 거상이자 조선 최초의 여성 기업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한편, 김만덕이 56세가 된 해에 제주도에 큰 흉년이 들이닥친다. ‘갑인년 흉년에도 살아남았는데’라는 제주 속담이 있을 정도로 지독했던 것 같다. 바로 이때, 엄청난 부를 축적해 두었던 김만덕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놓고 도민 구휼에 나선다. 이러한 그의 선행을 전해 들은 왕은 김만덕의 두 가지 소원(한양에서 왕궁을 보는 것과 금강산을 유람하는 것)을 들어준다. 금강산 유람 후 제주도로 돌아온 뒤에도 김만덕은 언제나 검소하게 생활하며 주변 이웃들에게 늘 베풀며 여생을 보냈다.
이러한 그의 인생 자체가 나에게는 꼭 바다와 같이 느껴졌다. 바다는 가끔 우리에게 화를 낼 때도 있고, 우리를 힘들게 할 때도 있다.
갑인흉년 때 제주도민들의 모습을 구현한 조형물들. 모두들 지친 표정을 하고 있으며 힘이 없는 듯 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당시 제주도가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갑인흉년 때 제주도민들의 모습을 구현한 조형물들. 모두들 지친 표정을 하고 있으며 힘이 없는 듯 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당시 제주도가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김만덕 표준영정. 그에 대한 묘사 기록들과 그의 후손들의 모습, 김만덕상을 받은 여성들의 모습을 종합하여 만든 표준영정.

김만덕 표준영정. 그에 대한 묘사 기록들과 그의 후손들의 모습, 김만덕상을 받은 여성들의 모습을 종합하여 만든 표준영정.

그러나 바다는 그 속에 많은 것을 품고 있으며 그것들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베풀어준다. 김만덕의 삶이 꼭 이러하다. 조선시대 문신 심노숭의 '효전산고'에선 김만덕을 “만덕은 품성이 음흉하고 인색해 돈을 보고 따랐다가 돈이 다하면 떠나는데 …… 육지에서 온 상인이 만덕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이가 잇달았더니 이리하여 그녀는 제주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이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시 심노숭은 만덕을 칭찬하는 문신 세력들과 반대되는 정치적 입장이었기 때문에 과장된 부분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김만덕이 거상이 되는 과정에서 분명 그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장사라는 것 자체가 경쟁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한 명이 위로 올라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올라간 만큼의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러한 김만덕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시련을 주는 바다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러나 김만덕은 이러한 시련의 바다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장사하는 동안 얻게 된 부를 포함한 많은 것들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끊임없이 베풀어주었다. 이러한 김만덕의 모습은 본질적인 바다의 모습, 베풂의 바다와 닮아있다.

김만덕기념관에는 이러한 김만덕의 바다와 같은 인생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한편 전시실 한편에는 제주 바다가 보이는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 중간에 숨을 돌리며 사색할 수도 있다. 김만덕기념관에서 김만덕의 인생을 살펴보며 혹시 내가 시련의 바다와 같이 살아오진 않았는지, 내 주변에 나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는지, 전시실 한편의 휴식공간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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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 2, 5회 제주편
오현영, <재산 털어 굶어 죽는 백성 살려낸 의인 김만덕>, 201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2/2016122202054.html?Dep0=twitter&d=201612220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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