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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함께한 의인 김만덕 - 김만덕기념관
김만덕기념관드라마 ‘거상 김만덕’으로 김만덕의 위업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기녀이자 여성, 섬나라 주민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거상으로 불리기까지, 의인으로 불리기까지의 그의 삶을 따라 김만덕기념관을 방문하였다. 김만덕, 그녀는 ‘거상’, ‘의인’, ‘제주도민’ 등의 단어로 곧잘 표현된다. 그런데 이러한 그를 표현하는 데에 빠뜨릴 수 없는 또 다른 단어가 바로 ‘바다’다. 그의 모든 인생은 바다와 함께였다. 그에게 시련을 준 것도 바다였으며, 그를 도와준 것도 바다였다. 이곳, 김만덕기념관에 와서 바다와 함께 살아간 그의 성품과 베풂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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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기념관 전경. 김만덕기념관을 오른쪽에 두고 바로 앞을 바라보면 수평선이 보인다.
이것이 바다가 준 첫 번째 시련이며, 김만덕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 시발점이다. 이후 그는 한 기녀의 눈에 띄어 기적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의 나이 24세 때, 관청에 끊임없이 청을 한 결과, 그는 양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그 즉시 포구 근처에 물산객주를 열게 된다. 그는 육지에는 제주의 특산품인 전복, 미역, 말총, 귤 등을 팔았고 제주도로 옷감, 화장품 등의 사치품을 들여오면서 거상으로의 기반을 다졌다. 결국, 어떻게 보면 자기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갔던 바다가 지금은 전복이나 미역 등 여러 해산물을 제공함으로써 자기의 조력자가 되기도 한 것이다. 바다의 베풂으로 그는 점차 장사 규모를 늘려나가 쌀과 소금도 취급하게 되었고 마침내 제주도 최고의 거상이자 조선 최초의 여성 기업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갑인흉년 때 제주도민들의 모습을 구현한 조형물들. 모두들 지친 표정을 하고 있으며 힘이 없는 듯 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당시 제주도가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김만덕 표준영정. 그에 대한 묘사 기록들과 그의 후손들의 모습, 김만덕상을 받은 여성들의 모습을 종합하여 만든 표준영정.
김만덕기념관에는 이러한 김만덕의 바다와 같은 인생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한편 전시실 한편에는 제주 바다가 보이는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 중간에 숨을 돌리며 사색할 수도 있다. 김만덕기념관에서 김만덕의 인생을 살펴보며 혹시 내가 시련의 바다와 같이 살아오진 않았는지, 내 주변에 나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는지, 전시실 한편의 휴식공간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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