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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를 아우른 망향의 탑 - 러시아 코르사코프

러시아 코르사코프
  • 탐방일시 :2018.01.19
  • 조회수 :857
  • 좋아요 :0
  • 위치
    Korsakov, Sakhalin, Russia
  • 키워드
    러시아, 사할린, 코르사코프, 망향의탑, 강제징용

코르사코프(러시아어: Корса́ков)는 러시아 사할린 주 코르사콥스키 군에 속한 도시이다. 1853년에 건설되었다. 1905년에서 1946년까지는 일본 제국 가라후토 청의 오도마리 정(일본어: 大泊町)이었고, 1946년부터는 코르사코프로 다시 개칭되었다. 사할린의 주도시인 유주노사할린스크에서 42km반경에 위치하며, 인구는 3만6,700명 (2003년)인 한적하고 조용한 도시이다. 평화로운 항구 도시의 이면에는 사실 사할린의 강제징용자들의 슬픔과 한(恨) 또한 서려있다.

코르사코프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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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를 아우른 망향의 탑

코르사코프 언덕에서 찍은 항구 사진

코르사코프 언덕에서 찍은 항구 사진

러시아 사할린의 항구 도시인 코르사코프는 남 사할린에 위치한 곳이다. 우리의 숙소가 있던 유주노사할린스크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얼마 멀지않은 장소였다. 굉장히 작고 조용한 이곳은 평화로운 이면에 숨겨진 남모르는 한(恨)을 가지고 있다. 일제 식민시기 이었던 1938년, ‘국가 총 동원법’에 의하여 조선인들은 남 사할린으로 집단 강제동원이 시작되고 이들은 대부분 탄광이나 벌목장 등 군수시설 건설 현장에 투입된다. 이민과 같은 목적으로 먼저 러시아에 살던 사람들도 ‘국가 총 동원법’ 이후에는 러시아 현지(주로 연해주)에서 남 사할린으로 징용되어 강제노동에 시달리긴 마찬가지였다. 1944년 8월 전쟁물자의 수송이 어려워지자, 일본은 조선인들을 일본 본토로 재징용하는, 이른바 ‘전환 배치’ 혹은 ‘이중징용’을 하기 시작했다. 이중징용 이후 일본 본토와 남사할린 가족 간의 연락은 두절되고 만다.

사할린에 남은 가족들은 이산의 아픔에다가 가장을 잃어 생활고에 시달렸고, 민족적·사회적 차별 등과 같이 정신적 아픔 또한 겪어야 했다. 이후 1945년, 전쟁은 종결되었고 사할린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대했다. 하지만 귀환대상자의 자격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일본인’ 이었으며 일본은 일본 호적을 가진 사람만 ‘일본인’으로 받아들였다. 즉, 잔류 일본인, 일본인과 결혼한 조선인, 그 가족들만 일본으로 귀환될 수 있었고, 1990년 한·소 수교까지 종전 이후 45년간 4만여 명의 강제징용 조선인과 그 후손들이 사할린에 방치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조선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기 위해 있었던 곳이 바로 이곳, 코르사코프 언덕이다. 위 사진으로 볼 수 있듯이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라 귀국선을 바로 발견하기 위해서 그곳에 모였던 것이다. 사전조사를 할 때에는 한국 귀국선을 볼 수 없었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한국의 배들이 몇 번인가 왔다가 태우고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무정부 상태인 한국 당시의 혼란스러운 내부 상황 때문에 8번 정도 사할린으로 왔었던 배는 그 뒤로 사할린에 남은 사람들을 마저 다 태우지 못한 채 사할린에서 영영 자취를 감춘 것이다. 끊겨 버린 배를 그곳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망향의 언덕’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사진은 망향의 언덕에 서서 항구 쪽을 찍은 사진이다. 찍을 땐 그저 탁 트인 바다와 항구가 보이는 멋진 사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때 배를 기다리던 분들이 하염없이 이 풍경을 바라봤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코르사코프 망향의 탑

코르사코프 망향의 탑

이후 2007년, 코르사코프 항구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돌아가신 한인들을 위해 위령탑을 세웠다. 그것이 왼쪽 사진인 ‘망향의 탑’이다. 탑을 찍기 위해 잠시 장갑을 벗은 것만으로도 너무 추웠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따뜻한 옷도 없었던 당시에 바닷가 앞에서 배를 기다리면서 추위와 허기짐에 죽어가던 그들을 생각하니 그때 그분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확 와 닿았다. 단지 따뜻한 방에 앉아 노트북으로 달리 그들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똑같은 환경이 아니기에 더욱 더 그렇게 느껴진 것 같았다. 돌아갈 곳 없는 그들은 오랜 기다림에 지쳐서 굶어죽거나 추워 죽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다른 일부는 사할린에서 살 길을 찾아가 러시아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무국적자인 채로 힘든 세월을 견뎌야했다. 오른쪽 사진을 보면 그들의 실상이 어땠는지 잘 적혀있다. 과장한 게 아닌 사실을 담담히 적어놓은 비석을 보니 눈물이 났다. 나를 포함한 팀원들은 비석과 항구를 보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조용히 그들을 기렸다. 조각배 모양의 탑을 세운 건 아마 배를 타고 가지 못한 그분들의 넋이라도 고향으로 보내주기 위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슬프고 한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포들이지만 그들은 사할린에서 꽤 많은 영역을 차지하면서 또 다시 새로운 터전을 일구며 잘 살아간다. 마치 코르사코프에 우뚝 서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오는 위령탑처럼 말이다.
탑 옆의 비석.  위령탑을 세운 취지를 적어놓음

탑 옆의 비석. 위령탑을 세운 취지를 적어놓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이를 그저 과거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한·소 수교 때 영주귀국사업을 실시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가 없다. 왜냐면 일본의 제시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적십자사를 사업주체로 하였으며 영주귀국 대상에 직계가족을 포함시키지 않아 귀국대상은 이번엔 자식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린 한국 주도 하에 정확한 원칙을 정하여 사할린 현지 동포들에게 제대로 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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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하다(13)-사할린 강제동원 한인 ‘70년 망향의 한’」, 경향신문 「사할린(Sakhalin) 동포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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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혜란
  • 소속 : 국제지역학부
  • 이메일 : a8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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