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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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은 어쩌다가 똥이 되어버렸는가
대변항, 대변초등학교최근 이슈가 된,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용암초등학교’로 내년(2018년)부터 이름이 바뀌게 되는 대변초등학교와 그 주변 대변항을 살펴보며 왜 이 곳에 ‘대변’이란 이름이 붙었는지를 알아보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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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기장군 내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 나온 나를 포함해, 수많은 기장에서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솔직히 말하자. 진정 한번이라도 그 곳에 ‘똥’이란 이야기를 한 적 없을까?
멸치동상
‘대변’이라는 그 거시기한 이름은 어쩌다가 지어진걸까?
‘대변(大邊) 마을은 조선 시대에 대변포(大邊浦)라 부르던 곳이다. 이곳에 대동고(大同庫)가 있어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로 부르다가 줄여서 ‘대변’이라고 부른 것이다.‘
생각보다 간단한 어원이다. 대동고는 조선시대에 있던 국가 재정의 확보를 위해 있던 기구니 말이다. 그러면 새 학교의 이름인 ’용암‘은 어디서 온 걸까?
‘그러나 조선 전기까지는 동명으로 존재하지 않고 기장현 읍내면 무지포로 불렸다. 1895년(고종 32) 기장군 읍내면 용암동(龍岩洞)으로 명칭이 확인되며, 1914년 무양동(武陽洞)과 합쳐 동래군 기장면 대변리(大邊里)의 대변 마을이 되었다.’
구한말 정도에 지어진 용암이라는 이름이었다. 한편 앞서 설명했던 ‘대동고’를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창고로 알고있는 사람들 또한 많은데, 그것은 일제 강점기 이 곳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금도 기장군 내 거의 유일한 국가 어항인 대변항은 당시에도 중요한 곳이었다. 주재소가 있었고, 기장에서 최초로 서양식 의원이 들어왔으며, 일본인을 위한 소학교가 이 곳에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한편 일본과의 교류 역사 못지않게, 이곳 대변에는 외세에 저항하려 했던 역사도 있다. 다시 시선을 대변초등학교로 돌려본다면, 이 학교 정문 옆에는 다른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척화비이다.
척화비, 그것만큼이나 이 대변과 일본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있을까? 대변지역은 이렇게 기장의 다른 지역과 달리 외세와의 접촉 흔적이 있었고, 또 그걸 막기 위한 척화비가 있었던 지역으로, 그 특이함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척화비
학교명 바꾸기 운동
다시 대변초등학교의 주위를 걷다보면, 최근에 일어난 ‘학교명 바꾸기 운동’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이 학교를 돌며 사진을 찍을 때, 이 운동에 호기심을 가졌던 여러 외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멸치 축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멸치가 유명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넘어선 ‘대변’ 그 자체를 전국에 알린 사건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서오이소, 대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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