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도시 장소사전
역사
역사 조선시대
동래읍성
동래구임진왜란 당시 왜구의 1차 목표물이 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동래읍성은 부산의 역사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총 둘레 1.9㎞에 이르는 성곽은 충렬사 뒷산에서부터 동래구의 중심을 아우르고 있다. 동문, 서문, 남문, 암문 등 4개의 문이 있고 그 위에는 루를 두었으며 동, 서, 북쪽 높은 곳에는 장대를 두어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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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기념물 제5호로 지정된 동래읍성은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동래 시가지 중심 지역인 평탄지 일부를 포함한다. 산지와 평지를 연결한 평산성 형식으로 축조되어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모두 갖췄다. 자연 지형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이며, 북쪽과 동쪽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남쪽과 서쪽은 열려 있다. 문은 남문을 비롯해 서문, 암문, 북문, 인생문, 동문의 6개가 있었는데, 그중 정면의 남문이 가장 중요한 문이다. 지금은 북문과 인생문만 남아있고, 남문 자리에는 동래경찰서가, 동문 자리에는 충렬사가 있다.
멀리서 바라본 동래읍성
동래읍성 모형
옛 동래읍성은 1021년(고려 현종 12)에 왜구의 노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해안지역인 수영구 망미동 일대에 고쳐 쌓았던 성이다. 고려 말 왜구들의 침입이 심해지자 동래읍성은 1387년에 현재의 동래시장 일대로 옮겨진 후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격전지이자, 패전지가 되었다. 1731년에는 이전보다 크게 쌓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등 험난한 시대를 걸으면서 많은 부분이 철거되었고, 그나마 동쪽부터 북쪽의 산등성이에는 성의 일부분이 원형 그대로 남아 전해져 오다가 1979년부터 부분적으로 복원되고 있다. 1731년에 축성한 동래읍성의 둘레는 17,291척(약 3.8km), 높이는 17척(약 5.1m)이다. 읍성 안에 우물 10개와 못 1개가 있었다. 현재 동래구에서는 동래읍성 역사축제를 개최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북문광장에서 바라본 동래읍성 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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