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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체제하에서의 쿠바의 사회변동과 쿠바 한인 이주 역사

Universidad de la Habana(아바나 대학교)
  • 탐방일시 :2018.08.17
  • 조회수 :1136
  • 좋아요 :0
  • 위치
    La Habana 10400
  • 키워드
    한인, 쿠바, 사회주의, 관광, 문화

성장하고 있는 쿠바의 관광 산업을 통해 쿠바사회가 어떠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에 이 연구는 쿠바의 관광을 역사, 문화예술 그리고 자연생태로 구분하여 주요관광지의 설립배경, 관광지의 운영 방식 등을 조사하여 쿠바의 관광산업이 사회의 변화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자 한다. 이외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쿠바의 교육을 관광함으로써 쿠바 교육과 쿠바 사회의 연관성 또한 조사하고자 한다. 두 번째 연구 목적은 쿠바의 한인 이주 연구로 쿠바의 한인 이주의 배경과 역사를 알아보고, 현재 쿠바의 한인 집성촌을 통해 쿠바에 살고 있는 한인의 수, 그리고 주요 생활방식 등을 통해 후세대가 가진 정체성과 그들의 삶을 통한 쿠바와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혼합의 정도를 보고자 한다.

쿠바 혁명 동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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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연구 배경
2. 연구 목적

Ⅱ. 본론
1. 쿠바의 관광 산업
1) 역사
2) 문화예술
3) 자연생태
4) 교육
2. 쿠바의 한인 이주 연구
1) 쿠바의 한인 이주 역사
2) 쿠바 한인 후손의 정체성

Ⅲ. 결론

Ⅳ. 기타
1. 교육관광 관련 인터뷰
2. 한인이주 관련 인터뷰

Ⅰ. 서론

1. 연구 배경

미국의 엠바고 해제이후 쿠바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의 관점에서 우리는 성장하는 쿠바를 주시할 필요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로 아직 국제사회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쿠바가 이후 관광을 통한 사회개방과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쿠바 방문 관광객 수는 미국과의 수교 이후 급증 추세로 2016년에는 전년대비 13% 증가한 최초로 400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2017년(2월 기준)들어서도 전년대비 15% 증가 기록하였다.1) 이러한 관광객 수의 증가는 관광수입의 확대로 쿠바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Kotra 쿠바 무역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쿠바의 관광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래의 그래프는 쿠바의 관광산업의 성장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성장은 쿠바의 정책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쿠바정부는 경제사회개혁안인 배급제 축소·폐지, 차량 및 주택의 매매허용, 자영업 육성, 외국인투자 활성화, 해외관광여행허용 검토, 부정부패 근절 등을 통해 개혁성과를 이루어 가고 있다. 아직 다른 산업 자본이 부족한 쿠바에게 관광산업은 현재 쿠바의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2)

2. 연구 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연구 목적은 성장하고 있는 쿠바의 관광 산업을 통해 쿠바사회가 어떠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에 이 연구는 쿠바의 관광을 역사, 문화예술 그리고 자연생태로 구분하여 주요관광지의 설립배경, 관광지의 운영 방식 등을 조사하여 쿠바의 관광산업이 사회의 변화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자 한다. 이외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쿠바의 교육을 관광함으로써 쿠바 교육과 쿠바 사회의 연관성 또한 조사하고자 한다. 두 번째 연구 목적은 쿠바의 한인 이주 연구로 쿠바의 한인 이주의 배경과 역사를 알아보고, 현재 쿠바의 한인 집성촌을 통해 쿠바에 살고 있는 한인의 수, 그리고 주요 생활방식 등을 통해 후세대가 가진 정체성과 그들의 삶을 통한 쿠바와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혼합의 정도를 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쿠바의 관광 산업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본 연구는 쿠바의 관광산업 활성화를 통한 쿠바 사회변화를 탐구 하고자 관광의 종류를 역사관광, 사회문화관광, 자연생태관광으로 설정하였다.
쿠바의 주요 관광지들을 분류해보면 쿠바 혁명 역사를 중심으로 한 관광지, 쿠바의 사회문화적 관광지로 문화, 예술 등을 소개 하는 관광지, 그리고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한 관광지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분류에 따라 관광지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연구를 진행하였다.

1) 역사
쿠바 혁명(1953년 7월 26일 ~ 1959년 1월 1일)은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라울 카스트로 등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두 차례에 걸친 무장 투쟁을 벌여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혁명을 말한다(위키백과: 쿠바혁명). 1956년 체 게바라, 라울 카스트로를 비롯한 82명의 인민군들은 게릴라 투쟁을 펼쳤고 3년이 넘도록 지속된 투쟁은 엄청난 인민들의 지지를 얻으며 마침내 쿠바라는 나라를 라틴 아메리카 중 제국주의라는 지배 속에서 독립시킨 최초의 나라로 탄생됐다. 쿠바 혁명은 자주 독립정권을 세웠다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사회주의로 뭉친 쿠바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앞마당이라는 놀림을 받은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그리고 혁명을 위한 시초점이 되었다. 에스파냐, 미국 등 강대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고 라틴아메리카에서 혁명을 주도한 쿠바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모습들을 점차 개방해나가고 있었다.
쿠바는 혁명의 역사를 보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관광소재로 탄생시켰으며, 무작정 외부 강대국들의 자본을 받아들이는 것 대신에 그들만의 해석으로 새로운 관광소재를 만들었다. 아바나 시내에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과 식민 시절부터 쓰인 자재들로 만들어진 조형물들은 세월이 지난 그대로 보존하려 했고, 오래된 건축물들은 최대한 비슷한 자재들로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시내 곳곳에 혁명 영웅들을 따서 만들어진 건축물들은 쿠바의 인민들에게 혁명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예술적인 요소를 감미하여 다양한 관광자원 중 하나로 자리 잡게 하였다.

호세 마르티 동상

호세 마르티 동상

아바나 혁명 광장

아바나 혁명 광장

이와 같은 쿠바 혁명은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 지배를 최초로 깨트린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었으며, 이후 카스트로는 토지개혁을 가속화 시켰고 산업 또한 국유화를 진행했고 또 다른 부분인 교육과 의료 같은 부분들도 정비해나간다. 이 중 피델 카스트로와 더불어 역사적인 쿠바의 혁명을 지휘했던 체 게바라는 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뿐만 아니라 그의 수려한 외모 그리고 혁명 박물관에서 적혀있듯 그의 강인한 모습은 외부 관광객들에게 혁명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가 점차 개방을 하면서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유입되는 한편, 쿠바인들은 그러한 변화 속에서 혁명 그 자체를 관광화시켜 많은 외국인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혁명박물관과 혁명광장을 꼽을 수 있다. 혁명 박물관은 마리오 가르시아 메노칼부터 폴헨시오 밥티스타까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던 장소였다. 쿠바 혁명에 성공한 이후부터는 박물관으로 개편되어 쿠바 시민들 그리고 개방 이후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문을 열어 혁명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부터 혁명을 보다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혁명 역사의 흔적들이 38개의 전시관에 나뉘어 보존되어 있으며 강대국들을 상대로 성공시킨 혁명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이 기록물을 보는 쿠바인들의 태도에서 드러난 것으로 보아, 혁명은 쿠바 인민들을 결속시키는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혁명은 단순한 강대국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닌 모든 인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동시에 진취적인 그들의 가치관과 이념들을 반영하고 있었으며 기록물들을 통해 쿠바의 사회적 변화를 경험했다. 또한 그 사회적 변화를 통해 관광산업을 발전시켰고 외국인들을 위하여 설명하는 분들의 설명 속에선 쿠바를 처음 접하는 이방인들에게 쿠바란 나라와 혁명이 어떠한 의미인지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그들의 혁명에 대한 자부심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관광산업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써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아바나 혁명 박물관 내부 모습

아바나 혁명 박물관 내부 모습

아바나 혁명 박물관 외부 모습

아바나 혁명 박물관 외부 모습

이렇게 개방된 이후 쿠바 사회에서 그들의 혁명을 이방인들에게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변화가 나타났고, 혁명이라는 주제는 이념을 넘어 국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것이 다양한 관광자원 중 하나로 자리 잡아 외국인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2) 문화예술
문화권의 발전을 증진시키기 위해 실행되는 쿠바의 문화 정책은 예술 창작의 자유와 쿠바 문화의 정체성을 보호한다. 이와 관련하여 쿠바 공화국 중앙 행정부의 문화부는 쿠바 주 및 정부의 문화 정책 적용을 그 권한 범위 내에서 감독, 통제, 집행할 권한을 부여받았으며, 쿠바 민족 문화유산의 보호, 보존 및 보전을 보장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문화는 전 세계에서 많은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그 많은 나라들 가운데 쿠바는 조그만 면적에 비해 옛 식민 시절부터 유럽과 북중미 대륙을 잇는 구심점으로서의 관문으로 중요한 부분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고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혁명이 성공한 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중 유일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라틴아메리카를 넘어 전 세계의 관심이 모아졌다. 그 중 문화 예술은 쿠바를 발전시킴과 동시에 개방정책을 통한 관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심층적인 연구를 벌였다.
현재 쿠바의 문화는 과거 쿠바를 지배하던 스페인의 통치 문화와 그들에게 저항하던 저항 문화와 결합되어 존재하며 쿠바 문화는 다른 어떠한 나라보다 역사적 질곡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역사를 가진 만큼 다양한 문화가 결합하여 공존하고 있는 쿠바는 여러 가지 문화를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승화시켜 다양한 작품으로 배출해내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쿠바의 사회문화적 관광으로 인해 쿠바 사회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문화를 쿠바를 상징하는 예술, 음악, 그리고 문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아바나 국립 미술관 전시 작품

아바나 국립 미술관 전시 작품

아바나 국립 미술관 전시 작품

아바나 국립 미술관 전시 작품

예술분야의 관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중 하나로 아바나 국립 미술관을 꼽을 수 있다. 아바나 국립 미술관은 1913년 설립된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중 하나이다. 쿠바의 16세기에서 21세기까지의 예술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며, 쿠바관과 국제관,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쿠바관에서는 쿠바의 식민지 시대의 작품부터 현대 미술 작품까지 길고 폭넓은 쿠바미술사를 감상할 수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국제관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인데, 쿠바의 예술 작품뿐만 아닌 다양한 서양 문물들을 전시함으로서 쿠바의 사회 개방적 관광정책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거리의 골목 사이사이 들어서있는 상대적으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무명의 작가들의 갤러리에 비해 제대로 된 운영 방식을 가진 국립미술관은 외국인 관광객이 쿠바의 예술을 둘러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고, 미술관 내부에 있는 인민들의 작품들에서 진취적이고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작품성들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예술적인 방면에서 변화하고 있는 쿠바 현대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아바나에 위치한 복합 예술문화 공간인 ‘파브리카 데 아르테’라고 할 수 있겠다. FAC은 쿠바인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공간 활용 그리고 다양한 미술 작품과 트렌디한 음악은 관광객들 또한 끌어들였다. 관광객들의 수요에 맞춰 FAC에서도 보다 다양한 음악과 미술을 선보이고 있으며 이는 쿠바의 젊은 층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현재 쿠바의 젊은 세대들은 쿠바의 살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음악이나 예술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이며 즐기고 있다. 쿠바를 대표하는 음악인 살사를 뒤로한 채 새로운 문화가 떠오르기보다 함께 섞이고 공존해가고 있다.
이외에도 쿠바 어디에서나 악사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식당이나 술집 등에서 연주하는 악사들은 그것을 그들의 직업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변화된 모습은 쿠바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과 관광이라는 요소가 합쳐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FAC에 전시된 미술 작품

FAC에 전시된 미술 작품

FAC의 입구

FAC의 입구

3) 자연생태

(가) 쿠바의 생태 및 자연
서인도제도의 총 육지면적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쿠바는 동서길이 약 1,300km, 남북길이 약 70∼200km의 기다란 섬이다. 국토의 1/4이 산악 지대이며, 하천은 급류를 이루는 소하천이 많다.
주변의 구릉지는 석회암의 풍화토인 마탄자즈 토양으로 덮여 있으며, 비옥하고 배수가 양호하여 재식농업(플랜테이션)지로 적합하다. 해안지방은 사주(砂洲)·만(灣)·맹그로브숲·산호초·습지 등 매우 다양한 경관을 나타낸다. 섬 주변은 약 7만㎢에 달하는 수심 200m 이하의 대륙붕을 이루며 수많은 산호초가 발달하여 있다(두산백과: 쿠바의 자연).
북위 20∼23.5° 사이에 있으므로 섬 전역이 열대성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25.5℃, 1월 평균기온 22.5℃, 8월 평균기온 28℃로서 기온의 교차가 매우 작다. 따라서 계절적 기후 변화는 강수량에 의하여 결정된다. 11~4월은 건기, 5~10월은 우기에 속하는 전형적인 열대성 사바나기후를 나타낸다. 기후 때문에 식물의 종류가 많고 수림이 무성하여 '자연식물원'이라고도 불린다(네이버 지식백과: 쿠바의 자연환경).
 쿠바 지도

쿠바 지도

(나) 쿠바의 생태정책
생태계 마지노선으로서 쿠바의 중요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많은 생태학자들은 쿠바는 카리브해의 생물학적 강대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쿠바지역은 손대지 않은 우림, 오염되지 않은 산호군락, 온전히 보전된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 지역이 있다. 또한 쿠바만의 고유 곤충과 조류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쿠바가 이러한 생태계를 유지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구소련 붕괴 이후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개발에 있어 생태학적 관점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또한 예전부터 존재했던 정책과 프로그램 등은 현재 생물다양성의 보존, 대체 에너지, 농업, 공중보건, 환경 교육 등을 포함하는 필수적인 국가 프로그램으로 통합되었다(Levins, R., 2000).
1997년 쿠바에는 환경기본법이 시행됐다. 이 법이 시행되기 훨씬 전부터 피델 카스트로는 환경 의식을 강력하게 지지해 왔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3)에서 연설을 했는데, “중요한 생물학적 종인 인류가 자연 서식지의 빠르고 점진적인 제거로 인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쿠바는 이러한 환경보전이 항상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환경을 보존하려고 노력해 왔다. 쿠바는 환경을 의식하는 시민을 만들기 위해 환경 교육을 강조해 왔다(Sato, E., 2016).

(다) 쿠바의 자연생태관광
앞서 말한 쿠바의 천혜의 환경 덕분에 쿠바에는 자연과 생태환경을 이용한 다양한 관광 상품이 개발될 수 있었다. 조류관찰, 트래킹, 낚시 및 스킨스쿠버 투어 등이 대표적이다. 쿠바의 따뜻한 기후 덕분에 겨울철 캐나다로부터 많은 조류가 겨울을 지내기 위해 쿠바로 날아온다. 쿠바에서 발견되는 조류는 368종으로 그 중 70%가 철새이다. 작은 벌새부터 큰 군함조와 같은 다양한 조류가 관찰된다. 또한 세계적으로 희귀한 딱따구리 등이 발견된다. 이러한 생태적 환경을 이용해 쿠바 곳곳에서 조류를 관찰하는 많은 관광 상품들이 개발되어 있다.
그리고 쿠바는 지형적 특색을 이용하여 다양한 트래킹코스가 만들어져있다. 폭포와 동굴들이 장관을 이루는 트리니다드의 남서부 고원지대의 토페스 데 콜란테스 국립공원, 1958년 피델카스트로와 그의 게릴라들이 바티스타를 상대로 혁명을 꾸몄던 쿠바에서 가장 높고 긴 산맥인 시에라 마에스트라, 쿠바의 최고봉인 피코 투르 키노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쿠바는 아름다운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나라이다. 잘 보존되어 있는 산호와 아름다운 해변풍광으로 스킨스쿠버와 스쿠버 다이빙과 같이 바다를 이용한 관광 상품을 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라) 자연보호구역 라스 테라사스와 시에나가 데 사파타 국립공원
본 연구를 위해 라스 테라사스 자연보호구역과 시에나가 데 사파타 국립공원을 선정해 현지 조사를 진행하였다. 라스 테라사스는 쿠바의 아르테미사 주의 칸델라 리아 시정촌에 있는 작은 공동체이자 자연보호구역이다. 라스 테라사스는 쿠바 서부 아르테미사 지방의 시에라 델 로사리오 산맥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공동체는 1971년 시골지역과 공동체의 환경을 연결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생물권 보호구역 UNESCO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라스테라사스는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인근 구리 광산, 무분별한 산림, 커피 농장으로 인해 대규모 삼림 벌채로 고통 받고 있는 지역이었다. 1985년 유네스코가 시에라 델 로사리오를 보호구역으로 선포했을 당시 지역 공동체가 구역 안에 있는 것을 고려하여 관광개발이 계획되었다. 1994년, 라스테라사스 관광단지가 공식적으로 준공되었고 서비스 부분, 특히 지속가능한 생태관광과 현대적 편의시설 설치 및 경제기반의 혁신이 시작되었다. 공동체는 상대적인 고립으로 인해 시장, 학교, 약국, 영화관 및 도서관 등 기본 시설이 함께 설계되었다.
라스테라사스 지역공동체의 주요 관광 상품은 숲속에 케이블을 이어 만든 짚라인과, 지역 내의 호수 등이 있다. 특이점은 지역공동체 내에 현지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인데 관광객들은 그들의 삶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그들이 이용하는 도서관과 카페 등을 이용해 볼 수 있다. 현재 라스테라사스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 상품 또한 제공한다. 관광객들에게 현지 가이드를 배정하여 라스테라사스 지역공동체의 개요와 역사 등을 설명해주고 공동체와 관련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관광 상품의 대상인 라스테라사스는 환경적 특색뿐만 아니라 사람과 생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는 쿠바 사회를 관광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관광객들이 라스테라사스 역사에 대해 교육받고 있는 모습

관광객들이 라스테라사스 역사에 대해 교육받고 있는 모습

시에나가 데 사파타 늪지대 풍경

시에나가 데 사파타 늪지대 풍경

시에나가 데 사파타(Ciénaga de Zapata Biosphere Reserve)는 쿠바 남쪽 해안의 마탄사스 지방 내의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이다. 628,171헥타르의 보호 구역은 사파타의 늪을 포함 하며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습지 중 하나이다. 보호구역 내에는 초원, 맹그로브 숲, 상록 해안 및 연안 삼림과 같이 다양한 생태계와 토지유형을 보여준다. 또한 주요 산호초와 해안 석호가 이루어져 있고 쿠바에만 서식하는 쿠바 악어가 서식한다. 지역주민은 9천여 명 정도로 어업, 공동체 농업, 관광, 수공예품 등에 종사하고 있다.
늪지대로 이루어진 악어농장에서는 악어 먹이주기, 악어와 함께 사진 찍기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라스테라사스에서 진행되는 컨텐츠에 비해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한 요소가 다소 부족하다. 람사르 습지와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관광객을 이해시킬 수 있는 교육 컨텐츠를 개발하면 관광객의 만족과 현지 주민들이 상생할 수 있는 관광지로 기회가 보인다.

(마) 쿠바 자연생태 관광과 쿠바 사회 변동
최근 들어 많은 수의 쿠바 관광객들이 쿠바의 자연에 매력을 느끼고 방문을 한다. 미국과 관계 정상화 이전 쿠바의 자연은 현지주민들의 일상이고 일터였다. 쿠바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급증하며 경관이 수려하고 생태적 모습이 큰 지역의 현지주민들 일부는 관광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라스테라사스 지역공동체의 경우 빼어난 생태적 환경과 더불어 현지주민의 삶을 관찰할 수 있다는 특징 덕분에 쿠바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개방이 가속화됨에 따라 방문자 수가 급증하게 되면서 관광업으로 전환하는 지역공동체 주민들의 수도 증가하였다. 현지 쿠바 페소보다 가치가 높은 쿠바 달러를 벌 수 있기 때문에 수입이 늘어나는 한편 지역공동체의 본질과 매력을 점점 잃게 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4) 교육
현대에는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교육, 의료, 복지서비스를 배우고자 하는 목적의 관광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쿠바의 교육과 의료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 연구는 쿠바 교육부와 아바나 대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들을 관광하며 쿠바의 교육 시스템과 교육 관광이 쿠바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조사하였다.
아바나대학교 국제교류센터 부원장 Gilberto Javier Cabrera Trimiño 와 쿠바 교육부 관계자이자 문화예술종합대학 부학장인 Aldo Pérez Sánchez를 만나 실시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쿠바 교육부 관계자 Aldo Pérez Sánchez 교수와의 인터뷰

쿠바 교육부 관계자 Aldo Pérez Sánchez 교수와의 인터뷰

아바나대학교 국제교류센터 부원장 Gilberto Javier 교수와의 인터뷰

아바나대학교 국제교류센터 부원장 Gilberto Javier 교수와의 인터뷰

쿠바는 1959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그 사상에 맞는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추어 혁신적인 사회적 구조에 대한 개혁을 실행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교육은 두 가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는데 일터로 나가기 전의 교육과 실제로 그들이 행하는 노동이 두 가지를 결합한 것을 크게 강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미국으로부터 혁명을 성공시킨 이후, 경제적인 위기에 봉착했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실용주의라는 측면에서 교육 개혁을 시작했고 이는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한만길, 2004). 교육에서 교육개혁 성공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고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교육을 희망하는 전 인민들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무상교육은 쿠바의 문맹률을 낮추면서 많은 훌륭한 인재들을 키워냈다. 교육에서 이러한 큰 성과를 거둔 이후 쿠바는 현재 해외 여러 유수 대학들과 협정을 맺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는 해외 대학들과의 학술교류나 교환학생 프로그램 등 교육 관광을 통해 세계 속에서 쿠바가 고립되지 않으려는 변화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교육 중 가장 큰 특징은 사회주의라는 체제 속에서 모든 과정들이 질서 있고 틀에 맞추어 구조화되어있는 점이다. 쿠바는 사회주의 체제로 사회적 수요에 따라 철저하게 직업을 분배하는 식이며 따라서 쿠바 학생들은 학과를 선택하고 그에 맞게 국가가 정해준 직업을 가지게 된다. 이렇듯 쿠바교육은 쿠바 사회로 대변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사회문제가 곧 교육문제라고 생각하며, 변화하는 사회에 따라 내부 교육 시스템을 업데이트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김에 따라, 최신 문제점들을 직업적으로 해결하는데 중점을 두고 변화를 할 것이다.

2. 쿠바의 한인 이주 연구

1) 쿠바의 한인 이주 역사
한국과 정반대에 위치한 쿠바는 우리에게는 낯선 곳이다. 그렇지만 쿠바에는 한인사회가 형성되었고 조선으로 독립자금을 보내는 등 일제독립운동의 한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이민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가게 된 것에서 시작했다. 1905년 황성신문의 광고를 보고 한국을 떠난 1033명은 풍요의 꿈을 꾸며 멕시코 유카탄 땅을 밟는다(정경원, 2004). 그러나 도착한 순간부터 이들은 거짓임을 깨닫는다. 철두철미하게 자국의 이익을 계산한 일본정부와 영국인 국제이민 브로커 존 마이어스(John G. Myers)가 함께 이루어진 사기 이민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생존을 위한 낯선 타국에서의 노예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1904년 12월 17일(음력 11월 11일)부터 1905년 1월 13일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황성신문〉에 게재된 멕시코 한인 이민자 모집광고 내용의 일부이다:

“북미 묵서가(墨西哥, 멕시코국)는 미합중국과 이웃한 문명 부강국이니, 수토가 아주 좋고 기후도 따뜻하며 나쁜 병질이 없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바이다. 그 나라에는 부자가 많고 가난한 사람이 적어 노동자를 구하기가 극히 어려우므로, 근년에 일, 청, 양국인이 단신 혹은 가족과 함께 건너가 이득을 본 자가 많으니, 한국인도 그곳에 가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볼 것이다.”

멕시코에서 1909년 4년 동안의 계약 기간이 끝났을 때, 한인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이뤄낸 바는 없이 공중으로 붕 뜨게 되었다. 오로지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전부였던 그들은 언어습득 등 현지 적응을 위한 노력을 하지 못했다(안금영, 2003). 당시 멕시코 한인 이민의 1.5세대였던 임천택의 멕시코 도착에 대한 회상은 그 무렵 한인들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인천에서 출발한 지 30여 일 만에 지루한 항로를 건너 별 장애 없이 묵국 '살리나 구르스'에 도착해 이민국 검사를 거쳐 다음 '유카탄 부로그래스' 항에 상륙하니 때는 5월 15일(음력 4월 16일)이었습니다. '유카탄'도 수부 '메리다'에 도착하여 5~6일이 지나서 식민회사의 지시에 의해 어저귀 농장으로 몇 십 명씩 각각 헤어져서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메리다의 에네켄 농장으로 분산된 한인 이민자들은 대한제국과 완전히 단절되어 한인은 외부와 차단된 농장 내에서 고립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인 공동체 사회를 형성하고 언어와 유교적 전통문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강점당하자 돌아갈 조국을 잃은 한인 이민자들은 이곳저곳 방황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중 대부분의 한인들은 유카탄 반도에 머물렀지만, 운이 좋은 몇몇은 미국 특히 하와이로 이주했고 또한 극소수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1911년 이들은 더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 하와이로 이주를 시도 하지만 미국정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자 생존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마침 1921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쿠바의 설탕산업이 호황을 맞이하자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은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고 멕시코에 거주하던 한인 288명이 쿠바의 마나띠(Manati)항에 도착하여 쿠바에서 새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한다(정경원, 2003: 478). 그러나 설탕산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20년 파운드 당 22.5센트에 거래되던 설탕 값이 1920년 12월에 3센트로 폭락하여 더 이상 값이 오르지 않자 일부 한인들은 당시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지역인 마탄사스로 이주하여 멕시코에서 일하던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에네켄 농장에서 고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 이래 마탄사스 농장 지역은 쿠바 한인들의 근거지로 자리 잡게 되고 지금도 그곳에는 여전히 한인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국회 재외동포문제연구회, 2004: 57). 이후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마탄사스뿐만 아니라 카르데나스, 아바나 지역으로 한인들이 퍼져 나가게 되었다. 현재 마탄사스에는 쿠바 내 한인 인구의 약 1/5가, 마탄사스 주에 위치한 카르데나스에는 한인 인구의 약 1/3이 거주하고 있다(라울 루이스, 마르타 림 김, 2004).

2) 쿠바 한인 후손의 정체성
한인들의 이주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속에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여러 노력들을 찾아볼 수 있다. 멕시코에서 쿠바로 처음 이주했을 당시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였으며 따라서 한인들은 무국적자 상태였다. 일본 영사관에서는 그들에게 일본 귀화를 권유하였으나 강하게 반발하였고, 쿠바 주재 일본 영사가 일본인으로 여기지 않아 서류 처리상 문제가 생겨 한인들은 쿠바에 상륙하지 못한 채 바다에 발이 묶여있었다. 결국 재미 한인회와 메리다 한인회의 항의로 한인들이 상륙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로써 한인들의 민족의식에 뿌리 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정경원, 신정환, 2003).
이후 그들은 마탄사스(Matanzas)의 엘 볼로(El Bolo) 마을에 정착하여 한인촌을 건설하였다. 마탄사스의 에네켄 농장에서 심한 억압과 감시를 받으며 힘든 노동을 이어나갔고, 12시간의 연속된 노동에도 지주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주지 않았으며, 그들을 쉴 새 없이 노동으로 돌렸다. 이렇게 겨우겨우 살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한인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돈을 모아 조국 광복 사업에 꾸준한 후원을 하였다. 독립 운동가이신 김구 선생의 기록물에서도 쿠바 한인들의 후원에 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한인 이주 기념비

한인 이주 기념비

한인들이 직접 캤던 에네켄

한인들이 직접 캤던 에네켄

쿠바 이주 한인들의 정체성 유지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체성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후손들을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1923년 민성국어학교를 설립하였고, 1928년에는 진성국어학교도 설립하면서 어린 한인 후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 교육에 힘썼다. 청년학원도 설립하면서 다양한 교육 활동을 통하여 정체성 보존과 지식인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게다가 일상에서는 한국의 전통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였으며, 명절을 빠짐없이 지내오면서 전통적인 풍습을 이어나갔다(정경원, 신정환, 2003). 이들은 쿠바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며, 그 최선은 흔들리는 쿠바에서의 생활 속에서도 배우며 조국을 잊지 않겠다는 그들의 슬픈 포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다. 한인 3세대 이후부터는 거의 대부분이 혼혈로 현지 사회와의 동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정권이 바뀌고 법이 개정되는 등 격변하는 쿠바 사회 속에서 조국에 대한 애착심과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유대감이 점점 희미해져갔다.
하지만 아바나, 마탄사스 등지에 쿠바 한인회, 쿠바 한인후손회관과 같은 단체들을 설립하여 그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현재 쿠바 전역에 약 640여명으로 추산되는 한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현지 조사를 통해 그들이 계속해서 전통을 이어가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인후손회관은 초기 쿠바 이주 한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부터 역사 기록 자료까지 아주 잘 보존되어있고, 한국어 교실과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들도 마련되어 있는 등 한인 후손들의 유대감 강화 및 교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곳에서 한인 후손들은 김장을 한다거나 한복을 입으며, 광복절을 기념하는 등 한국의 전통과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최근 쿠바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제품이나 콘텐츠, 특히 K-POP은 한인 후손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전통문화 체험 공간

한국 전통문화 체험 공간

한인들이 직접 담근 김치

한인들이 직접 담근 김치

한인 이주 역사 기록물

한인 이주 역사 기록물

한국어 교실 내부

한국어 교실 내부

Ⅲ. 결론

지금까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의 쿠바의 사회변동과 쿠바 한인 이주 역사'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쿠바의 사회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쿠바의 관광산업에 대해 탐구하였다. 그리고 쿠바 한인 이주와 관련하여 그것의 배경과 역사 그리고 현재 쿠바 한인 후손들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하였다. 본 연구는 먼저 관광산업을 크게 4가지로 나누었고 현지 조사를 통해 각각의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 번째로 역사관광에서 핵심적인 요소인 쿠바 혁명은 생각했던 것보다 쿠바 내에 훨씬 더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역사, 특히 혁명이 관광화 됨으로써 그에 대한 자국민들의 자부심 또한 높아졌고 쿠바 인민들을 더욱 강하게 결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문헌조사로는 알 수 없었던 쿠바 사회 변동의 질적인 부분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음으로 쿠바의 문화예술은 관광과 만나면서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혼합문화를 만들어냈고, 이는 쿠바인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 개방 정책으로 관광객이 증가하였고 자연스럽게 외부의 문화예술적인 요소들이 유입되었다. 그것이 쿠바 예술과 만나 혼합적인 형태로 나타났는데 아바나 국립 미술관의 국제관과 쿠바 예술문화 복합 공간인 FAC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변화는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쿠바인들의 수가 증가한 것이다. 거의 모든 관광지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연주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쿠바 관광이 확대됨에 따라 쿠바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이라는 요소가 생계수단으로 이용된 결과로 보여 진다.
쿠바의 자연생태 관광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사람과 생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는 쿠바 사회를 함께 관광할 수 있다는 특색을 가진다. 그러나 라스테라사스나 시에나가 데 사파타를 방문하였을 때, 점점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부정적인 사회적 변화들도 보였다. 쿠바 자연생태 관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사람과 생태가 어우러진 공동체 사회를 볼 수 있는 것인데,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점점 관광 상품을 만들어내고 관광업에 종사함으로써 본질을 잃어가고 있었다. 또한 불가피한 환경 파괴 문제를 꼽을 수 있는데, 점점 더 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자연 보호 계획, 무분별한 상업화 자제 등 지속가능한 관광이 될 수 있도록 쿠바 정부와 사회의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쿠바의 교육 시스템과 교육 관광이 쿠바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조사하였다. 관계자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교육 개혁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둔 이후 쿠바는 현재 해외 여러 유수 대학들과 협정을 맺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아바나 대학교는 이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한국의 부경대학교와 MOU체결을 결정하였다. 쿠바가 점차 개방 되면서 쿠바로의 교육관광이 증가함에 따라, 쿠바역시 해외 대학들과의 학술교류나 교환학생 프로그램 등 교육 관광을 확대시켜 세계 속에서 쿠바가 고립되지 않으려는 변화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외에도 앞으로 더욱 개방될 쿠바 사회에 발맞춰 교육과 생산 노동이 결합된 사회주의적 특징을 가진 쿠바교육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쿠바 한인 이주에 관한 연구는 일차적으로 이주 배경과 역사에 대해 조사하였고, 현재 쿠바에서 살아가는 한인 후손들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하여 일련의 결론을 도출하였다. 우선 쿠바 한인 이주의 배경과 역사를 보다 깊이 있게 조사하기 위해 문헌 연구 이외에 한인 후손과의 인터뷰 또한 진행하였다. 인터뷰를 통해 초기 세대 한인 분들의 경험과 그들의 독립운동에 관해 보다 세부적인 내용들을 조사함으로써 이주 역사에 대한 질적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본 연구는 쿠바 한인 이주 연구에서 한인 후손들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였다. 이주 초기 세대부터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한인들의 노력을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조사하였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설립한 쿠바 한인 후손회를 방문하여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한인 후손들은 모두 쿠바에서 나고 자랐지만 자신들이 쿠바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므로 한국의 전통을 이어가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한인 후손과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한인 후손들은 한국인들을 만나고 싶어 하며, 한인의 역사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갖추고 있고, 요즘엔 한국의 경제적인 발전이나 젊은 사람들의 유학 등으로 한국의 소식을 접하면서 한국에 대한 동경이 깊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최근 쿠바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제품이나 콘텐츠, 특히 K-POP은 한인 후손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있으며, 그들은 한국의 문화를 쿠바인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쿠바 한인 후손들을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한편, 한인 후손들은 정체성 유지 노력과 한국에 대한 관심에 비해 한국과의 교류는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아래의 한인 후손들의 설문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한국 정부가 한인 후손에게 기울인 관심과 지원 정도

한국 정부가 한인 후손에게 기울인 관심과 지원 정도

설문조사 응답자의 91.1%가 교류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쿠바의 한인 후손들은 현재 문화, 교육,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원한다. 하지만 현재 한-쿠바간의 외교적 교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며 교류가 발전하기 위해 어떠한 정책들을 펼쳐야 하는지 모색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한시라도 빨리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발전시켜 한인 후손 사회에 더 나은 교육 환경과 물질적인 면으로 지원해야 한다(정경원, 2004: 490-491).
본 연구는 질적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표본이 적어 일반화함에 있어 한계점을 가지지만, 개개인의 경험과 사실에 초점을 맞춰 보다 심층적인 조사를 실시함으로써 해당 분야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또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국가와 분야를 선택하여 현지조사를 행함으로써 후속연구의 활용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

Ⅳ. 기타

1. 교육관광 관련 인터뷰

1) 아바나 대학교, 쿠바 교육부
질문1. 아바나 대학교의 국내외 학생들에 대한 장학제도는 어떠한가?
답변1. 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딱히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 제도가 있다.

질문2. 아바나 대학교의 국내외 학생의 비율은?
답변2. 학생의 98%가 쿠바 자국민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현재 다양한 학술교류나 학생교류 시스템을 확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질문3. 아바나 대학교 혹은 쿠바의 대학교만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 있나?
답변3. 쿠바는 사회공산체제이다. 그래서 졸업 전 전공과 관련된 사회봉사가 필수이다.
다른 국가와 달리 우리는 직업교육과 비슷하게 전공과 관련된 사회봉사를 시키며, 전문적인 환경에 나갈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예방하기 위함이다.

질문4. 우리는 인문사회대학 소속으로 지역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아바나 대학교에서 우리와 비슷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는가?
답변4. 아바나 대학교는 분야별 과목이 구체적이지 않다. 인문사회분야를 전체적으로 공부한다.

질문5. 아바나 대학교 학생들이 희망하는 직업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답변5. 이 질문은 우리에게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쿠바는 사회주의 체제로 사회적 수요에 따라 철저하게 직업을 분배하는 식이다. 즉 입학 전 전공을 결정할 때, 직업도 함께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질문6. 다른 대학교와의 차별화된 아바나 대학만의 특징이 어떠한 것인가?
답변6.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쿠바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가장 유명한 대학들 중 하나이다.

질문7. 앞으로 쿠바의 교육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답변7. 먼저, 대학 간 협력을 증가시켜 지역대학 활성화에 도모할 것이다.
또한 사회문제가 곧 교육문제라고 생각하며 변화하는 사회에 따라 내부 교육 시스템을 업데이트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신 문제점들을 직업적으로 해결하는데 중점을 두고 변할 것이다.

질문8. 쿠바 국내 대학 간에는 어떠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답변8. 일단 모든 대학 간 상호협력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같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다양하다. 외국의 프로젝트를 가져오기 위해 국가의 지원을 받으려고 긴밀하게 협력한다.

2. 한인이주 관련 인터뷰


2-1) 쿠바한인회
질문1.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
답변1. 한국어 능력시험을 통해서 방문한 적도 있고, 성적이 좋아 한국으로 초대예정인 학생도 있다. K-POP 페스티벌에 초대받아서 방문할 예정인 학생도 있으며,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질문2. 한국 문화를 접하는 방법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접하는가?
답변2. 쿠바 청소년 한국어 교실을 만들어 한글을 배우고 가르치기도 하며, 한국의 대중문화로 춤이나 노래를 배우거나 드라마 등을 통해 문화를 접한다. 한국의 전통의상이나 전통음악, 음식 등을 통해서 한국 문화를 배우기도 한다.

질문3. 한국 문화를 다른 쿠바인들과 공유를 하는가?
답변3. K-pop열풍으로 한국의 음악과 춤을 배우고 싶어 하는 쿠바인들이 많아졌다.

2-2) 마르타임 선생님 인터뷰
질문1.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떤지 ?
답변1. 쿠바 측에서는 외교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을 최고의 친구로 여기지만, 민간적인 교류나 문화에 있어서는 한국과 관계가 깊다. 한인 후손들은 한국인들을 만나고 싶어 하며, 한인의 역사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요즘엔 한국의 경제적인 발전이나 젊은 사람들의 유학 등으로 한국의 소식을 접하면서 한국에 대한 동경이 깊어지고 있다.

질문2. 한인 후손들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 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답변2. 한국어 교육은 과거 1999년도부터 한국교회에서 목사들이 파견되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박차를 가했는데, 특히 장로교회에서 한국어 교사를 파견해 준 것이 가장 기억에 남을 큰 선물이다. 한국인 부부 교사가 교회의 소개로 쿠바에 오게 되었는데 한국과의 외교관계가 없어 정식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한국과 쿠바를 넘나들며 한국어를 가르쳤다. 총 3개의 학교(마탄사스, 카르데나스, 아바나)를 지어 매주 돌아다니며 수업을 진행하였다. 교사 부부의 노력으로 다시 한국 문화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에는 쿠바 후손회관과 어학당에서 한국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질문3. 한국어 교육 외에도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를 가르치는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답변3. 기본적으로 어학당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어학당에서 한글로 된 노래나 구연동화 등을 가르쳐주면서 문화를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광복절 행사나 명절 등 한국 문화를 기본적으로 알려주고 경험을 심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위치보기

1) 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4/globalBbsDataView.do?setIdx=243&dataIdx=158383. 2018.8.12.
2) 쿠바 아바나 무역관, 쿠바 방문 참고자료(2018.6)
3) 리우 회의(Rio Summit) 또는 지구 정상 회의(Earth Summit)는 1992년 6월 3일부터 6월 14일까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국제회의로, 전 세계 185개국 정부 대표단과 114개국 정상 및 정부 수반들이 참여하여 지구 환경 보전 문제를 논의한 회의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국회 재외동포문제연구회. (2004). 『21세기 재외동포정책의 바람직한 방향: 일제식민지하 이 주 재외동포의 현황과 과제』. 서울: 대한민국국회
라울 루이스, 마르타 림 김. (2004). 『쿠바의 한국인들』. 서울: 재외동포재단

학술논문
안금영. (2003). 중남미문학: 초기 멕시코 한인 이주민의 쿠바 정착 과정. 스페인어문학, 28, 671-691.
정경원, 신정환. (2003). 중남미문학: 쿠바 한인 후손들의 정체성 상실 과정 연구. 스페인어문 학, 28, 717-731.
정경원. (2004). 설문 조사 분석을 통한 쿠바 한인 후손들의 정체성 실태 연구. 스페인어문학, 33, 477-494.
한만길. (2004). 쿠바의 사회변화와 교육개혁 연구. 비교교육연구, 14, 177-193.
Levins, R. (2000). Cuba’s environmental strategy. Revista. Harvard Review of Latin America, Winter, 33-51.

사전
두산백과: 쿠바의 자연, 2018년9월8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78376&cid=40942&categoryId=33136
네이버 지식백과: 쿠바의 자연환경, 2018년9월8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04791&cid=62120&categoryId=62120
위키백과: 쿠바 혁명, 2018년9월9일
https://ko.wikipedia.org/wiki/%EC%BF%A0%EB%B0%94_%ED%98%81%EB%AA%85

웹페이지
Sato, E. (2016). “Cuba’s Tourism, the Embargo, and the Environment”, 2018년9월8일, http://www.coha.org/cubas-tourism-the-embargo-and-the-enviro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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