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거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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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탑인가 방패인가, 생 장 요새(Fort Saint-Jean)
생 장 요새(Fort Saint-Jean) 마르세유의 구항에서 바다 방면으로 얼마정도 이동하면 신기하게 생긴 현대식 건축물과 다리 하나로 이어져있는 성벽과 같은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이는 생 장 요새(Fort Saint-Jean)로 불리는 것으로 구항구를 비롯한 마르세유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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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마르세유에서 많이 찾는 곳으로 꼽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다가 보이고 누가봐도 항구도시라는 점을 나타내는 마르세유 구항구, 마르세유 꼭대기에서 시내 전체를 내려보는 노트르담 성당 등을 말할 것이다. 거기에 포함되는 것이 Mucem(지중해문명박물관)과 생장 요새이다. 구항구에서 바다 방면으로 어느정도 이동하면 지평선이 보이는 바다와 함께 큰 성벽같은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이 건축물이 바로 생장 요새이다. 평화로워보이는 마르세유에 있는 거대한 이 건축물은 우선 크기만으로도 위용을 뽐낸다. 동시에 요새 위로 올라가면 마르세유 시내 곳곳이 눈에 들어온다. 마르세유와 생장 요새가 가지는 연관성에는 무엇이 있을까?
2. 생장 요새 명명 이전(~1660)
생장 요새는 1660년에 지어진 이름으로 그 이름이 달라졌을 뿐으로, 계속해서 마르세유에 위치해있었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의 부상자 등을 치료하는 성요한 기사단의 교회 유적, 프로방스 백작 르네 당주가 15세기에 세운 르네탑, 17세기 프랑스 정부가 세운 등대 등 종교적, 군사적으로 마르세유의 역사와 함께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를 1660년에 합쳐 만든 것이 생장 요새인 것이다. 마르세유 역사박물관에서 보았듯이 마르세유는 지중해의 중심에 위치해있어 십자군 전쟁 등의 일이 통과해야하는 장소였다. 그렇기에 1660년 이전 생장 요새1)는 지중해의 중심지로서 마르세유의 번영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3. 생장 요새 명명 이후(1660~)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방어 시설. 또는 그런 시설을 한 곳’. 인터넷에 ‘요새’를 검색하면 나오는 요새의 정의이다. 실제로 마르세유의 생장 요새를 보면 구항 입구에서 반대편의 Fort Saint-Nicolas와 함께 마르세유로 통하는 길목에서 마르세유를 감싸서 외부로부터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19C~20C, 제2차 세계대전 중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니 마냥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1660년에 생장 요새가 건축될 때 목적은 마르세유의 방어가 아닌 마르세유의 감시였다.
생장 요새가 건축된 1660년은 프랑스 절대왕정의 대표주자인 루이 14세가 존재하던 시기였다. 루이 14세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대표주자로 평가되는 인물로, 마르세유에 요새를 세운 이유는 도시의 방어를 위함이 아니라 마르세유 내부에서 일어나는 내란이나 봉기와 같은 사건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세운 감시탑의 용도였다. 감시탑의 용도로 세워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생장 요새에 오르면 마르세유 시내가 보이는 점, 대포의 포문이 해상이 아닌 도시 내부를 향해 있는 점 등이 왜 그렇게 형성되어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즉, 기존에는 개방적인 지중해의 중심 마르세유의 상징이었던 생장 요새는 1660년 절대왕정이라는 시대상 속에 마르세유 주민들을 감시하는 감시탑이 된 것이다.
4. 생장 요새
생장 요새는 다리로 연결된 Mucem처럼 내부에 엄청난 유물이 있다거나 한 것이 아니라 1660년 합쳐 건축된 요새를 두 다리로 걷고 두 눈으로 관찰하며 느끼는 것에 의의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배경들을 새겨놓은 상태로 Mucem을 통해 생장 요새로 들어가면 우선 마르세유 시내 곳곳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요새 위에서 17세기 이전 바다를 보며 찬란했던 지중해 도시 마르세유의 역사를 볼지, 1660년 이후 포문을 도시 내로 향한 강압적인 생장 요새의 모습이 보일지는 각자의 생각에 달려 있다.
또한, 생장 요새를 내려온 후 도로변에는 Mémorial des déportations이라는 공간이 있다. 이곳은 마르세유가 독일 점령기간동안 당한 박해와 억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유태인으로 태어났거나, 저항군, 인질과 같이 나치즘에 희생당한 자들의 역사와 기억을 전달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 공간이 생장 요새에 붙어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생장 요새를 사용한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처럼 Mucem – 생장 요새 - Mémorial des déportations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중세, 근대, 현대를 모두 보여주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5. 마무리
마르세유의 역사는 대부분 지중해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이용한 상업적 이익을 통한 찬란한 발전, 지중해의 다른 지역으로 나갈 수 있는 창구와 같이 개방적인 내용과 함께 왔다. 생장 요새 또한 절대왕정이라는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그 역사를 함께 해왔다. 허나, 1660년 생장 요새라는 이름이 지어졌을 시기에는 오히려 마르세유를 감시하는 감시탑의 역할을 맞게 되었다. 어느정도 정보만 가지고 있다면 생장 요새는 어떤 측면에서 봤을 때 마르세유 역사박물관보다 더 마르세유의 역사를 공감할 수 있게하는 매력이 있는 장소이다. 지중해의 중심으로서 마르세유의 역사와 함께한 공간인지, 그 마르세유를 감시하고 억제한 감시탑의 공간일지는 당신의 몫이다. 당신이 생장 요새에서 어떤 모습의 마르세유를 보게 될지 생각하며 그곳에 방문하는 것도 생장 요새를 올바르게 관람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뮤셈과 연결된 다리
뮤셈과 펼쳐진 지중해
생 장에서 보이는 마르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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