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OP

도시속의 바다 바다 옆의 도시 해양도시 인문지도

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거리와 건축

거리와 건축

20세기 프랑스 예술의 영광을 위해서 - 프티팔레

프티팔레
  • 탐방일시 :2020.01.05 ~ 2020.01.05
  • 조회수 :543
  • 좋아요 :0
  • 위치
    Avenue Winston Churchill, 75008 Paris, 프랑스
  • 키워드
    파리, 만국박람회, 프티팔레, 파리시립미술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개최를 기념하여 건축된 프티팔레는 만국박람회에 방문한 세계인들에게 프랑스의 선진적인 건축기술을 보여주며 등장했다. 이 건물을 통해 프랑스는 당시 영국과의 기술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게 되었다. 20세기 초 열강들의 경쟁 속에서 태어난 예술의 장을 프티팔레를 통해서 살펴보자.

첨부파일

상세내용보기

오늘날 엑스포(EXPO)로 많이 알려진 세계박람회는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세계적 행사이다. 19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대한민국 또한 많은 기술적, 경제적 발전을 하였다. 세계박람회가 시작된 것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박람회 혹은 만국박람회라고도 불리는 이 국제행사는 19세기 세계 여러 나라들이 산업혁명을 통한 기술 발전의 시대를 맞이하여 각국의 기술적 발전을 한자리에 모여 서로 전시할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공식적인 첫 만국박람회는 영국에서 개최되었지만, 19세기 이후 10년마다 박람회를 열며 박람회를 활성화 시킨 것은 프랑스이었다. 박람회가 축제형식을 띄게 된 그 원형도 프랑스가 개최한 1898년 파리산업박람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박람회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작은 전시관들이 건립되는 형식이 도입되는 것도 1867년 파리 박람회부터다. ‘박람회’라는 행사에 많은 영향을 준 프랑스였지만, 당시 유럽 내 경쟁자였던 영국에게 공식적인 첫 만국박람회를 빼앗긴 것은 매우 큰 타격이었다. 또한 수정궁으로 보여준 산업혁명 이후 발전한 영국의 기술력은 세계인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엄청난 자극을 받은 프랑스는 수정궁을 넘어서기 위해 프랑스만의 철제 건축 기술을 선보인다. 바로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이다. 이 철탑으로 인해 프랑스는 다시 영국으로부터 박람회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오게 된다.

박람회에서 국력을 보이다

초창기에 개최된 박람회의 특징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혼합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진행된 대부분의 박람회에서는 식민지를 통해 얻은 물자들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국의 기술 발전을 전시하면서 동시에 식민지를 통해 얻은 것을 전시하는 것이다. 이후 점차 기술적 발전을 통한 경쟁이 중점이 되었지만, 이는 박람회를 국가의 권력을 보여주는 제국주의적 홍보의 장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기술 경쟁이 박람회의 목적으로 변해갔다. 20세기 첫 만국박람회를 개최하게 된 프랑스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맞이하여 프랑스는 새로운 박람회장 건설을 시작하였다. 센느 강을 바로 옆에 끼고 파리의 중심지에 건설된 이 건축물들은 세계에 파리의 예술을 각인시켰다. 이 건축물들이 바로 프랑스 예술에 영광을 위해 헌정되었다고 알려진 그랑팔레(Grand Palais), 알렉산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III)와 함께 프티팔레(Petit Palais)이다. 2곳의 전시관과 다리는 박람회를 찾은 약 5천만 명의 관객들에게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보다 나은 접근성과 통행성을 제공하기 위해 건축되었다. 프티팔레는 그랑팔레를 마주보고 있으며, 앵발리드 궁전과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사이에 둔 형태로 지어졌다.

프티팔레는 그랑팔레와 함께 샤를 지로(Charles Girault)가 설계하였다. 미술 전시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프티팔레는 그 용도에 맞게 넓은 회랑을 가지고 있다. 양쪽 복도 끝 천장에는 벽화를 그려놓아 어느 한곳에서도 빠짐없이 예술을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 프티팔레는 작은 궁전이라는 의미처럼 그 규모가 그랑팔레에 비해 아기자기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작은 공간이지만, 외관의 모습은 그랑팔레와 비슷하게 돔 형태의 천장으로 지어졌고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 공간이 넓게 보인다. 건물이 지어질 당시에는 전통적인 미와 더불어 현대의 감각적인 미가 조화롭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매우 뛰어난 건축 기법을 구사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근대의 미(美)까지

만국박람회의 성공적인 종료 이후, 프티팔레는 국가 소유물로 지정되었다. 1903년부터는 파리시립미술관으로 변신하였다. 프티팔레에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물부터 19세기의 유물까지 폭 넓은 시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각상을 비롯하여 회화, 가구, 도자기, 서적 등 많은 작품들의 전시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다양한 시대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 것은 많은 작품을 기증받았기 때문이다. 만국박람회가 종료된 후에는 국가로부터 귀속 받은 소장품만이 있었으나, 1902년 뒤튜이 형제의 고전 미술품이 기증되었고, 1930년에는 미국인 사업가 에드워드 터크 부부, 1935년에는 주발로프 등이 방대한 양의 작품을 기증하였다. 덕분에 프티팔레의 소장목록은 더욱 풍성해졌다. 다채로운 프랑스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덕에 파리의 수많은 미술관 중 각광받는 곳이 되었다. 프티팔레는 가구와 도자기, 유리 공예품, 서적 등이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회화를 중심으로 한 미술관들이 많지만, 이와 다른 프티팔레의 전시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프티팔레는 1902년 상설전시와 특별전시의 2부로 나뉜 후로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상설전시는 관람료를 받지 않아 누구나 프티팔레의 다채로운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그랑팔레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프티팔레가 실제로 그렇게 작지 않지만, 그랑팔레가 웅장함이라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프티팔레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은 궁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관람객으로 하여금 아기자기한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기획전시만 하는 그랑팔레와 다르게 상설전시를 한다는 점에서도 손쉬운 접근성을 가진다. 이러한 점은 프티팔레를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여전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자리 잡게 하였다.

위치보기

댓글0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