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양도시문화탐방
거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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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빛을 밝히는 하멜등대
하멜등대여수와 관련된 인물을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이순신 장군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순신장군만큼이나 유명한 또 다른 인물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이순신 광장에서 왼쪽으로 펼쳐진 길을 따라 쭉 걸어오다 보면 저 멀리에 우뚝 서있는 빨간 등대가 보이는데, 파란 바다와 대비를 이루며 선명하게 서서 광양항과 여수항을 오가는 선박을 비춰주는 이 등대는 바로 하멜 등대이다. 네덜란드 동인도선박의 포수였던 하멜이 여수와 어떤 인연이 있기에, 그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여수의 한 등대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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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빛을 밝히는 하멜등대
여수와 관련된 인물을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이순신 장군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순신장군만큼이나 유명한 또 다른 인물의 흔적 또한 찾을 수 있다. 이순신 광장에서 왼쪽으로 펼쳐진 길을 따라 쭉 걸어오다 보면 저 멀리에 우뚝 서있는 빨간 등대가 보인다. 파란 바다와 대비를 이루며 선명하게 서서 광양항과 여수항을 오가는 선박을 비춰주는 이 등대는 바로 하멜 등대이다. 네덜란드 동인도선박의 포수였던 하멜이 여수와 어떤 인연이 있어서 그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여수의 한 등대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여수와 하멜의 인연은 1653년 일본을 향해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한 선박이 난파하여 제주도에 표착하면서 시작되었다. 하멜은 당시 동인도회사 선박의 포수로 있었는데, 항해 도중 선박이 난파하자 그 근방에 위치한 제주도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제주도에 표착한 후, 하멜과 그의 일행은 본래의 목적지였던 일본으로의 송환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조선이 이를 거절하자 이들의 14년 동안의 조선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포수 출신이었던 하멜은 훈련도감에 편입되어 병사로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그와 그의 일행과 함께 계속해서 조선을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탈출시도는 실패하였고 그 결과로 이들은 유배를 떠나게 된다. 하멜은 여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었다. 여수에서 3년 동안 잡역에 종사하며 힘든 노역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하멜은 1666년 또다시 탈출을 시도하는데 마침내 이를 성공한다. 하멜은 네덜란드로 돌아간 후 "난선제주도난파기"와 함께 조선국기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하멜표류기이다. 동인도회사의 일개 포수가 14년 동안의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작성한 탐험일지는 조선의 지리, 군사, 문화, 정치, 교역 등 다양한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고, 이 글을 통해 그는 한국을 최초로 서양에 소개한 유명인물로서 지금까지 칭송을 받고 있다.1)
2004년 여수시에서 하멜기념사업과 연계해 하멜의 근로 현장으로 알려진 동문동 일대를 ‘하멜로’로 지정 하고, 이듬해 이 하멜로의 끝에 위치한 여수구항에 세워진 등대를 ‘여수구항방파제 하멜등대’라 이름 붙이며 먼 한국의 땅에서 네덜란드 선박선 포수의 이름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 만약 하멜이 여수의 푸른 바다 끝에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는 계속해서 조선에 머물러 잡역에 종사하다 생을 마감했을까? 한국을 최초로 서양에 소개한 글은 다른 인물에 의해 쓰여 졌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위대한 역사를 만들고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잔잔히 흘러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렇게 하멜이 자유를 찾아 떠난 여수항의 바다는 지금 푸른빛으로 잔잔히 흘러가고 있고, 그 한 켠에는 하멜등대라 이름 적힌 빨간 몸체의 등대가 과거 하멜이 보았던 자유의 빛처럼 여수항을 밝게 비추고 있다. 그 뒤편에서는 그의 동상과 전시관이 이 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하멜이 거닐던 장소를 따라 걸으며 그 끝에서 바다가 주는 푸른색의 무한한 희망을 기대해보자.
하멜전시관 앞편의 하멜 동상
하멜등대 앞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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